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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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소드챈트리
섬뜩한 울림이 들려옴과 동시에, 자신을 노 아무개라 밝힌 사내의 눈에서 흉험한 살기가 번뜩였다.
바늘처럼 찌를 듯한 살기의 방향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패검 커크닐, 그를 향하고 있었다.
“이놈, 망발이 지나치구나!”
노호성을 터뜨린 커크닐의 손에는 어느새 묵직한 대검의 손잡이가 들려 있었다.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선 커크닐은 앞뒤 사정 보지 않고 대검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소드챈트리의 심처에 들어와 육검에게 살기를 발한다? 그 말은 곧 죽여달라고 사정하는 것과 진배없다. 커크닐은 상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단숨에 저 두꺼운 목덜미를 쳐낼 작정이었다.
허나 거한은 그의 검을 너무나 쉽게 피해냈다. 그냥 몸을 내뺀 것이 아니라, 검의 진행 방향으로 팔을 비스듬히 흘려 경로를 살짝 바꿔버린 것이다. 숙련된 무투가가 아니면 흉내낼 수 없는 고난이도 기술이었다.
“무투 재능이 높아진 건가? 두식이가 썼던 걸 따라했을 뿐인데 의외로 잘 먹히는군.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 것도 모자라, 턱을 매만지며 알 수 없는 혼잣말까지 지껄인다. 고수가 한두 수 아래의 상대를 대할 때나 볼 수 있는, 완벽한 무시다.
상대의 방자한 태도는 커크닐의 안면을 터질 것 같은 붉은색으로 물들게 만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육검의 일좌를 차지한 이후로 그 앞에서 이토록 거만하게 구는 상대는 단연코 없었다.
“죽여버리겠다!”
“커크닐! 멈춰라!”
“비켜!”
분노한 커크닐은 육지백의 경고성을 무시하고 거한에게 달려들었다. 육중한 양손대검에서 뿜어져 나온 군청색 검기가 거의 삼 미터 가까이 치솟으며 화단 일부를 흔적도 없이 짓뭉개버렸다.
그러나 거한은 그 무시무시한 위력에도 전혀 겁을 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징그럽게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귀여운 재주구만. 꽃꽂이하는 데는 아주 그만이겠어.”
“건방진!”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패검의 검이 벼락처럼 내리그어졌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검세. 간단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무검을 제외하면 오검 중 으뜸이라는 패검의 간판 기술이었다.
거한은 노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검기를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대단한 검기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의 눈에는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검기 속에 섞인 불순물이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예상대로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덮쳐오는 검기의 기세가 실로 매섭다. 노구덕은 잔뜩 날을 세우며 날아오는 검기를 향해 가만히 팔을 들어 손을 펼쳐보였다. 마치 검기를 향해 ‘멈춰!’ 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상대의 해괴한 행동을 본 커크닐은 입꼬리를 진득하게 말아 올렸다. 그의 눈에는 상대가 영락없이 보호막을 펼치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무투가인 줄 알았더니, 마법사였나? 하지만 상관없다. 멍청한 놈!’
마법사라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아무리 수준이 높다한들, 그의 검기는 통상적인 보호막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한이 시전한 보호막은 순두부처럼 으깨질 테고, 보호막 뒤에 숨어 있던 거한의 몸뚱이도 보기 좋게 두 동강이 날 터. 커크닐은 잠시 뒤에 펼쳐질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커크닐의 반응속도는 평소에 비해 굉장히 더딜 수밖에 없었다.
“어, 어?”
“소란을 떨면 안 되지. 사람이 몰리기라도 하면 곤란하거든.”
귓전에서 스산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멍하게 풀려 있던 동공을 일깨웠다. 황급히 정신을 차린 커크닐이 사방으로 투기를 발산하려 했지만, 그보다는 거한의 팔이 훨씬 빨랐다.
