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 콘택트전기공업(5)
전생에 내가 뒈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4차 혁명이니 뭐니 하면서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가 요란했었다.
뭐? 다가올 미래엔 로봇이 일을 다 할 거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어, 아주. 그런 세상이 오려면 아직 멀었고, 그런 세상이 와도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거라고.
콘택트전기공업 사러 와서는 난데없이 왜 이런 꼰대력 가득한 생각을 하고 있느냐?
우리 회사가 커지고, 거느리는 업체가 많아질수록 사람의 중요성이 더 절실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분신술 익힌 손오공이 아닌 이상, 믿을 만하고 일 잘 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회사 쇼핑에 앞서 재무제표 분석만큼 공들인 것이 경영진에 대한 평판과 능력 파악이었다.
이미 사들인 회사들은 기존 경영진 그대로 가도 되겠다는 판단이 나왔지만, 지금 사려는 콘택트전기공업은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했다.
겪는 상황은 비슷비슷했다. 키코 때문에 손실이 발생했고, 빚을 갚기엔 시황 악화가 걸림돌로 작용했고, 은행은 자금지원에 인색했고.
“다 비슷한데, 여기 사장은 왜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을까?”
“답은 키코에 있습니다. 다른 사장들은 정상 참작할 건더기라도 있는데, 콘택트전기공업은 오히려 도박을 즐겼기 때문이죠.”
“그래, 잘 봤어. 얘네가 가입한 키코는 어떤 이유로라도 납득이 안 돼. 수출도 얼마 안 하는 회사가 환헤지하겠다면서 5배짜리 키코를 가입해?”
“그걸 납득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죠. 그 정도면 키코가 파생상품인 줄 알고도 들어간 겁니다.”
“건실하게 사업체 운영해서 돈 벌겠다는 게 아니라, 회삿돈으로 도박했다는 뜻이지.”
“맞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또 뭐가 있어?”
“얘네가 시장점유율 1위이긴 한데, 덤핑이 너무 심해요. 기술력도 좋고, 영업망도 확실한 업체가 그렇게 덤핑을 친다는 건 사업을 못 한다는 소리거든요. 우리 같은 완성품 업체한테는 좋은 벤더사지만, 콘택트전기공업만 놓고 보면 죽 쒀서 개 주고 있는 꼴이죠.”
“하하. 역시 재무제표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니까. 영업이익률이 3% 정도라 그 정도면 이 바닥 제조업치고는 무난하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구나?”
“여긴 그 이상이고도 남을 회사거든요. 솔직히 지금 생산하는 제품들 30% 인상해도 다들 군말 없이 살 겁니다.”
“아니, 게네들은 왜 그렇게 헐값에 넘기는 거라니?”
“뭐 여러 이유가 있겠죠. 기본적으로 영업이익이 높으면 대기업들이 가만 안 놔두니까 생색낼 정도로만 맞추는 경우도 있긴 하죠. 그런데, 여긴 그냥 경영을 못 한다고 봐야 합니다.”
“회사가 돈을 못 버는데 인건비만 높고……. 뭐 네가 인수하면 개선될 여지가 있는 거냐?”
“인건비 비중이 높긴 한데, 거기 직원들 대우가 좋은 건 아니거든요. 그럼 답은 하나입니다. 사장이 많이 가져간단 소리죠. 임원 명단 보니까 가족이거나 가족으로 의심되는 사람들뿐이에요.”
“우리나라에 흔한 제조업이군.”
“그렇긴 해도 그 정도가 좀, 아니 많이 심하긴 하죠. 이런 회사들은 오래 못 가요.”
콘택트전기공업 방문 전에 박한철 대표와 이미 결론을 내렸다. 콘택트전기공업 경영진은 죄다 갈아치워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를 사람을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내부 인사 중에 쓸만한 사람을 찾기로 했다.
정동인 전무란 사람은 애저녁에 탈락했다. 말 안 통하는 답답함에, 얼굴에서 품어져 나오는 꼰대력. 딱 봐도 잘한 일은 자기 탓, 못한 일은 직원 탓할 냄새가 너무 진해.
상무니, 이사니 하는 사람들은? 기술직들은 기술개발에 매진하게 도와줘야지. 회사 주인 바뀌어도 하던 일 계속 열심히 하길.
