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14
Chapter 46. 제보(5)
“그러니까.”
손에 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시선은 소파에 비대한 몸을 파묻듯 기대앉은 처장에게 고정한 채.
“사적 개입도, 증거 조작도, 뇌물 수수 및 부정 청탁도, 무영장 불법 감찰도, 무혐의 민간인 불법 억류에 특수 폭행도…… 처장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신다, 이거군요?”
[그러니까, 난 아는 게 없다 하지 않았나.]반질반질한 정수리처럼 뻔뻔한 감찰처장은 모든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확히, 예상했던 대로.
[자네, 팀장 부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했지?]“일주일쯤 됐습니다.”
[그래. 갓 부임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처장쯤 되면 자잘한 결재 건은 올라오면 하고, 승인해 달라면 해 주고. 그게 끝일세. 그 많은 기안을 어찌 다 보나?]아마 틀린 말은 아닐 거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결재 좀 부탁드립니다. 수수료 지급 건이라 오늘까지 내보내야 해서요.”
“아, 나 바로 회의 가야 되니까 직접 해. 컴퓨터 안 껐어.”
직전 회사의 팀장도 같은 말을 하곤 했으니까.
하나하나 따져 가며 승인하면 그거 알아보다 하루 다 간다고, 바쁠 땐 아예 컴퓨터 채로 넘겨주곤 했다.
하지만.
“그럼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제 얼굴이 떡하니 찍힌 것까지 부정하진 못하겠지.
파앗-
그러자 이것까지는 예상 못 했는지 곧장 자세를 곧추세우는 처장.
[어…… 어? 뭘 또 영상까지 준비했어?]처장의 집무실 한편을 채우며 나타난 스크린.
그 속을 지직거리는 저화질 영상 하나가 채웠다.
레이라가 운영국 전 채널을 뒤지고 또 뒤져, 겨우 구해 온 영상이었다.
식당가를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달려 있던 ‘눈’에서 발췌한 짧은 클립.
[형님! 형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그래그래. 회사 생활 별거 있나? 상부상조하면서 가자고.]술자리가 끝나고 나오는 길.
얼큰하게 취해 비틀대는 처장과 그의 어깨를 든든하게 받치고 선 모호.
파앗-
그리고 다음은, 감찰국 흡연 구역을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달려 있던 ‘눈’에서 잘라 낸…….
[이은호라고, 신입인데…….] [잡아넣어.] [예?] [그 정돈 해 줘야지. 아우 부탁인데.]담배를 꼬나문 처장과 아까 그 감찰관.
둘의 대화였다.
[!!]처장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흐릿하고 화질도 나쁘지만, 감찰처장의 옆얼굴이 똑똑히 찍혀 있었기 때문.
정면으로 찍힌 감찰관은 더욱 확실했고.
[……저게 나라고?]“그렇겠죠. 쌍둥이가 계시는 게 아니라면요.”
그럼에도 처장은 부인했다.
본인일 리 없다. 저런 말을 할 이유도, 한 기억도 없다. 이건 모함이다. 조작된 자료다…….
딱 저들이 할 법한 짓을 읊어 대며.
[자네, 불완전 판매 혐의로 잡혀 들어왔다 했지? 그것 때문에 앙심을 품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작을 한 건가?]“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제대로 된 증거로 채택되려면 조작되지 않았다는 증빙 또한 필요하다는 거 모르나?]아, 그러셔?
[잘리거나 편집된 영상은 제대로 된 증거로 인정할 수 없네! 날 협박하려면 원본 영상을 가져오게.]‘빙고.’
속으로 코웃음이 나왔지만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절 제보한 증거도 효력이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뭐라?]“감찰관이 준비해 온 증언. 그 자료 말입니다.”
방금 그 발언, 내 변호를 대신해 준 거나 다름없는 셈이라.
“아주 뚝뚝 끊겨 있고, 여기저기 앞뒤로 잘라 붙였던데.”
[자, 잘라 붙이다니?]“대사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배경까지 만질 시간은 없었나 봅디다.”
[배경?!]흠칫!
순간, 처장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방금 저 멀리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옆에 와 있고, 아주 엉망이었거든요.”
