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5
Chapter 5. 자기 개발(4)
퐁-!
눈앞에 나타난 선물 상자에 온 신경이 쏠렸다.
랜덤 박스나 메시지와 함께 받았던 선물처럼 반투명한 몸체를 자랑하는 팔뚝만 한 상자.
이번엔 붉은 기가 감돈다는 점이 달랐다.
적을 처치하고 받은 ‘전리품’이어서인가.
“마물을 잡고 뭘 받은 건 처음인데.”
스륵.
상자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홀로 팔뚝만 한 상자를 가득 채운 묵직하고 거친 무언가.
이건…….
▣ 드로세라의 씨앗
– 흙에 심으면 싹이 날 것 같다.
고온다습하고 산소 농도가 매우 높은 곳에서만 정상적으로 자라니 주의할 것.
자랄수록 주변 생명체의 외양을 닮아간다.
– 특정 생명체의 일부와 함께 끓여 섭취할 경우, 해당 생명체로 변신할 수 있다.
단 외양만 복제 가능하며, 지속 시간은 최대 1시간.
‘해당 생명체로 변신한다고?’
기르거나, 변신하거나.
둘 중 하나인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생명체의 외양을 복제한다.’라는 비현실적인 문구보다도,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나 자신이 더 놀라워서.
‘비상시에 유용하겠어. 사람들에게 쫓긴다거나…….’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자 싶어 일단은 인벤토리에 보관해 둔 뒤.
“수업 목표 확인.”
〔수업 목표〕
1. 뿌리 내린 적 처치 (1/100)
2. 움직이는 적 처치 (0/50)
3. 날개 달린 적 처치 (0/10)
갈 길이 구만리인 수업 목표를 펼쳤다.
‘뿌리 내린 적은 저 식충식물이겠지.’
‘드로세라’라는 꽤 고급진 이름이 붙은.
그리고 움직이는 적은…….
‘저거.’
콰득! 스스스스스슷-!
드로세라에게 잡아먹히던 거대한 벌레.
동시에 드로세라의 뿌리며 줄기를 갉아 먹는 천적이기도 한 저것들이 ‘움직이는 적’이 아닌가 싶다.
근방에 움직이는 놈들이라곤 저 징그럽게 커다란 놈들뿐이니.
“문제는 날개 달린 적인데…….”
날개 달린 적 옆에 붙은 (0/10)을 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뭔지 몰라서 답답한 건 아니었다.
주변에 날아다니는 거대 생명체라곤 ‘저거’밖에 없었으니.
— 우우우우우우우웅!
처음 동굴에 들어갔을 때부터 들려오던 굉음.
그건 발전기가 아니라…… ‘저것’들의 날갯짓 소리였다.
“저렇게 떼지어 있는 놈들을 어떻게 잡으란 거지?”
한 마리만 건들면 온몸이 벌집이 될 텐데.
말 그대로 ‘벌집’ 말이다.
— 우우우우우우우웅!
멀지 않은 곳에 수백, 수천의 거대 벌이 군집한 벌집이 있었다.
바위-돌멩이 말고 진짜 바위- 틈새에 거대한 방벽처럼 세워진 육각형의 벌집.
꿀을 지키는 것처럼 주변을 경계하며 날아다니는 벌들.
뒤가 훤히 비칠 정도로 얇은 날개를 잘게 진동하는 날갯짓임에도 돌풍이 만들어질 정도로 강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멀리서도 향긋한 냄새를 뿜어내는 꿀을 노리고 기웃거리는 곤충들이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촤악-!
“무슨 더듬이를 뿔처럼 써?”
보통 벌은 침을 쏘고, 쏘고 나면 죽는 거 아니었나.
분명 어릴 때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살 특공대가 따로 없다며 불쌍하다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 동네 벌들은 쇠꼬챙이 같은 더듬이로 적을 찌르고, 꿰뚫고, 여럿이서 잡아 뜯고…… 아주 난리다.
한 마리씩 놓고 봐도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개체였으나, 모여 있으니 차원이 달랐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
그나저나.
‘죽을 게 뻔한데 왜 달려드는 거지?’
아무리 곤충들이라지만, 꿀 한 덩이 훔치자고 목숨을 건다?
바로 앞에 벌레들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 있는데?
‘저 꿀 때문인가.’
흐음.
빛 없이도 오색 빛깔로 번쩍이는 꼴이 딱 봐도 엄청 좋아 보이는데.
어쩐다?
[‘초급 검술’ 수료 시 검술 계열 고유 스킬이 개방되며, ‘검사’ 칭호가 부여됩니다.] [단, 맛보기 수업은 목표를 달성하지 않아도 복귀가 가능한 반면, 수료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시스템이 내게 제시한 건 두 가지.
