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28
Chapter 29. 공성전(3)
‘저, 저게…….’
웨이가 입을 틀어막았다.
뒤집어쓴 핏물에서 올라오는 쇳내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도망…… 가야…….’
시체들 사이에 숨은 덕분에 아직까진 발견되지 않고 있었지만…….
금방일 거다.
그걸 알면서도 웨이는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도, 기어 나갈 수도 없었다.
지금껏 봐 온 그 어떤 싸움도 뛰어넘는 치열한 공방.
쑨밍은 공안에서 키워 낸 최고의 전사였으나, 그 또한 저자에겐 미치지 못했다.
만약 오른팔을 잃고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달랐을까?
‘……아니.’
의미 없는 가정 속에서도 희망은 없었다.
소년의 사고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을 만큼 어수룩하지 않았고.
소년의 눈썰미는 쏟아지는 패배의 증거를 무시할 만큼 어설프지 않았기에.
‘세상에 쑨밍보다 강한 사람이 있었다니…….’
핏발 선 눈으로 남은 기력을 긁어모으는 쑨밍과 달리, 이은호의 눈동자에는 동요가 없다.
분명 열렬한 불길을 만들어 내고 있으면서도, 고요한 물길을 걷는 기인처럼 침착한 사내.
싸움이 끝나는 대로 날 찾겠지.
죽이려나?
당연히 죽이겠지?
그리 생각하며 웨이는 바르르 떨었다.
【‘대외협력국 신의한수’가 가엾은 영혼의 고통에 공감합니다.】
【‘조사국 승부사’가 그럼에도 한 번 더 착수하길 기원합니다.】
처음 공안의 손을 잡은 그 날을 떠올리게 하는…….
아니, 그보다 더한 무력감.
지금껏 바둑판을 펼치라면 펼치고, 돌을 놓으라면 놓았지만.
‘다 싫어. 이제 끝이야!’
잘그락!
반투명한 통에서 마찬가지로 반투명한 바둑알을 꺼냈다.
피투성이 시체들 틈에 숨어서.
스윽-
흑돌로 만든 집 중앙에 흑돌을 하나 더 가져갔다.
그러자 곧장 들려오는 알림.
[대국을 종료하시겠습니까?]대국이라.
상대 기사도 없는 대국 따위, 이걸로 끝이다.
【다수의 참관자가 대상자 ‘웨이’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직 끝내기가 남았다고 만류합니다!】
【복지 포인트 1,000점 후원!】
“……다들 바보야? 몰판(沒板)이라고!”
아무리 둘러봐도 남은 중국인은 죽었거나, 죽어 가거나, 죽을 예정인 사람들 뿐.
저쪽의 일방적인 승리, 즉 몰판(沒板)이다.
그래서.
탁-!
웨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지막 돌을 착수했다.
[기사(棋士) 웨이, 불계패(不計敗).] [대국을 종료합니다.]파앗-!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바둑판과 바둑알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는.
‘후…….’
심호흡을 하고, 기었다.
화려한 싸움에 모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계단까지만 가면 돼! 제발……!’
바닥에 붙어 기어가느라 팔꿈치와 무릎이 아팠다.
손바닥에는 뾰족한 돌멩이가 박힌 것도 같았다.
울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억누른 채 나무 계단에 당도했을 때.
삐걱.
낡은 나무 계단을 삐걱대는 발소리가 들린다.
‘어, 어떡하지? 들켰나?’
털썩!
당황한 웨이는 뒷걸음질 치다가 주저앉았다.
그리고.
“히끅!”
놀라서 오들오들 떨었다.
망했다.
지나가던 사람이라도 들었을 거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무서워!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
그렇게 눈을 꼭 감고 빌고 있자니.
슥!
자그마한 고사리손이 훅 들어왔다.
“……어?!”
웨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뜬금없이 나타난 여자애.
[대상자 ‘김율’의 숨바꼭질 영역에 포함되었습니다.]“너, 넌 뭐야?!”
“나? 김율! 다섯 쨜!”
“?!”
히끅!
놀란 웨이가 딸꾹질을 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꼬맹이.
“울어?”
“우, 울긴 누가 울어? 안 울어!”
뭔가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며 웨이가 고개를 저었다.
“구래?”
그러자 여자애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다가.
“우움….”
다시금 고개를 쏙 내밀고 물었다.
“근데 왜 울어?”
“아! 안 운다니까?”
“구래?”
……진짜 이상한 애다.
* *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검사는 죽어서 검을 남겼다.
‘뭐가 이렇게 많아?’
많은 생각과 그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남기고 쓰러진 호위무사를 응시했다.
그리고.
슥!
눈꺼풀을 내려 핏발 선 눈을 감기자,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은호 씨!”
“처, 청년! 괜찮나?!”
일행들이 저마다의 싸움을 끝내고 달려왔다.
다들 얻어맞고 찢겨서 엉망진창이다.
