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cademy’s Battle God RAW novel - Chapter (255)
제255화
9살.
무신산의 동굴 깊은 곳에서 어렸던 신유성은 슬라임과 싸운 적이 있었다.
아무리 주먹을 날려도 질척이며 달라붙고 끈적이던 슬라임에게는 데미지를 주는 게 힘들었다.
‘이 경우도 딱 그런 상대군.’
지금 디안의 몸은 검은 액체가 거품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륵- 그르륵-
뭉게뭉게 구름처럼 피어난 검은 마나는 오물처럼 바닥을 흐르며 땅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치이익-
오물에 닿은 식물이 염산에 녹듯 형태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신유성은 고개를 들었다.
‘약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해.’
분명 디안의 약점은 오물을 뿜어내며 하늘로 치솟은 무방비하게 드러난 몸일 것이다.
능력을 폭주시키며 과부하가 걸린 탓인지 온몸에 푸른색과 붉은색의 핏줄이 돋은 모습은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디안이 신유성을 이기기 위해서 꺼낸 간절한 전력이었다. 설령 이런 모습을 보이더라도 디안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또 이 능력에 몸을 맡기게 될 줄이야. 언제해도 정말 끔찍한 감각이군.”
디안은 생선처럼 흰자위가 많아진 눈으로 신유성을 내려다보았다.
“너의 그 고고함이 부럽군. 지금 너에게는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지?”
몸에서 흐르는 오물.
숲 전체를 삼키고 있는 저주의 술식. 디안의 모습은 인간의 형체라 부를 수도 없었다.
지금 저 질문에 자신은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신유성은 가만히 디안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지?”
거대한 오물 괴수처럼 부풀어버린 디안의 앞에서 신유성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하지만 디안은 신유성에게 섣불리 다가서지 않았다. 헌터의 전투에서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의 질문이다. 내가 끔찍한 몬스터로 보이나? 아니면 인류를 구하는 헌터로 보이나?”
신유성은 디안의 질문에 눈을 감았다. 밝았던 시야가 어둡게 가려질수록 선명히 떠오르는 새로운 시야가 있었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그리고 초록색.
자연의 만물과 숲의 생명.
신유성의 시야에는 그것들의 마나가 형형색색의 반딧불처럼 피어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명 중에서는 당연히 디안도 있었다.
끔찍한 오물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건 온몸이 시리도록 차가운 푸른색.
“글쎄…….”
신유성은 그 색이 가진 의미를 알고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자신이 신오가문에게서 버려졌던 그 시절.
‘비록 그때는 지금 이 광경을 바라볼 순 없었지만…….’
눈을 감은 신유성이 손끝으로 허공을 쓸어내렸다. 푸른 반딧불이 손끝에 닿자 시리도록 차갑게 느껴졌고, 아련한 감각이 가슴을 날카롭게 저몄다.
“그런 건 몰라. 다만 네가 나와 닮았다는 건 알 수 있어.”
디안의 푸른색은.
어린 시절 신유성과 똑같은 외로움의 색이었다. 그저 신유성이 권왕을 택하고 따른 것처럼 디안도 술식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과정과 결과는 달랐지만.
길을 나서게 된 이유는 같았고, 목적지도 같았다.
“……그래?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신기한 대답이군.”
촤아아악-!
디안의 오물은 촉수처럼 변해 신유성을 향해 덮쳤다. 마나로 이루어진 오물은 닿는 것만으로 몸을 녹이는 산성용액이었지만 신유성은 망설이지 않고 검지를 뻗었다.
그리고는 마치 무언가를 발견한 듯 하나의 점을 찍었다.
톡-
오물에 닿은 검지에서 차가움이 느껴졌다. 공명을 비롯한 마나의 수많은 성질을 깨우친 신유성에게 상대의 마나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알아낸다는 건 꽤 많은 장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느려진 시간 속에서 신유성은 검지를 비틀어 오물의 본질을 부수었다.
오물의 형태로 형상화 했지만 본질은 결국 순수한 마나 덩어리. 그 형상화 된 마나의 공정을 파괴하면 과연 오물은 어떻게 변하게 되는 걸까?
사아아-
그 결과는 너무나 간단했다.
신유성의 검지에 닿은 디안의 오물은 마치 정화되듯 푸른색의 마나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 이건-!”
오물을 타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푸른색의 물결을 보며 디안은 결국 자신의 촉수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쿵-!
땅바닥에 떨어진 오물은 거대한 소리를 내며 구덩이를 만들었지만 이내 푸른색의 마나로 변해 사라졌다.
“이, 이미 발현된 기술이…… 다시 마나로 분해된다고?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쩌억-!
순식간에 디안에게 다가온 신유성은 주먹을 적중시켰다. 시원한 파공음과 함께 흩날리는 디안의 오물은 이미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콰앙!
“마나의 성질을 파악 당했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본질을 파악 당하게 되었다는 것과 같아.”
단순히 기술의 파훼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름답게 마나가 수놓인 세상은 신유성에게 계속해서 힌트를 주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다급하게 만드는지.
