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6
Chapter 6. 희생(1)
[대상자 ‘이은호.’ 복귀 완료.] [수강권을 획득하였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세요!]휴.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설마 벌 떼가 동굴 너머 강의실까지 쫓아올 줄이야.
‘그 자식은 괜찮으려나.’
어두컴컴한 곳에 혼자 남았을 놈.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괜찮겠지, 분명.’
‘문’을 직접 만든 자이니 닫을 수도 있을 거고.
……애는 좀 먹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내 앞가림부터 제대로 하자 싶어 입을 열었다.
“소환.”
▣ ‘초급 검술’ 수강권
– 활성화시킬 경우 ‘초급 검술’ 강의실로 이동하는 ‘문’이 나타난다.
단, 수강권 보유자만 이용 가능.
– 횟수 제한 : 없음
펼친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초록색 카드가 내려앉았다.
원할 때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수강권.
대충 생각해도 활용할 여지가 다분하다.
‘지금 시간이…….’
반투명한 시스템창 아래에 떠 있는 시간을 살폈다.
PM 08:55.
문을 열고 교육원으로 이동한 뒤, 고작 십여 분이 지난 시점.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았어.’
예상했던 대로다.
멈춘 것처럼 느릿하게 변하는 시계와 한참이 지나도 느껴지지 않는 공복감 덕에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정확한 시간 비율까진 몰랐지만.
‘시간당 1분꼴로 흐르는 건가.’
열 시간은 족히 넘게 머물렀는데, 실제로 흐른 시간은 십여 분인 걸로 보아.
세세한 건 여유 있을 때 테스트해 보는 걸로 하고.
일단 지금은.
— 타닥!
“지은 씨!”
“!!”
다행이다.
막 코너를 돌아가려는 익숙한 뒷모습을 불러 세울 수 있어서.
“은호 씨!”
내 부름에 지은 씨가 홱 뒤 돌자 어깨 위로 잘린 단발머리가 흔들렸다.
걱정했는지 입술을 잘근 씹다 말고 환하게 웃는 얼굴.
멀리서도 얼굴 가득 드러나는 놀람, 반가움, 안도감…….
“금방 왔죠?”
내 물음에 ‘네!’ 하며 방긋 웃는 지은 씨.
저리도 기쁠까.
나야 그렇다 쳐도 지은 씨 입장에서야 고작 십여 분 만에 다시 만난 걸 텐데.
전부터 느꼈지만, 사람을 참 좋아한다 싶다.
“근데 은호 씨…… 꼴이 왜 그래요?!”
“제 꼴이요?”
“네, 지금 꼭 땅속에 며칠 파묻혀 있다 온 사람 같아요.”
넝마가 된 옷가지를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지은 씨.
뭐라 설명해야 하나 싶어 멋쩍게 웃자.
— 퐁!
지은 씨의 눈앞에 선물 상자가 나타났다.
머리 위에 익숙한 편지 봉투를 모자처럼 쓴 상자.
“허업!”
지은 씨가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편지 봉투를 톡 건드렸다.
오랫동안 써 온 팬레터에 답장을 받은 소녀처럼 감격한 얼굴.
그러자.
스륵!
봉투가 서서히 펼쳐지고.
“살아 있었어…….”
지은 씨의 꼭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혼자 둬야 하나 고민하며 다가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자,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어 올린 지은 씨.
“은호 씨 덕분에…… 소식을 들었어요.”
지은 씨가 저토록 기뻐할 만한 소식이라면, 한 명밖에 없지.
“무사한가 보네요. 동생.”
끄덕.
지은 씨가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쪽으로 한 발자국 다가왔다.
“노량진이래요. 친구들이랑 같이 있나 봐요.”
“정말 다행입니다.”
“살아 있길…… 잘했어요. 모두 은호 씨 덕분이에요.”
마치 내가 동생의 목숨을 구해 주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반짝이는 지은 씨를 향해 고개를 가로젓고.
PM 9:00.
무심코 9시 정각을 가리키는 시계를 쳐다본 순간.
“딱히 저한테 감사하실 필요는…….”
[동기화율이 소폭 상승합니다.] [전용 ‘눈’이 개방됩니다.]내게만 들려오는 안내 방송과 동시에 머리 위 공간이 일순간 흐려졌다.