몇 걸음 뛰어왔다고 힘에 부치는 듯 숨을 헐떡이는 것도 마찬가지고.
“웨이는요? 찾았습니까?”
“아뇨……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도망간 거 아닐까요?”
그나마 다행인 건.
──── ────
ㆍ수신 : 이은호
ㆍ발신 : 연보라
ㆍ오빠! 대국 끝났어요! 일단 다른 놈들은 최대한 막아 볼게요. 보니까 미국인들 같은데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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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을 노리던 대국이 종료되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가 붙어있긴 하지만.
“끝났나요?”
“예! 일단…… 더 이상 공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들 이쪽으로.”
“네!”
파앗-!
수많은 문양과 알아볼 수 없는 글자와 선들이 각기 다른 각도로 얽힌 마법진이 완전히 푸른빛을 띠더니.
순간, 중앙탑 꼭대기 층 전체가 환한 빛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이 성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렸다.
펄럭!
중앙탑 꼭대기에 걸려 있던 깃발을 교체하고.
【공성 – ROK】
【수성 – CN】
【공성(攻城) 성공!】
성안에 있는 모두의 눈앞에 푸른 창을 띄우며.
“끝났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후…… 이렇게 싸우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도 이렇게 죽어라 달려들 줄은…… 몰랐네그려.”
모두 지친 기색이 만연했다.
심지어 경비 아저씨는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를 휘청이기도 했고.
하지만, 긴장을 다 풀기엔 섣불렀던 모양.
우워어어어어어-!
깨진 창밖에서부터 들려오는 함성.
“사,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중국인들이에요!”
눈 시퍼렇게 뜨고 성을 빼앗겼으니 저리 눈을 까뒤집고 달려올 만하다.
예상했던 위험이란 소리다.
그래서.
“지은 씨!”
“다녀올게요!”
미리 대비해 뒀지.
탁! 탁!
폭파된 벽을 통해 빠져나간 지은 씨가 중앙탑 하단에 몰래 부착해 둔 심지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그러자 불씨가 기다란 심지를 태우며 다가가.
콰앙-!
폭발을 일으켰다.
……정확하게는, 연쇄 폭발을.
쿠과과과과과광!
중앙탑을 빙 둘러싼 폭탄이 줄지어 터졌다.
“뭐, 뭐야! 언제 폭탄을……!”
“꺄아아아아악!”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다 말고 멈춰 버린 사람들.
그 머뭇거림을 확인한 지은 씨가 손을 멈췄다.
다들 화려한 폭발에 기죽은 모양.
그 누구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에 달려들고 싶진 않을 거다.
허장성세가 제대로 먹혔다.
“청년! 위협이 먹혔네!”
“멈췄습니다, 형님!”
멈추긴 했지.
하지만.
“끝이야? 썅, 이거 괜찮은 거 맞아?”
“그럴 리가요.”
괜찮은 건 아니다.
“수성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공방(攻防)이 뒤바뀌어 버렸으니까.
* * *
콰앙-!
[성문이 파괴되었습니다!] [연수 포인트 획득에 실패합니다.]버티고 버티던 성문이 파괴되었다.
누구의 것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는 비명과 쏟아지는 분진.
“보라 씨! 남쪽 벽에 사다리가 붙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제 던질 게 없어요! 능력으로 돌이나 바위 좀 더 올려 주면 안 돼요?”
“보, 보라야! 여기 좀 도와줘! 뚫리고 있어!”
성벽 방어조는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었으며, 그들을 이끄는 연보라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보라야!”
“보라 씨!”
“보라 님!”
‘으악!’
끝도 없이 불리는 이름에 연보라는 울고 싶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싸운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야! 연보라 너 그만해, 진짜 쓰러져!”
“됐어. 괜찮아.”
“미친, 코피 나잖아!”
“……피로 회복제 마시면 돼.”
뜯어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연보라는 쉴 수 없었다.
‘오빠가 나한테 맡긴 일이야. 해내야 해!’
연보라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동쪽 벽에서 다섯 명, 남쪽 지원 가 주세요! 서쪽은 제가 갈게요!”
그러나 성문 방어조는 상황이 더 끔찍했다.
탕-!
“꺄아아아악! 초, 총! 맞았어!”
“주, 주장! 끄아아아아악!”
“다, 다리…… 깔렸……!”
다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구조 요청.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 보라조차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으니, 박공찬의 머리는 이미 터지고도 남았을 거다.
그럼에도 국가 대표단은 지침이 없었다.
“총알이 얼마 없을 거다. 원거리! 총 든 놈부터 처리해 줘! 부상자는 이쪽으로! 치료부터 받아!”
“끄윽…….”
“나머진 전방 주시하고, 앞의 놈들부터 막는다! 아직 버틸 만해!”
“예!”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들어온다!”
애저녁에 부서진 성문을 맨몸으로 막다시피 하고 있었다.
