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89
Chapter 20. 신체검사(3)
“이은호 개 같은 새끼……! 이젠 절대 안 져……!”
[이…… 버러지 같은 게 감히!!]우웅-!
캡슐이 뱅글뱅글 돌더니 끼긱! 하며 멈췄다.
그렇게 잠시 조명이 꺼지나 싶더니.
덜컹!
원통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벅머리 사내의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시스템 창.
【ERROR!】
【데이터 불일치!】
‘데이터 불일치?’
데이터가 불일치한다는 건, 기존에 입력해 둔 데이터가 있다는 뜻.
즉, 누군가 들어가기로 정해진 사람이 있었다는 의미다.
장한일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리고 그건.
‘날 노린 거야!’
놈들이 노린 게 ‘입사 시험 1등’인지 ‘나’라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만…….
어느 쪽이건, 확실한 사실은.
‘들어가면 X 된다는 거.’
그리 확신한 뒤 재빨리 엿본 사내의 스크린에는 번쩍이는 경고창이 빼곡했다.
그 아래에는 알 수 없는 괴이한 숫자가 가득했고.
【프로토콜 중지!】
【장비를 재구동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경고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푸쉬이이이익!
캡슐 바닥을 붉은 연기가 채웠다.
[멈춰! 멈추라고!]사내가 다급하게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마치 불길 속에 떨어뜨린 귀한 보물을 되찾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처럼.
【‘관리국 까마귀’가 수상한 놈이라고 눈살을 찌푸립니다.】
【‘관리국 뱃사공’이 역시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조사국 프린스’가 저 캡슐이 왜 저기서 나오냐며 팔짱을 낍니다.】
[이로(異路)! 이제 진짜 시작해야 돼!]그 혼돈의 한가운데서 나는.
[닥…….]“가속.”
기다렸다.
느려진 시간 속, 인간이 아닌 두 존재의 움직임을 살피며.
‘30초.’
[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더벅머리 검사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옆에 선 평범한 이들보단 빠르지만, 그럼에도 느릿한 움직임.
다행이다.
가속 스킬 속에서도 공격을 이어 가던 귀(鬼)들 때문에 걱정했는데.
‘회사 놈들이라고 해서 다 빠르진 않은 건가.’
한없이 길어진 순간 속에서 슥- 훑었다.
비쩍 마른 몸에 얼룩덜룩한 흰 가운.
발보다 더 빨리 움직인 손과 직접 짠 듯한 괴이한 숫자의 조합.
‘몸을 쓰는 자가 아니야.’
놈의 정체도, 의도도 모르지만, 그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날 노린 게 분명함에도, 손가락 하나 휘둘러 잘라 내는 대신 캡슐이니 뭐니 귀찮은 준비를 해야 했던 이유가 있다는 것.
그렇다면.
“소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아이템을 손에 쥐고선, 빠른 걸음으로 놈에게 다가갔다.
스윽!
멈춘 거나 다름없이 늘려 둔 시간이지만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혹시 놈의 눈에 잔상이 남을지도 모르니까.
‘이걸 이렇게 쓰게 되네.’
동그란 스티커를 더벅머리의 옷자락에 티 안 나게 붙였다.
과연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쓰게 되네.
그렇게 내 볼일은 끝났지만.
저벅.
이어서 발치에 붉은 연기가 넘실대는 캡슐로 향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장한일에게.
“으어어어어어어어…….”
멍청한 건 죄다.
눈치가 없는 것도 죄다.
정체 모를 적을 앞에 둔 주제에 자격지심 따위에 지배당하는 것도 죄다.
하지만.
‘죽을 정도의 죄는 아니니까.’
콰득-
열리지 않는 캡슐의 틈새를 비집고 문을 부쉈다.
그렇게 장한일을 질질 끌어내 맨바닥에 패대기친 순간.
째깍-!
시간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응?]스크린을 다급하게 두드리던 더벅머리가 멈칫하더니 손놀림을 멈췄다.
그리고 그 틈에.
“거부하겠습니다.”
담담하게 말했다.
한 움큼의 불안함도 섞이지 않은 담담함으로 빚어낸 거절.
[……뭐?]“강화, 필요 없다고요.”
확실한 대답을 다시 한번 내어놓았다.
【‘관리국 뱃사공’이 잘 생각했다고 칭찬합니다!】
【다수의 참관자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번쩍!
그러자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놈.
놈의 일그러진 얼굴이 바닥에 널브러진 장한일을 노려보더니, 다시 내게로 향했다.
[저놈 때문이지? 버러지 같은 놈이 괜히 끼어들어서!]누렇게 뜬 흰자위 속 번들거리는 눈동자.
‘!!’
희번덕하게 뜬 눈이 섬뜩하기 짝이 없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눈빛이랄까.
[이렇게 된 거 직접…….]살기와 광기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보이지 않는 기운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섬뜩!
온몸의 잔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검을 쥐었다.
파천검의 뼛속까지 달라붙는 감촉이 날 안심시킨다.