짧은 시간에 후루룩 쳐내고 다니 저 정재형 부장이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콘택트전기공업 담당하는 직원 통해서 평판조사도 끝냈다. 비운의 능력자라고? 직원들이 그렇게 말하면 뭐 보나마나지.
물론, 손님 대접을 위해 헐떡거리며 아메리카노를 사온 박승환 대리란 사람도 눈여겨봤어. 박 대리한테는 숨 헐떡거리지 말라고 커피머신 하나 사줄 생각이고.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생각에 빠지는 동안 정 부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 전무님께서 하신 말씀은 평가기준에 약간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점에 문제가 있는지를 말씀해 달라는 겁니다. 대화를 할 때는 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근거도 같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드릴 참이었습니다. 회사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으로 현금흐름할인법을 적용하셨는데, 가장 중요한 향후 5년간 매출액 증가 전망이 지나치게 보수적입니다.”
박 대표가 대뜸 나 보고 대답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꼭 이럴 때는 나한테 마이크를 넘기더라니까.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굿 한번 해야지 뭐.
“그럴 수밖에요. 조선업 회복에 대한 여러 얘기들이 나오긴 하지만, 진짜 위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콘택트전기공업의 매출은 조선과 건설업황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지요. 저희가 적용한 매출 증가세는 여의도 컨센서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말씀이 일리가 있긴 합니다. 냉철하게 봤을 때 저희 회사의 현재 가치가 높다고 말씀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럼에도 저희는 콘택트전기공업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투자를 늘리고 모든 임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 말이죠. 그 결과가 인수가에 충분히 반영돼 있구요.”
“제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매출 전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고 생각합니다만…….”
“저희가 건네 드린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신 것 맞습니까?”
“그럼요. 눈 감고도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봤습니다.”
“그럼 얼마나 따스한지 아실 텐데요. 저희가 제시한 가격이 당연히 성에 안 차겠지만, 현실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중요한 것은 인수가격이 아닙니다. 저희는 경영정상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280억은 회사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돈일 뿐이고, 우리는 그것과 별도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단 말입니다.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들어간다는 것도 아십니까?”
이 대목에서 박 대표를 쳐다보고 강렬한 레이저를 발사했다.
인수절차 마무리하면 은행 돌아다니면서 채무 출자전환 확실하게 받아오라는 무언의 압박. 그 많은 빚을 다 갚고 싶지 않으니까 은행 잘 설득하고 오세요. 말 안 들으면 멱살이라도 잡길.
잠시 딴짓을 하는 사이에 정 부장의 눈빛은 강렬해져 있었다. 저 사람 주인의식 참 대단하네. 사장 지분 가지고 뭐 저런 눈빛까지 보내고 그런댜.
“이스턴캐피탈 측의 자금부담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결국 향후 5년간의 매출 추이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반영했다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그 전망에는 이스턴캐피탈이 인수했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는데, 이 자료에는 그런 얘기가 없습니다. 혹시 그것까지 가정한 전망치입니까?”
“우리가 인수하면 실적이 달라질 것이다? 그 말씀도 맞지만, 현재 콘택트전기공업의 가치만을 놓고 얘기를 하셔야지요.”
“아니죠. 유일조선과 한 가족이 되는데, 유일조선의 성장세만큼 저희도 성장할 것이라고 가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좀 억지스러운데요? 인수한다고 해서 유일조선의 물량을 받을 것이란 보장이 있습니까? 한 가족이긴 해도 경영은 서로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겁니다. 유일조선이 다른 업체와 거래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전망치에 반영합니까?”
“유일조선과 시너지를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굳이 저희 회사를 인수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데요. 선박용 전기장치나 조명 생산하는 업체가 저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이 새끼 봐라. 어디 허락도 없이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거야? 만만치 않은 놈일세.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돈을 더 낼 리가 없지. 솔직히 280억도 아까워 죽겠는데 말이야.
“인수가격을 높여달라는 의미는 잘 전달 받았습니다. 부장님께서는 저희가 제시한 인수가가 헐값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는 전무님 말씀에 부연설명을 드렸을 뿐입니다. 저희로서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죠.”
“부장님 의견을 묻는 것입니다.”
“회사의 자금 사정이 안 좋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회사의 가치는 평가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꽤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 새끼, 이거 아주 회사와 혼연일체가 됐네. 기선제압 당할 생각이 없으니, 협상을 질질 끌어보자고? 이를 어쩌나. 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다시 얘기하지만, 280억도 아까워 죽겠다고.