“꺽!”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목줄을 붙잡혀버린 커크닐의 몸뚱이가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렸다. 낯빛이 흙빛이 된 커크닐의 표정은 도저히 이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무검 육지백, 양훈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패검 커크닐의 일도양단은 더없이 훌륭했다. 육검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검세였다. 흙바닥을 깊숙하게 갈라놓은 저 흔적만 봐도 검기의 위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토록 무서운 힘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정확히는, 노구덕의 손바닥 속으로 빨려들 듯이 사라진 것이다. 쳐낸 것도, 피한 것도, 정면으로 격돌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깨끗하게 없어져버렸다.
‘이, 이런 일이….’
노안을 홉뜬 채 우두커니 서 있던 육지백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십존의 수준에 다다랐다 전해지는 그조차 방금 전의 한 수를 간파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패검을 어린아이처럼 쉽게 제압한 저 사내는 또 누구란 말인가?
뒤늦게 정신을 수습한 그는 커크닐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거한을 올려다보았다. 좀 전의 한 수를 보았기 때문인지, 거한을 대하는 그의 말투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매우 조심스러웠다.
“당신은… 누구요?”
“노 아무개, 아니면 노구덕. 편한 대로 불러라.”
“노…구덕…? 허억!”
고개를 갸우뚱하던 육지백의 노구가 벼락이라도 내리꽂힌 것처럼 크게 경련했다. 그제야 거한의 신분을 알아차린 것이다.
“지, 진정 레그나토르의… 그, 그분이십니까?”
육지백의 말투가 금세 공대로 바뀌었다.
눈앞의 상대가 정말 레그나토르의 의장 노구덕, 그 철혈군주라면 저 거리낌 없는 하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아니, 그게 당연한 위치인 것이다. 그가 북부에서 존경받는 소드챈트리의 당주라 할지라도, 상대는 대륙의 오분의 일을 지배하고 있는 대국의 왕이다. 애초에 그가 하대하지 못할 상대는 이 세상에 없었다.
“음. 따로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정말 그 노구덕이 맞다는 소리다. 경악을 가라앉힌 육지백은 자기도 모르게 양훈을 쳐다보았다. 양훈은 그의 말을 확인시켜주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육지백은 말없이 숨을 골랐다. 경황이 없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긴 힘들었지만, 그는 일단 상대의 말을 믿기로 했다. 사실 노구덕의 말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힘에 근거한 결정이었다.
레그나토르의 철혈군주가 아니라면 패검을 이리도 쉽게 제압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 이 정도였다니….’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그, 그렇습니다. 레그나토르의 군주께서 이 누추한 곳엔 어쩐 일로….”
“물론 볼일이 있으니까 왔겠지.”
“끄륵…!”
기회를 틈타 몰래 투기를 일으키려 했던 커크닐의 안색이 파리하게 일변했다. 노구덕은 목을 움켜쥔 그의 손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발버둥치는 커크닐의 얼굴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한 번만 더 허튼 수작을 부리면 이대로 목을 꺾어버리겠다.”
“끄… 끄…!”
“숨 조금 못 쉰다고 죽지는 않아. 하지만 경추가 부러지면 십존이라고 해도 살 수 없지. 시험해 보고 싶으면 어디 멋대로 해봐라.”
“…….”
쉴 새 없이 버둥거리던 커크닐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살벌한 엄포로 커크닐의 행동에 제약을 건 노구덕은 다시 눈을 돌려 육지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비치는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읽은 노구덕은 피식 입매를 터뜨렸다.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나?”
정곡을 찔린 육지백은 작게 침음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상대는 노구덕이다. 그의 의중을 모르는 이상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으음…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소드챈트리의 육검입니다. 저로선 불편할 수밖에 없군요. 그가 죽을죄라도 지은 겁니까?”
“암, 그렇고말고. 죽을죄를 지었지.”
“예?”
“아이벤 형님의 죽음에 이놈이 연관되어 있으니까.”
“……!”
