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18
Chapter 47. 출동(4)
미쳐 가는 재혁이와 미친 사람처럼 총을 쏴 대는 지은 씨.
그 사이에서 나는.
“거기 선반 밑에 푸른색 약병 있네요. 챙기세요. 아, 문지방에 폭탄도요.”
바빴다.
여기 놈들, 보기보다 가진 게 많더라고.
[‘오래된 엘릭서’를 획득하였습니다.] [‘썩은 살점’을 획득하였습니다.] [‘내장 폭탄’을 획득하였습니다.]……
“……넌 돈도 많은 놈이 아이템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였냐?”
“말할 시간 있으면 주우세요. 쓸모없어 보여도 다 활용할 수 있으니까.”
“X발, 역시 있는 놈들이 더 하다니까.”
왠지 욕쟁이가 날 보는 눈빛이 내가 지은 씨와 재혁이를 보는 눈빛과 같은 것 같지만…… 일단 넘어가자.
【정화도 – 99%】
좀비들의 어그로가 확실히 끌린 탓일까.
좁은 복도 하나를 주파했을 뿐인데도 정화도가 99%까지 올랐다.
그리하여 맞이한 복도의 끝.
“여기가 마지막이에요.”
지은 씨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복도의 끝에 위치한 커다란 유리문.
응급실에나 있을 법한 불투명한 슬라이딩 도어 너머를 응시하며.
“안 열리는데…… 부숴 볼까요, 형님?”
“잠깐만.”
앞으로 나선 뒤, 검을 들었다.
“검강.”
액체와 고체 사이, 알 수 없는 물질들이 둔해진 사이사이에 엉겨 붙은 검날.
검푸른 빛깔이 파천검 위를 방어막처럼 뒤덮는다.
그를 들어.
콰드득-
유리문 틈새에 박아 넣고.
스걱-
베었다.
몸을 밀어 넣으면 수월하게 들어갈 정도의 커다란 원을 그리며.
“미친 사기 캐들. 뭐 안 되는 게 없구만?”
하지만.
화앗-
유리 벽 너머에 갇혀 있던 검녹색 연기.
갑작스레 덮쳐 온 연기 속에서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어?”
강당처럼 세로로 긴 공간.
좌우에 빼곡히 세워진 샘플들.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광경을 마주한 그 순간, 생각했다.
“……이게 뭐야?”
열린 문이라고 다 들어갈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고.
* * *
생명 존중 사상, 생명 경시 풍조.
뭐 그런 거창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넘어선 안 될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근데 이건.
“사람들을 가둬 둔 거예요, 지금?”
“그냥 가둔 게 아닌 것 같은데……?”
사람 키만 한 크기의 커다란 수조.
정체 모를 액체가 들어찬 원통들이 목이 꺾이도록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금 가고 깨져 비어 있긴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혀, 형님! 이거 왠지 그때랑 비슷하지 말입니다!”
재혁이의 외침에 욕쟁이가 눈을 찌푸렸다.
“X발, 내가 이런 데 갇혀 있었단 거지?”
“기억 안 나십니까?”
“전혀. 눈 뜨니까 소파 위였어.”
“잠깐만요. 근데 저거…….”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 맞아요?”
속에 든 게 사람인지, 마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형태였다는 것.
“사람 같긴 한데…….”
“……엉망진창이네요.”
대부분 깨져 있지만, 간혹 온전한 원통에 들어 있는 이들을 살폈다.
우리가 서 있는 입구 근처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멀쩡했다.
“장기가 다 괴사했어요.”
“장치가 잘못된 건가?”
“이 장치, 애초에 생명유지장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래전에 죽은 시체.
그럼에도 ‘멀쩡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의 형상’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음 칸은 달랐다.
오른팔 대신 시커먼 보라색의 촉수가 달린 사람.
그다음은 하반신 대신 갑각류의 몸통과 다리가 붙어 있는 사람.
그다음은 기름처럼 시커멓게 뭉쳐 있는 무언가 속에, 머리 하나만 콕 박혀 있는 사람…….
급기야 까만 덩어리만 남아 있는 수조까지.
그런 식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사람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는 시커먼 형상이 되었다.
“이게 뭐야……?”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단계별로 미쳐 가는 이 존재들을.