스스스스스슷-!
투명해야 할 공기가 물방울처럼 모여들고.
덩어리감을 더해 가며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길쭉했다가, 각졌다가 움직이더니.
결국 매끄러운 구체로 변했다.
— 띠링!
【새로운 참관자들이 접속하였습니다.】
익숙한 ‘눈’으로.
【‘관리국 까마귀’가 절대 궁금해서 들어온 건 아니라며 헛기침을 합니다.】
【‘조사국 프린스’가 건방진 대상자가 언제까지 살아남는지 지켜보겠다며 팔짱을 낍니다.】
척 보기에도 못마땅한 분위기가 뚝뚝 묻어나는 채팅.
화가 단단히 났나 본데.
홧김에 내뱉은 욕지거리 때문인가.
“X 까.”
뭣 때문이고 간에, 가장 큰 문제는…….
‘왜 지금 열린 거지?’
미션 시작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순간.
[‘용산구’ 지역 생존자분들께 긴급 안내 사항을 전달 드립니다.]예상치 못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뭐죠?”
“분명 미션은 내일 아침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해당 구역의 생존자가 기준치를 초과하였습니다.] [원활한 미션 진행을 위해 긴급 인원 감축을 시행합니다.]“긴급 인원 감축?!”
“!!”
[현재 ‘용산구’ 지역 생존자는 총 1,070명.] [다음 미션의 제한 인원은 500명입니다.]“천 명 중에…… 5백 명?!”
딱 절반.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는 소리다.
나도 모르게 빠득 이를 갈며 지은 씨를 쳐다보자 당황한 시선과 마주쳤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경기장’을 사전 개방합니다.] [‘경기장’은 해당 구역이 적정 인원수에 도달할 때까지 유지됩니다.] [다음 미션이 시작될 때까지 인원 감축이 완료되지 않으면, 초과 인원이 랜덤으로 ‘삭제’되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경기장이라면…….”
“칼날 부리 미션 때 열렸었어요!”
땅이 기울고 불길이 치솟던 기억.
아직 생생하다.
순간 멀쩡한 주변 공기가 홧홧한 열기로 뒤덮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충격에 대비하세요!]— 쿠구구구구구구궁!
휘청!
저 밑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버티고 선 바닥이 순간 출렁거렸다.
“!!”
“지진입니다! 조심해요!”
지금까지 겪었던 지진과는 차원이 다른 진폭(震幅).
지반이 단단한 땅이 아니라 파도라도 되는 것처럼 한차례 흔들리더니.
쿵! 쿠구구궁! 콰앙-!
여기저기서 건물이며 전봇대며 시설물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용산구’ 지역 생존자 1,033명.] [1,019명.] [1,007명.]……
생존 인원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여길 빠져나가야 합니다!”
큰일이다.
지은 씨와 내가 있는 곳은 오피스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찬 도심 한복판.
수많은 건물 중 하나만 무너져도 아수라장이 되어 버릴 거다.
도미노처럼.
물론 서울 어디가 안 그렇겠냐마는…….
“지은 씨! 어서 큰길로!”
타닥-!
일단 좁은 길은 위험하다 싶어 골목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은호 씨! 앞에!”
4층짜리 상가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지은 씨와 나 사이, 누군가 버리고 간 자동차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길목 위로.
“가속!”
“조오오오오오오오오오시이이이이이이이이임……!”
정수리 바로 위에 멈춰 선 유리 파편.
‘이런. 하마터면…….’
머리가 선인장이 될 뻔했다.
파스스스슷-!
석화로 강화한 오른팔을 들어 조심스레 유리 조각들을 쳐 낸 뒤,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건물 아래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째깍-!
“……해애애애애애요!”
다급하게 부르는 지은 씨를 향해 걱정 말라며 손을 흔들어 주려는 순간.
— 콰과과과과광-!
끔찍한 굉음이 귓가를 먼저 덮치고.
“!!”
휘청!
땅이 두 다리로 균형을 잡지 못할 만큼 출렁이는가 싶더니.
“가속!!”
시커먼 구멍이 아가리를 점점 벌리고…….
[재사용 대기 중입니다. 38초, 37초, 36초…….]발밑이 푹 꺼졌다.
악의적일 정도로 공교롭게.
