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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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일상,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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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의 치안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특히 이곳저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요즘 같으면 더욱 그렇다. 상대적으로 전화(戰火)에서 벗어나 있는 북부라 할지라도 그건 마찬가지. 부랑자나 불량배들이 득실거리는 도심 바깥쪽은 언제나 위험하다.
“씨팔….”
“캭, 퉷!”
“짜증나.”
산치루 외곽의 어느 뒷골목, 일단의 무리가 험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다. 남자 넷에 여자 하나. 하나 같이 드러난 피부에 기이한 문신을 하고, 멀쩡한 얼굴에 둘 이상의 쇠고리를 꿰었다. 이런 뒷골목에서 흔히 보이는 건달패의 차림새다.
“그래서, 이년은 대체 뭐야?”
늙은이처럼 쉰 목소리의 사내가 일어서며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삽십대 중반 정도. 아무렇게나 짧게 깎은 머리에 키가 장대처럼 커다란 남자다. 그가 일어설 때 나머지 일행이 작게 움찔거리는 걸 보아, 그가 무리의 리더인 듯했다.
“난들 아나.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저 개 같은 년. 아악! 아직도 귀에서 피가 나잖아!”
난쟁이처럼 작은 체구의 사내가 모르겠다며 머리를 내젓고, 아까부터 짜증스럽게 귓불을 어루만지던 여자는 손에 묻어나는 핏자국을 보더니 빠득빠득 이를 갈아댄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귓불은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나간 채였다. 누군가가 귀걸이째 홱 잡아당긴 것처럼.
“대장, 이제 어, 어쩔까? 일단 바, 반 죽여놓기는 했는데…. 으으, 아, 아직도 아랫도리가 아파….”
“흐흐. 그냥 죽일 건 아니지? 당연히 맨처음은 대장이고, 순서는 알아서 정하자. 난 꼴찌여도 상관없어.”
리더, 난쟁이, 여자에 이어 돼지처럼 뚱뚱한 남자와 긴팔원숭이처럼 팔이 길쭉한 남자가 말을 지껄인다. 편의상 돼지와 원숭이라고 하자.
원숭이의 앞에는 한 사람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고 있어 제대로 된 용모를 확인하긴 어려우나, 피에 젖어 끈적하게 달라붙은 옷 너머로 확인되는 몸매의 윤곽은 틀림없는 여자였다.
쓰러진 여인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했다. 푹 숙이고 있는 얼굴에서부터 흘러내린 핏물이 매끄러운 턱과 목을 따라 가슴께를 시뻘겋게 적시고 있는데다, 여기저기 찢겨진 옷 사이로 비치는 흰 살결엔 가혹한 구타의 흔적이 역력했다. 심지어 그녀의 오른팔은 팔꿈치에서부터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그나마 불룩한 가슴께가 힘겨운 기복을 반복하는 것으로 봐선 살아있긴 한 것 같은데, 이처럼 위급한 상태로 계속 방치된다면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즐기긴 뭘 즐겨! 당장 죽여버려! 저년이 내 귀를 잡아 뜯었단 말이야!”
“어허… 꼭 죽이는 게 능사는 아니지. 너, 언제 저런 여자 본 적이나 있어? 듀폰에 데리고 가서 매음굴에 팔아버리면 엄청난 돈을 받을 걸? 애꾸인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아냐. 오히려 애꾸라서 더 가치가 높을지도….”
“이 발정난 새끼가 뭐라는 거야! 당장 죽이자니깐!”
“나 참. 대장은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지랄이야? 지금 질투하냐?”
“맞아, 맞아. 그냥 죽이기엔 너무 아까워.”
“뭐라고? 이 개새끼들이!”
“모두 조용히 해. 생각 좀 하게.”
리더의 묵직한 한마디에, 금방 치고받을 것처럼 험악하게 다투던 여자와 원숭이, 난쟁이가 입을 다물었다. 근본없는 건달패라 할지라도 위계질서 하나는 확실히 잡혀 있는 모양이었다.
까득. 까득. 리더의 손아귀에 잡힌 자갈들이 서로 마찰하며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뭔가를 깊이 생각할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다.
“그 애새끼는 놓쳤지?”
“응. 저년이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리더의 우둘투둘한 이맛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볼일을 보고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뭔가 상당히 찝찝했다.