제 입으로 내어 놓은 악수(惡手).
“보셨군요?”
[!!]“거기다 일대일로 찍으라고 지시까지 하셨고.”
[그, 그게 아니라…….]“아까 분명 이 제보 건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
점점 가빠오는 숨.
뜨거운 열을 뿜기 시작한 콧김.
[……저거, 4과 막내 사건이라고 했나?]“알면서 물으시네요.”
[몰라! 모른…… 후, 내가 잠시 흥분했군. 아무튼…….]처장이 땀이 나는지 더 반짝반짝해진 정수리로 말했다.
[불러서 따져 보자고. 하나하나 명백하게.]하나하나 명백하게 ‘입을 맞춰’ 따져 보겠단 소리다.
것도 안 되면 꼬리 자르기를 하겠다는 소리기도 하고.
그렇다면.
“잘됐네요. 저도 부를 분들이 좀 있어서.”
[……뭐? 누구?]똑똑-
“아, 벌써 도착하셨네요.”
자, 그럼 이것도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을지 보자고.
[히익! 귀, 귀하신 분께서 여긴 어쩐 일로…….]“제 증인입니다.”
순식간에 처장의 고개가 무릎까지 닿았다.
맨들맨들한 정수리에서부터 땀 한 방울을 똑, 떨어뜨리면서.
* * *
도대체 이은호 그 자식이 입을 어떻게 턴 건지, 한참을 난리 치던 감찰관이 이젠 전음으로까지 골을 울려 댔다.
제발 좀 닥쳐 달라 부탁하자.
안 그래도 이은호한테 두들겨 맞은 탓에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까.
[[조용히 좀…….]]그랬는데.
[[X발, 지금 게시판 난리라고!]] [[게시판?!]]───────────────
▧ [폭로] 영업국 모 팀장의 추악한 실태를 폭로합니다. ▧
영업국 M 팀장이라고 하면 아실 거예요. 워낙 유명하니까.
실적 1등 자리 지키려고 약점 잡고 협박한 직원들이 한 트럭입니다.
더러워서 영업 못 하겠다고 나갔는데, 그게 일이 더러워서가 아니에요.
다 M 밑에서 못하겠다고 튄 거거든요.
자기가 맨날 진급 청탁해서 올라가더니, 아랫사람들한테도 똑같이 하더라고요.
진급하려면 돈부터 준비해야 했어요. 대리 진급에 30만 점이랬나?
그리고 정산금은 또 얼마나 빼돌리는지. 전문가예요, 전문가.
팀장 되고 나아졌나 했는데, 지금도 하는 짓은 똑같더라구요.
언제까지 이런 놈들 밑에서 빌빌 기면서 살아야 하나요?
───────────────
‘이, 이게 무슨…….’
쏟아진 환불도.
팀원들의 고발도.
하다못해 이은호 그 미친놈의 폭력도 끝이 아니었다.
진짜 ‘끝’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눈에 안 보이고, 손에 안 잡히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두의 여론 속에.
⇒ 이 새끼 누군지 아는데 ㄹㅇ임 미친놈임
⇒ 하 이거 언제 터지나 벼르고 있었는데
⇒ 추가 폭로 글 떴음. 링크 추가함 #NONAME…….
[[야! 이거 다 진짜야?]]‘X발!’
이 글이 기정사실화되면 자신은 끝이다.
[[아, 진짜냐고! 나까지 발목 잡히는 거 아냐?!]]해명.
해명을 해야 한다.
어떻게든……!
그렇게 두 개의 절망이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 순간.
쾅-
유치장의 문이 열렸다.
[그, 극아! 조사 끝난 거야? 잘 끝났지?] [처장님이 들어오시랍니다.] [어? 이 자식?] [아뇨.]더 큰 절망으로 이어지는 문이.
[둘 다요.]* * *
[처장님, 제가 오해한 거라뇨! 억울합니다!]모호는 정말 억울한 얼굴이었다.
누군가 목에 칼을 들이밀고, 제대로 억울해하지 않으면 죽일 거라 협박받는 사람처럼.
