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cademy’s Battle God RAW novel - Chapter (256)
제256화
검신은 시끄러운 소리를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 관객들의 환호성이나 대화 소리 같은 건 질색이기에 그만의 VIP룸을 잡았다.
“그저 조용한 곳을 원했거늘. 가장 시끄러운 녀석을 만나버렸군.”
하지만 너무 인적이 드문 장소를 택한 게 문제였을까? 검신은 예정되지 않은 손님의 등장에 인상을 쓰며 파이프의 재를 털었다.
툭툭-
“무슨 용무지?”
여전히 스크린에 시선을 둔 채 무신경한 검신의 목소리에 망토를 뒤집어 쓴 남자는 하핫-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제 쪽을 바라보지도 않으시다니 오만하신 건 여전하시군요. 뭐, 하지만…… 최강의 헌터였던 당신이 시티가드를 동원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기도 하고…….”
후욱-
남자는 기절한 거구의 시티가드를 검신 앞으로 내던졌다.
콰앙!
“우습기도 하네요.”
너무나 명백한 도발의 제스처.
그러나 검신은 여전히 파이프를 입에 문 채 연신 연기만을 내뿜을 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할 짓도 없이 시비나 걸러오다니. 빌런의 수장이라는 건 꽤 느긋한 직업인가 보군.”
정체불명의 남자가 망토를 벗고 정체를 드러내자 검신은 여전히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상대에게 물었다.
“그래서 3017. 용무가 뭐지?”
정확히는 EP-TEST-No.3017.
검신의 입에서 테스트 번호를 들은 남자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젠 네임리스입니다. 당신들이 지어준 이름은 지웠거든요.”
네임리스는 최대한 차분한 얼굴로 감정을 잠재우며 동요하지 않았지만 검신은 오히려 그 모습을 비웃었다.
“……그래? 그러지 말고 그 녀석에게 부탁해보는 건 어때. 데이터를 잘 뒤져보면 진짜 이름을 찾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검신은 교묘하게 네임리스의 아픈 상처를 긁었다.
“저를 도발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전의 추앙 받던 헌터가 아닙니다. 이젠 자신의 검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몸이 아닙니까?”
이번에는 네임리스 쪽에서 아픈 상처를 건드리자 검신은 인상을 쓰며 자신의 옆에 놓인 검에 손을 올렸다.
“그래. 하지만 이런 몸이라도 주제 모르고 까부는 코흘리개를 베어버리는 건 간단한 일이지. 무엇하면 확인해 보는 건 어떠냐?”
“물론, 환영입니다.”
약간의 정적.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VIP룸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러나 오늘의 목표는 전투가 아니었기에 네임리스는 살기를 거두었다.
“지금은 아니죠. ……전 당신을 포함한 헌터 협회의 끄나풀들에겐 가장 끔찍한 차원에서 영원한 고통을 선물 할 생각이거든요. 준비가 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죠.”
차원 계약자인 네임리스가 고르고 고른 가장 끔찍한 차원. 그곳에서 펼쳐질 광경은 어떤 지옥도일지 검신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탑의 상층부를 본 검신에겐 리벨리온의 대장인 네임리스조차 허접한 꼬맹이에 불과했다.
“그래. 내 직접 기다리마.”
툭.
“근데…… 아직도 그 미친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나?”
파이프를 다시 입에 문 검신은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이름을 지어준다고 괴물이 그 꼬맹이가 되는 건 아닌데 말이야.”
네임리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검신은 혹시나 상대가 듣지 못했을까 친절히 테스트번호까지 불러주었다.
“2996 말이야. 아쉽게 됐어. 빈소는 찾아가 보았나?”
그 모습을 보며 네임리스는 확신했다.
“아……, 생각해보니 분명 다른 이름으로 표기됐을 테니 찾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군.”
그래.
이 끔찍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에게 제자는. 아니, 어떤 관계도 사치였다. 자신이 대의라고 생각하는 결과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개의치 않았다.
“……날 도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류진에게 접촉하는 이유가 뭐지? 아, 설마……. 큭!”
검신은 백옥 같지만 상처투성이인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설마 그게 네 방식의 복수인 거냐? 내 손아귀에서 류진을 데려가는 것이?”
검신은 한참을 낄낄거리며 못 참겠다는 듯 웃었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은 그 사실을 알면서 우리가 접촉하게 놔두었다는 말입니까?”
이 인간은 대체 어디까지 음침한 것일까. 네임리스의 경멸 어린 시선에도 검신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난 무슨 수든지 쓸 수 있어.”
스르렁-
검신은 칼집에서 검을 꺼냈다.
검은 스크린의 불빛을 반사하며 아름답게 빛났다.
“살아생전 검술의 극의를 볼 수 있다면. 류진의 검술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누구의 도움이든 말이야.”
네임리스는 안경을 벗었다.
푸른 마나가 눈앞에 서리고 상대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 눈으로 검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당신의 제자가 빌런이 된다고 해도?”
이 차원에서 저자의 존재는 무엇일까? 검에 매료된 검객인가. 욕심에 미쳐버린 악귀인가.