첫째, 맛보기가 끝났으니 추가 보상 없이 돌아간다.
둘째, 목숨 걸고 수업 목표를 달성한 뒤 시스템이 주는 보상을 받는다.
그중 나의 선택은…….
‘셋째. 알아서 한몫 챙기고 도망간다.’
뭐, 꼭 시스템이 주는 전리품만 받아 가라는 법은 없으니까.
스윽-!
노랗고 검은 털이 빼곡히 붙은 허물 같은 사체를 집어 들었다.
식충식물을 속이기 위해 벌레의 허물을 찾다가 발견한 일벌의 사체.
여기저기 뜯겨 온전한 모양은 아니었으나 상관없다.
내 몸을 가리기엔 충분했으니.
— 우우우우우웅-!
시선이 시끄러운 날갯짓 소리와 달콤한 향을 타고 수풀 너머에 가 닿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아니, 각종 체액과 노오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벌집’으로.
* * *
수강생이 사라진 텅 빈 강의실.
빛 한 줌 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교는 목석처럼 선 채로 그에게만 보이는 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상자 이은호(평가:미입력)〕
– 무력 : ( )
– 지력 : ( )
– 매력 : ( )
그답지 않게 첫 칸부터 턱 막혔다.
물론 검술만 놓고 본다면 무력은 평범 그 자체. 중중(中中)의 평가를 내려야 마땅하다.
다만.
[어렵군.]셀 수도 없는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는 동안 수많은 대상자를 만났다.
그중 7할은 평생을 검에 바쳐 온 무인(武人)들이었고.
2할은 구조 조정, 그러니까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에 본능적인 희열을 느끼는 예비 학살자들이었으며.
나머지는 뭣도 모르고 찾아온 이들이었다.
그리고 대상자 이은호는.
“왜. 이것까지 베껴 보지 그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시스템 활용력.
“검술 스킬 숙련도, 오르네.”
모래알 같은 단서도 놓치지 않고 발견해 내는 판단력과 성장에의 끈질긴 집념.
“다리를 유연하게 잘 쓰더라. 덕분에 배웠어.”
그러면서도 굳어 있지 않고 유연한 사고방식까지.
[대단한 자다. 십 년만 수련하면 초급반까지도 가능할 테지.]그래서 구경이나 해 보라는 의미에서 보낸 거였다.
그 정도 신체 조건으로는 거대종들 틈바구니에서 도망치기만 해도 바쁘겠지만…….
보여 주고 싶었다.
그가 앞으로 상대할 놈들은 연약한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복귀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드로세라 때문에 동굴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을 테고.
그 정도 눈치며 집념이라면 요리조리 잘 피해서 죽진 않았으리라 싶었기에.
타닥-!
생각을 정리한 조교가 평가 결과를 입력하는 사이.
— 드르르르르르륵!
대상자 이은호가 석문을 열고 몸을 던지듯 들어왔다.
“허억…….”
[늦었군.]온몸에 빼곡히 새겨진 생채기.
흙더미와 먼지로 뒤덮여 눈코입도 제대로 구별 가지 않는 엉망진창의 꼴.
전쟁터에서 몇 년은 뒹굴다 온 듯한 남루한 행색.
게다가 곤충의 타액이라도 묻은 건지 온몸이 번들거리기까지.
[고생 많았다. 지금 신체로는 구경만 하는 것도 힘들었을 테지.]“뭐?”
위로하려 건넨 말에 이은호가 눈썹을 찡그렸다.
“누가 구경만 해?”
당당한 되물음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서, 설마……!]타닥-!
서둘러 펼친 현황판은…….
〔수업 목표(이은호)〕
1. 뿌리 내린 적 처치 (1/100)
2. 움직이는 적 처치 (0/50)
3. 날개 달린 적 처치 (0/10)
[……놀랍군.]짧은 음절.
그러나 그 속에는 경악이 내포되어 있었다.
사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탄.
[드로세라를 잡을 줄이야.]“겨우 하나 잡은 건데, 뭐.”
겨우 하나라니.
드로세라는 정직원들도 최소 서너 명은 움직여야 잡아 내는 마물인데.
그걸 기초 검술만 겨우 수강한 예비 선별자 따위가 잡았다고?
“벌도 못 잡았고.”
허.
조교는 귀를 의심했다.
[거대 벌은 회사에서도 팀 단위로 움직여 사냥하는 놈들이다. 그걸 잡을 생각이었나?]“잡는다기보단…… 뭐, 비슷한 생각이었지.”
지금 이 대상자는 자기가 내뱉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일까.
[담당 팀에서 공략해도 최소 몇 주는 온전히 쏟아붓는 놈들을 네가 무슨 수로?]“저것들을 팀으로 공략한다고? ‘회사’에서?”
