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16
Chapter 26. 대항전(4)
기마전(騎馬戰).
세 명의 ‘말’과 한 명의 ‘기수’가 하나가 되어, ‘승리의 징표’를 지키면서 남의 징표를 빼앗아 오는 게임.
탈락하는 팀이 12개가 될 때까지 살아남으면 승리한다.
“땅에 떨어져도 탈락이라고 했지?”
“예, 누님! 말이 세 명이니까…… 한 명이 형님을 목마 태우고, 나머지 둘이서 다리 한쪽씩을 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근데 그럼 등이 비지 않나요? 은호 씨, 뒤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 다리를 잡은 사람들이 등도 받쳐 주면 될 겁니다.”
규칙은 간단하다.
아니, 간단해 보인다.
욕심부리지 않고 도망만 다니면 징표를 빼앗길 일도 없으니 저절로 승리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가도록 놔두진 않겠지.
우린 지금 견제 대상 1호일 테니.
“절반만 떨어뜨리면 ……다. …… 힘을 합쳐야…….”
“……니다. 역시 한국이…….”
이미 구역 몇몇은 대표끼리 접촉해 저들끼리 속닥거리는 중이었다.
죄다 이쪽을 가리키며.
“아, 아저씨! 다 우리만 보고 있어요!”
여진이가 생존자들을 둘러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저 사람들도 다 능력이 있을 텐데…….”
솔아의 말이 맞다.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그것도 각 구역의 1등인 저들이라면 필살기 정도는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 와중에 ‘말’에서 떨어져, 기상천외한 초능력자들 발밑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짓밟혀 죽을지도 몰라.’
섬뜩!
등골이 오싹해진다.
하지만.
“우리도 다른 구역이랑 연합하는 건 어때요? 처음에 도와주면 나중에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거죠!”
“괜찮아.”
“뭐 이렇게 태평해요? 다치는 건 아저씬데…….”
“안 다쳐.”
태연한 반응에 솔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왠지 대책 없는 아저씨라고 속으로 욕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능력, 아직 안 보여 줬으니까.”
“!!”
일본을 상대할 때 가속 스킬로 표창을 거둬 냈지만, 그들은 여기 없다.
게다가 그들 또한 짧은 시간에 정확한 스킬의 매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했을 거고.
게다가.
“엄청난 탱커가 있잖아.”
“탱커요?”
쏟아지는 공격에도 걱정 없는 몸빵이.
“역시 제가 들어가는 게 낫겠죠, 형님?!”
눈이 마주친 재혁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제 쇠금 갑옷의 가슴팍을 탕! 탕! 두드리며.
“하긴, 저 바보 아저씨면 든든하긴 하겠네요.”
“바, 바보 아저씨?!”
솔아와 재혁이가 티격태격 대는 사이 몸을 돌렸다.
갓 태어난 새로운 탱커에게로.
“아까 그 스킬,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 그려, 그려! 거시기, 무슨 스킬이냐면…….”
아저씨가 얻은 스킬은 ‘경비.’
방어할 ‘구역’을 지정하고, 허락한 대상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방어막을 생성한다.
“문제는 방어막이 반경 1m밖에 안 되는 데다가, 계속 두드리면 결국 깨진다는 건데…… 큰 도움이 안 되는 구만 그려.”
“아뇨, 눈치채지 못한 기습만 막아 주셔도 충분합니다. 방어막 강도야 스킬 레벨을 올릴수록 높아질 테고요.”
머리 위나 등 뒤에서 날아오는 기습을 잠깐이나마 막아 준다면, 훨씬 움직이기 편하리라.
“그, 그럼 이번에…….”
“예. 아저씨랑 재혁이한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저만 믿으십시오, 형님!”
내 선언에 경비 아저씨는 눈을 커다랗게 떴고, 재혁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선 외쳤다.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한 자리를 노리며 너도나도 한마디씩을 던져 댔고.
“나, 난 어때? 저 새끼들 면전에 대고 욕하면 디버프 줄 수 있는데!”
욕쟁이가 제 입과 다른 구역 대표들을 번갈아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저는…… 은호 씨 절대 안 떨어뜨릴 수 있어요!”
지은 씨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고.
“저도요! 흙벽으로 아무도 못 오게 막으면 안전하게 버틸 수 있어요! 다 엎어 버려도 되고.”
연보라까지 가세해 손바닥을 움직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리 합을 맞춰 봐야겠군.”
박공찬은 몸을 풀며 재혁이와 경비 아저씨에게 다가섰고.
“합?”
“그래. 원래 이런 경기는 얼마나 한 몸처럼 움직이느냐가 승패를 가르지. 거기 두 사람, 민첩 스탯이 어떻게 되지?”
“예…… 예? 저는 15…….”
“나, 난 14라네! 어이구…… 살다 살다 박공찬 선수랑 어깨를 맞대는 날이 오다니…….”
‘하?’
진지한 얼굴을 보아하니 마지막 한자리가 제자리라 확신하는 모양.
그럴 수 있다.
박공찬은 탁월한 신체 조건에 ‘슛’ 스킬까지 더해 누구보다 공수 밸런스가 잘 잡힌 훌륭한 재원이니까.
