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99
Chapter 62. 구조 조정의 끝(1)
“윤쏠.”
“왜.”
“하늘에 원래 별이 저렇게 많았나?”
민여진의 말에 서류 속에 코를 박고 있던 윤솔아가 고개를 빼꼼 들었다.
“하늘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많긴 많네.”
창밖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했다.
이곳의 별자리는 모르긴 하지만, 저 별들 사이에 선을 그으면 웬만한 그림은 다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도 많아서.
“흠, 많아도 너무 많은데.”
그때, 고개를 갸웃거리던 민여진이 ‘어!’하며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별똥별이다!”
“와, 별똥별이네!”
민여진과 동시에 말한 건, 윤솔아가 아닌 최민영.
“민영 언니!”
“깼어요?”
“응, 화장실 갔다 오는데 불 켜져 있길래.”
대부분 사막 요새에 터를 잡은 노사협력팀 팀원들과 달리, 뒤늦게 올라온 계약직들은 통곡의 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은호의 권한을 위임받은 연보라가 증축에 증축을 거친 덕에 남는 방도 많았던데다가, 시설도 좋았기 때문이다.
“근데 별똥별 진짜 예쁘다. 오길 잘했어.”
“그쵸?”
“응. 뭔가 간질거리고…… 마음이 편해져. 아기도 좋아하나 봐.”
“오!!”
최민영이 따스한 벽난로 앞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으며 말했다.
“야근 중이야?”
“잠이 안 와서 내일 할 거 미리 보고 있어요.”
“와…… 너네 워커홀릭이구나.”
“엑? 절대 아니거든요?”
테이블 위에 잔뜩 쌓여 있는 건 각종 보고서와 서류.
“회장님이 일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냐?”
그를 보고 우스갯소리로 묻자 두 사람 모두 손사래를 쳤다.
“아저씨가 일을 많이 주긴 하는데…….”
“하는데?”
“딱 6시 전에 끝낼 만큼만 줘요.”
“어?”
요상한 대답에 최민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민여진이 웃으며 답했다.
“진짜 이상한 게, 9시 출근해서 시킨 거 딱 끝내면 5시 반이더라고요. 하루도 아니고 여태까지 내내.”
“응? 그냥 우연 아니야?”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팀원들 다 그래요. 각자 업무량도 다른데.”
말이 되나.
팀원이 마흔인데, 그들 각각이 맡은 업무의 난이도와 업무 역량을 계산해서 일을 할당해 준다고?
“그거 다 계산한 거예요, 그 아저씨.”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그분이라면 가능할지도.’
아니, 가능할 거다.
충성도가 극한에 달해 있는 최민영이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사실 다른 누가 왔어도 ‘이은호라면 그럴 수 있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터.
“근데 하필 왜 5시 30분이야? 6시도 아니고.”
“중간에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은 있어야 된다던데요? 그게 직장인들 숨통이라고.”
“아…… 디테일하시네.”
“뭐, 대신 할 일 끝나면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까 좋죠.”
“그래서 미리 하는 거야? 내일 놀려고?”
“네. 저희 내일 소풍 가기로 했거든요, 날씨 너무 좋아서.”
빡센 건지 널널한 건지 모르겠네.
아무튼 못 말린다 말하려는 찰나.
“어?”
무심코 창밖을 쳐다본 최민영의 시선이 멈췄다.
“언니, 왜요?”
“저 밖에…….”
양팔을 감싸 안게 만드는 오싹한 한기.
분명 아름다운 별똥별에 감탄하던 하늘 대신 창밖을 가득 메운 건.
“……눈보라?”
* * *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설산의 주인이 통곡의 숲 전역을 감싼 눈보라를 만족스레 살피고는 두터운 손을 탁탁 털었다.
먹구름을 동반한 눈보라를 외곽에서부터 안쪽으로 서서히 밀어 넣었으니, 지금쯤이면 성까지도 거진 감쌌을 것이다.
