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 두 가지 중요한 일
시급한 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 회사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일이지만,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고 할까?
괜히 생각하면 슬프고 속상해진다. 전생에선 무기력하게 티비 화면만 보면서 안타까워했지만, 이번 생은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급한 게 아니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니 미리미리 손을 써놔야 한다. 경험해 보니, 역사를 바꾼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더라. 그러니 지금 뭐라도 하자.
“이 과장!”
“네, 상무님.”
“뭐야. 일 잔뜩 시키려고 불렀는데, 군소리 안 하고 달려오니까 괜히 더 불안한데?”
“회사에서는 일에 열중하고, 퇴근하면 분풀이할 생각이거든요.”
이유선이 내 잡일들을 꽤나 맡아줘서 좋긴 한데, 내가 낮이밤저가 된 기분이다. 퇴근하고 다찌집 가서 해산물로 조져줘야겠어.
“이번 주말에 서울 올라가지?”
“어머. 직원 뒷조사도 하시는 겁니까?”
“내 여자니까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싶은 마음뿐이야.”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내 맘을 이리 설레게 하십니까?”
“일 하나 시켜야 하는데 맨입으로 할 수는 없잖아.”
“에잇. 좋다 말았네. 그래서 무슨 일을 또 시키시려고 그러는데요?”
“서울 올라가는 김에 하루 먼저 올라가서 인천에 들렀다 가세요.”
“인천? 거긴 왜?”
“인천해양항만청 가서 로비 좀 하고 오라고.”
“알아먹게 설명 좀 해 주시죠. 유연성 상무니임.”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
2년 뒤에 일어날 끔찍한 선박침몰사고.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사고를 이번 생엔 막고 싶다. 웬 오지랖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살리는 오지랖은 당연히 부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 비극은 곧 있을 인천-백령도 여객노선의 추가 면허발급에서 출발한다.
모든 비극은 다 돈에서 출발하는 법. 그 항로에서 여객선을 운영하는 청운해운이라는 곳이 재미를 보자, 다른 사업자가 복수면허를 발급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규정상 복수면허를 발급할 상황이 되자, 이젠 청운해운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인천-백령도 노선에 여객선을 추가 투입하는 건 안 된다, 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 인천-제주도 노선에 카페리를 추가 투입하게 해 달라. 이렇게 말이다.
결국, 청운해운은 인천-백령도 노선에서 양보하는 대가로 인천-제주도 노선에 카페리를 추가로 투입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냈다. 청운해운은 18년 먹은 카페리를 일본에서 들여왔고, 그 배는 결국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인천-백령도 노선의 추가면허 발급을 막아내면 그 비극이 달리 전개되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뭔가를 해 보고 싶다.
“그러니까 인천-백령도 노선 때문에 청운해운이 인천-제주도 노선에서 여객선 2척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그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걸 우리가 왜 막습니까요?”
“당연히 막아야지! 여객선 선령 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어. 그럼 당연히 해운사들은 폐기 직전의 여객선들을 사 올 거 아니야?”
“20년짜리를 사와도 10년만 잘 굴리면 본전 뽑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선령 제한이 늘어났다고 해도 운항 못 할 배를 가져오는 건 아니죠.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인데 선박검사도 제대로 안 할 리가 없다고 보는데요.”
“어허. 세상을 참 말랑말랑하게 보시네. 지금 선령 20년도 안 되는 배들도 낡았다고 해체하는 판인데, 낡아빠진 배가 여객선으로 돌아다니면 안 되지!”
“그건 알겠는데, 그게 우리랑 무슨 관련이 있어? 우리가 여객선 만드는 것도 아닌데?”
이유선의 질문은 예리했다. 아니, 당연한 걸 물어보는 것이겠지. 나는 늘 그렇듯 이말 저말 다 끌어와서 그럴싸하게 얘기하면 그만일 테고.
“자, 잘 들어봐봐. 인천-제주도 항로는 쾌속선 정도가 들어가는 노선이 아니야. 최소한 5000톤 이상짜리 카페리가 들어가. 그런 배가 승객 몇백 명씩 태우고 가다가 문제라도 생겨 봐. 어떻게 되겠어?”