하지만 이런 난전에서는 차라리…….
“서포터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는데.”
“뭐?”
우리는 아직 다른 생존자들의 능력을 모른다.
즉, 미지의 적들이 나 하나만 노리고 달려들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뜻.
그러니 박공찬을 더해 공격력을 높이기보다는, 유틸성 좋은 서포터를 기용해 전체적인 팀의 안정성을 높이는 편이 좋을 거다.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건가.”
“!!”
“그럼…….”
“나?!”
내 말에 박공찬은 인상을 팍 썼고, 지켜보던 지은 씨와 연보라는 눈을 반짝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욕쟁이도 기대감에 차 다가왔고.
“제가 선택한 세 명은…….”
그렇게 내가 택한 선수들과 선택의 이유, 그리고 전략까지를 찬찬히 설명한 뒤.
스윽!
시야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창을 눌러 이름을 썼다.
3개의 빈칸에 하나씩의 이름을 차근차근.
그리고.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게 맞겠지. 행운을 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믿고 있겠습니다.”
“이은호 씨! 꼭 이겨 주세요!”
[출전자들은 모두 중앙 경기장에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사람들의 응원을 뒤로하고 나섰다.
88명의 선수들과 맞붙을 경기장으로.
* * *
[‘승리의 징표’가 지급되었습니다.]잘그락!
목덜미에 묵직한 무언가가 걸렸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금색 메달이.
“오…… 생각보다 크고 번쩍입니다!”
“눈에 띄어야 서로 가지려고 싸울 테니까.”
“그러고 보니…… 다들 눈빛이 살벌하네요!”
[기수는 말에 탑승해 주세요!]서슬 퍼런 눈을 굴리던 23명의 대표가 각자의 ‘말’에 올랐다.
최적의 자세를 찾아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도 다른 팀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느라 바쁘다.
경기장을 휘감은 팽팽한 긴장감.
흥분했는지 발을 구르는 몇몇 이들 탓에 흙먼지가 치솟았다.
“한국부터 노린다. 한 번 1등 먹었으니 양보해야지.”
“그래! 또 순위권에 들어 버리면 따라잡기 힘들다고. 오늘은 무조건 일찍 떨어뜨려야 돼.”
“하나 잡자고 힘을 너무 많이 쏟는 거 아닌가 싶긴 한데…….”
“강한 놈은 초반에 잡아야 후환이 없어. 빨리 해치우고 떨거지들 징표를 뺏으면 돼.”
백인, 흑인, 동양인 할 거 없이 열 개는 족히 넘는 팀들이 저마다의 다양성을 뽐냈다.
하나같이 호승심과 긴장감이 뒤섞인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주로 나서는 건 미국, 러시아, 스페인, 인도…….’
대부분 어제의 중상위권 팀들이다.
오늘 우리가 조기 탈락하면 합산 점수로 상위권을 바라볼 수 있는 놈들.
‘용케 뭉쳤네.’
뭐, 하긴 생각해 보면 저들끼리야 연수 포인트 1p씩밖에 차이 나지 않으니 잠깐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건 쉬웠으리라.
물론 그렇다고 당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근데 중요한 건…….”
“한국 팀, 어디 있는 거야?”
꿀꺽!
긴장한 재혁이의 침 삼키는 소리와 함께, 감정 없는 시스템이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기마전을 시작합니다!]우와아아아아-!
그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우릴 둘러싼 놈들이 제각기 한마디씩을 외치더니…….
우드득! 푸화아아아앗-!
변했다.
마치 만화 속 빌런들이 전투 종족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흐이이이이익! 혀, 형님! 저기…… 거인이……!”
“거인?”
미국 대표를 어깨에 얹은 금발의 덩치가 몸을 부풀렸다.
……말 그대로 ‘부풀렸다.’
‘……미친.’
단단하다 못해 각진 장딴지며 허벅지는 건물 기둥만큼 부풀어 올랐고, 원래도 어린아이 머리만 하던 팔뚝 또한 끝도 없이 커져 갔다.
“청년들! 저거…… 사람 맞지?!”
“코, 콧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습니다!”
재혁이가 식겁해서는 부르르 떨었지만, 기상천외한 능력은 이제 시작이었다.
“흐메! 저놈은 진짜 하늘을 날아가는디?!”
“하늘을 날다뇨? 그럼 지은 누님처럼…… 히익?!”
이라크 대표는 화려한 문양의 양탄자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 버렸고.
— 한국티이이이이이이임! 나와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끅!”
“귀, 귀에서 피 나!”
필리핀 대표는 엄청난 성량으로 주변 생존자들 고막을 터뜨려 버렸으니.
“하…… 가까이 있었으면 귀가 멀었겠구먼.”
“별의별 능력이 다 있습니다, 형님!”
“그러네.”
두 사람이 질린 듯한 얼굴로 말하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등 뒤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괜찮아? 방금 너무 시끄러웠지?”
톡! 톡!
등에 보자기로 싸매듯 업힌 꼬마의 머리를 토닥이며 물었다.
