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cademy’s Battle God RAW novel - Chapter (423)
제423화
팬텀 댄스.
게이트가 열리며 백화점이 한순간에 유령이 가득한 마굴이 된 날 소녀를 포함한 생존자들은 밴시들에 의해 놀이방에 가둬졌다.
‘또…… 왔어.’
처음은 일반 시민과 생포된 헌터들의 숫자는 수십을 넘었다. 이젠 10명도 채 남지 않았다.
소녀는 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그 시작은 언제나 같다.
끼익-
이렇게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며 그 틈으로 밴시의 붉은 눈이 생존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그중 하나를 정한 뒤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움직여 생존자를 불러 세웠다.
‘흐윽…….’
소녀는 입과 눈을 가리고 숨을 참고 벽에 붙었다. 그러자 다행히 밴시의 타겟은 소녀가 아니었다.
“히히, 나다. 나…….”
밴시에게 선택된 남자는 기쁜 얼굴로 중얼거리더니 반항도 없이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신기할 것도 없었다. 델타 타워에 갇힌 사람은 이렇게 정신을 잃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정신이 멀쩡한 소녀의 경우가 특이했다.
이 끔찍한 장소에선 남는 게 시간이기에 소녀는 밴시들이 왜 사람들을 살려두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정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스으윽-
남자를 데려 간지 얼마 되지 않아 밴시들 중 하나가 길게 뻗은 팔다리를 거미처럼 이용해 기어들어왔다.
쿵- 쿵-
그리곤 손을 망치처럼 이용해 벽에 못을 박고 거기에 액자를 걸어주었다. 물론 거기에 그려진 건 아까 잡혀간 남자와 똑같이 생긴 그림이었다.
‘……도망치려면 지금이야.’
문 뒤에서 기다리던 소녀는 밴시가 액자를 거는 동안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입을 막고 사뿐하게 발소리조차 줄였다.
‘만약 들킨다면 난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까?’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델타 타워를 벗어날 순 없다. 밴시들의 숫자는 생존자의 몇 배는 많았다. 창문과 출입구는 물론이고 환기구 같은 비정상적인 통로에도 숨어 있었다.
‘하지만…… 갈 수밖에 없어. 나도 그림이 되고 싶진 않아.’
소녀는 당장이라도 마음이 꺾일 거 같지만 밴시를 피해 문밖으로 조심스레 발을 뻗었다.
끼익!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일까?
소녀의 발은 결국 문을 건드리고 말았다. 액자를 걸고 있던 밴시는 순식간에 얼굴을 돌려 붉은 눈으로 소녀를 노려보았다.
먹잇감과 포식자.
서로를 마주 본 두 존재의 사이에서 어색한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밴시는 쩌억- 입을 벌려 크게 울부짖었다.
– 캬아아아아악!
그 소리가 얼마나 끔찍한지 소녀를 제외한 생존자들은 전원이 귀를 막고 바닥을 굴렀다.
“끄아아악!”
“사, 살려줘!”
“머리가 머리가…….”
밴시의 목소리를 들은 자는 미쳐버린다는 풍문까지 있었으나 소녀는 유일하게 밴시의 비명을 무시할 수 있는 존재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소녀는 귀가 들리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 맨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도 당연히 그 연장선.
‘달려야 해!’
소녀는 거미처럼 사족을 이용해 방안에서 달려 나오는 밴시를 피해 미친 듯이 달렸다.
– 키야아아악!
밴시는 진작 미쳤어야할 생존자가 멀쩡히 도망치는 모습에 크게 울부짖어 주변의 동료에게 알렸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소녀를 쫓아 막다른 길에 도달한 순간.
“흡!”
소녀는 움직임을 멈추고 눈과 입을 가린 채 숨까지 참았다.
우뚝.
그러자 소녀를 추격하던 밴시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내 생각이 맞았어…….’
동료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밴시들이 주위를 에워쌌지만 바로 코앞에 있는 소녀를 인식하지 못했다.
