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
나는 작가다 001화
1화 서장
“아니, 사장님. 이건 아니잖습니까?”
정말 아니었다.
내 이름 이준경, 나이는 벌써 서른일곱.
이런 내 나이에 직급은 아직도 과장이다.
그래, 이 나이에 과장일 수도 있지.
하지만 과장을 찍은 게 벌써 10년째다.
출판사 푸른숲에서 군대를 제대한 뒤 작가로 계약했다가 소개팅에서 만난 아내와 속도위반을 하게 돼서 가정이 생긴 탓에 접어든 편집자란 직업.
스물둘에 작가로 계약했다가 그 해 말아먹고, 가정은 챙겨야 하니 편집자로 돌아선 지 2년이 지난 스물넷에 대리였다.
대리가 된 이후 3년이 지날 무렵, 워낙 열악한 편집자 생활에 버티지 못한 이들이 우수수 나가 떨어져서 본래 과장으로 있던 성용 형님이 부장이 되면서 과장이 됐다.
성용 형님이 쭉 그 자리에 있어서 10년간 과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근래에 성용 형님이 따로 매니지먼트를 차린다고 나가셔서 이제 당연히 부장 자리는 내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사장이 갑자기 제 아들놈을 그 자리에 앉히겠단다.
그래놓고 한다는 변명이,
“이 과장이 우리 사정 좀 봐줘. 요새 회사 사정 어려운 거 잘 알지 않나?”
지랄이다.
그렇게 어려우면 제가 지닌 건물과 외제차나 팔 것이지.
왜 엄한 사람의 출세를 막냔 말이다.
“그럼 월급이라도 올려주십쇼.”
부장직에 아들을 앉힌 게 인력 비용을 줄이기 위한 거라면 그래도 최소한 내가 해온 게 있으니 과장직이더라도 연봉이나 좀 올려줬으면 했다.
어쨌거나 세월이 흐를수록 올라가는 물가에 기러기 아빠로 살려니 지금 월급으로는 감당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기에.
심지어 몇 군데 대출까지 받아놓았다.
편집자 월급으로 아내와 딸내미 해외에서 살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려니 아주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허리띠를 너무나도 졸라매서.
근데 이런 상황인 걸 알면서도 사장놈은 끝까지 돈만 챙겼다.
“아니, 이 과장. 내가 방금 한 말 뭐라고 들은 거야?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부장직에도 아들놈 앉히는 마당에 월급을 올려준 여유가 될 것 같아?”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다시 한 번 더 좋게 너무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러자 사장이 버럭 성질을 부렸다.
“너무해? 너무하면 너도 그 홍성용이처럼 나가서 자기 회사 차리던가?”
정말 자괴감이 든다.
무려 15년을 바친 곳이 이 푸른숲 출판사였다.
한데 나더러 나가라니.
이럴 때면 가끔 생각난다.
내가 차라리 그때 작가를 쭉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고를 치지 않고 홀몸이었더라면 작가로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최소한 내가 봐온 시장이라면.
어쨌거나 나더러 나가라는 사장에게 원망과 아쉬움의 눈초리를 보냈다.
“지금 그게 사장님께서 하실 소리입니까?”
이리 내가 억울해하면 다독여줄 법도 한데.
사장은 여전히 역정만 내지를 뿐이었다.
“뭐, 못할 게 뭐 있어?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서 네가 한 게 뭐가 있는데? 홍성용이가 다 했었지.”
말이 이쯤 나오면 슬슬 막 가자는 거지.
슬슬 이성의 끈이 얇아져갔다.
어이가 없단 눈빛으로 쳐다봤다.
“뭐라고요?”
“솔직히 네놈이 하는 건 우리 아들놈으로도 충분하니 부장에 앉혔지. 네가 잘났으면 내가 널 부장으로 안 올릴 이유가 뭔데? 홍가놈, 그건 이사를 시켜준다니까 결국 나가고 말이야.”
결국 성용 형님과 계속 날 비교하며 속을 긁는 사장 때문에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사장님께서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이를 곱씹으며 난 사장의 책상 위에 있던 명함 한 장과 펜을 집어 들었다.
갑자기 내가 자신의 명함과 펜을 들자 사장이 물었다.
“야, 뭐해?”
대답 없이 난 펜으로 명함에다가 글자를 적어나갔다.
끼적끼적.
몇 번 끼적이니 완성된 세 글자.
사직서.
그 사직서를 사장에게 내던졌다.
얇아빠진 명함이라 허공에서 풀풀 날렸다.
