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4
나는 작가다 054화
54화
“아이고, 감사합니다. 최대 주주님.”
회식을 쏜다고 하니 격하게 예의를 차리는 성용 형님.
그에게 난 회식을 언제 할지 물었다.
“흐흐, 언제쯤 갈까요?”
“목요일에 보자. 수요일에 반품 체크도 가능하니 그때 이야기해 주면 되겠네.”
“금요일이 아니라요?”
보통 회식을 하면 금요일에 하고 주말 푹 쉬는 편이 낫지 않나 싶었다.
그런 내 생각을 꿰뚫어 본 성용 형님이 말했다.
“왜? 출판사 직원들 싹 다 술 먹여서 골로 보내게?”
“에이, 제가 뭘 또 골로 보냅니까?”
“아주 그냥 너랑 술 마실 때마다 내가 골로 갔거든?”
“그거야 주량 약한 형님 잘못이죠.”
내 말에 성용 형님이 어이가 없다며 소리쳤다.
“뭐, 인마? 소주 세 병이 약한 거냐?! 네가 인간 같지 않게 센 거거든?!”
“제가 주량이 뭐가 세요. 소주 한 잔 마시면 취하는데.”
“아이고, 소주 한 잔 마시면 취하시는 분이 소주를 너댓 병을 기본으로 까십니까?”
입에 침이나 바르란 듯이 비아냥거렸다.
거기서 난 뻔뻔하게 나갔다.
“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죠. 형님이랑 마시는데 어찌 동생이 취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웃기고 앉았네. 취한 기색 하나도 안 날 정도로 멀쩡했거든, 너?”
“다 그게 형님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으로 버틴 겁니다.”
“으휴, 말이나 못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보일 정도.
거기서 성용 형님은 왜 목요일에 회식을 하자는 건지 이야기했다.
“그냥 직원들 맛난 거나 사줘라, 술은 적당히 마시고. 다들 네 부탁을 들어주느라 바빠서 괜히 숙취로 업무 지장 생기면 곤란하니까.”
내 부탁.
성용 형님이 풀 출판사를 총괄하게 되면서 내부 작가와 작품에 관한 권리가 생겼다.
푸른숲 출판사의 매출이 너무 커지면서 세금 폭탄을 맞게 되자 만든 풀 출판사.
때문에 김두식은 성용 형님이 계약했던 담당 작가들을 전부 풀 출판사로 옮겼다.
지분 50%를 가진 최대 주주인 내 요청이 있어서기도 했다.
내 작품을 이상하게 여긴 양 과장과 다르게 제대로 봐준 성용 형님의 안목이 담긴 작품들만 풀 출판사로 옮겨 달라는.
이미 내가 김두식의 제안을 받아준 대가로 부탁했기에 이 요구는 쉽게 이루어졌다.
그러고 나서 난 풀 출판사의 신규로 계약하는 작품들에 대해 관여했다.
성용 형님에게 단순히 등수가 아닌 작품성 있는 것들만 컨택해 달라고. 작품성이 떨어지는데 등수가 높은 작품들 컨택은 푸른숲 쪽에나 맡기라며.
이 부탁 때문에 성용 형님은 자신과 함께 풀 출판사로 넘어온 직원들을 가르치느라 바빴다.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보고 컨택하는지.
자연스레 그걸 배운 직원들 역시 업무도 모자라 컨택도 단순하게 등수만 보고 하던 게 아니라 작품을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니 하루가 부족하다시피 일하고 있었다.
때문에 숙취로 일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는 걸 피하려던 것이다.
“그럼 더더욱 회식을 금요일에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음 날 주말이니 숙취가 있어도 푹 쉴 수 있게?”
“야, 다음 날 주말이니 약속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고대하던 주말인데 숙취 때문에 하루 날려봐. 그게 얼마나 아까운 시간이겠어?”
정말 자기 사람들은 엄청 챙긴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서 회식 문화가 식사만 하거나 커피만 마시는 쪽으로 바뀌어 가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오직 술만이 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회식은 평일 빡세게 일했으니 주말을 앞두고 유종의 미처럼 주로 금요일 밤에 이루어졌다.
근데 직원들의 개인적인 자유시간을 위해 목요일에 약주만 하잔다.
마치 난 그걸 배려해 주지 못한 사람이 된 기분.
“와, 치사하게 형님만 직원들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고요?”
“뭘 치사하게야. 원래 난 내 사람들 잘 챙겼거든?”
틀린 말은 아니다.
자기 사람들은 잘 챙겼다.
작가건, 부사수건.
“뭐, 그건 인정해 드리죠. 그럼 목요일에 회식해요. 다들 저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 장어나 먹읍시다.”