……내 등에 업힌 채로 ‘숨바꼭질’ 스킬을 시전 중인 꼬마 닌자에게.
“웅…… 괜차나요! 귀 막고 있었어요!”
“불편하진 않고?”
“녜! 재밌어요. 놀이기구 같아요!”
율이의 ‘숨바꼭질’을 쓰면서도 양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구상한…….
일명 ‘어부바 전략.’
초반에 집중 공격을 당할 게 뻔하니 율이 능력으로 숨어 있다가, 방심한 적들의 징표를 빼앗아 점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가만히 숨어 있어도 되지만, 그랬다간 다른 팀들에게 포인트를 다 뺏길 테니까.’
그나저나 혹시 율이가 무서워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팔을 파닥거리며 씩씩한 대답을 내놓는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양쪽 다리를 하나씩 붙잡은 두 사람에게 일렀다.
“가시죠. 왼쪽부터 순서대로.”
“예, 형님!”
“알겠네!”
징표인지 금메달인지, 한번 훔쳐보자고.
* * *
타닥!
풀밭을 가로지르며 달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달려졌다’고 해야 할까.
재혁이의 오른쪽 어깨와 경비 아저씨의 왼쪽 어깨에 걸터앉은 채, 사람들 틈을 누비고 다녔으니.
“형님! 괜…….”
“쉿.”
‘……찮으십니까?’하며 속삭이는 재혁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말’이 셋이 아닌 둘이다 보니 안정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안정적이야.’
재혁이와 아저씨의 속도가 미세하게 달라 휘청거릴 만도 했으나, 하체 근육이 체축(體軸)을 단단하게 잡아줌으로써 균형을 유지했다.
지금껏 올린 근력 스탯 덕분이겠지.
스릉!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검을 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첫 번째 타깃.
‘화염 능력자인가.’
화륵!
손바닥 위에 불꽃을 올려 두고는 긴장한 듯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여러 팀이 뭉쳐 있는 곳. 적당한 무력. 경계심 가득한 얼굴.’
이놈이다.
“아니, 그 이은호인지 뭔지는 어디 있어?! 안 보이잖아!”
“숨을 데도 없는데 어딜 간 거야?!”
코앞에 있는 우릴 못 보고 두리번거리는 고개가 분주하다.
【‘조사국 프린스’가 저놈들 설마 이은호를 노리는 거냐고 코웃음을 칩니다.】
【다수의 참관자가 철없는 대상자들의 용기에 고개를 젓습니다.】
【소수의 참관자가 수적 열세에 우려를 표합니다.】
재혁이와 아저씨가 입을 뻐끔거리며 눈을 맞춰 오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지.’
그리고 입 모양으로 말하고는.
스윽!
손을 뻗었다.
숨소리도, 손이 가르고 나아가는 공기의 흐름마저 조심하면서.
“이거, 이미 튼 거 같은데 차라리 중국 놈들 먼저 노리는 게 낫지 않아?”
“하 씨…… 먼저 움직이긴 부담스러운데…… 차라리 숨을까?”
“숨어 있다가 우리 거 뺏기면 끝이잖아! 아니면 옆에 놈들 징표나 뺏던가!”
잘그락!
손끝에 메달에 닿는 순간 아주 작은 소리가 났지만, 목걸이의 주인이 한창 언성을 높이고 있던 탓에 눈치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탁!
메달이 달려 있던 끈을 끊어 냈다.
“……?!”
“어, 어? 방금 뭔가…….”
당황해할 틈도 없이 들려온 안내 방송.
[최초의 탈락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남은 징표 : 22개]“가, 갑자기 뭐야!”
“징표 어쨌어! X발!”
눈 뜨고 코 베이듯 메달을 빼앗긴 놈들이 당황스러운 노성을 내질렀다.
그러니까, 내 계획대로.
“너, 너지?! 이 새끼들…… 상위권 잡고 다 같이 올라가자더니!”
“아, 아냐! 우린 아무것도……!”
갑작스런 탈취에 옆에 있던 이들도 화들짝 놀랐다.
“같이 뒤져, X발!”
“뭐? 왜 갑자기…….”
“저 새끼 꺼 뺏어! 빨리!”
한순간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칼끝을 서로에게 향하기까지.
“X발, 내 이럴 줄 알았지! 야, 메달 붙들어! 거리 벌린다!”
“동맹은 무슨! 전쟁이다! 다들 무기 들어!”
【‘조사국 브레인’이 설마 처음부터 분열을 의도한 건지 궁금해합니다.】
【‘조사국 프린스’가 원래 이런 놈이라고 웃으며 답합니다.】
‘적이 동맹을 맺으면, 그 협력 관계를 와해시켜 버리면 돼.’
어차피 이들 또한 날 잡기 위해 잠시 뭉친 관계일 뿐.
이번 경기만 끝나면 깨져 버릴 동맹이 유리구슬보다 견고할 리 없다.
파스스슷!
서로서로 거리를 벌리는 이들의 발소리가 유리구슬에 금 가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그리고.
“……이 틈에 바로 갑시다. 다음!”
“예!”
난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