[저놈 저거, 분명히 1초 만에 판매한 콘텐츠도 없이 실적만 올라간 거 보셨지 않습니까?]판매한 콘텐츠 없이 실적만 올라갔다고?
‘아.’
그거라면…….
【‘준비된 신부’가 파트너의 매력에 푹 빠집니다!】
【‘신뢰’ 관계에 돌입합니다.】
준비된 신부.
그러니까, 처녀 귀신이 제시한 서브 미션을 성공시키고 받은 보상이었다.
【‘준비된 신부’가 신뢰하는 이에게 작은 마음을 건넵니다.】
【특별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귀곡주(鬼哭酒).
그리고 직접 그린 그림에 대한 보답이라며 실적까지 얹어 선물했었지.
그건 나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나설 필요는 없겠네.
당사자께서 직접 얘기해 주신다니.
[뭐, 뭐야?! 지금 무슨 목소리가…….]모호와 감찰관이 새파래진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들 눈엔 안 보이는 거다.
하긴, 그러니까 그런 실수를 했겠지.
“방금 저 멀리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옆에 와 있고, 아주 엉망이었거든요.”
[그게 무슨 헛소린가?! 분명 일대일로 찍으라고……!]인터뷰 중인 어르신의 뒤에 소복 차림의 여인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마음대로 순서를 잘라 편집하는 실수.
파직-
천장의 조명이 튄다.
순간 한밤중처럼 어두워졌다가, 이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는 시야.
상황 파악을 마친 처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지 오래.
멍청한 두 놈만 연신 두리번거리는 와중.
스읏-
넓은 집무실 한편에서부터 냉기가 불어온다.
섬뜩한 기운에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그리고 구석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히이이이이익!]소복 차림의 여인.
[귀, 귀, 귀신……!] [흐어어어억……!]───┤준비된 신부├───
[귀기방출(Lv.99)], [귀곡(Lv.99)]. [공중부양(Lv.99)], [저주(Lv.99)].─────────────
귀기방출. 귀곡. 서리 내리기…….
온갖 스킬 레벨이 다 99이기에 만만치 않은 상대라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콘텐츠를 구입하고 추가로 지불한 비용이었습니다.]여인이 입을 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러나 음절, 음절마다 서늘한 귀기(鬼氣)가 흘러나와 쫙 깔렸다.
순식간에 뚝 떨어져 버린 기온.
억지로 끼워 넣은 이빨이 눈치 대신 자리를 잡았는지, 모호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놈으로서도 달리 선택지는 없었을 거다.
난생처음 맛보는 ‘바닥 아래’로 침잠하는 중이었으니.
하지만.
[VIP들의 구입가는 계약서 기반. 고객마다 달라진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 [그, 그건……!]끈질긴 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지.
‘……이건 나도 무섭다고.’
쿵!
여인이 다가온다.
다리를 움직이지도, 애초에 발을 땅에 딛지도 않고서.
[모호(模糊).] [모호(模糊).] [모호(模糊).]여인이 부른다.
새파래진 입술을 열지도 않고서.
[왜, 왜, 왜 그러십니까? 전 그냥…….]쿵!
한 번 더 다가온다.
바람 없는 실내에, 풀어헤친 머리를 휘날리며.
[돈 많은 VIP들, 계약 조건 자세히 안 본다고 구두로 말한 거랑 다르게 쓴 거 알아요.] [그, 그건, 그러니까…….]모호가 뒷걸음질 친다.
그새 기를 쭉 빨려 버리기라도 했는지, 시체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이, 일단 오지 마시고, 앉아서 얘기를…….] [아니면.] [히익!]그러나 놈의 도망보다 여인의 진격이 빨랐던 탓에.
쿵!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가 버린 여인.
[순진한 친구들 꼬드겨서 붙어먹은 것까지 얘기해 줘야 할까요?] [나, 나, 나, 나는…….] [것도 아니면.]여인의 머리칼이 모호의 얼굴을 덮었다.
‘!!’
저 자식 저거…….
‘바지, 갈아입어야겠는데?’
* * *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폭로가 마치 아우토반처럼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 같았달까.
“아저씨! 그 감찰처장, 아예 박살이 났는데요?”