[물론. 혼자 덤비는 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다.]수천 개의 꼬챙이에 꿰뚫려 죽는 게 소원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개별 격파가 가능하다면 거대 벌의 꿀이 이 정도로 귀하진 않겠지.]“잠깐. 그래서…… 그 꿀이 그렇게 귀한 거야?”
[그래. 한 덩이만 있어도 구조 조정의 균형을 깨트릴 정도니.]그 말에 이은호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작게 선언했다.
“곧 다시 가야겠네.”
앞마당에나 나간다는 것처럼.
멋대로.
[누구 마음대로?]“알려 줘, 다시 가는 방법.”
조교가 미간을 좁혔으나 이은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수업 만족도 평가 같은 거 있으면 만점 줄 테니까.”
[허.]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건방지고 건방지다.
이토록 당당하고 집요한 대상자는 처음이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
애초에 맛보기 수업조차 규정 위반이었다.
게다가 드로세라를 잡고 보상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징계감일 거다.
그러니까.
권한 밖이라고 단칼에 거절해야 마땅했으리라.
[……수강권을 넣어 주지.]“수강권?”
혹시나 싶어 남겨 둔 마지막 수강권을 주는 게 아니라.
[대상자 ‘이은호’에게 ‘초급 검술’ 수강권을 지급합니다.]호기심.
그래, 호기심이다.
예상치 못한 뭔가를 보여 주지 않을까 싶은 미미한 기대감.
그러자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린 이은호가 입을 열었다.
제 뜻대로 따라 줬으니 감사 인사라도 하려나 싶었는데.
“이름이 뭐지?”
대뜸 엉뚱한 질문을 해 왔다.
별것 아니지만…… 그는 절대 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을.
[…….]침묵의 의미를 이해한 걸까.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이은호가 먼저 입을 뗐다.
“아까 그 식충식물 말인데.”
[드로세라 말인가.]“흙에 심으면, 자랄수록 주변 생명체를 닮아 간다지?”
[그렇다만.]이은호가 거리낌 없이 맑은 눈빛으로 물었다.
남을 해하는 대신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 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
“그거, 원해서 닮는 게 아닌 거지?”
[그야…….]“너처럼.”
흠칫.
그의 말이 조교의 껍데기를 꿰뚫고 들어와 뼛속까지 파고들자.
떨었다.
셀 수도 없는 오랜 세월을 지나온 그가, 고작 몇십 년 살았을까 싶은 예비 선별자 따위에게.
“이름 정돈 만들어 둬.”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
뭐라도 답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달싹였을 때.
— 우우우우우우우웅!
저 멀리서 익숙한 굉음이 조교의 귓가에 때려 박혔다.
굉음 때문일 거다.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 오는 이유는.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모양이다.]타닥.
애써 핑계를 만들며 문 쪽으로 향하자.
“!!”
그제야 소음을 눈치챘는지 흠칫 놀라는 대상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뛰기 시작했다.
“그럼 난 이만! 가속!”
쌔앵-!
[음?]정신을 차리자 대상자는 이미 사라진 뒤.
스킬까지 써서 순식간에 강의실과 복도를 빠져나가 문까지 열고 나간 모양이다.
꽁지 빠지라 도망가는 꼴이 영 이상한데.
— 달칵!
압도적인 적을 만난 탓에 트라우마가 생긴 건가.
그럴 법도 하다.
운 좋게 드로세라는 잡았다고 하나, 거대 벌의 위용 앞에서는 스스로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깨달았을 테니.
어쨌든.
[13지구라…… 재밌는 놈을 찾아냈네.]오랜만에 느끼는 기대감에 희미한 즐거움을 느끼며 중얼거리는 순간.
콰앙-!
파스스스스슷!
직접 닫아둔 석문이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파도 앞에 선 모래 둑처럼.
그리고 전신을 탈곡기에 넣고 돌리는 듯 울려 퍼지는 엄청난 굉음.
부우우우우우우웅-!
[이게 무슨……!]무너져 내리는 석벽 너머로부터 거대 벌 무리가 쏟아졌다.
그것도 절대, 결단코, 여기 있어선 안 될 놈들이.
[벌집을 지켜야 할 수비병들이 왜?!]잠깐.
거대 벌. 벌집. 꿀……?
“잠깐. 그래서…… 그 꿀이 그렇게 귀한 거야?”
[그래. 한 덩이만 있어도 구조 조정의 균형을 깨트릴 정도니.]이은호의 남루한 행색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치…… 끈적한 무언가가 묻은 것처럼 번들거리던.
우우우우우우웅-!
쿠구구궁! 쿠구구구구궁-!
분노한 벌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귀한 벌집을 훔쳐 간 대상자 이은호가 아니라,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한 조교에게.
이런…….
[이 미친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