원래 패거리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요 며칠 간 도심과 외곽을 자주 왕래하던 비루먹은 꼬맹이. 아델이 그들의 먹잇감이었다. 늘 빈손으로 도심에 들어간 꼬맹이가 나올 때는 두둑한 보따리를 챙겨서 나왔으니까.
그들은 아델의 이름은 모르지만, 이 근처에 살고 있는 농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노모와 힘들게 살고 있는 꼬맹이가 매일같이 도심을 왕래하며 물건을 사온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쩌면 어디서 보물을 캐냈거나, 집에 거금을 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한 패거리는 도심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아델을 습격했다. 꼬맹이를 붙잡고 늘 메고 다니는 보따리를 확인한 뒤, 돈의 출처를 물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만만하게 여겼던 꼬맹이의 저항이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정색을 하며 매섭게 휘두르는 칼날에 난쟁이의 어깨가 살짝 베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열두 살 꼬맹이다. 게다가 진검을 사람을 향해 휘둘러본 경험조차 없는지, 한번 피를 보더니 제풀에 놀라 검을 놓쳐버리기까지 했다.
생각외의 사나움에 잠시 주춤거렸던 건달패는 아델이 칼을 놓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아델이 황급히 칼을 향해 손을 벋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 어차피 시간문제였을 뿐, 애초에 아델이 건달패를 물리칠 가능성은 없었다.
화가 치민 건달패는 아델을 흠씬 두들겨 팼다. 입술이 터지고 살가죽에 온통 피멍이 들도록 손을 봐주었다.
그때 나타난 게 바로 저기 쓰러진 여인이었다.
뒤에서 그림자처럼 나타난 그녀는 가장 먼저 자길 발견한 여자의 귀걸이를 잡아 뜯어버렸다. 그리고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진 사이, 그 다음으로 뒤돌아본 뚱보의 사타구니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자와 뚱보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킨 여인의 다음 표적은 멍청히 넋을 빼고 있는 원숭이였다. 원숭이는 벼락처럼 휘둘러진 여인의 팔이 날카롭게 목덜미를 파고드는 와중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시기적절하게 리더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날붙이에 목을 찔려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확실히 헌터 출신이라는 리더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원숭이의 목숨을 구한 리더는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여인의 공세를 손쉽게 막아냈다. 소검을 다루는 여인의 몸놀림은 제법 현란했지만, 결정적으로 그녀에겐 리더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갑자기 난입한 상대를 경계하느라 적당히 탐색 위주로 간을 보던 리더는 이내 여인에게서 투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건 곧, 이 승부의 끝을 의미했다.
적절한 임기응변 때문에 애를 먹긴 했다. 하지만 결국 리더는 어렵지 않게 여인을 때려눕혔다. 여인은 쓰러지고 나서도 상처 입은 야수처럼 맹렬히 저항했으나, 그때는 이미 제정신을 차린 건달패들이 빈틈없이 그녀를 에워싼 처지였다.
성이 난 건달패는 궁지에 몰린 여인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특히, 귓불을 잡아 뜯긴 여자는 손톱까지 뾰족하게 세우며 여인의 살점을 후벼 파내었다. 쓰러진 여인의 목덜미며, 가슴과 팔 주변에 밭고랑처럼 파인 상처가 수두룩한 건 여자가 남긴 흔적이었다.
도중에 이성을 챙긴 리더가 무리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여인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상태만 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긴 했다.
“뭔가 이상하잖냐.”
“뭐가? 그 꼬맹이? 그건 걱정 마.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사람을 불러온다고 해도, 여길 누가 찾겠어? 우리야 후딱 일 치르고 뜨면 그만이지.”
“그게 아냐. 저년, 보통 계집이 아닌 것 같은데.”
“엉?”
“생각해봐라. 저렇게 눈에 띄는 얼굴을 가졌는데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있냐?”
딴에는 그렇다. 널브러진 여인의 미모는 여기 있는 모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그리고 저년, 얼핏 봤는데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단 말이야.”
“대장도 그래? 사실 나도….”
“어디서 봤든 말든 그냥 깔끔하게 죽여버리면 되잖아! 안 그래?”
“아니, 그래도 너무….”
“씨발! 지들도 좆 달린 것들이라고 기어코 한번 박아보겠다 발정이 나서는…! 나중에 내가 대준다, 됐냐?”
“네가 대줘? 염병,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봉황고기를 앞에 두고 날벌레를 먹으란 말이냐?”
“나, 날벌레? 이 새끼! 너 진짜 말 다 했어? 죽여버린다!”
