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 시황분석팀, 올해는 일 열심히 하실 거죠?
기운찬 2012년. 정말 기운차게 달릴 생각이다. 우리 회사를 세계 1위로 올리기 위한 준비를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진짜 그 길을 가야지.
어떻게? 체격이 좋아졌으니 그에 맞는 옷을 사러 다녀야지. 체력도 좋아져서 배도 몹시 고프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년에 WBT그룹이 무너질 것이다. 회귀라는 나비효과 때문에 더 일찍 무너질 수도 있고. 뭐가 됐건, 무너질 위기에 구세주처럼 등장해서 맛있는 음식들 먹으면 된다.
그다음엔? 아마 내후년부터 해양플랜트 처먹던 빅3들이 노로바이러스 장염 걸려서 설사 오지게 할 테니, 역시 맛있게 먹으면 된다.
그렇게 몇 년 빡세게 움직이다 보면 유일조선은 세계 1위가 돼 있을 테고, 난 편안한 마음으로 니나노하면서 자연사할 날만 기다리면 되겠지. 후후. 설렌다.
“추워 죽겠구만, 뭐가 그리 좋아서 새해 벽두부터 그리 싱글벙글이야? 춥지도 않아?”
벽방산 정상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끝내고 내려오는데, 정한호 전무가 내 웃는 낯짝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하나도 안 춥고, 하나도 안 힘듭니다.”
“회장님 안 계신다고 그런 거야? 그 양반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팔청춘처럼 굴더니 산에 가자니까 갑자기 몸이 힘들데. 허허.”
“잘 쉬고 계시니 내일부터는 다시 이팔청춘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그래서 뭐가 그리 기분 좋은 거야? 혼자만 그러지 말고, 나도 같이 좀 웃자고.”
“그냥 뭐. 올해도 회사가 얼마나 성장할지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오네요. 5년 뒤에 암모니아추진선 나오면 입이 찢어져라 웃을 것 같습니다.”
“거 참. 새해 벽두부터 암모니아 얘기를 하고 그래? 그거 개발 끝날 때까지 내 얼굴 보기 힘들 테니까 그리 알라고. 본부장 일도 다 쪼개서 나눠줬고, 이제 연구소에 처박혀서 연구만 할 거야.”
“좋습니다. 에너지드링크 필요하면 언제든 말만 해 주세요. 신속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전무님은 연구에 매진하고, 전 회사를 바짝 키워보겠습니다.”
“뭘 얼마나 더 키우려고? 일 꽉 차서 올해는 영업도 제대로 못 할 텐데.”
두고 보세요.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즐거운 쇼핑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응? 지금까지 사들인 회사들은 쇼핑이 아니었던가? 응, 아니야.
천원샵에서 물건 몇 개 샀다고 쇼핑이라고 할 수 없지. 굵직한 놈들로 사야 쇼핑 좀 했다고 자랑할 수 있지 않겠나.
달력이 2012년으로 바뀌면서, 예상대로 시장에서 WBT그룹의 위기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회사채 돌려막기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우량자산을 매각하지 않으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미 흔들리고 있으니 어서 탈출해라 등등.
WBT그룹은 유언비어에 강력 대처하겠다며 극구 부인했지만, 터진 둑을 손가락 몇 개로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일은 WBT그룹이 보관 중인 내 물건을 들고 오는 것이다. 재계 순위 13위짜리 대기업이 무너지기 직전인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쇼핑에 앞서 이벤트 정보를 확인해야 했다. 에너지드링크 한 상자를 들고 시황분석팀 윤두병 팀장을 찾았다.
“아, 상무님! 어서 오세요. 아이고,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시황분석팀에 들어가는 에너지드링크가 제일 적더군요. 자고로 이거 많이 마시는 팀이 일 잘하는 부서라고 했습니다.”
“아이고, 저승사자가 따로 없습니다. 이거 부지런히 마시면서 열일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다 떨어져서 말씀드릴 참이었습니다.”
“이런 게 찾아가는 서비스입니다. 올해는 일 열심히 하실 거죠?”
“아, 그럼요, 그럼요. 분골쇄신! 멸사봉공!”
새해답게 덕담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 얼마나 따뜻하게 아름다운 대화인가.
“그나저나 요즘 시장이 어찌 돌아가고 있습니까?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나아질 것 같은데요.”
“역시 상무님! 잘 보셨습니다. 작년 발주시장이 생각만큼 뜨겁지 않았거든요. 발주하겠다는 선사는 많았는데, 정작 실제 발주한 곳이 많지 않았죠. 그래서 올해나 내년에 발주가 쏟아질 것이란 전망들이 많습니다.”
