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 좋아할 얘기만 하자
뜨거운 여론전이 시작됐다. 드디어 이유선이 전면에 나섰다.
대흥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이 주주 이익에 반한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선거유세를 이렇게 했다면 바로 당선을 점칠 수 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유선의 대대적인 공습에 이형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형선 측에서는 안정적인 지배 구도 구축을 통해 회사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가족 간 분쟁으로 비치는 것이 유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회사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행위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협박도 빠뜨리지 않았고.
그러나 이형선의 대응은 오히려 불에 기름을 콸콸 부은 꼴이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본능적으로 코끼리를 떠올리기 마련이니까.
경마식 보도가 줄을 이었고, 여론은 이제 형선-유선 남매의 분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쪽을 편들기보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유선이 플레이어로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 것이다. 소액주주들은 주주총회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고, 위임장을 어느 쪽에 보내야 유리할지 계산기를 두들기게 될 것이다.
여론전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어낸 이유선은 아버지인 이병진 대흥재단 이사장을 찾아갔다. 결전을 앞두고 아버지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허, 거참. 참으라니깐 그걸 못 참고 그러냐. 아주 여기저기 인터뷰하고……. 스타가 따로 없구나. 허허.”
이 이사장의 첫 마디에는 질책이 다분히 담겨있었다. 형제들이 벌였던 경영권 다툼을 자식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건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었다.
아쉬움? 그렇다. 이유선은 아버지의 반응이 분노가 아닌 아쉬움이었다는 것에 일단 안심이었다.
“오빠랑 싸우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니까요.”
“이게 싸우자는 소리가 아니면 대체 뭔데?”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 집안이 욕을 안 먹게 하려는 것이에요. 지금 하려는 방식이라면 나중에 분명 비난이 쏟아져요. 여론이야 언제든 바뀌기 마련이지만, 주홍글씨는 오래가는 법입니다.”
“그걸 왜 네가 걱정하느냐 이 말이야.”
“당연히 걱정해야죠! 저는 가족 아니에요? 우리 집안이 피땀 흘려 일으킨 회사가 욕먹게 생겼는데,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오히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허허. 말은 아주……. 결국 대수조선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소리 아니냐?”
“아빠. 대수조선은 우리 집안 거예요. 대흥중공업도 마찬가지고. 제가 우리 집안 재산 잘 지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봐 주세요.”
이유선은 아버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 집안 재산’이라는 말에 나온 흡족한 표정 말이다.
전략이 잘 먹혀들어 갔다. 이번 지주회사 전환 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이 분쟁이 아니라 집안 재산을 잘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득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효과를 내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했다.
아쉬움을 담은 질책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유선은 그것이 행동을 막을 결정타가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아버지의 의사가 어디에 방점이 찍혀있는지 확인했기 때문에.
예상대로 이 이사장은 날카롭지 않은 질책을 이어갔다.
“형선이가 대흥중공업 차지하면 문제라도 생긴다더냐? 우리 집안 재산이니 장남이 물려받는 건 당연한 일이야.”
“아빠도 솔직히 오빠가 미덥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네가 대흥중공업 주인이 될 당위가 생기는 것이 아니지. 넌 이미 대수조선을 받아갔어.”
“대수조선이 지금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아시면서 그러세요? 중소형선 분야에서 넘버원이에요. 주문이 너무 몰려서 수주잔량이 3년 치를 넘었다니까요. 대수조선이 이렇게 잘 나가게 한 제가 대흥중공업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허허. 대수조선 잘 나가는 게 네 덕이야? 듣자 하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더니만…….”
“아무것도 안 하기는요. 계열분리되고 나서 잘 나가는 이유가 유일조선이랑 협업하고 있어서인데, 그게 누구 때문이겠어요?”
“누구 때문이긴, 양 사 사장들이 그렇게 하자고 결정했겠지. 네가 회사 물려받고 나서도 허 사장이 그대로 일하고 있잖아? 자고로 회사 주인임을 드러내려면 인사권을 행사해야 해. 인사가 만사라는 말 들어봤지?”
