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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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집으로
34# 집으로
최형래는 평범한 노예상이다. 각지의 프리헌터, 현상금사냥꾼, 클럽들과 연결되어 노예들을 공급받고, 적당히 조련을 하여 소비자에게 인도하는, 그런 노예상.
겉으로 보기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노예상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는 어느 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 이름조차 베일에 가려진 점조직으로, 다른 멤버들의 얼굴을 알지도 못했고 오로지 조직의 보스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수수께끼의 조직.
설명만으로도 음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런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까닭은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노예상은 각지에 퍼져 있는 인맥으로 장사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람 간의 네트워크가 중요한 분야. 따라서 우연찮게 접하는 정보들도 그 질이나 양이나 모두 방대한 수준이다.
최형래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보스는 바로 그 정보를 원했다. 말하자면 이 조직의 성격은 정보조직이었다.
최형래 입장에서도 나쁜 조건은 아니다. 정보란 어차피 가지고 있어봐야 그 용도에 맞게 사용하지 못하면 금세 유통기한이 지나버리는 식재료와도 같은 것. 그저 보고 들은 것을 전해주는 것만으로 굉장한 인센티브를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직과 그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도 최형래는 평소처럼 비밀스러운 루트로 조직의 보스에게 정보를 보내고 오는 길이었다. 물론 답장은 오지 않는다. 오는 것은 그의 비밀계좌로 입금되는 돈 뿐. 이런 일의 특성상 비밀유지는 생명이었다. 그가 어떤 정보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혹시라도 까발려진다면, 여기저기서 거래를 끊으려고 할 테니, 최형래 본인도 보안유지에 열심이었다.
언제나처럼 정해진 곳에 가서, 정해진 곳에 정보가 담긴 서신을 두고 온다. 벌써 수 년 동안이나 반복해온 일상이지만, 심할 정도의 새가슴인 그로서는 매번 심장이 떨리는 일이었다.
‘허이구, 이 짓도 오래 못해먹겠군. 심장 떨려서 원.’
딱히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술자리에서, 접대 자리에서 어깨 너머로 들었던 것들을 디테일하게 적어서 보낼 뿐이니까. 이왕 지들 입으로 내뱉은 정보, 좀 주워다 팔면 어디가 덧난단 말인가?
‘아, 덧날 수도 있겠군…….’
대형 정보를 유출한 기억은 없지만, 그런 판단은 보다 큰 판도를 볼 수 있는 조직의 보스가 내리는 것. 그에게는 별거 아닌 정보라도, 그런 정보가 조직에서 유용하게 쓰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배알이 꼴리는데. 인센티브 좀 올려달라고 할까? …아냐, 그만두자.’
다시 말하지만 최형래는 작디작은 간담을 가진 남자다. 인센티브 몇 푼 더 받자고 지금껏 안정적으로 거래해 온 조직의 심기를 거스를 배짱이 그에겐 없었다. 특히 지금 조직의 보스를 맡고 있는… 그 흉악스런 외모의 오크를 떠올리면, 더욱더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에잉, 생김새만으로는 이전 보스가 훨씬 좋았는데. 지독한 꼴초긴 해도 눈요기는 실컷 했잖아.’
조직의 보스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꽤 드문 일이다. 삼 년 가까이 조직과 통해온 최형래도 보스와 직접 만난 것은 스무 번도 채 되지 않았다. 주로 보스를 만날 수 있는 경우는 인센티브 협상, 연락수단 변경, 지령 전달, 정보의 상세파악이나 진위여부를 가릴 때 정도였다.
단지 정보를 두고 오는 행위로도 심장이 벌벌 떨리는 그다. 하물며 보스와 만날 때는 어떻겠는가? 심장만 떨리는 게 아니라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최형래는 그런 추태를 보이면서도 보스와의 만남을 삶의 낙 중 하나로 삼았다. 그만큼 이전 보스가 대단한 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좋았지. 그 벌꿀색 고운 머리카락하며,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 세상 어디서도 그런 미인은 찾을 수 없을 거야.’
최형래는 아직까지 독신이다. 그 뿐 아니라 동료 노예상들 중에도 독신으로 사는 자들이 많았다. 직업병이라고 하긴 조금 뭐하지만… 수많은 성노예를 다루었기에 여자를 보는 눈이 주제에 맞지 않게 높은 탓이었다.
그런 그의 관점으로도, 이전 보스는 천금을 주더라도 사기 어려운 절세미인이었다. 덕분에 그의 미적 기준은 동료들보다도 훨씬 올라간 상태. 이미 결혼은 글러먹은지 오래였다.
그에 비해 지금 보스는…….