명함이 사장의 눈앞에 떨어질 쯤에 말했다.
“사직서입니다. 이거 받고 퇴직금이나 주십쇼. 저도 어디 한 번 성용 형님만큼 능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회사 차려서 한 번 봅시다.”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명함에 적힌 ‘사직서’란 글자를 본 사장이 대노했다.
“지랄하고 있네. 너 이따위로 나가면 내가 이 바닥 발 제대로 붙일 수 있게 내버려 둘 줄 알아?”
“어차피 능력도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됐고. 퇴직금이나 제때 넣어주십쇼. 이건 그래도 제가 오랜 기간 일한 푸른숲에 대한 마지막 예의입니다. 퇴직금 안 들어오면 노동청에 신고할 거니 알아서 하십쇼.”
그 말을 남긴 채 난 사장실에서 나갔다.
문손잡이를 잡을 무렵 사장이 벌떡 일어난 소리와 함께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안 멈춰?!”
깔끔하게 무시하고 나간 뒤 문을 거칠게 닫았다.
쾅!
문 앞에 선 나는 욕지거리를 읊조렸다.
“씨발, 내가 이러려고 여기서 이리 오래 일했나. 성용 형님이 가자고 할 때 갈걸.”
어차피 이제 사직서도 냈겠다.
자리나 정리하러 갈 때였다.
“어? 준경 형님?”
“응? 춘복이?”
“아니, 형님. 본명으로 좀 부르지 말라니까요.”
“왜, 난 정감 가는데.”
“거참, 나 같은 작가한테 편집자가 갑인 건 형님밖에 없을 겁니다.”
“인마, 이제 난 갑질 좀 해도 돼. 이제 편집자 아니니까.”
“뭔 소리요?”
“담배나 한 대 피울까?”
* * *
“후우, 아니. 김 사장님은 왜 그런답니까? 형님이 그간 노력하신 게 얼마인데, 성용 형님 나갔으면 당연히 형님을 부장으로 올려줘야지.”
담배 연기를 한 번 내뿜은 춘복이…… 아니, 장백 작가가 말했다.
장백.
내가 일개 편집자로 있을 때 컨택해서 10년 넘게 이 시장의 변화에 적응해 가며 살아남은 무협 작가였다.
그나마 녀석은 내 노력을 알려주니 기뻤다.
하지만 오랜 기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 즐겁게 웃긴 어려웠다.
그저 씁쓸한 미소로 담배나 한 모금 피우고 대답해 줄 뿐.
“그나마 넌 날 알아주니 고맙다.”
담배를 들지 않은 손으로 가볍게 장백 작가의 등을 두드렸다.
거기서 장백 작가는 멋쩍게 웃었다.
“어휴, 당연히 알아 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절 있게 해준 게 형님이신데.”
“네 글은 네가 잘 쓴 거지, 내가 뭘 했다고.”
“맨날 마감 안 치고 술이나 마시러 도망치면 잡아다가 통조림 시켜서 꾸준히 작품 활동하게 해주셨잖습니까? 아마 형님 아니었으면 전 아직도 처녀작 쓰고 있었을걸요?”
“크, 그때 정말 힘들었지. 내가 컨택했으니 책임지고 마감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잡으러 다녔으니까.”
정말 대단했다.
지금 편당 과금인 유료연재 시장에서 제대로 성실연재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필인 작가였으니까.
현 시장 기준으로 치면 한 달에 열 편이나 썼을까?
한 권 뽑아내려면 족히 두세 달은 걸렸으니 지금 시장에 적응한 걸 보면 참으로 대단했다.
더 대단한 건 내가 잡으러 다니는 걸 알면서도 꼭 가는 술집만 간다는 게 더 컸지만 말이다.
덕분에 잘 잡았다.
한 번은 만취해서 쓰러졌다고 장백 작가 동료한테 전화가 와서 아예 출판사로 업고 온 적도 있었으니까.
“후후.”
“뭐가 그리 재밌으십니까?”
“아, 그때 생각나서.”
“그때라뇨?”
난 방금 전 떠올린 장백 작가를 업고서 출판사로 왔을 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녀석이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어휴, 그땐 진짜 생각하면 아직도 악몽입니다. 기분 좋게 술 마시고 일어났더니 출판사인 거 알고 제가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아세요?”
“이놈아, 그러니까 술 좀 줄여.”
나이 서른 넘은 놈을 꾸짖는 게 우스웠지만, 그래도 건강 생각하면 장백 작가는 술을 줄이긴 해야 했다.