“발주할 곳은 다 발주한 것 같은데요. 그래도 작년에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에 비하면 결과가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죠.”
“그것 관련해서 재미있는 보고서가 하나 나왔어요. 플로이드쉬핑 아시죠? 거기서 나온 보고서인데요.”
“플로이드쉬핑이면 데이비드 길모어 사장 말씀이죠? 거기가 우리 회사 못 빨아줘서 안달인 곳인데…….”
“하하. 맞습니다, 맞아요. 이번에도 엄청 빨아댔더라구요. 작년 발주시장이 기대와 달리 불타오르지 못한 게 우리 때문이랍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평소 같으면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머리에서 스팀 뿜어내면서 욱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엔 윤 팀장과 같이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는 분석이니 말이다.
“우리가 슬롯이 빨리 차 버리는 바람에 발주시장에서 빠졌기 때문에?”
“네, 맞습니다. 우리한테 발주하려고 기다리던 선사들이 기회를 놓쳐서 신조선 발주를 연기했다는 분석입니다. 그 분석에 동의하는 곳이 꽤 많더라구요. 우리 회사가 그렇게 대단한 회사가 됐습니다.”
“누구 덕인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하하. 역시 똘똘 뭉쳐서 열심히 일하는 임직원들 덕이겠죠. 물론! 상무님의 공헌도 꽤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같이 화를 내려다 내 공헌도 있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내 덕이야.
선박 발주시장이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회귀한 나도 헷갈릴 정도이니 오죽하겠나.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2009년에는 발주시장이 말 그대로 폭망했다. 2010년에는 폭망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주가 꽤 나왔다. 물론, 금융위기 전 상황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지만.
2010년 발주증가라는 달콤함을 맛본 이들은 2011년에는 발주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는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란 성급한 기대를 하기도 했다.
나 역시 발주가 꽤 늘어날 것으로 봤다. 컨테이너선과 LNG선 발주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예상대로 컨테이너선과 LNG선 발주가 꽤 늘어났고, 우리 회사는 일감을 꽉꽉 채울 정도로 싹 쓸어갔다. 물론 기쁜 일이지만, 아쉬움은 여전했다. 기대한 만큼 발주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의구심을 떨쳐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우리 회사 때문이라니,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그 분석이 맞다면, 우리가 2014년 말 납기 분 수주가 가능하니까, 올해 하반기부터 발주가 회복된다고 보면 되겠네요?”
“저도 그럴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발주가 급하거나 투기성으로 뛰어드는 선사들이 지금 1순위로 대흥중공업을 선택하고 있거든요.”
“거긴 캐파가 남아돌아서 문제죠.”
“그것도 있지만, 대흥중공업이 에코십 건조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에코십 수요가 뜨겁다고 할 수 있죠. 아마 우리가 영업 재개한다고 하면 마구 몰려들 겁니다.”
“이거, 뭐 좀 할라고 하면 일감이 차 버리는 통에 가다서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게 되네요.”
“에이, 좀 쉬이 가셔도 됩니다. 우리 캐파가 우진이랑 순양에 맞먹을 정돈데, 3년 치 일감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경쟁사들은 우리 보고 배 아프다고 난리에요.”
“제가 욕심쟁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캐파가 대흥중공업 정도만 돼도 아주 다 씹어먹을 수 있었을 텐데요.”
“하하.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대흥중공업 인수해 버리시죠?”
그래, 말 한번 잘 했다. 내가 기필코 대흥중공업 먹어 버릴 테다. 그리고 이쑤시개로 이 쑤시면서 잘 먹었다고 사자후를 터트리리다.
그 전에 먹을 회사들이 싱싱한지 살펴봐야지.
“팀장님, 그나저나 요새 WBT그룹 어떤가요? 별의별 소문이 돌아다니던데요.”
“WBT그룹이요? 사실상 망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로 어렵습니까?”
“그렇게 돈지랄하고도 지금까지 버틴 거면 꽤 오래 버틴 거죠. 증권사 리포트들은 회사채 상환이 가능하고, 시황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 우려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상무님은 그 말을 믿으십니까?”
“증권사 애널들이야 빨아주는 소리만 하죠. 애널이 달리 애널이겠습니까?”
“하하. 맞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이야 하나마나한 소리들 하는 거죠. 여기저기 알아보니까 올해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유동비율이 100% 밑으로 떨어진 계열사들이 많거든요. 빚 갚기도 버겁다는 얘기죠.”
“그 정도라면 이것저것 내다 팔 수밖에 없겠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거론되고 있는 것들이 몇 개 있어요.”