어느새 사무실에 도착하여 문고리를 쥔 그의 팔에 힘이 강하게 실렸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젠장, 대체 왜 바뀐 거야? 그 오크가 전 보스를 어떻게 한 거 아냐? 가령 쿠데타라던가… 그래서 성노예로 삼아 이런 짓 저런 짓을 할 수도… 그 하얀 살결을 우악스럽게 더듬을 수도 있잖아! 크으윽! 열 받아! 부럽다고! 갑자기 바뀐 이유라도 좀 속 시원히 설명해 줄 것이지!’
쿠데라라느니, 성노예라느니, 모두 근거 없는 그의 뇌내망상이었지만, 전 보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어느 틈엔가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아, 사장님! 손님이 와 계시는데요!”
한가롭게 앉아 있던 비서가 뭐라 말하는 것이 들렸지만, 뜬금없이 울화통이 터진 그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힘주어 잡은 문고리를 그대로 뒤로 밀어젖혔다.
덜커덩!
힘없이 뒤로 밀리는 문짝 너머로 엿보이는 방 안. 씩씩거리며 걸어 들어오던 최형래는 그만 작은 새우 눈을 크게 부릅뜨고 말았다.
“오랜만입니다. 뭐 기분 상한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방 안에는 지금껏 그가 그토록 씹고 있던 오크가 여유로이 손을 흔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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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최형래의 음성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보스와의 대면은 여러모로 여태까지 관례적으로 행해지던 접선과는 크게 달랐다. 사실 접선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대놓고 사무실을 방문한 게 비밀스러운 만남은 아니지 않은가.
‘설마 보스가 아이리스의 오너였다니…….’
직접적으로 언급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아이리스를 둘러싼 딕툼의 정세에 대해 물어오는데, 그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한다면 노예상 일도 관두는 것이 나았다. 그 정도 안목도 없다는 것은 사업을 할 자격도 없다는 뜻이니. 더욱이 아이리스의 오너가 거대한 체구의 오크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정체를 내게 드러냈다는 건… 무슨 뜻이지? 관계가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봐도 되는 건가?’
그러나, 그 안목이 노구덕의 심중을 정확히 헤아릴 정도는 되지 못하는 최형래로선 알지 못하는 미래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안전을 최우선 미덕으로 삼는 상인. 이제까지처럼 비밀스러운 관계라면 몰라도, 공개적으로 아이리스에 줄을 댔다는 소문이 퍼지는 건 사양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아이리스가 처한 상황이 좋은 게 아니지 않은가. 썩은 동아줄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 삭은 동아줄임에는 분명했다. 언제 폭삭 나가떨어질지 모르는 그런 동아줄.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최형래의 불안한 시선이, 골똘히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노구덕의 얼굴에 머물렀다. 지적인 면모라고는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 민대머리 낯짝이라 그런지, 도통 믿음이 가질 않았다.
최형래가 불신 가득한 눈빛을 보내거나 말거나, 노구덕은 그 나름대로 최형래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상황을 분석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음, 하루 자고 일어나면 판도가 변해있는 게 정치판이라지만, 이건 좀 심한데.’
현재 아이리스가 처해 있는 상황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주공산(無主空山)이었다. 말 그대로 주인 없는 산, 먼저 먹는 게 임자인 바닥에 떨어진 떡.
오너가 실종됐다. 그 다음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신소율도 함께.
그랬다. 노구덕과 신소율, 그리고 실렌은 공식적으로 ‘실종’ 상태였다. 아이언 골렘을 통해 서신을 보내두긴 했지만, 골렘이 조악한 솜씨로 휘갈겨 쓴 서신은, 아이리스 헌터들에게 믿음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아이리스는 그 서신의 존재에 대해서 공표하지 않았고, 헌터 하우스에서는 노구덕 등 3인을 실종으로 처리했다.
실제 그들의 실종과 연관된 증거라고는 영상기록에 남아 있는, 거대한 아이언 골렘이 두 사람을 낚아채 도주하는 장면 밖에 없었으니 헌터 하우스의 결정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노구덕도 예상한 바였다. 진짜 문제는 노구덕의 실종이 알려진 이후부터 나타난 정치적 판도변화였다.
‘킁… 막심, 그 늙은이… 내가 가져다 바친 돈이 얼만데, 뒷짐만 지고 불구경을 했단 말이지?’
그 역시 막심에게 빈말로라도 정을 붙인 건 아니었으니 탓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사람인 이상 뒤통수를 맞고 열이 뻗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막심이 노구덕과 관계를 돈독히 한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뒤로 받는 뇌물이나 접대 같은 것은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큰 메리트가 사라졌으니, 그에게 있어 아이리스는 별 가치가 있는 클럽이 아니었다.
아니, 정정하면… ‘정치적으로’ 가치가 있는 클럽이 아니란 뜻이다. 오너를 잃고 투표권을 상실한 아이리스는 아주 맛 좋은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딕툼에는 언제든지 서로를 잡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늑대들이 천지로 깔려 있었다.