[계속하지.]3대 주주의 말에 ‘네.’ 하며 조신하게 답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핵심 요충지는 세 곳.] [세 곳이라.] [통곡의 성, 사막 요새, 태초의 마천루로, 그 세 곳만 장악하면 나머진 식은 죽 먹기일 거예요.]물빛 머리칼의 여인, 전 대외협력국장 무변(無邊)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이 회사에서 보낸 존재.
갓 입사한 이은호 무리보다도 이 땅을 더 잘 아는 이었다.
[한 부대는 사막의 북동쪽에서부터 치고 내려오고, 한 부대는 통곡의 숲 남서쪽에서 치고 올라가면 한데 모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군.] [특히 통곡의 성의 방어막이 상당하니 주의해야 합니다. 거기서 시간을 끌어선 안 돼요.]비록 지난번엔 놈들에게 당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땐 박쥐 같은 국장들과 센터장이 저쪽에 붙은 줄도 모르고 방심한 탓이었다.
이번엔 이를 갈고 준비했다.
게다가 지금은 상대 전력의 핵심인 이은호가 부재중인 상황.
놈의 부탁으로 모였을 국장들과 센터장을 또 한 번 결집시키긴 쉽지 않으리라.
[흐흐, 드디어 복수하게 됐구만 그래.] [멍청한 것. 회장 자리에 앉겠단 놈이 이리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서야 되겠나?] [기본이 안 된 게지, 기본이.]며칠 전, 이은호가 흑조를 타고 날아갔단 얘긴 들었다.
어디로 날아갔는지까진 알아내지 못했던 탓에 조금 찝찝하긴 했으나, 괜찮다.
놈이 오기 전에 거사를 끝내면 되니까.
[핵심은 속도다.]설산의 주인이 살기를 담은 눈보라를 뿌리며 말했다.
[세 곳 동시에 점거하고, 놈이 아끼는 직원들을 모두 인질로 잡는다.] [잡아서요?] [이은호가 가진 걸 다 내놓을 때까지 하나씩 목을 쳐야지.]과거 불가살의 전투 행태를 보았다.
팀장 직위를 뺏니 마니 하며 실랑이를 하고, 전면 파업에 기겁해서 틈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주주.
회사가 잠시 멈추면 어떤가.
이미 엄청난 손해를 입은 마당에,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하고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이건.
[내 밑에 똑똑한 놈들 많어. 이 기회에 싹 갈아엎자고.]그리고 꼭 이 회사의 직원들만 일머리가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애초에 불가살, 그놈이 혼자 만든 회사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 [그놈 하나 당했다고 회사를 홀라당 가져가는 게 말이 안 되지. 암!]주주들은 당당했다.
이은호 그놈도 불가살을 죽이고 회사를 차지했지 않나.
우리도 똑같이 하면 되는 거다- 그리 믿었다.
[회사를 저따위로 운영한다면 곧 망할 것은 뻔할 뻔 자 아닌가. 우리라도 나서서 바로잡아야지.] [구조 조정을 하자는 거구만, 그래!]구조 조정.
회사에서 수익성 떨어지는 지구를 정리해 비싼 값에 되파는 것처럼, 우리도 같다.
수익성 떨어지는 사업부.
특히 이상한 논리로 직원들을 현혹시켜 회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은호 같은 놈을 쫓아내 주는 게 오히려 더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 아닌가.
그 과정에서 약간의 무력과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지만, 뭐.
그건 다들 마찬가지이니.
[우리 건물 다 찾아와야지! 안 그러나?] [옳소!] [암, 갈아엎어야지. 내 전 재산을 다 털어 넣었는데.] [나도 용병들에게 단단히 일러뒀소.]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이은호 그놈에게 털려 버린 탓도 있지만, 이번 거사를 위해 우주의 난다 긴다 하는 자들을 용병으로 모아 오느라 남은 돈을 다 털어 넣다시피 한 것이다.
장기적으론 그게 더 이득이니까.
그들의 캐시 카우(Cash Cow)나 다름없는 회사를 이상한 놈팡이에게 뺏기느니,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저들이 직접 먹는다.
그건 더 이상 손해가 아니라 투자였다.