“잠깐만. 아까 오면서 본 좀비들, 그럼…….”
“여기서 탈출한 놈들이었나 봅니다.”
[‘실험체1312호’를 처치하세요!] [‘실험체832호’를 처치하세요!] [‘실험체991호’를 처치하세요!]사지의 일부가 기괴하게 비틀려 있고 떨어져 있던 좀비들.
그들의 이름이 분명 ‘실험체’로 명기되어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실험체로 쓴 거야……?”
하얗게 질린 지은 씨가 입을 틀어막았다.
[백 년간 잠잠했는데 왜 갑자기 날뛰는지 원인을 찾으라고…….]백 년.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흔적이 역력한 걸 보면, 오래전 일이라는 말이 거짓인 것 같진 않다.
[제, 제가 들어오기 전이라 잘은 모르지만…… 금지된 실험이었대요. 아주 위험한…….]게다가 ‘금지된 실험’이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사람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실험을 한 것 같습니다.”
“개조…… 같은 걸 하려고 했던 걸까요?”
“네. 아니면 인간과 마물의 합성체를 만들고자 했던 걸지도.”
“!!”
참담한 대답에 지은 씨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꽉 깨문 아랫입술에서 핏방울이 비친다.
“그, 신체검사 때 봤던 키메라처럼 말입니까, 형님?”
재혁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사실 모르겠다.
여기 갇혀 죽어야만 했던 이들이 누구고.
이따위 실험으로 얻으려던 게 무엇이며.
도대체 이 회사는 어디까지 최악으로 치달을 건지.
하지만 확실한 건.
“설명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우릴 부르고.
굳이 이 광경을 보여 준 의도가 있을 거라는 사실.
[저, 전 아무것도 몰라요! 이런 끔찍한 짓을 누가, 왜 한 건지…….]의뢰인이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래도 발뺌을 하시겠다면…….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뭐, 뭐가요……?]패를 깔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지.
“독립운동.”
“그럼…….”
연극은 여기까지 하자고.
“반골들끼리 얘길 좀 해 볼까요?”
* * *
[독립운동이라뇨? 뭐로부터 독립한다는 거죠……?]“배우 출신입니까? 연기력이 좋으시네요.”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쇠였다.
하긴 누군가에게 ‘너 독립운동가지?’하고 묻는다 해서 ‘네! 그렇습니다!’ 할 바보 천치는 없긴 할 거다.
하지만.
[무,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증거가 있으신가요……?]있지, 증거.
“소환.”
파앗-
손바닥 위에 빳빳한 종이 뭉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옛날 달력 같은 재질.
수십 개의 핸드프린팅 위, 빗자루로 쓸고 지나간 듯한 얼룩이 남아 있는 낡은 종이.
『전 직원과 온 우주의 우방이여!』
『우리 자정단(自淨團)은 회사에 고하노라.』
『오늘의 의거는 영원한 부패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함이며…….』
웅장한 이야기가 쓰여 있는 『독립선언서』를.
“이걸 찾았습니다.”
[……!]의뢰인의 동공이 흔들린 건 찰나.
곧장 가늘게 접힌 눈매가 명백한 선을 그었다.
[전 처음 보는 서류…… 인데요.]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거든.
“이건 아까 받은 서명이고 말입니다.”
[네? 서명이 왜…….]서명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지.
“지장을 찍지 않으셨습니까.”
[지장……?]손가락에 잉크를 발라 찍은 지장.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부러 다 오른손 지문만 찍었습니다.”
[!!]핸드프린팅에 찍혀 있는 게 다 오른손이기에, 똑같이 찍어서 비교했지.
“손 좀 펴 주시겠습니까?”
“지장 찍으실 수 있게 잉크 발라 드리겠습니다. 찍으면 사라지는 휘발성이니 인주보단 나을 겁니다.”
지금껏 받은 모든 서명을 전부 다.
“지문은 고유하다고 하죠?”
[설마…….]“당신들한테도 해당이 돼서 다행입니다.”
여자가 돌처럼 굳었다.
“누가 서명받는데 지장까지 찍습니까?”
극량과 소에주에게 받았던 첫 서명부터 이걸 노린 거였다.
덕분에 여자의 서명을 받자마자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고.