괜찮아. 싸워도 돼. 할 수 있어. 지지 않아…….
그렇게 홀린 듯 서로를 응시하고 있을 때.
【WARNING!】
【즉시 ‘신체검사’ 일정을 수행하세요!】
【10초 후 감사관을 호출합니다!】
【10, 9, 8…….】
[지체할 시간 없어!]놈보다 작고, 나보다도 작은 만년 과장.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사내를 저지했다.
[당장!!] [……그래. 아직 기회는 많으니까.]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검사관이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휙!
땅딸막한 조사관이 황급히 캡슐을 치워 버리며 외쳤다.
[시작해!]스슷-!
동시에 희끄무레하게 뭉친 구름 덩어리.
순식간에 퍼진 뿌연 기운이 둘을 동시에 감쌌다가.
파앗!
사라졌다.
[프로젝트 ‘신체검사’를 시작합니다!] [모두 지정된 구역으로 이동하세요!]그러자 그제야 참았던 숨을 뱉으며 휘청거리는 사람들.
“처, 청년! 방금 도대체…….”
“X발, 강화는?! 안 해 주는 거야?!”
“강화 같은 소리 하네! 저 사람 안 보여요, 지금?!”
음?
바락 대답한 이예지가 누군가를 가리켰다.
‘저 사람.’
그 끝에 있는 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장한일.
“허억…… 나, 나 분명 방금까지…….”
연기 때문인지 콜록거리던 장한일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X발, 저 새끼가 뭐 어쨌…… 어?”
“!!”
장한일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미 주저앉아 있지만, 더 맥없이 풀리는 팔다리.
“서, 선배님! 바, 발목이……!”
“내 다리……! 허억……!”
이런.
“으아아아아아악!”
장한일이 제 다리를 붙들고 괴성을 질렀다.
꼭 레이저로 지진 것처럼 까맣게 타들어 버린 양쪽 발목.
‘연기 때문이야!’
발치까지 차올랐던 붉은 연기.
그의 영향임이 틀림없다.
만약 저 연기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도록 가만뒀다면…….
“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안 돼!!”
까맣게 타들어 버린 건 놈의 전신이었겠지.
“선배님! 지, 진정하세요!”
“으아아아아아악!”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모든 생존자분들은 검사장으로 이동하시길 바랍니다.]마침 흘러나온 방송과 떠오른 지도.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입구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공터였다.
[제한 시간은 10분.] [시간 안에 도착하지 않은 대상자는 즉시 ‘삭제’됩니다.]“그, 그렇게 멀진 않습니다, 선배님!”
“맞습니다! 여, 여기 업히세요!”
옆에 있던 덩치들이 한마디씩 던졌지만, 장한일의 귀에는 닿지 않는 모양.
“허억…….”
두려움과 고통이 섞인 망연자실한 얼굴로 까맣게 타 버린 발목만 내려다볼 뿐.
“…….”
입을 벌렸으나 말은 없었다.
그래도 헛살진 않았나 보다.
이런 세상에서, 불구가 되었는데도 곧장 달려와 주는 이들이 꽤 있는 것을 보면.
그래서.
저벅.
놈에게로 다가가 섰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주저앉은 놈을 내려다보며.
“직접 고쳐.”
내 말에 장한일의 고개가 날 향했다.
죽은 생선의 그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텅 빈 눈.
익숙한 눈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통해 마주했던, 끔찍하도록 익숙한 절망감.
“시간은 걸리겠지만…….”
[파행(跛行) 회복률 100%.]세 번의 보상을 투자해 내 인생에서 지워 버린 고통과 공포.
그걸 알기에.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말했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언제고 돌아갈 수 있으니까.”
“……!”
그러니 버티라고.
남의 등에 업히든, 기어가든, 살아남으라고.
“이은호…….”
장한일의 텅 빈 눈동자에 빛이 들어왔다.
눈동자 속에 반사된 내 얼굴.
차오르는 물기에 흐려져 가는 얼굴을 보고선 뒤 돌았다.
“……맙다.”
그러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소리.
“가자.”
“예!”
“가요, 은호 씨!”
그렇게 놈을 뒤로하고 걸었다.
어린 시절처럼. 몇 번이고 앞질렀던 놈을 남겨 둔 채, 주저 없이 성큼성큼.
* * *
“은호 씨, 저 사람은…….”
저벅. 저벅. 저벅.
빠른 걸음을 옮기던 지은 씨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옆 학교 선수였습니다.”
담담하게 내어놓은 대답.
친절한 설명은 아니었으나, 지은 씨는 상황을 단박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 씨를 많이 질투했나 봐요.”
“그랬나 봅니다. 바보 같죠? 내가 무슨 세계적인 선수도 아니었는데.”
내 실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세기의 선수였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럼에도 놈은 전부터 나와의 승부에 집착을 보이곤 했다.
사람들은 무릇 범접할 수 없는 상대보단, 눈앞에 보이는 이들에 더 질투하기 마련이니까.