“그래야지.”
“와, 아주 많이도 해 처먹었네.”
줄줄이 소시지처럼 드러난 각종 비리.
결국 감찰처장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공식적으로 직위가 해제됐다.
물론 놈의 행동 대장이었던 감찰관까지 쌍으로.
“하, 근데 좀 열 받아요. 고작 직위 해제라뇨? 이거, 시간 좀 지나면 슬그머니 다시 복직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에도 분이 안 풀리는지 여진이는 연신 씩씩대며 말했다.
근데.
“아니더라고.”
“네?”
보통이라면 그 정도 수준에서 그쳤겠지만, 이번엔 아니더라고.
“끝이래.”
“끝이라면…….”
“삭제.”
“!!”
삭제.
그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영업국에서 벌어진 제 살 깎아 먹기식 진흙탕 싸움.
심지어 공정이 제1의 가치라던 감찰국에서 일어난 낯뜨거운 이슈가 아닌가.
직원들이 들고 일어서니 감찰국 처지에서도 쉬쉬할 수도, 덮을 수도 없었을 거다.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철퇴를 가할 수밖에.
“어머…… 난 구조 조정이 끝난 지구로 쫓겨나나 했어.”
“그것보다 더 무시무시합니다, 누님!”
“에이, 그래도 처장 상황이 오히려 나을지도 몰라요.”
“아, 하긴…….”
여진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호(模糊)는 직위 해제는 물론이요, 그전까지 아예 부관참시 수준의 수모를 당하게 됐으니까.
“명예의 전당까지 등재됐다고 했죠?”
“어어.”
감찰처장의 비리를 터뜨리기 위해 익명으로 올린 자백 영상.
[히든 미션, ‘명예의 전당 등재’ 성공!] [미션 보상 1포인트와 복지 포인트 1,00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총 등재된 콘텐츠 : 5건]그게 명예의 전당까지 올라가더니, 결국은…….
⇒ 영쉬남 지리는 거 보러 오실분?
⇒ 그게뭐임?
⇒ 영업국 쉬하는 남잨ㅋㅋㅋ엌ㅋㅋㅋㅋ
영쉬남이라는 요상한 밈을 만들어 내, 걷잡을 수 없이 유명해져 버렸다.
“누님이 편집을 너무 잘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 감찰국이랑 여론전을 해야 했으니까.”
덕분에 모호는 여기저기서 조사를 빙자한 조롱을 받으며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 이거 폭로한 게 노사협력팀이라고?
“우리 아직도 실시간 검색어에 있어요?”
“그러네.”
사내망 검색어 1위를 이틀째 놓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어쩌다 보니.
⇒ 노사협력팀이 뭐냐 이름만 있어 보이게 지은거 아님?
⇒ └└뭐 제대로 할까 싶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열심히 하네
⇒ 일하는데 힘든거 제보하면 해결도 해 준다는데?
⇒ 그런 거면 ㅇㅈ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 공용메일 있는데 여기 제보하면 되는 거?
“제보가 쏟아져요!”
“채널로도요! 와, 이거 너무 많아서 다 읽지도 못하겠는데?”
불만 있는 직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쏟아진다는 점 정도일까.
“대박. 우리 목표 금방 채우겠어요!”
【핵심 목표(총 100%)】
1. 성과 증진을 위한 근로환경 개선 (50%)
2. 원활한 소통을 위한 노사협의체 신설 (30%)
3. 직원 만족도 개선을 위한 VoE 수집 (20%)
팀 목표 3번.
그러니까 ‘직원 불만 수집’은 가만히 앉아서 달성하게 생겼다.
그렇다면.
“들어오는 의뢰 다 받습니다.”
“네? 이걸 전부 다요?!”
“대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 서명하라고 하세요.”
“!!”
– 서브 미션
【1】100명 서명 받기(달성!)
【2】1,000명 서명 받기(미달성)
【3】10,000명 서명 받기(미달성)
……
실적도 쌓고.
팀 목표도 달성하고.
거기다 미션까지 해치워 버리자고.
깔끔하게.
“자! 다들 일합시다! 움직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