우릴 여기까지 부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먼저 밝힐 때까지 가만있으려 했는데.
이렇게 끝까지 발뺌하면 참을 수 없잖아?
푹 숙인 고개.
한숨인지, 탄식인지 모를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스륵-
말없이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텄네, 텄어.]담배를…… 꼬나문다?
‘허?’
[눈치 X나 빠르네.]“……?”
[완벽하지 않았나?]“……뭐가 말입니까?”
[어…… 그, 그러니까…… 거, 겁쟁이 연구원…… 연기 말이야.]타닥-
의뢰인이 검지 끝에서 불꽃을 피우더니, 그대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금 무슨 상황이야? 저 여자 갑자기 왜 저래?”
그 모습에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고.
“어…… 여기 근데 지하인데…….”
그러던 중, 안절부절못하던 지은 씨가 용기 있게 한마디를 던졌다.
“죄송한데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될 것 같…….”
[닥쳐, 꼬마.]“헙!”
곧장 입을 다물었지만.
[대뜸 서명부터 하라는 게 이상하긴 했어. 그래서, 언제부터 의심한 거야?]여자가 입술을 뻐끔뻐끔하더니,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들면서 물었다.
“처음으로 이상하다 생각한 건 환각 때였습니다.”
“사실 버프가 아니라, 그냥 티가 안 났던 거죠? 체력이 워낙 많아서.”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이 태연한 태도를 보고 확신했지.
[그 정도로 뚝뚝 떨어지는 너희가 이상한 거야. 비실비실해 가지고.]“또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했던 점은.
[또? 뭔데?]“흙바닥엔 절대 안 쓰러지시더라고요.”
[……뭐?]의뢰인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헛소리냐는 반응.
그래서.
“나무 그루터기처럼 나름 깨끗한 곳만 찾아서 쓰러지시고 말입니다. 생각보다 더 깔끔하신 성격인가 봅니다.”
아무리 연기라도 맨바닥에 드러눕고 싶진 않았던 게 아니냐 물었다.
“쓰러지고 게거품 무는 연기는 완벽했는데, 디테일이 부족했습니다.”
[……쓰벌?]흰 가운 차림에, 착한 얼굴과 그렇지 못한 태도.
말을 더듬고 소심한 척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죄다 연기였나.
[눈치야, 독심술이야?]“눈치로 해 두죠.”
독심술이 있긴 한데 이 여자한테 쓰진 못했으니까.
[그래, 뭐…… 보여 줄 건 다 보여 줬으니까.]그렇게 짝다리를 짚은 연구원은 생각에 잠긴 듯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 댔다.
그리고.
치직-
근처에 있는 집기에다가 남은 꽁초를 꾹꾹 비벼서 끄더니.
‘!!’
반대쪽 손가락을 입에 물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심해처럼 고요한 공기를 한순간에 찢는 휘파람 소리.
“엉뚱한 짓 하면 가만 안 있습니다.”
경고 차원에서 말했다.
그러자 내 쪽을 흘끗 보며 샐쭉하니 웃더니, 이번엔 팔을 위로 쭉 뻗어 휘휘 내저으며 외쳤다.
[나와! 멍청아!]저 멀리.
길쭉한 복도 저편, 어두컴컴한 안쪽을 향해.
끼익- 끼기긱-
낡은 원통이 흔들리는 소리.
다음으로는 천 따위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또 뭐야, X발!”
“제 뒤로 오십시오!”
깜빡거리는 조명은 코앞만 겨우 비춰 주는 상황.
섬뜩한 캡슐들 사이를 가르며 다가오는 존재가 느껴진다.
뭘까.
누가 와도 지금만큼 충격적이진 않을 것 같다.
바들바들 떨던 말더듬이 막내 연구원이 1초 만에 짝다리를 짚고 담배로 도넛을 만드는 것보다 놀랄 순 없을 테니.
“어?”
그리 생각했는데.
[다 들켰어. 그냥 네가 말해.]성급한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저건…….”
몰랐거든.
“……새?”
깜빡거리는 조명 아래.
섬뜩한 수조 사이를 뚫고, 날갯짓하며 날아온 까마귀가…….
[친우!!]내 품에 날아와 안길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