‘밴시들이 내 곁에서 사라질 때까지만 숨을…… 참는 거야.’
소녀를 놓쳤다고 생각한 건지 밴시들은 밑층과 창고. 그리고 계단으로 나뉘며 수색망을 좁혔다. 덕분에 소녀와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러나 1분.
1분 10초.
1분 20초.
이젠 숨을 참는 것도 한계였다.
갇힌 방에서 계속 혼자 연습했건만 숨이 모자라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이제, 이제…… 괜찮지 않을까?’
흐읍- 소녀는 지금까지 참았던 숨을 들이쉬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비명 소리에 면역이 있는 자신은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바로 옆에서 빙긋 웃으며 밴시가 머리를 들이민 순간.
– 너, 소리가 안 들리는 구나?
귀가 아닌 텔레파시로 말을 거는 순간.
“아…….”
소녀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숨을 뱉고 말았다.
* * *
헌터 바이온은 헌터 용품에만 한정한다면 국내 기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단순히 학생들이 사용하는 헌터 용품에서 군수회사에 가까운 거대괴수 결전 병기까지 팔지 않는 상품이 없었다.
콰앙!
하지만 헌터 바이온의 대표인 김진철은 주 고객이나 다름없는 명월의 길드원에게 책상까지 내리치며 분개하고 있었다.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겁니까! 명월이 겨우 3급 던전일 뿐이라고 내게 믿고 맡겨 달라고 말한 게 언제인지 알고나 있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던전 측정에 실패한 건 헌터 협회고, 공략에 실패한 건…….”
“입 다무세요. 그 큰돈을 받고도 손만 빨고 있는 주제에. 나에게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하는 겁니까?”
그러나 명월의 관계자인 이상현의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었다. 5급 던전을 3급으로 잘못 알려준 건 헌터 협회였으며, 그 탓에 공략에 실패하며 밴시들은 헌터들을 양분 삼아 순식간에 강해졌다.
뒤늦게 문제를 알아채고 파견하려 했지만 델타타워 공략에 실패한 명월에게 다시 기회가 돌아올 리는 없었다.
델타타워의 공략 의뢰는 이미 정식으로 녹음의 숲 길드에게 넘어간 지 오래였다.
“나는 당신들이 나한테 장담하던 순간에도 신오, 진산, 유수! 그리고 당신들 명월까지 연락하지 않은 곳이 없소! 근데 단 한 곳조차 성공하질 못하다니!”
쾅!
분개한 김진철은 다시 책상을 내려쳤다.
“처음부터 길드마스터 급이 공략에 나섰다면 그 아이는 진작 돌아왔을 텐데!”
이상현을 바라보는 김진철의 눈이 원망으로 타올랐다. 명월은 믿었던 거래처인 만큼 후한 의뢰비를 지급했음에도 팬텀 댄스를 얕보느라 딸을 구해내지 못했다.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길드마스터님이 직접 공략에 나서시는 건 몹시 드문 경우입니다. 그리고 이번 경우는…….”
보여준 결과는 하나도 없이 어떻게든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이상현의 태도에 분노에 찬 김진철은 오히려 웃었다.
“당신들은 장사꾼인 내 앞에서 감히 손익을 따지는군.”
김진철은 스윽- 책상에 명함을 던졌다. 명함에 적힌 건 이상현도 알만한 이름이었다.
“이건, 녹음의 숲의…….”
“협회를 통해 따로 신청 했지. 그리고 이런 말도 함께 전했소. 내 딸을 안전하게 데려온다면 원하는 게 무엇이든…… 내가 기꺼이 보상하겠다고.”
헌터 바이온과 명월은 오랜 기간 거래해온 사이였다. 거기다 김진철은 명월의 길드마스터와도 친분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하나뿐인 외동딸의 안전이 걸렸음에도 하급 헌터나 보낸 명월의 대처에 치를 떨었다.
“만약 그게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이라면……. 기꺼이 빼앗아 넘겨줄 생각이오.”