이쯤에도 전가의 보도를 꺼낼 수밖에 없네. 너무 많이 써먹어서 식상하긴 하지만, 이것만큼 잘 먹히는 것도 없지.
“저희가 이 회사 손쉽게 인수할 수 있는 방안을 놔두고 이 수고를 하고 있는데, 부장님 말씀이 좀 섭섭하게 들립니다.”
“섭섭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우리는 이 회사가 은행에 넘어간 다음에 은행이랑 쇼부 보면 진짜 헐값에 사들일 수 있어요. 그걸 마다하고 여길 두 번이나 찾아온 것입니다.”
“인수 제안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틀에 박힌 말씀 그만 하시구요. 우리가 왜 은행에 넘어가기 전에 찾아오신 줄 아십니까?”
“…….”
“직원들 동요하지 말고 지금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다 하라는 의미라구요. 콘택트전기공업의 임직원들을 생각해서 굳이 비싼 돈을 내겠다고 하면서까지 인수 의사를 밝혔는데, 돈 더 달라구요? 우리 마음도 몰라주시고 돈타령만 하니 섭섭하다는 겁니다.”
“…….”
“아무래도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뭐 행여나 다시 인연이 이어져서 여길 세 번째 찾아온다면 저희의 제안이 크게 달라질 것 같네요. 박 대표님? 저희 슬슬 일어나시죠.”
박 대표는 이미 서류뭉치를 정리하고 있었다. 쿵짝 한번 잘 맞네.
커피 심부름은 맛보기였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이제 아쉬운 사람이 춤추고 노래 불러야지?
역시나 유재열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좀 전만 해도 우리 정 부장 잘 한다라는 표정이더니, 지금은 그 정 부장이 똥으로 변한 듯한 표정이네.
“아이고, 뭐 그리 성격들이 급하십니까? 우리 박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런 신경전은 흔한 것 아닙니까? 하하하. 아무래도 제가 직접 나서야겠습니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는 법이죠. 하하.”
“멀리서 힘들게 오셨는데, 서로 웃으면서 작별인사를 하셔야지요. 우리 정 부장이 좀 답답한 구석이 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정 부장! 뭐 해? 고개라도 숙여, 인마.”
정 전무도 벌떡 일어나 율동을 펼쳤다. 같은 정 전무인 우리 정한호 아재랑 왜 이리 캐릭터가 차이 나는지 원. 배떼기에 칼이 들어와도 갑빠로 버티는 우리 아재와 달리 많이 비굴해 보여.
정 부장의 페이스에 말려들었으면 결국 내가 아쉬워서 돈 더 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회사가 은행에 넘어가는데 제대로 굴러가겠어? 당연히 넘어가기 전에 인수해야 나한테 더 이득이지.
사장, 전무와 달리 정 부장은 끝내 고개를 수그리지 않았다.
정 부장, 저놈 봐라. 아주 뻣뻣하기가 평창 명물 황태 같네. 아무래도 저런 놈은 가만 놔두면 안 되겠어.
월급쟁이 주제에 오너 지분 넘기는 일에 이리 열심히 달려든다고? 저런 놈은 부장 달 자격이 없어. 저딴 놈한테는 사장 자리가 제격이라고.
인수는 확정됐다고 봐도 무방하니 난 사장찾기 놀이나 하고 있어야겠다. 내 맘을 모를 사장과 전무는 내가 진짜 떠날까 봐 안절부절이다. 대체 언제까지 어깨춤을 출 건데?
“대표님, 이사님. 자, 차분하게 다시 얘기를 하시죠. 저는 이스턴캐피탈에서 인수 제의가 왔을 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흥! 하늘이 다른 사람을 보냈을지도 모르죠.”
“왜 또 이러실까? 우리 회사를 이렇게 좋게 봐 주시는 투자자를 하늘이 안 보냈으면 누가 보냈겠습니까? 하하.”
“투자가 아니라 인수입니다.”
“아, 그럼요, 그럼요. 인수죠, 인수. 그럼 어떻게 얘기를 더 해 보시겠습니까? 야야, 정 전무!”
“네, 사장님.”
“여기 박 대표님 커피가 다 됐잖아. 이런 걸 보면 바로바로 채워야지. 하여간 손님대접 기본이 안 돼 있어!”
“박 대리!”
이 아름다운 조직문화를 보라지. 또 커피 사러 뛰어나간 박 대리에게는 꼭 커피머신을 선물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