최형래에 의하면, 한 달 전부터 아이리스의 클럽 홀 앞은 발 디딜 틈 없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아이리스를 뻔질나게 방문해대는 이들의 정체는 에이전트와 스카우터. 직접 나서긴 뭐하니 대리인을 내세워 아이리스의 헌터들을 빼가겠다는 속셈이었다. 한 달 정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은 혹시 모를 노구덕의 생환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터. 그 작은 조심성조차도 실종 두 달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빗발치는 영입제의 중에서도, 유독 그 횟수가 도드라진 사람은 임유진이었다. 특히 얼마 전 그녀의 정체에 관한 특집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린 뒤부터는, 아예 클럽 홀 정문 앞에 진을 치고 노숙을 하는 에이전트도 생겨났다고.
-네뷸라의 붉은 봉황이 부활하다!
-과거 차기 십존에 가장 가까웠던 전설적 헌터가 미들리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붉은봉황의 행적을 추적하다!
기사가 몰고 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데모나, 가이탄, 나타샤 등 다른 클럽에서도 눈독을 들일만한 헌터들은 많이 있었지만, 임유진의 정체가 밝혀진 뒤에는 그 모든 이들이 묻혀버렸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그녀와 연관된 루머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리스의 붉은봉황! 세인트 나이츠의 에이전트와 비밀리에 만남을 가져…….
-임유진 헌터의 추정 이적료, 350~400m? 카라케스 오너의 대답은 No!
-5대리그와 빅리그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클럽들이 속출!
최형래에게 들은 루머들을 상기한 노구덕의 볼살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이런 망할 기자 새끼들! 뭐? 세인트 나이츠의 에이전트와 만남을 가졌다고? 유진이가 가긴 어딜 간다고! 아주 되는대로 막 써대는군!’
기자란 족속들의 얇디얇은 기자정신은 지구나 여기나 똑같았다. 내용이 뭐든 간에 부수만 많이 팔리면 장땡이라는 식. 될 수 있으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경쟁적으로 써대는 걸 보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어느 인지도 없는 찌라시의 헤드라인.
-붉은봉황이 아이리스에 묶여 있는 이유? 오너와의 성관계를 담은 영상수정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어느 개자식인지 그걸 쓴 놈은 반드시 족쳐버린다.’
과거 윤희지가 성접대 기사에 연루되었을 때만 해도 이정도로 열이 받지는 않았다. 이름 모를 매체의 이름 모를 기자에게 부득부득 이를 갈던 노구덕은 이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누구를 족치든 복수를 하든 그것은 차후의 일. 지금은 어긋나고 꼬여버린 정치 관계에서 앞으로 가야 할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할 때였다.
‘우선… 세인트 나이츠는 아웃. 그 기사도 카라케스, 그 늙은이가 뒤에서 주도한 게 분명해. 게다가 유진이를 영입하겠다고 대놓고 깔짝대는 꼴이라니. 하여튼 겉으로 티는 안내면서 뒤에선 별 짓거리를 다 하는군. 아주 거슬리는 인간이야.’
‘정무문은 조금 애매한데. 드러난 움직임이 별로 없어.’
정무문을 위시한 이진양의 파벌. 그들이 겉으로 드러난 움직임이 없다고 해서 마냥 자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살롱 쪽에서 보이지 않는 활동을 벌이고 있을 게 뻔했다. 어쩌면 아이리스를 대상으로 막심과 물밑거래를 벌이고 있을 수도.
‘복귀하면 소피아에게 물어봐야겠군.’
평범한 노예상인 최형래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대충 생각을 정리할 단초 정도는 얻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빨리 가야겠군. 소율이랑 실렌이 기다리겠어.’
원하는 건 모두 얻었다. 나머진 가면서 생각할 일이었다. 신중한 낯빛을 지운 노구덕은 여전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최형래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감사합니다. 올빼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올빼미는 조직에서 쓰이는 최형래의 닉네임이었다.
“아, 아닙니다. 누구나 알만한 정보인데요, 뭘.”
“정보대금은 섭섭지 않게 넣어드리겠습니다.”
“하하, 뭘 그렇게까지…….”
“제 작은 성의이니 부디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럼 전 이만.”
돈 얘기가 나오자 금방 화색이 밝아지는 최형래였다. 다시 작게 고개를 끄덕인 노구덕은 그에게 짤막한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더욱 빨라져 있었다.
이곳에서 아이리스까지는 이틀 거리. 무리를 해서라도 한나절 이상 일정을 줄여볼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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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12시 이전에 못 올라갈 수도 있겠네요.. 비록 날이 넘어가 연참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새벽내로는 올라갑니다. 그 글은 제외하고 내일도 두편 이상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을 보고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절대 연중은 없으니 걱정마세요. 일시적으로 일이 바쁜 구간이 생긴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