미래를 위한 투자.
[다 모였군.]설산의 주인이 육중한 음성으로 말하자, 5대 주주 그믐의 낫이 매부리코를 들썩이며 물었다.
[천왕께서는 어찌 되셨소?] [……가만히 계신다.]가만히.
돌려 말했으나 이 자리에 모인 주주 중 그 의미를 못 알아들은 이는 없었다.
그들의 간계에 빠져 꽁꽁 얼어붙어 버린 모습을 다들 보았기 때문에.
[안타깝소. 불가살, 그의 지분이 어디 숨겨져 있는지 말씀만 해 주셨어도 그 꼴은 당하지 않으셨을 터인데.] [왕께서도 노쇠하셨다. 오래 버티시진 못할 게야.]예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암수들을 대동해 기습했어도 옛날이었으면 눈 깜빡임 한 번으로도 처리하셨을 테니.
이 모든 게 사천왕 중 혼자 남아 네 개의 하늘을 지탱하느라 너무 큰 힘을 소모해 온 탓일 터.
[그러게 진즉 물러나셨어야지.] [어쩔 수 없지. 시대는 바뀌는 것 아니오.] [사실 구 신들을 축출할 때 같이 물러나야 하셨던 걸지도 모르지.]주주들이 씁쓸한 입매로 탐욕스런 말들을 내뱉은 순간.
[담소는 그만하고…….]멈칫!
설산의 주인이 뿌려 둔 눈보라를 일순간 멈추었다.
[……음?] [왜 그러시오?]딱딱하게 굳은 얼굴.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빛과 말투.
[천왕께서…… 사라지셨다.] [!!]저도 모르게 뿜어낸 냉기가 대주주들의 몸을 감쌌다.
설마.
그 한마디가 주주들의 불안을 후벼 팠다.
[그만!]그때, 뼛속까지 파고드는 서늘함을 찢고 날아가는 일갈.
[서둘러라! 거사를 앞당긴다!]* * *
[이은호 휘하 반역자들은 들으라.]민여진은 당황스러웠다.
[너희들은 포위됐다.]한밤중에 갑자기 눈보라가 불더니, 창문 틈새인지 굴뚝인지를 타고 들어와 성 안쪽까지도 냉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우리 주주 일동은 이 회사의 진정한 주인. 주인 된 도리로 너희 역적들을 모두 처단할 계획이다.]그것도 모자라서, 뭐?
포위됐다고?
우리가 역적이라고?
[그러니 삶에 미련이 남은 자, 즉시 밖으로 나오라.]“여진아! 그거!”
“어어! 걱정 마요, 언니!”
당황했지만, 죽을 만큼 당황하진 않았다.
이은호가 떠나기 전 팀원 몇몇에게 공유해 준 권한이 있었기에.
【통곡의 성 – 활성화】
【방어 프로토콜 발동!】
……그랬는데.
파아아아아앗-
방어 프로토콜을 발동시키자마자 통곡의 숲이 빛을 뿜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숲 전역에 그려진 괴상한 문양이 붉고 푸른빛을 레이저처럼 쏘아 올리더니 성을 노리고 날아왔다.
“!!”
“미친! 앞이 안 보여!”
성을 덮친 불온한 빛들에 눈이 멀었다.
틈도 없는데 새어 들어온 눈보라에 휩싸인 몸이 점점 굳어 간다.
콰드드드드득-
콰앙-!
방어막에 금이 가고, 무언가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분진.
“케헥……!”
목이 찢어질 것 같다.
숨만 쉬어도 목에 유리 조각이 콱 박혀서 성대를, 긁어 대는 듯한 기분.
그럼에도 민여진은 눈 감을 수 없었다.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응?”
“여러분을 다 부른 이유는…….”
그들의 팀장이 남긴 미션.
“만약 제가 없을 때 기습을 당한다면, 부르세요.”
“네? 누구를요?”
떠나기 전, 전 인사국장의 방에 모두를 모아두고 신신당부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비상…… 경보.”
쿨럭!
말 한마디에 피를 쏟았다.