“흐음. 그러니까 일어나지도 않을 사고 때문에 인천까지 가서 우리랑 관련도 없는 일을 따지고 오라는 말씀? 이따 퇴근하고 분풀이할 게 또 생겼네.”
“관련이 없다니! 그 정도 선박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같은 조선사가 뒤처리를 해야 한다고! 해상크레인, 플로팅도크, 대형 바지선도 출동해야 하고, 잠수부들도 죄다 보내야 해. 그래서 우리 공정 밀리면? 남의 일이 아니라니까.”
“난 진짜 오빠, 아니 우리 상무님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원래 조직은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는 것이지.”
“지금 벌여놓은 일도 잔뜩인데, 여객선 사정까지 돌볼 여유가 있으시고. 우리 상무님 참 대단하세요.”
“존경하는 마음은 잘 알겠어. 인천 바다 구경 잘 하고 오세요.”
인천-백령도 노선에 복수면허를 발급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이의제기를 해놨다. 그거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제 우리 유선이가, 대흥중공업 오너이자 거물 정치인의 딸인 이유선 씨께서 인천해양항만청 가서 잘 따지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나에게 하듯이 들들 볶는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이유선을 붙잡고 한참 동안 설명을 해줬다.
다행인 것은 기나긴 설명에 집중하는 이유선의 눈동자에서 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한테 왜 빠져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고마운 일이다. 얼마든지 낮이밤저 해 주리라.
***
이유선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해 올려보낸 후, 난 두 번째 시급한 일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부지런히 준비한 5조 원짜리 프로젝트! 그렇다. 마더 러시아의 초대형 프로젝트인 야말프로젝트가 드디어 발동이 걸렸다.
가장 핵심인 FID, 그러니까 최종투자결정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자체는 항해를 시작했다.
프로젝트 추진 주체인 러시아 국영기업 노바가스가 메이저 에너지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분 매각에 나선 것이 그 신호탄이다. 재개발조합이 관리인가처분 받기 전까지 여기저기서 돈 끌어와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바가스는 야말프로젝트 지분 49.9%를 시장에 내놨고, 프랑스, 중국, 일본 메이저업체들이 지분을 사들이며 프로젝트 일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정도면 사실상 궤도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프랑스 도탈이 30% 지분 확보했으니, 그냥 무산될 일은 없을 거야.”
김태우 영업본부장도 내 해석에 적극 동의를 했다.
그렇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열심히 물고 빨고 핥아주면서 유일조선 캡짱이라고 외치고 다녀야지!
“투 트랙으로 진행해야 할 것 같네. 러시아랑 노바가스는 최 고문하고 같이 돌면서 영업을 뛰고, 프랑스랑 도탈은 우리 현지 주재원들이랑 CMM 쪽 사람들 통해서 영업을 뛰고.”
“좋습니다. 참! 프랑스 쪽 영업은 GTT와 함께 해도 좋을 겁니다.”
“그렇지, 그렇지! LNG선 영업에서 GTT만큼 든든한 파트너가 없지. 그런데 GTT는 우리 대주주랑 무슨 사이이기에 우리 회사를 이리도 예뻐해 주는 거야?”
“아주 좋은 사이?”
비싼 돈 주고 사들인 LNG화물창 원천기술보유업체 프랑스 GTT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LNG선 호황세에 매출과 이익이 크게 늘어나 나를 기쁘게 했고, 때맞춰 진행한 프랑스 증시 상장으로 투자금도 가뿐히 회수했다. GTT 대주주인 이스턴캐피탈이 신기에 가까운 투자를 선보였다며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뿐이면 감히 효자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형의 효과도 어마어마했다.
까칠하고 갑질하기 좋아하는 GTT가 유일조선에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LNG선 발주가 우리 회사로 몰리고 있다.
누가 뭐래도, LNG선의 핵심은 화물창이다. 화물창 원천기술을 가진 GTT가 유일조선만 예뻐한다는데, 해운사들이 우릴 안 찾고 배겨?
이미 효자인 GTT는 야말프로젝트 밭갈이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야말프로젝트에 필요한 선박이 LNG선이니까! 이 선견지명이란!
“GTT가 우릴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으니 영업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러시아만 잘 공략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번 예비입찰을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로 보여. 듣자 하니 LNG선 15척 정도가 필요한데, 전부 다 쇄빙 기능이 달린 놈으로 발주한다고 하더라고.”
