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311
외전 2. 아이들의 선물(3)
반투명한 새타니들이 펄쩍 뛰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저 양 갈래머리, 분명 회사에서 오고 가며 한 번쯤 본 얼굴이다.
그냥 키 작고 까칠한 관리자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관리자가 지옥에서 그들을 도와줬던 꼬마 은인이었을 줄이야!
[몰랐어!] [나도!]이유는 있었다.
당시 새타니들은 그들을 구해 준 인간 남자 뒤에 숨다시피 한 상황.
기껏해야 하늘에서 떨어진 꼬마 은인의 뒤통수만 겨우 봤었고, 그마저도 벌벌 떠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탓이었다.
심지어 그 시간도 오래가지 않았다.
“도망쳐.”
“우리?!”
“우리만?!”
인간 남자는 말했다.
“저기, 높은 산 보이지?”
지평선 끄트머리에 우뚝 솟은 산.
섬뜩한 안개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꼭대기로 날아가. 거기 귀기를 발현한 이들이 모여 산다 들었어.”
무서웠다.
산을 둘러싼 요상한 안개는 쳐다만 봐도 손발이 저려 오고, 몸이 파르르 떨렸다.
“너는?”
“은인은?”
“데려다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하지만 은인이 곤란한 얼굴을 하는 건 더 싫었다.
처음으로 구해 주고, 맛있는 밥도 차려 주고, 그림도 그려 준 은인이었으니까.
“회사와도 이어져 있다 했으니…… 분명 만날 수 있을 거야.”
“응!”
“알았어!”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혁명이 성공하면 데리러 갈게.”
“응!”
“약속!”
“약속.”
데리러 올 거라고, 다시 만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 거짓말이었다.
데리러 오지도, 만나러 오지도 않았다.
오지 않으면 찾아가자 싶어 겨우겨우 파견직으로 입사했지만, 은인은 없었다.
……그렇게 백 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짜고짜 공격부터 하다니.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데리러 왔다.
“니들, 내 밑에서 일 안 할래?”
약속을 지켰다.
[괴물!] [은인!] [괴물이 은인이었어!] [대단해!] [최고!]쌍둥이들이 웃었다.
은인이 그려 준 그림 속 그들처럼 환한 함박웃음을 머금고, 괴물이자 은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우리 가고 난 뒤!] [어떻게 될까?] [어떻게?]그들이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
과거의 쌍둥이가 떠난 뒤,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구경…… 하려고 했는데.
일렁-
눈앞에 흐려지더니, 매정하게 떠오르는 메시지.
【연관성 종료.】
【기억 구슬을 닫습니다.】
[?!] [끝이…… 야아아아아악?!]순간, 터져 나오는 섬광에 반투명한 새타니들의 몸이 멈춘다.
뒤이어 뱅글뱅글 돌아가는 시야와 띵해지는 머리.
그렇게 그들은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튕겨 나와 버렸다.
[악!] [뭐야!] [다음은!] [궁금해애애애액!]* * *
100년 전, 저승.
새타니들이 황급히 도망친 뒤에도 공방은 이어졌다.
[관리자 하로나! 당신이 왜 여기까지 내려왔지?!] [귀가 먹었어? 내 거 찾으러 왔다니까?]하로나의 날렵한 움직임에서 비산하는 검사(劍絲).
[그게 무슨……!]“이상한 소리 그만하시죠.”
뒤따르는 사내의 백색 검에서 푸른 강기가 솟구친다.
[관리자가 저승의 법도에 개입하다니! 경을 칠…….] [어머. 떠들 여유가 있어?]관리국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하로나.
그리고 단신으로 지구의 마물 군단을 궤멸시켰다는 전설의 신입사원.
둘 다 일대일로 맞붙어도 버거웠을 상대였다.
그런 괴물들이 양쪽에서 덮쳐 왔으니…….
[끄아아아아아아악!]싸움은 길어질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승리.
[흐응- 빌빌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실력 안 죽었네.]하로나가 몸에서 뽑아낸 실을 회수했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힘.
넘쳐흐르는 강기에 양 갈래머리가 마치 정전기가 이는 듯 삐죽거렸다.
그 모습을 본 사내가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다.
“여기서 다시 뵐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더 반갑지?]“그럴 리가요.”
세상 차가운 목소리. 서늘한 눈빛. 여전한 전투 태세.
결코 도움을 받은 이의 자세는 아니었다.
“무슨 속셈입니까?”
[속셈이라니. 도와주러 온 거 안 보여?]“그러니까, 도움을 청할 땐 나 몰라라 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장난질이냐 물었습니다.”
그를 본 하로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씁쓸하고 미안했으나 씁쓸할 자격도, 미안할 자격도 없는 자의 얼굴이었다.
“회사를 바꿀 겁니다. 하로나 님 능력이라면 큰 도움이 될 거고요.”