급속도로 얼어붙은 공기는 쏟아 낸 피마저 꽁꽁 얼린다.
[비상 태세를 가동합니다.]쿠웅-
순간, 저 먼 곳에서부터 진동이 들린다.
뒤이어 세상이 끝날 것처럼 귓속을 파고드는 요란한 알림 소리.
【Warning!】
【Warning!】
【Warning!】
멀어져 가는 시야에 흐릿하게 담기는 시뻘건 경고창.
지직-
지지직-
마지막으로, 전사에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까지.
[비상사태를 발표합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전 직원분들께서는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안전한 곳으로…….]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안내 방송이었다.
늘 그들을 목숨 건 경쟁으로 내몰던 안내 방송이 이제 그들의 대피를 돕고 있었다.
“습격인가! 기다리게, 청년들!”
“분신술(分身術)!”
동료들이 깨어난다.
[미친 거 아냐? 이 밤중에 웬 화상 호출?] [회장님 호출입니다, 하로나 님.] [뭐? 이은호가 날 찾아?]저들을 개미 새끼처럼 대하던 관리자들이 반색한다.
[극(極)아! 여기 뭐가 울리는데?] [이 팀장…… 아니, 회장님 핫라인입니다. 비상사태로 보이는데…… 발신인은 안 보이네요.] [뭐어?! 바로 가지!]무섭게만 보였던 직원들이 버선발로 달려오겠다 한다.
[이은호 씨…… 가 아니라, 여진아! 무슨 일이야?]“읍읍—!”
[말 못 해? 일단 내가 갈게!]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저를 챙긴다.
‘……아.’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민여진은 생각했다.
그 아저씨, 여태 그냥 강하고 똑똑해서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단순한 게 아니었다.
매일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 내고, 주변을 도운 거다.
중요한 순간에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여진아! 지금 어디야? 사막 요새야?]‘흡!’
민여진은 깨달음과 함께 시린 숨을 들이켰다.
팟-
[치유사(治癒士) ‘윤솔아’의 영향으로 상처가 회복됩니다.]그리고 같은 이유로 정신을 차린 솔아의 치유를 받으며 내뱉은 단말마의 외침.
“습격이에요! 도와주세요!”
[위치는?]“통곡의 성이에요!”
그 순간.
쿠—웅!
미약하게나마 버텨 주던 방어막이 모두 깨지고.
쌔애애애애애액-
먹구름과 회오리바람이 뒤섞인 눈보라가 몰려온다.
하늘이야 깜깜하게 뒤덮은 지 오래.
먹잇감을 발견한 서릿발 같은 어둠이 성 전체를 집어삼켜 버렸다.
[뭐야? 안 보…….] [여진아! 거기 있…….]‘커헉!’
뼛속까지 파고든 냉기에 딱딱하게 굳어 버린 몸.
눈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그보다 더 막막한 고통과 공포에 반쯤 넋이 나가 버렸을 때.
파아아아아앗-
어둠을 찢어발기며 내려온 건 한 줄기 섬광.
홧홧한 열기가 끔찍한 얼음의 표면을 녹인다.
덕분에 겨우 밝힌 시야에는 빛이 가득했다.
──── !
시간이 멈춘 듯 공중에서 멈춰 버린 눈발.
캄캄하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상서로운 기운.
그 속에서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기다란 용이 물 흐르듯 내려온다.
──── !
청룡의 머리 위에 앉은 건 흑발의 한 사내.
사내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멈춘 눈송이들이 쌓였다.
──── !
검푸른 기운이 사내 몸과, 검과, 용 주변을 감싸 안았다.
꼿꼿하게 세운 상체에 깃든 강인한 기품이 흐르는 듯한 모습.
“저건…….”
익숙한 얼굴이나, 모르는 사람이었다.
살면서 처음 접하는 위압감.
전 회장이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윽박지르던 것도 봤다.
하지만 지금 여진의 눈앞에서 유유히 하강하는 저 존재와는 털끝만큼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진은, 부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 낯설어 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을.
“아…… 저씨……?”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