건물 하나와, 자동차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면서.
“안 돼!!”
지은 씨의 비명이 아스라이 멀어진다.
저 위로.
* * *
“김 비서! 3차 갈 거지? 좋은 데 있거든.”
“네? 아, 그게…….”
아마 첫 회식 날이었을 거다.
첫 직장, 첫 사회생활, 첫 회식.
한 잔씩 건네받은 술잔에 취한 상태여서일까.
지은은 자리를 옮기는 정신없는 틈을 타 어깨에 얹어진 팀장의 두꺼운 손이 꺼림칙했다.
“비싼 술 사 줄게. 학교 다닐 땐 못 먹어 봤을 거 아냐.”
불편하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팀장의 제안 또한.
그때 처음 만났다.
말로만 듣던 옆 팀 계약직 이은호 씨와.
“팀장님! 상무님이 대리 불러 달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음? 법인 대리 기사 있을 텐데?”
“번호를 못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많이 취하셔서…….”
“하씨, 가 볼게.”
몸이 불편해서인지 독해도 너무 독하다며 수근 대는 소리를 몇 번 들었는데.
독한 사람치고는…….
“김 비서님이시죠? 이 틈에 빨리 들어가세요.”
“네? 하지만 아까 팀장님이…….”
“괜찮아요. 나중에 혹시 물어보면 취해서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 안 난다고 하면 될 겁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괜히 궁금하고 신경 쓰이게 된 게.
가끔 혼자 밥 먹는 것 같으면,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같이 먹어 달라며 다가가게 된 게.
그리고 이런 세상이 되자 평생 등을 맞댄 전우처럼 의지하게 된 게.
그래서…….
“꺄아아아아아악!”
무너져 내리는 지면 아래로 은호가 푹 꺼지듯 사라지자.
“안 돼!!”
지은이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그리고.
[스킬 개방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이 완료되었습니다.]제발! 제발 뭐라도……!
[축하합니다!] [기물(己物)을 제어하기까지 이른 독보적인 정신력, 애정 어린 대상과의 강렬한 감응력, 평생에 걸쳐 각인된 뛰어난 공감력을 바탕으로 고유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염동(Lv.1) 스킬 개방 완료.]“염동!”
머리를 거치지 않은 외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파앗-!
그와 동시에 온몸의 기운이 눈과 입과 손끝으로 몰린다.
마치 몸에 돌고 있는 모든 혈액이 끝단으로 쏠리는 느낌.
그리고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정신을 집중하자.
파스스스스슷!
처음에는 부스러기가.
다음은 흩어져 있던 도로의 파편들이 떠올랐다.
“제발!”
그리고 잠시 후.
“어, 어?!”
뻥 뚫린 공간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익숙한 얼굴.
은호가 중력을 거슬러 올라왔다.
“지은 씨! 혹시 …… 한 ……?!”
뭐라 말하는 듯도 했지만 귀담아들을 정신이 남지 않았다.
온몸의 세포들을 마지막 한 줌까지 긁어 모아 은호를 지탱하고 있었기에.
“……씨! …… 위에!”
‘집중해야 해……!’
지은의 눈과 귀는 닫힌 채였다.
눈을 떴으나 거대한 구덩이 중앙에 아등바등 떠 있는 은호 외에는 보이지 않고.
귀를 열었으나 그 어떤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금만 더……!’
알아채지 못했다.
은호를 겨우 지상으로 끌어올리고 마음을 내려놓으려는 바로 그 순간에.
“지은 씨!! 빨리 피해요!!”
공중에 뜬 채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은호를 마주한 그때.
“제발……!”
가만히 서 있어야 할 건물이 제 머리 위로 무너지고 있음을.
“으, 은호 씨……?”
털썩-!
시선을 옮김과 동시에 겨우 붙잡고 있던 은호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땅에 떨어지자마자 구르고, 기어서, 달려오는 은호.
“가속! 가속! 가속!!”
필사(必死)의 뜀박질.
하지만.
“X발!!”
“욕하는 거…… 안 어울…….”
— 콰앙!
스타트부터 늦어 버린 레이스.
[‘용산구’ 지역 생존자, 1,000명.]— 쿠구구구구구궁!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 외벽이 지은을 덮쳤다.
[99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