승리를 향한 절박함을 만드는지.
그건 자신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지만. 신유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론 절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없어.’
아마 파티원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도 결국 저 자리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 나간다고 세상은 친절히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더욱 명확히 보이는 길도 있었다.
‘절박함과 간절함은 무엇보다 강한 원동력이지만.’
촤아악-!
다가오는 촉수를 보며 신유성은 눈을 감았다.
‘……시야를 좁게 만들고 흐리게 만들지.’
파앗-
신유성의 양손이 아름다운 반원을 그리며 촉수를 막아냈다.
‘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건, 신체만이 아니야.’
마나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하는 정신의 힘이다. 신체의 성장만큼 헌터들에게 필요한 건 내면의 성장이었다.
그 본질을 느낀다면.
1로도 10을 발휘 할 수 있었고.
그 본질을 느끼지 못한다면.
10으로도 1 정도의 힘만 발휘할 수 있었다.
쿵-!
신유성이 다시 가볍게 주먹을 날렸다. 너무나 간결한 동작이었지만 그 여파는 컸다.
파아아악!
디안의 몸을 뒤덮었던 오물이 다시 절반이나 허공에 흩어졌고 거대한 몸체가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보면 주어진 선택지가 달랐을 뿐이었고, 지나쳐간 길이 달랐을 뿐이었다.
‘난 운이 좋았을 뿐이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 곁에는 항상…….’
눈을 감고 미소를 머금은 신유성이 돌려차기를 날렸다.
쐐액! 펑-!
이번에도 발차기가 작렬함과 동시에 오물이 날아갔지만 신유성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너만! 너희들만 그런 능력을! 난 모두 포기했는데!”
자신을 향해 여러 가닥의 촉수가 날아와도 신유성은 가벼운 몸짓으로 피해냈다. 감정이 격동하는 디안의 마나는 더욱 읽기 쉬웠다.
지금의 신유성에게는 마치 디안이 공격할 장소를 미리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게 문제야.”
신유성의 손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오물을 향해 손바닥을 뻗자 파도처럼 격렬한 마나가 상대를 향해 몰아쳤다.
창룡승천파(蒼龍昇天波)
파앙!
신유성이 만들어 낸 파도는 마나 덩어리인 오물을 자신의 힘으로 승화시키며 순식간에 잠식했다.
가히 압도적인 힘.
디안은 몸을 이루던 오물이 허공에서 흩어지자 아슬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게, 문제라고?”
마치 생선처럼 흰자위만 번뜩거리던 디안의 눈이 평소처럼 돌아왔다.
촤아악-!
디안은 자신의 팔을 칠흑처럼 새카만 불길로 바꿔 덤벼들었지만 신유성은 공격을 기다려주며 느릿하게 읊조렸다.
“그래.”
강해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디안에게. 모든 것을 버렸기에 강해질 수 없다는 신유성의 말은 절망과 같았다.
“끝까지 날 기만할 생각이냐-! 강해지기 위해, 난 모두 버렸다. 그런데…… 그렇기에 더욱 강해질 수 없다고?”
디안이 괴성을 지르며 칠흑의 불길을 휘둘렀다.
쐐애액-!
디안의 분노처럼 끝없이 길어진 칠흑의 불길은 채찍이 되어 숲 전체를 태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 기세에 밀리지 않고 신유성은 여전히 담담히 대답했다.
“모두 버리고 온 사람은 더 강해질 수 없어.”
신유성이 고개를 숙였다.
쐐애액-! 쾅!
길어진 불길이 나무를 몇 그루씩이나 쓰러트리며 숲을 휩쓸었지만 신유성은 채찍을 지나쳤다.
탓-
전투에서 불같은 마음은 좋지 않았다. 흥분한 마음은 동작을 크게 만들었다.
그런 빈틈투성이인 상대에게 다가가는 건 신유성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
“강해질 이유가 없으니까.”
모든 이야기를 정리한 사형선고와 같은 그 말과 함께 신유성은 손바닥을 뻗었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자신과 가까워진 신유성의 손바닥. 그 끝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나를 보며 디안의 시야는 하얗게 지워졌다.
삐이이-
정신이 사나운 기계음만이 들릴 뿐 폭풍의 여파로 생긴 시끄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버리고 온 사람은 강해질 수 없다니. 디안에게 그건 그저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디안은 술식을 전해 받은 순간부터 지겹도록 들은 말이 있었다.
[정말 결정한 것이냐? 이 술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순간 넌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한다.]그래.
[넌 디안이 아니라. 술식을 이어 받기로 한 또 하나의 횃불이 되는 것이다. 정말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이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그 소중한 것들을 버린 만큼.
가벼워진 무게만큼 그 빈자리에 더욱 강한 힘을 채우게 될 것이라고 디안은 그렇게 배웠다.
‘……내가 틀렸다고?’
자신은 모르지만.
상대는 알고 있는 게 무엇일까?
콰아아앙-!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디안은 해답에 닿을 수 없었다. 신유성의 말처럼 그저 너무 많이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
자신이 버린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