자리 한 번 앉으면 두당 소주 다섯 병은 까고 보니.
그리 나무라자 장백 작가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저도 요샌 서른 넘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적당히 마십니다.”
줄였다기에 검지와 중지를 펼쳐 물었다.
“소주 두 병?”
그러자 녀석이 후후, 하고 웃더니 약지까지 더하며 말했다.
“에이, 어떻게 사람이 소주 두 병만 먹고 삽니까? 세 병은 마셔야지.”
“어휴.”
절레절레.
정말 술고래다, 술고래야.
어쨌거나 이 이야기를 하게 되자 장백 작가도 향수에 젖었다.
“그때 생각하니 또 그립네요. 당시에 잘 나가는 작가도 아닌데 형님이 자기 돈으로 순대국에 수육 사주셨잖습니까?”
“그땐 법인카드도 없고, 출판사로 온 작가들이나 직원들 식사비를 사장놈이 두당 오천 원으로 제한했으니 내가 사줄 수밖에 없었지.”
이제 사장님이 아닌 사장놈의 수전노 성향은 정말 혀를 내둘렀다.
어쨌거나 장백 작가는 그걸 이야기하면서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제가 그래서 형님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때 수육 맛은 잊을 수가 없다니까요?”
“크, 그리 이야기하니 오랜만에 수육에 소주 한 잔 땡기네.”
“말 나온 김에 술이나 한잔할까요?”
안 그래도 짜증이 나서 술 한 잔 당기긴 했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아냐, 나중에 하자. 오늘은 회사 짐도 정리하고, 비행기 티켓도 알아보고 해야지.”
“비행기 티켓은 왜요?”
“여기 한 몸 바치느라 내 마누라랑 딸내미 얼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이왕 쉬게 됐으니 다시 일하기 전에 한 번 보고 오게.”
“아, 그럼 다녀오시고 뵙죠.”
오늘은 술 마실 날이 아니란 걸 깨달은 장백 작가가 인사했다.
거기서 난 음흉한 미소와 함께 영업을 했다.
“그래, 그때 인감 챙겨와라.”
“예? 인감은 왜요?”
“혹시나 신작 한 작품 정도 줄 수 있음 주라고.”
작품을 달란 이야기에 장백 작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도 매니지먼트 차리시려고요?”
“이리된 김에 한 번 해보게.”
한데 녀석이 갑자기 오래전 내가 잃어버린 꿈을 언급했다.
“차라리 작가를 하시지 그래요.”
“내가 무슨 작가냐, 을로 산 지가 15년째다.”
계약서상으로 작가는 갑, 회사는 을.
그리고 실질적인 을은 편집자였다.
작가에게도, 직장에서도.
하지만 장백 작가는 전혀 아니라며 손사래 쳤다.
“에이, 뭐 작가는 갑인가요?”
“그래도 최소한 계약서상에는 갑이고, 나처럼 작가나 사장한테 갑질은 안 당하잖냐?”
“뭐, 그렇긴 하네요. 일단 그건 다녀오시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죠.”
“그래, 부담되면 안 해줘도 돼.”
인감 가져오란 건 그냥 해본 말이라고 하자 장백 작가가 말했다.
“사실 전 이준경 작가님 팬이라서 형님 작품이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어쨌거나 형님께서 제 신작이 필요하시다면 하나 드려야죠. 제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
이준경 작가님.
이 과장, 이 편집자보다 내가 본래 듣고 싶었던 이름이다.
그걸 또 녀석이 언급해 주니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다.
“팬은 무슨. 그 시절에 5권 완결 낸 쪽박 작가면 어디서 명함도 못 내밀지.”
“에이, 그래도 전 재밌게 읽었어요. 게다가 편집자 생활하면서 두 권이나 더 쓰셔서 깔끔하게 끝내셨잖습니다. 군대에서 2년 동안 짬짬이 설정집 짜시고, 2권이나 쓴 것도 모자라서 그 정도면 정말 기똥차게 하신 거죠.”
“고맙다, 인마.”
과한 칭찬에 피식 웃으며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껐다.
꾸깃꾸깃.
담배꽁초를 재떨이 위에 버린 뒤 난 장백 작가에게 인사했다.
“이제 그만 간다.”
“예, 다녀오시면 연락주세요.”
“오냐!”
그렇게 난 회사에서 짐을 싼 뒤, 비행기 티켓을 끊고 캐나다로 떠났다.
오랜만에 어여쁜 딸과 아내를 보기 위해서.
그게 이번 내 생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 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