건달패가 여인의 처우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죽은 것처럼 늘어진 여인의 머리께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뒤뚱거리며 슬그머니 그녀에게 다가온 돼지는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을 여인의 상의 위쪽 틈새로 쑥 집어넣었다.
거대하고 부드러운 마시멜로가 손바닥 가득히 뒹굴며 놀아나는 감촉에, 돼지의 두꺼비 같은 입이 바보처럼 헤 벌어졌다. 여태껏 갖은 패악을 부리며 수많은 여자를 맛본 그였지만, 단연코 이와 같은 극상의 육질을 만져본 적은 없었다.
“아우, 아우으흣흣!”
아예 여인의 상의를 찢다시피하여 양손을 다 집어넣은 돼지는 연신 부드러운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헤픈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보나, 행동을 보나, 확실히 돼지는 지능이 떨어지는 게 분명했다.
“마, 말랑말랑… 으히히… 부, 부드러워라.”
“영광으로… 알아라.”
실실거리며 여인의 가슴을 희롱하던 돼지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그는 좁쌀만 한 눈을 데룩데룩 굴려 아래로 향했다. 퉁퉁 부어터진 눈꺼풀 사이로 서슬 퍼런 잿빛 동공이 엿보였다. 기절한 줄로만 알았던 여인이 깨어난 것이다.
“깨, 깼어?”
“내 가슴을 이렇게 오랫동안 주무른 건 돼지, 네가 처음이다.”
“내, 내가 처음? 히힉… 네, 네, 젖… 기, 기분 좋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대답이 흘러나온 순간, 잔뜩 풀어져있던 돼지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부히이익—!”
“뭐, 뭐야?”
때 아닌 돼지 멱따는 소리에, 말다툼을 벌이던 패거리들의 머리가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저놈, 그새를 못 참고!”
상체를 다 풀어헤친 여인의 앞에서 묘한 자세로 뻣뻣하게 굳어있는 돼지의 뒷모습을 본 그들은 동시에 얼굴을 구겼다. 두툼한 양 다리를 오므리고 고개를 쳐든 채 바짝 얼어있는 돼지의 뒤태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이 돼지새끼! 누가 너 먼저 재미 보랬어?”
“…잠깐, 뭔가 이상한데.”
쿵!
리더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승천하는 용처럼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돼지의 둔한 몸뚱이가 썩어빠진 고목처럼 뒤로 넘어갔다. 허연 거품을 물고 있는 돼지의 양손은 불룩한 아랫도리를 꽉 부여잡은 채였다.
무력하게 쓰러진 비계덩이 위로, 시퍼렇게 날을 세운 여인의 눈빛과 마주한 리더는 딱딱하게 얼굴을 경직시켰다.
“이, 이년이! 아직도 기가 살았잖아!”
“거봐! 내가 뭐랬어! 멍청하게 좆대가리 놀리다가 저럴 줄 알았지!”
“시끄러워! 이제라도 조져놓으면 돼!”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다른 일당들이 저마다 욕설을 지껄였다.
독이 바짝 오른 건달패가 다가오는 것을 본 여인, 하유라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부서진 늑골이 폐부를 건드린 것인지, 숨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일어설 힘도 없다. 망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알 수 없는 착잡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젠룽, 너까지 배신한 거냐….’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미리 부하인 젠룽에게 연락을 취해두었다. 계산대로라면 벌써 원군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 하지만, 결국 젠룽은 오지 않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크게 미련은 없다. 어차피 이제는 별 미련도 남지 않았던 삶, 그 꼬맹이라도 살려서 다행이었다.
점점 시야가 흐려지는 가운데, 사납게 다가오는 기척들이 가까워진다. 하유라는 혀를 굴려 미리 어금니에 끼워둔 독단을 깨물 준비를 했다. 용혈독으로 만들어진 독단이었다.
스스로를 중독시키면, 차후 그녀의 몸뚱이를 탐할 건달패들도 자연히 용혈독에 중독되리라.
마지막까지 지독한 독심을 발휘한 하유라가 막 잇몸에 힘을 준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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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좀 늦었습니다. 눈 뜨자마자 벌초한다고 시골까지 끌려내려왔네요. 생각보다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오늘 연참으로 하유라 파트를 딱 끝내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네요 ㅠㅠ
오자마자 한 군데 돌았고, 내일도 두 군데를 돌아야 하는데.. 내일 연참 유무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좀 힘들 것 같기도 하네요…
독자님들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