[못 들은 걸로 할게. 나가 봐.]부정부패와 탄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겠다 했던가.
그 목숨 건 선언을 한때의 치기 어린 반항이라 생각하고 단칼에 거절한 게 본인이었으니까.
[혁명이니 독립이니, 난 그런 건 못 해. 그러고 싶지도 않고.]“……이해합니다. 강요한 적도 없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승격을 마친 직원들에게 회사는 밥줄이자 목숨줄.
비록 점점 버텨 내기가 어려워지곤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누려 오던 모든 걸 뒤로한 채 회사에 맞설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문제는.
“근데, 이제 와서 왜 여기까지 왔느냔 말입니다.”
눈앞의 사내가 삼도천에 떨어졌단 얘길 듣자마자 눈이 훼까닥 돌아 쫓아와 버렸다는 점일까.
“국장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가만두지 않으시겠지.]“진급 심사 중이시지 않았습니까. 진급 누락은 물론이고, 징계가 떨어질 겁니다.”
[알아.]괴롭히고 굴려 실적만 뽑아내면 그만인 대상자.
[아는데…….]그래서 외면하고, 모른 체하고, 더 냉정하게 대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어쩌려고 이러는 겁니까?”
답답한 막냇동생이라도 본 것처럼 찡그리는 사내에게 자박, 다가선다.
[어쩌려고 이러는 거냐면…….]자박, 다가가 까치발을 든다.
자그마한 체구를 붕 띄워, 보란 듯 천천히 얼굴을 갖다 댄다.
……마치 볼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대상자 여우짓에 홀려서 한 번 실수한 멍청한 관리자— 정도로 연기해 보려고.]“!!”
혼자 마물 군단을 썰어 대는 주제에 놀라서 굳는 모습이 우습다.
우스워서 사랑스럽다.
그래서 놀랄 짓 안 한다 알려 주는 대신 더 가까이 다가가 건넨 건.
“이건…….”
[다부살이꽃이야. 한 번은 부활시켜 줄 거야.]한지를 수십 겹 덧붙여 만든 손바닥만 한 연꽃 한 송이.
“왜 하나뿐입니까?”
[두 송이 구하긴 했는데, 하나만 겨우 피웠어. 삼도천의 귀환자라는 게 그리 많지 않더라고.]다부살이꽃은 삼도천의 귀환자들이 크고 작은 염원을 담아 피워 낸 꽃.
단 한 번. 소유자의 죽음이 감지될 경우, 새로운 뼈와 살과 힘줄이 되어 생(生)으로 돌려보내 주는 엄청난 아티팩트였다.
그 귀한 걸 주겠단 소리다.
자기는 이곳에 남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그게 궁금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끄으으…….]삼도천의 수호자가 짙은 귀기를 흘렸다.
놈은 그들에게 사지가 분리되었어도 죽지 않는다.
이미 죽은 자가 다시 죽을 순 없으니까.
스스스스슷-
안개처럼 번져 가는 귀기는 제 동료들을 불러 모으려는 심산일 터.
[저기.]스스스스슷-
안개처럼 번져 가는 귀기 사이로 그림자 없는 군대가 나타났다.
“!!”
그를 본 남자가 다시금 검을 들었다.
그러나 키 작은 소녀는 소중한 대상자를 가리듯 막아서고는 대신 앞으로 나섰다.
[돌아가. 다들 목 빠져라 기다리더라.]작지만 꼿꼿한 등이었다.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고개가 반쯤 뒤돌아 남자를 향했다.
“하로나 님은…….”
[큰 벌은 안 받을 거야. 나, 공도 많이 쌓았고 나름 예쁨받으니까.]오랜 세월 고요하던 마음에 처음으로 파문을 일으킨 사내.
아마 다신 만나지 못할 이를 눈동자에 담으며, 소녀는 웃었다.
[성공하면 내 덕인 거 잊지 말고.]“……!”
[두 배로 갚아.]* * *
[관리자 최승, 하로나 님을 뵙습…… 음? 뭐 하십니까?] [아니, 아까부터 귀가 간지러워서.]하로나가 귀를 파 보려다 포기하고는 ‘아오! 안 해!’ 하며 들고 있던 귀이개를 내동댕이쳤다.
[누가 내 욕하고 있는 거 아냐?]가벼운 물음에 승이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누가 감히 하로나 님을 욕하겠습니까.] [욕할 놈들이야 많지. 주광 그 말라비틀어진 놈이나 관리국 띨빵한 신입들, 계약직들…… 아. 최승 너도 있고.] [아.] [아? 아아? 죽을래? 왜 반박 안 해?]그러니까, 빙그레 웃기만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최승(最勝)!] [소리 지르시면 직원들 놀랍니다.] [하? 이제 과장 달았다 이거야?]언제나의 일갈이었으나, 승은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최승 또한 어엿한 과장.