“인사가 만사니까 아무것도 안 한 거죠.”
“무슨 그런 궤변이 다 있어?”
“경영진들이 회사 잘 이끌고 있는데, 주인 바뀌었다고 나가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니에요? 경영 잘 해서 돈 잘 벌면 그만이죠. 내 회사니까 내 편을 심어야 한다는 건 너무 구식이에요.”
“허허. 그 말도 맞구나.”
이 이사장이 너무 쉽게 꼬리를 내렸다. 그 반응이 이유선에게는 긍정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분위기를 타고 더 몰아붙일 때다. 이유선은 그렇게 생각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대수조선 통해서 대흥중공업 소식을 접하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안 좋은 얘기만 자꾸 들리더라구요.”
“무슨 안 좋은 얘기 말이냐?”
“무슨 안 좋은 얘기겠어요. 지금까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됐다고 그렇게 자랑해놓고, 이제 와서 오빠한테 회사 넘겨준다고 하니까 분위기가 안 좋죠.”
“그런 얘기는 금방 사라지게 돼 있어.”
“그것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게 아니니까 더 그렇죠.”
“그게 아니라니?”
“아빠는 오빠가 회사에서 신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셔서 회사도 물려주고 경영권도 맡기겠다는 거예요?”
“크흠.”
“승계작업 방식 때문에 주가는 바닥에서 빌빌거릴 거고, 그렇다고 해도 회사 잘 꾸려나가면 어느 정도 회복하겠지만……. 오빠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장담해요. 유일조선 보세요.”
“유일조선이 왜?”
“시아버지께서 물러나시고, 우리 오빠가 지주회사 사장이 됐는데, 경영권 세습했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 있어요? 실력을 인정받으니까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
이유선은 아버지의 침묵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이사장이 남매간의 분쟁에서 심판자 노릇을 하지 않는 건 전적으로 이형선 때문이었다.
이형선은 전무로 승진하면서 오너이자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는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냈지만, 임직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젊은 직원들은 세습이 웬 말이냐며 웅성거렸고, 임원진들은 대를 이어서까지 충성하기를 꺼려했다.
아니, 오히려 반발을 키워갔다.
능력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였다. 3조가 넘는 대규모 적자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아직은 사장이 아니라서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 이유는 심각했다. 완장 찬 듯이 행세하는 그 태도 말이다.
이 이사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회사의 반응을 익히 알고 있었다.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노릇이었다.
이유선의 공격은 이 이사장의 고민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IMF 시절에 성급하게 2세 경영에 나섰다가 무너진 재벌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고, 이 이사장은 그래서 고민 중이었다.
“그래서 넌 어찌할 계획이냐?”
이 이사장의 질문에 이유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합격 여부가 달린 면접장의 마지막 질문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 질문에만 잘 대답하면 합격 통보가 나올 것 같은 느낌.
“지주회사 전환은 다시 추진할 거예요. 욕먹는 방식이 아니라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허허. 이상적인 말이야 누구든 할 수 있지. 그래서 자사주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냐?”
“자사주 소각해도 경영권 확보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니까요. 제가 확보한 지분만 해도 30% 가까이 되는데, 굳이 욕먹으면서까지 그럴 필요 없잖아요?”
“30%라……. 허허.”
이유선은 이번에도 미세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그 많은 지분을 모았느냐고 되묻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표정 말이다.
사실 물어봐도 얼렁뚱땅 넘길 생각이었다. 그 많은 지분을 남편이 모았다는 걸 얘기했다간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것 같았다. 면접 자리에선 면접관이 좋아할 얘기만 하자는 것이 이유선의 전략이었다.
“네가 아빠 앞에서 허세 부릴 이유는 없을 테니까……. 뭐, 좋아. 그럼 형선이는?”