“맞습니다. ARC7 등급을 적용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제가 그럴 줄 알고 작년부터 기술연구소에 쇄빙LNG선을 개발해 달라는 특별지시를 내려놨습니다.”
“허허. 자넨 대체!”
“네? 뭐가 잘못됐습니까?”
“아니, 그런 걸 어찌 다 예상했단 말인가! 아주 찍는 것마다 쩍쩍 맞아떨어지는구만. 허허허.”
“뭐, 하루 이틀입니까?”
김 본부장이 아직도 내 신통력을 신기해하는 것이 더 신기할 지경이다. 서로 신기해했으니 쌤쌤으로 치고, 예비입찰의 전략을 세워봅시다.
“뭐 딱히 전략이랄 것도 없네. 선사랑 팀을 짜고 들어가는 것이면 경우의 수가 많아질 텐데, 이번엔 선사는 선사끼리, 조선사는 조선사끼리 들어가니까 그냥 실력으로 승부를 보면 그만이야.”
“중국이랑 일본은 아무래도 안 되겠죠?”
“당연하지. 자네 같으면 척당 3억 불이 넘어가는 그 비싼 배를 중국에 발주하겠나?”
“절대 안 하죠.”
“중국 에너지기업들이 지분 투자를 했다고 해도, 중국산 LNG선 도입하자는 소리는 못할 것이네.”
중국? 중국이 LNG선을, 그것도 북극해의 두꺼운 빙하를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으로 건조할 수 있다? 곰에게 쑥과 마늘을 먹여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더 쉬운 일일 것이다. 짜이찌엔.
“일본은요? 일본도 10% 정도 지분 인수했다고 하던데요. 지분 투자라는 것이 생산된 가스를 그만큼 들고 온다는 것이니까, 일본 배로 하자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본이 해운 강국이고 자기네끼리 똘똘 뭉쳐있다고 해도, 손해 볼 장사를 할 것들이 아니야. 17만 CBM급 LNG선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애들한테 그걸 맡길 수 없겠지.”
“그래도 일본 조선사들이 아주 가끔이긴 해도, 멤브레인형 LNG선 건조를 한 적도 있지 않습니까?”
“허허. 이번 싸움의 핵심은 건조경험이야. 일본놈들은 그렇게 큰 배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일본 조선사들이 예비입찰 통과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네.”
일본? 대형화하기 어려운 모스형 LNG선만 지독하게 고집하는 곳이다. LNG선 크기가 16~17만 CBM급으로 커지고 있는데, 일본 조선사들은 15만 CBM급 이하만 만들고 있다. 일본놈들의 미친 고집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뭐가 됐건, 사요나라.
“그럼 빅3랑 우리, WBT조선, 이렇게 5개 업체가 올라가겠군요. 아니다. WBT조선도 지금 휘청휘청하니까 떨어진다고 봐야 할 것 같네요.”
“내 생각도 그래. 그저 예비입찰이라 아무 의미도 없긴 하지만, 스타트는 잘 끊고 봐야지. 자네는 요새 바쁘지?”
“아, 네. 아무래도요. 아시겠지만, WBT 애들이 지금 엄청 귀찮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부터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허허. 예비입찰이야 우리 본부에서 잘 준비해서 처리할 테니까, 자네는 지금 벌여놓은 일이나 잘 마무리해. 나중에 본입찰 들어갈 때는 같이 빡세게 움직여줘야 하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이게 배려가 맞는 것이죠?”
“허허허. 자네야 우리 영업본부 에이스 아닌가? 에이스를 쉬게 해준 것이니 배려가 맞지.”
경영지원실이 언제부터 영업본부 밑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귀한 대접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내 업보려니 해야지, 뭐.
김 본부장과 간단한 미팅을 끝내고 각자 출전 준비를 마쳤다.
WBT그룹의 등골도 빼먹어야 하고, 야말프로젝트 준비도 해야 하고, 내년으로 예정된 상장 준비에, 순양중공업 가서 간도 봐야 하고. 할 일이 참 많다.
하나씩 마무리를 지어놓고 다음 일을 벌이고 싶지만, 세상사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던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닥치는 대로 이일저일 마구 하는 거지.
그렇게 살다 보면 이번 생은 잘 살았다고 위안하며 자연사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