어리석게도.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젓자 지은 씨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동경…… 아니었을까요?”
“예?”
“단순한 질투라기엔 너무 강렬해 보였거든요.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동경이라.
“이 새끼, 바로 알아보네? 다 잊었을 줄 알았더니.”
10년 만에 마주친 옆 학교 선수를 주저 없이 알아보고.
“야- 변했다, 이은호? 말대꾸도 다 해 주고.”
저에게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았는데도 꾸준히 다가와 시비를 걸었지.
그게 날 동경해서였다고?
“그럴 리가요.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당치도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은호 씨,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생긋 웃으며 반박해 오는 지은 씨.
“저도…… 동경하는걸요.”
그리고는 시선을 땅으로 피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관리국 까마귀’가 처자 얼굴이 빨개졌다고 지적합니다!】
【땀을 흘리면 전투가 힘들어지니 열을 식히라고 충고합니다.】
그러자 끼어들 타이밍을 보고 있던 재혁이도 말을 더했다.
“맞습니다, 형님! 전 형님처럼 대단하신 분 처음 봤습니다!”
“그치, 그치. 똑 부러지고 강단 있고. 나도 반백 살이 넘었지만서도 청년 같은 인물은 처음이여!”
“아저씨가 대단하긴 하죠.”
“감사합니다만…… 그만들 하시죠.”
갑작스런 칭찬 릴레이를 서둘러 끊어 냈다.
왜냐하면.
“아까 그 캡슐, 절 노린 거였습니다.”
“뭣이?!”
“!!”
수다가 떨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놈이 아니라 제가 들어갔다면 저도 타 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형님으로 세팅해 뒀는데 엉뚱한 사람이 들어가서 그런 거 아닙니까?”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도 남의 얘기였다면 그리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놈의 그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끔찍한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순진한 말을 늘어놓는 재혁이와 달리, 원래 남을 믿지 않는 욕쟁이는 곧장 맞장구를 쳐 왔다.
“X발, 그치? 어쩐지 아까 그 흰머리, 처음 나왔을 때부터 너한테 말 거는 게 이상…….”
“조심.”
나와 같은 생각임에도 분개한 욕쟁이의 말을 끊어 낸 이유는.
【‘관리국 뱃사공’이 혹시라도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지켜보고 있어.’
스윽!
하늘 위에 떠 있는 ‘눈’을 향해 고갯짓하자 욕쟁이가 이해했는지, 순간 손으로 막으며 입을 다물었다.
말은 잘 듣네.
‘지금 이 대화도 지켜보고 있겠지.’
저 망할 눈을 통해.
하지만.
[……그래. 아직 기회는 많으니까.]놈이 친절하게 예고를 날려 준 덕에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가속 스킬이 통한다는 것도 알아냈고.
[이렇게 된 거 직접…….]놈은 신체검사 미션의 ‘검사관.’
힘든 싸움이 될 거다.
미션 룰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도 모르고.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하다간 당하고 말 거야.’
그렇다면.
‘먼저 친다.’
놈이 가장 방심했을 때를 노려서.
그리 마음먹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스륵! 옷자락을 붙잡고 얼굴을 빼꼼 내미는 지은 씨.
“은호 씨?”
“예?”
“표정이 굳었어요. 걱정…… 하시는 거죠?”
걱정은 본인이 더 하는 것 같은데.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죠.”
지은 씨의 물음에 희미한 웃음으로 답하자, 옆에 있던 재혁이까지 나서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괜찮아요, 은호 씨! 혹시 그 사람이 공격해 오더라도 같이 싸우면 괜찮을 거예요!”
“맞습니다, 형님! 제가 어떻게든 놈의 머리를 부숴 버리겠습니다!”
“신체검사 미션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격해 올 것 같아요. 그치, 재혁아?”
“예! 미션 끝나고 형님께선 잠깐 몸을 숨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음.
고맙긴 한데.
“숨을 필요 없어.”
“예?”
“주도권은 내가 잡을 거니까.”
두 사람이 영문 모르는 얼굴을 했다.
“주도권…… 이요?”
“어떻게…….”
홀연히 사라져 버린 놈을 어떻게 찾으며, 어떻게 타이밍을 잡을 거냐고 묻는 듯한 얼굴.
‘눈’ 때문에 자세히 설명은 못 해 주지만…….
‘충분히 가능해.’
왜냐하면.
[대상의 위치가 감지되었습니다!] [추적 대상 : 이로(異路)]— 깜빡!
눈앞에 떠오른 지도 속, 깜빡거리는 불빛 하나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제 위치를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 간편 위치 추적기
– 미래연구센터에서 만든 위치 추적기. 활성화시킬 경우 부착한 대상의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단, 한 번 부착 시 회수 및 재사용이 불가능하니 주의할 것.
X를 처치하고 얻어 낸 ‘간편 위치 추적기.’
그걸 붙여 뒀거든, 아까.
그러니, 어차피 마주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해치우자고.”
신체검사도, 그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