하지만 네임리스는 검신의 본질을 파악 할 수 없었다.
마나를 사용한 네임리스의 눈앞에 닥친 건 그저 텅 빈 공허.
‘이게 대…… 윽!’
번쩍-!
네임리스를 향해 빛과 같은 섬광이 덮쳤다. 빛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검신이 휘두른 일섬.
하지만 그 일섬은 검을 휘둘러서 만들어낸 궤적이 아니었다. 검신은 단순히 상대를 베겠다는 살기만으로 네임리스가 자리에서 주저앉게 만들었다.
쿵!
자리에서 주저앉은 네임리스는 검신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상대해야 할 건 인류 전체였고, 검신은 과거 인류 최강의 헌터였었다.
“그 허접한 눈으로 내 마나를 읽으려하다니. 너무 예의 없는 짓은 하지 말거라.”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비록 몸을 잃었어도 상대는 최강의 헌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래. 무엇이지?”
“나와 실험체들은……. 당신들에게 무엇이었습니까?”
한이 담긴 네임리스의 질문에 검신은 너무나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에 얽매인 자를 향한 경멸마저 깃들어 있었다.
“쯧, 도대체 원하는 대답이 무엇이냐?”
“……무분별하게 희생된 실험체로서 당신들의 솔직한 대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말을 끝낸 네임리스가 이를 꽉 깨물자 검신은 돌아서며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하아……. 뭐, 그래 공로를 생각해 대답은 해주마.”
네임리스는 고개를 돌린 검신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검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아는 그라면 분명 금방이라도 하품을 할 듯 아주 지루한 얼굴로 의무적이게 입을 움직일 것이다.
“그냥……. 뭐 쓸모 있는 녀석들이지. 그 녀석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특성에 대한 헌터들의 연구와 발전을 100년은 앞당겼으니.”
“희생? 사람이 아닌 실험용 쥐로 취급한 자들이……. 우리들이 어떤 식으로 이용 됐는지조차 함구했으면서…….”
네임리스가 눈을 번뜩이자 검신은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군…….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일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 우리는…….”
검신은 자세를 낮추어 네임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검신이 눈을 번뜩이자 네임리스는 아득한 공포를 느꼈다.
“기꺼이 모두의 죄책감을 짊어진 거야. 알겠나?”
검신을 마주하자 네임리스는 무능하고 나약했던 실험체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잘 들어라. 꼬맹이. 우리는 수백의 희생으로 그 숫자의 몇십 몇백 배에 해당하는 희생을 막았다.”
서걱!
검신은 네임리스의 팔목을 베어버렸다. 진짜가 아닌 영체에 불과한 네임리스의 몸은 피가 아닌 마나가 흘러나와 공중에 흩어졌다.
검신은 본체가 아니라 아쉽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 분명 나쁜 일이지.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
“난…….”
네임리스는 반대편 손으로 쿵- 하고 바닥을 내려쳤지만 검신은 가볍게 무시했다.
“네 말대로 그 실험을 세계에 공표하고. 그 죄책감을 인류가 짊어진다면 바뀌는 게 있나?”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켰다.
그러니 이해해라.
네임리스는 그런 논리에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내가 물어볼 건, 그런 게 아니다. 네놈들의 정의 같은 건 궁금하지도 않아. 난, 왜…… 하필 나와 2996이 희생 되어야 했냐고 묻는 거다! 난 세상을 구하고 싶지도 희생당하고 싶지도 않았어.”
울분에 찬 네임리스의 말에도 검신은 여전히 따분한 얼굴로 조소했다.
“그런 일에 희생당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도 없다.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여라. 그리고 넌 다른 실험체와 달리 살아남지 않았더냐?”
쩌어억- 쐐애액!
차원이 찢어지고 미지의 공간이 열리며 괴수의 팔이 검신의 몸을 덮쳤다.
탓-
검신은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해 가볍게 괴수의 팔을 잘라냈다.
“……역시 허접하군. 이 정도 힘으로 나와 헌터 협회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라니. 물론 나는 고리 타분한 정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만. 우리가 한 일은 명백하게 정의였다.”
검신이 그렇게 선고하자.
네임리스는 너무나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궤변으로 당신들은, 아니 인류는 계속 끊임없이 같은 짓을 반복하겠지. 약한 자를 희생시키고 그걸 정의라 포장하면서…….”
“만족한 얼굴이군? 나를 악인으로 규정하여 기쁜가?”
네임리스는 검신의 물음에 너무나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확신했거든.”
네임리스의 뒤편에서 공간이 갈라지며 무수한 손이 빠져나왔다.
“정말 그게 정의라면. 그렇게 이어져야할 인류라면. 역시 이 차원은 여기서 끝나는 게 나아.”
촤아아악!
“그리고 당신과 강유찬은……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해주겠어.”
마지막으로 남긴 저주의 한마디.
타타탁-
그 말을 끝으로 전부 제 각각의 끔찍한 형태를 한 손이 네임리스를 감싸기 시작했다. 검신은 그 모습을 보며 처음과 같은 너무나 오만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