계열사들을 매각할 것이다? 한때 대학생들이 들어가고 싶은 회사 1위로 꼽힐 정도로 잘 나갔던 WBT그룹이 몰락을 우려하는 상황.
안타까울 일이지만, 이 바닥은 겸손해야 한다는 진리를 잊어버린 죗값을 달게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 그저 죗값을 약하게 받게끔 알짜회사들 사 주면 될 일이다. 아주 싸게.
“그래서 어떤 회사들이 얘기 나옵니까?”
“으음. 일단 제일 알짜로 꼽히는 WBT에너지를 매각할 것이란 얘기가 있어요. 1조짜리 빅딜이라 성사될지 모르겠는데, 얘기는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야 우리랑 관련 없으니까 패스.”
“패스요? 거기 진짜 알짜인데요? 지금 WBT그룹에서 거의 유일하게 돈을 벌고 있는 회사에요.”
“남의 떡이 아무리 커 보인들, 남의 떡일 뿐입니다. 배 만드는 회사가 전기 만드는 회사 사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러니 패스. 그거 말고 매각 얘기 나오는 게 또 뭐 있습니까?”
“WBT에너지가 먹음직스럽긴 한데……. 암튼, 그거 말고도 WBT중국도 판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WBT중국이요?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를 누가 삽니까?”
“그렇겠죠? 그래서 WBT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팔 만한 걸 다 팔아도 모자랄 판에 WBT중국 같은 애물단지만 처분하려고 한다고 말이죠.”
“WBT엔진은 안 판답니까?”
“글쎄요. 그런 얘기는 나오는 게 없네요. 조선은 계속 끌고 갈 생각인 것 같은데,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엔진을 팔까 싶은데요.”
거래라는 것이 그렇더라. 내가 원하는 건 안 팔고, 필요 없는 것만 팔겠다고 한다니까.
WBT그룹의 주력인 WBT조선은 한때 빅4라고 자칭할 정도로 잘 나가긴 했다. 그러나 조선소 부지가 협소해 더 치고 나가지 못했다. 그걸 극복하겠다고 3조 원 넘는 돈을 들여 중국에 조선소를 지었건만……. 비싼 쓰레기를 지었다고나 할까.
WBT그룹이 WBT중국을 싸게 판다고 해도 살 생각이 전혀 없다. WBT조선은 살짝 탐나긴 하지만 더 좋은 놈을 살 테니까, 역시나 아웃 오브 안중이다. 내가 사고 싶은 건 선박용 엔진 만드는 WBT엔진이라고.
“상무님. 혹시 WBT엔진에 관심 있으십니까?”
“우리 같은 조선사가 엔진 제조사 끼고 있으면 이래저래 좋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안 그래도 요새 엔진 납품이 제때 안 이뤄져서 현장에서 난리이기도 하고.”
“엔진공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긴 하죠…….”
“말끝을 흐리는 게 별로란 걸로 들리는데요?”
“아니, 별로는 아니고……. WBT엔진이 엔진 3사 중에서 제일 떨어지는 데라, 아쉽다고 할까요?”
“우리나라 3위가 세계 3위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우리나라 엔진 제작사 3곳 중에 WBT엔진이 꼴등이지만, 그 꼴등이 세계 3위이다. 그러니 꼴등 업체 산다고 뭐라고 하지 마. 난 세계 3위 업체를 사는 것이니까.
3위를 1위로 끌어올릴 비법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맨디젤이랑 죽고 못사는 관계 아닙니까?”
“아! 맨디젤 후광을 받아서 회사를 키우겠다?”
“그렇죠. WBT엔진 인수한 다음에 맨디젤이랑 꿍짝꿍짝 잘 하면 확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수주한 선박에 들어갈 엔진 전부 다 제작하고 말이죠.”
“역시 상무님께서는 한시도 가만있지를 않으시군요.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면 뱃살만 나오는 법이죠. 마음 같아서는 제철소도 인수했으면 싶습니다.”
“엔진에 후판까지! 이 바닥에서 최고의 회사가 되겠군요!”
“그러니까 WBT엔진 매물로 나온단 얘기 들리면 바로 알려주세요.”
“레이더망 총가동하고 있겠습니다!”
WBT엔진. 5년 전에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인수하겠다는 꿈을 잠시 접었더랬지.
에코십에 장착할 G타입 엔진 개발이 끝난 시점이라, 그때 인수했으면 재미 꽤나 봤을 것이다. 물론 엄청 비싸게 사야 했겠지.
5년 만의 재도전. 재미는 덜 보겠지만, 대신 아주 싸게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