무려 일곱의 팀원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는데 까칠한 상사의 눈치만 보는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하…… 됐다, 됐어.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만.] [아닌데? 기분 엄청 더러운데~?]그리 말하며 손을 휘휘 내젓는 하로나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고생했어. 성질 더러운 상사 밑에서 구르느라.] [계속 굴러야 되는 거 아닙니까?] [푸하- 그런가?]최승이 과장 보임을 받은 것과 동시에 하로나 또한 드디어 진급을 했다.
무려 관리국장 바로 다음으로 큰 권력을 갖는다는 1처장으로!
[진급 축하드립니다. 하로나 님.] [됐어. 뭐 이런 걸로 호들갑이야?]하로나가 배시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참아 냈다.
하지만 양 갈래머리가 춤추듯 나풀거리는 것까지 참을 순 없었던 모양.
그를 보며 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백 년 전에 다셨어야 했습니다.] [뭐, 그렇지.]하로나의 진급은 사실 백 년 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했다.
뒤늦게 들어온 승 또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일례로 이은호가 선별되기 전, 익명의 참관자로부터 들어온 전광유(電光油)를 거르지 않고 전달했을 때.
[생존자들이 죄다 한 명에게 달려들 겁니다. 그럼 오히려 형평성이……!] [아직도 감정에 휘둘리는구나.] [그, 그렇다기보단…….]관리국장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아직도 감정에 휘둘린다’라는 말.
[어리석은 아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셈이냐.]감정에 휘둘리고, 진급을 그르칠 만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하로나.
솔직히 상상이 가진 않았다.
최승이 아는 그녀는 감정이 아니라 실적에 목숨을 거는 뼛속까지 회사원.
분명 호기심이 강하고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다 실적으로 연결되어 왔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그…….]그래서 입을 열었다.
[뭔데?] [백 년 전 그 대상자 말입니다.]멈칫.
춤추던 하로나의 양 갈래머리가 공중에서 굳었다.
한 번도 물은 적 없었다.
높으신 분들에게 깨질 때.
하로나를 못마땅해하던 직원들이 옳다구나 하며 뒷담화를 할 때.
어디서 소문을 주워듣고 온 동기들이 떠들어 댈 때도 늘 침묵하던 최승이었음에도.
[흐응, 그게 궁금했어?]하지만 지금이라면 물어도 될 것 같았다.
백 년의 시간이 지나고, 외로운 고행길을 지나, 다시금 인정받은 지금이라면.
[그냥, 뭐- 좀 잘생기고.]하로나가 앉아 있던 의자를 뱅그르르 뒤로 돌리며, 뒤통수로 말했다.
[약해 보이는데 강하고, 질 것 같은 싸움도 이겨 버리는 놈.]그래서 당연히 실패할 걸 알면서도 괜히 기대하게 되는 그런 자였다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무슨 인생 2회 차 같은 놈이었어.]그래. 그 말이 딱 맞았다.
승의 대답에 하로나가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완전 달라. 완전! 그 애는 엄청 잘생겼었다니까?] [회장님도 외모는 괜찮은 편입니다만.] [그렇긴 한데…… 걘 너무 눈이 찢어졌어. 인상이 너무 더럽단 말이야.]뭐, 어쨌거나.
[으- 옛날얘기 그만하자. 재미도 없는데.] [재밌는데요, 저는.] [됐어, 됐어. 우리 최 과장님, 안 바빠? 안 가 봐도 돼?]파닥- 파다닥-
왠지 모르게 널뛰기를 하듯 오르락내리락하는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붙든 하로나가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나 간이 꽤 커진 최승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제 할 말을 했다.
[회장님께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이번 진급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신임 회장.
그들의 관리 대상자였던 이은호다.
[끙…… 하긴, 그 녀석이 징계 이력을 포상으로 지워 주지 않았다면 내가 네 밑에 있었을지도.] [그건 그거대로 끔찍하네요.]– 13지구 마물 폭주 사건 해결의 건
– 재난 상황의 직원 대피 및 구조의 건
그동안 하로나의 행적 중 치하할 부분은 확실히 치하해 줬다.
물론 하로나 뿐 아니라 전 직원 모두에게 공명정대하게 행한 일이었으나, 그 부분은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이은호 걔가 은혜를 갚을 줄 알아. 그치?]바쁘다고 그리 비싼 척을 하더니.
제가 도와준 걸 전부 기억하고 있다가 결정적일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나.
그런 모습이…….
파다닥-
뭐, 꼭 싫지만은 않았다.
[크흠, 뭐 시간 되면 밥 한 끼 먹자고 하던가.] [시간 안 되실 텐데요. 워낙 바쁘셔서.] [……물어나 봐, 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