노구덕의 충격적인 한마디를 접한 좌중은 동시에 모두 넋이 나가고 말았다. 말을 잃은 그 표정들은 하나 같이 정수리에 쿵! 하고 돌망치가 내려찍힌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못 믿겠다는 표정들이군. 이놈의 얼굴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 자, 봐라.”
노구덕은 단체로 패닉에 빠진 좌중의 전면에 창백하게 변한 커크닐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통이 막힌 탓에 붕어처럼 눈알이 불거져 나온 커크닐은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눈자위를 연신 불안하게 굴려대고 있었다. 거세게 씨근덕거리는 콧잔등이 지금 그의 속내가 얼마나 초조한지 말해주는 듯했다.
그의 적나라한 표정은 그래도 설마하며 믿지 않았던 육지백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서, 설마….”
“설마라고? 잘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군. 육지백,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면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주지.”
“결정적인 증거가 있단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한가하게 놀고 있는 육검 전부를 이 자리에 소집해라. 이놈의 추악한 민낯을 제대로 까발려 줄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노구덕의 언사는 시종일관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박력에 압도된 육지백은 잠자코 그가 시키는 대로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경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육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육지백의 긴급 소집령을 접한 육검들은 저마다 만사를 제쳐두고 뒤편의 화단으로 모여들었다. 노골적으로 육지백의 권위에 반기를 든 커크닐을 제외하면, 나머지 육검들은 아직 현 당주를 깊이 존중하고 있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화단에 도착한 육검은 장내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소집령을 발동한 당주는 힘이 다한 노인네처럼 축 늘어져 있고, 현 소드챈트리의 실세라 할 수 있는 패검은 웬 우락부락한 사내의 손에 목을 잡혀 말린 굴비처럼 매달려 있었으니….
“이, 이게 무슨?”
“사형!”
당황한 육검은 너도 나도 칼을 빼들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북부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검사들의 예리한 살기가 한 덩어리가 되어 사내의 전신을 압박했다. 정작 그 살기를 맞받는 노구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검을 거두어라.”
“당주님! 도대체…! 저자는 누굽니까?”
“검을 거두라 하지 않았느냐. 저분은… 레그나토르의 의장, 노구덕 님이시다.”
“헉!”
“레, 레그나토르?”
허탈하게 흘러나온 육지백의 말은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육검을 혼란의 수렁으로 빠트려버렸다. 서부의 쟁쟁한 패자가 왜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그리고 왜 커크닐의 목줄을 쥐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노구덕은 그런 시시껄렁한 질문에 일일이 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노구덕은 크게 발을 굴러 이목을 집중시켰다.
쿵!
“들어라. 너희들에게 중요한 건 내 소속이나 신분이 아니다.”
입이 열림과 동시에 퍼져나가는 강렬한 존재감. 차원을 달리하는 강자의 여유가 육검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너희들이 정말로 중요하고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은, 북부의 숭고한 성지가 미꾸라지 한 마리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었단 사실이지.”
“끄…!”
“바로 이놈 말이다.”
노구덕이 불쌍할 정도로 일그러진 커크닐의 낯짝을 앞으로 내밀자, 육검의 얼굴에 저마다 의구심과 의혹, 혼란이 스며들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위대한 무인의 죽음에 얽힌 추악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끄으으…!”
갑자기 커크닐의 몸부림이 심해졌다. 손톱을 세워 노구덕의 팔을 할퀴는 것은 물론이고, 발길질까지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발악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노구덕의 손아귀는 여전히 굳은 자물쇠인 채로 그의 목줄을 놓아주지 않았다.
커크닐의 사력을 다한 발버둥을 무시해버린 노구덕은 여전히 숨죽이고 있는 이들을 향해 무거운 음성을 토해냈다.
“양훈, 가져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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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생각해보니 커크닐은 전투력 측정기 수준이 되지 않더군요. 지금 노구덕은 십존 두명과 맞붙어도 지지 않거나 우세라고 보시면 됩니다.
밤에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