그러니 녹음의 숲에서 딸을 구해온다면 기꺼이 명월을 배신 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명월과 모든 거래를 끊더라도 딸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럴 수 있었다.
“지, 진정하십시오! 저희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오늘 중으로 6급 헌터를 출동시킬 생각이었다고!”
“이미 늦었소. 녹음의 숲에선 이미 6급을 2명이나 보냈으니까.”
확신하는 김진철의 모습에 이상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6급이 2명이나? 지금 녹음의 숲은 길드장도 병신이 돼서 인원이 없을 텐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 소식통이 얼마나 빠른데요. 1명이면 몰라도 2명이라고 말했다면 녹음의 숲에 속으신 게 아닙니까?”
“나를 바보로 아는 겁니까? 됐으니 가보시오.”
이상현은 녹음의 숲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가 생각한 현 상태의 녹음의 숲은 6급을 2명이나 던전에 보낼 정도로 인원이 많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이름이라도 말씀해보시죠. 제가 직접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김진철은 이상현을 훑어보았다.
그리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꼴 보기 싫은 이상현을 보내려면 빨리 말해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한 명은 유라. 나머지 하나는 신유성이라고 하더군.”
적어도 유라는 이상현에게 너무 익숙한 이름이었다. 지금 다른 던전에 출동한 그 칼잡이를 제외하면 녹음의 숲에서 실질적인 전력은 유라밖에 없었으니까.
“시, 신유성? 그 신유성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신유성이라니?
소문으론 브릴리언트는 물론이고 명월 쪽에서도 섭외하려다 접촉조차 실패한 유명인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신유성은 루키 중의 루키였으니까. 전문가들이 예측하기로 지금 유명한 신예 중 누군가 8급에 도달한다면,가장 유력한 후보는 신유성이었다.
‘서, 설마…… 녹음의 숲에서 채간 건가? 아니 길드장도 병신이 되고 다 무너져가는 녹음의 숲이 대체 무슨 수로?’
설마 자신이 모르는 모종의 커넥션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상현이 혼란스러워하는 순간 김진철은 자신의 사무실을 떠나며 말했다.
“뭐, 할 말이 끝났으면 다음 미팅이 있으니 나는 가보겠소.”
“자, 잠시!”
정신을 차린 이상현이 다급하게 말렸지만 김진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이상현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신유성이, 대체 왜 그 망해가는 길드에…….”
* * *
김은아는 어엿한 직급까지 받아 책상에 앉아 쌓인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바쁜 시간이라 김은아는 이수현조차 물러나게 했지만 오빠인 김준혁은 김은아를 찾아왔다. 그리곤 비서가 자리를 비운 동안 직접 김은아에게 홍차를 타주며 이야기를 꺼냈다.
“소문 들었니?”
김준혁의 질문에도 전자기기가 아닌 아날로그 한 볼펜으로 서류에 사인을 그려나가며 김은아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뭐, 어떤 소문?”
“당연히 유성이 소문이지.”
하지만 신유성의 이름이 나오자 김은아는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유성이, 소식을 알아?”
김은아는 업무로 바쁜 탓에 신유성의 소식을 전해 들을 타이밍이 없었다. 그러나 김준혁은 자신의 일을 김은아가 나눠 받으며 비교적 시간이 많아진 참이었다.
“그럼 따로 알아보려고 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레 알게 됐어. 요즘 길드 쪽에서 유성이 이야기로 떠들썩하거든.”
“유성이, 이야기로? 왜?”
아까까지만 해도 김은아는 냉철한 CEO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신유성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이건 어디로 보나 영락없는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음…… 최근에 유성이가 녹음의 숲을 도와주고 있거든 물론 그 이유는…….”
김준혁은 김은아를 보며 빙긋 웃었다. 김은아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동생이지만 이런 쪽에선 영 눈치가 어두웠다.
신유성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왜 녹음의 숲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묻는다면 답은 역시 하나밖에 없었다.
“은아 너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