“오빠를 쫓아낼 생각은 결코 없어요. 어차피 그 많은 계열사들을 다 통솔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비조선 계열사들을 분리할 생각이에요. 조선업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정유, 건설장비, 신재생에너지까지 끌고 가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거든요. 그건 오빠한테 떼어줘도 되겠다 싶어요.”
“형선이가 경영능력이 없다면서?”
“그래서 비조선 계열사들을 떼어주겠다는 거예요. 그쪽이 조선업에 비해 경영 리스크가 적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거든요.”
“허허. 그나저나 정유가 우리 그룹의 캐시카우인 건 알고 하는 소리지?”
“돈 잘 버는 계열사 정도는 떼어줘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조선사가 배 지어서 돈 벌어야 인정받죠. 다른 걸로 돈 버는 것엔 관심 없어요.”
주인이 되더라도 그룹의 절반은 떼어주겠다, 그것도 그룹 계열사 중에서 가장 돈을 잘 벌고 있는 정유회사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이 이사장은 미처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싸움을 먼저 건 쪽에서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소리를 하니, 일말의 불안감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유선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아빠, 제가 그룹 차지하겠다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주력 사업인 조선업에서 계속 죽 쑤고 있는 걸 바로 잡으려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왜 대수조선을 넘겨달라고 했겠어요?”
“비조선 계열사들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니까요. 대흥중공업이 작년에만 3조 넘게 적자가 났어요. 적자가 나든 말든 경영권 승계나 하겠다? 이건 아니죠. 그리고 전 목표가 있어요.”
“무슨 목표?”
“대흥중공업 잘 키워서 유일조선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대, 최고의 조선 왕국을 세울 겁니다.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 왕국 말이죠.”
“허허허. 그게 가능하겠냐?”
“가능 못할 일도 아니죠.”
“세상일이 다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야. 유일조선도 한 울타리에 들어온다? 말이야 좋지. 그런데 그건 독점 문제 때문에 안 될 거야.”
이유선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꿈을 얘기했는데, 아버지가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건 목표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남매간 분쟁에 대한 아버지의 우려를 크게 덜어낸 것 같았다.
주변에서, 언론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이 이사장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집안의 재산이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을 가장 우려했다. 이유선은 그 우려를 씻어내는 데 집중했다.
어떤 결과이건 대흥중공업그룹은 이씨 가문의 재산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유일조선까지 아우르는 조선업 절대강자로 만들겠다는 포부까지 밝혔다. 패배자가 될 이형선에게 그룹의 절반을 내어주겠다는 선심까지.
더 이상 뭘 더 하랴. 이유선은 묵묵히 아버지의 결론을 기다렸다.
“뭐가 됐건, 내가 네 편을 들어줄 일은 없을 거다. 대수조선을 넘겨주는 것으로 부모로서 역할은 다 했어.”
“잘 알고 있어요. 제 편들어달라고 이러는 거 아니니까요. 아빠는 어떤 결과가 나오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으면 해요.”
“허허. 아무튼 내 지분은 형선이한테 갈 거니까 그리 알아라.”
“네. 제 힘으로 해 보고 안 되면 깔끔하게 물러나야죠.”
원하는 결론이었다. 표면적으로 오빠 편을 들지만, 심정적으로는 중립 혹은 내 편을 들어주겠다는 뉘앙스 말이다. 이유선은 이제 부담 없이 오빠인 형선과 일전을 치를 수 있게 됐다.
“형선이는 안 보고 갈 셈이냐?”
“네. 어차피 저 보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아빠가 대신 전해주세요. 오빠를 내쫓으려고 이러는 거 아니라고 말이에요.”
“너네 둘이 으르렁거리는 건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해라. 비가 왔는데도 땅이 안 굳어진다면 그때는 나도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야.”
“아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전 깔끔하게 승복할 거예요.”
“허허. 알았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자식 농사야. 허허허.”
면접이 끝났다. 이 이사장은 그저 웃었고, 이유선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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