밑동이 뚫린 항아리를 손으로 막은 마냥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저기 한 놈!”
간혹 하나둘 튀어나오는 침입자들이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물처럼.
“슛!”
타앗-! 푸확!
그럴 때마다 박공찬이 돌덩이를 날려 침입자를 막아 내곤 했지만…….
“폭파(爆破)!”
“!!”
이번엔 무리다.
화르륵-
쌔애애애애액-!
손에 낀 거대한 장갑. 장갑에서 튀어 오르는 스파크와, 뒤이어 뿜어내는 엄청난 화력.
“로, 로켓 펀치다!”
“소조(塑造)!”
놈의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곧장 흙벽을 세웠다.
포탄처럼 저 미국인의 몸뚱이 또한 막아 버릴 심산으로.
하지만.
“참 신기한 재주란 말이지.”
놈이 날아오던 속도를 늦추고 장갑을 들었다.
손바닥에 솟구치는 불길을 흙벽 앞에 가져다 댄 뒤 외쳤다.
“폭파!”
콰앙-!
“!!”
“조심…… 꺄아아아악!”
성벽 위의 사람들까지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폭음.
그만한 파괴력을 초벌조차 하지 않은 흙벽이 견딜 리 없었다.
파스스스스슷-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외벽.
“미친…….”
사람들의 희망과 의지 또한 벽과 함께 무너져 버렸다.
“포기…… 해야 되는 거 아냐?”
“이러다 다 죽겠어!”
“전 더 이상 못하겠어요…… 치료해 주는 학생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그, 그냥 성만 넘기고 살려 달라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주, 와르르.
‘……포기한다고?’
연보라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오빠가 있었으면…… 아니, 내가 오빠만큼 강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텐데.’
억울함에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
쌔앵-!
서늘한 바람이 불고.
쿵-!
폭발을 연신 만들어 내며 흙벽을 부숴 버리던 미국인이 땅에 떨어져 고개를 처박고.
“연보라! 괜찮아?”
이은호.
그가 돌아왔다.
“내, 내 장갑! 어떤 새끼야아아아아악!!”
로켓 펀치의 절규와 함께.
“오빠!!”
벅차올랐다.
분명 억울함은 가셨으나, 눈가에 글썽거리던 눈물은 들어가긴커녕 되레 흘러나와 넘쳤다.
“뭐야. 울긴 왜 울어?”
“히끅…… 못 올 줄 알았는데……!”
툭!
은호의 커다란 손바닥이 연보라의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메시지를 그렇게 보내는데 어떻게 안 오냐.”
“메시지요……?”
──── ────
ㆍ오빠! 대국 끝났어요! 일단 다른 놈들은 최대한 막아 볼게요. 보니까 미국인들 같은데 너무
──── ────
“미국인들 같은데 너무, 하고 끝나니까 불안하잖아.”
“아…… 너무 많다는 얘기였어요. 사람이…….”
“그거 50자 제한 있어. 다음부턴 짧게 보내.”
“……그럴게요.”
은호는 말이 없었으나 얼굴에서 마음이 읽혔다.
고생했노라 말하는 것 같은 따뜻한 눈빛.
그 눈빛에 지금껏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가득 채우고 있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가.
‘아차.’
문득 깨달은 현실.
“중국 성은요……? 오빠랑 언니 둘 다 여기 오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괜찮아, 친구들 불렀어.”
“네? 갑자기 무슨 친구요?”
뜬금없는 말에 놀라 눈을 치켜뜨고 물었으나 이은호는 제 할 말만 했다.
“음, 그것보다…… 보라야. 벽 좀 세워 줘.”
그 말에 연보라가 ‘아…….’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지은 사람처럼.
“소용…… 없어요. 저 발파인지 폭파인지 하는 스킬 한 번이면 무너져요.”
방금 전에 그러했듯이.
하지만 이은호는 만들자마자 무너지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재촉했다.
“저놈들 막으려는 거 아니니까, 어서.”
“네?”
“경계선이 필요해서 그래.”
성채 밖은 풀떼기 하나 없는 황무지였다.
풀밭보다는 사막에 가까울 듯한 무(無)의 공간.
바깥 영역을 땅따먹기라도 할 것도 아닌데, 웬 경계선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소환.”
은호의 손바닥 위에 둥그스름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파앗-!
눈발 대신 사막 같은 모래가 가득 들어찬 스노우볼.
“그, 그거! 입사식 때 받은…… 그거예요?!”
“어, 그거.”
입사식 때 졸라서 구경한 뒤로 처음 보는 아이템.
‘그거라면……!’
연보라의 커다래진 동공이 확신에 찬 은호의 눈에 닿았다.
“확실히 뒤집을 수 있겠네요!”
눈물을 겨우 다 닦아 낸 연보라가 환하게 웃었다.
“빨리 끝내자. 피곤하다.”
“……네!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