“오, 장어? 좋지.”
장어란 말에 솔깃하는 성용 형님에게 난 농담을 던졌다.
“좋긴, 뭐가 좋아요. 어차피 쓸 데도 없으면서.”
남자에게 장어하면 당연히 거기에 좋았다.
거기에 대해 언급하자 성용 형님이 짐짓 당황했다.
“내, 내가 왜 쓸 데가 없어?”
“없죠. 제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형님은 결혼하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있어야 돼요.”
성용 형님은 10년 뒤에 결혼을 하고, 몇 년 있다가 아이를 가졌다. 그러면서 더 이상 김두식 밑에서만 있는 걸론 감당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매니지먼트를 따로 차렸다.
그때 내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이미 삶에 찌든 내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녔던 성용 형님과 다르게 안정적인 수익이 더 중요했기에.
장도철과 양경철이 나간 후 부장이 된 성용 형님.
그 밑으로 이진우와 김재민이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풀 출판사를 먹으면서 나가 버렸다.
이 상황에서 부장인 성용 형님이 나간다면 당연히 그 자리는 내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 자리는 연속으로 뒤통수를 맞았던 김두식이 제 아들을 앉힌다고 했지만.
‘성용 형님이 나간 이후 부장 자리를 굳이 공석으로 남겼을 때 눈치채고 따라갔어야 했는데 말이야.’
김두식 횡포에 더 이상 못 있겠다며 성용 형님이 나갈 때 제안했지만, 내 상황이 어떤지 알기에 권유는 딱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가정을 위해 안정적인 봉급쟁이를 택한 나와 반대로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나가기로 했지만, 자신의 선택이 어느 정도 안정성을 포기한 도박이란 점을 감안했기에.
어쨌거나 향후 성용 형님의 15년이 어떤 삶인지 아는 입장으로 결혼하려면 10년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 대해서 성용 형님은 그냥 미래의 일을 지레짐작한다고 여겼다.
“자식이 근데! 자꾸 무당 집안 앞에서 주름 잡을래?”
“흐흐, 한 번 보십쇼. 제가 볼 땐 형님 일하느라 정신 없어서 앞으로 10년은 여자는 꿈도 못 꿀 겁니다.”
“와, 저주하는 거 보소.”
“흐흐, 더 하실 말씀은 있으십니까?”
“아니, 다 끝났어.”
“저 그럼 다시 글 써야 하니 끊겠습니다.”
“알았다, 목요일에 보자.”
“옙!”
그렇게 성용 형님과 통화를 마친 뒤 여느 때와 같이 원고에 집중했다.
***
“이 새끼가 근데 이제 정말 척을 지자는 건가?”
필명 게일을 쓰는 강정호 작가.
그가 자신의 메일을 확인하더니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덧 질풍의 마도사 1, 2권을 출간하고 한 달이 지나서 결과가 정해졌다.
반품, 증쇄, 유지 등의 부수에 대한 결과가.
현재 강정호의 메일로 1, 2권 부수의 결과와 함께 3권은 8천 부를 찍겠단 내용이 와 있었다.
1, 2권을 잘 팔았기에 8천 부를 유지한 걸까?
아니다.
메일에는 찍었던 8천 부 중 절반 이상이 반품 처리되어 있었다.
각 권당 4,200부의 반품.
즉, 3,800부가 팔렸단 소리였다.
3천 부야 자신의 돈으로 찍었지만, 추가 반품이 나온 1,200부는 온전히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약서상으로 약속을 그리 잡았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예전 같았으면 이조한이 직접 전화로 전했을 텐데, 메일만 ?보낸 걸 보곤 화가 난 강정호.
당장 휴대폰을 들어서 이조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야, 이 부장. 너 진짜 나랑 싸우자는 거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게일 작가님?”
친근하게 형님이라고 부르던 예전과 다르게 매우 딱딱하게 대하는 이조한.
거기에 강정호가 흥분했다.
“오냐! 정말 해보자 이거지?”
“뭘 해보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그냥 작가님과 작성한 계약서대로 일을 처리할 뿐입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신 거 보니 메일을 보신 거죠?”
“그래, 봤다!”
“1, 2권 반품에 관한 손해를 메워주셔야겠습니다.”
“시발, 그깟 푼돈 얼마나 한다고. 권당 4천 원씩 해서 내가 찍은 3천 부 떼고, 1,200부치만 내면 되잖아? 그럼 얼마야? 권당 480만 원? 더러워서 내가 주고 만다.”
푼돈이란 강정호의 말에 이조한이 실소를 머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계산입니까, 그게?”
“뭐?”
자신의 계산이 틀렸다는 이조한.
당황하는 강정호에게 반품에 관한 정확한 계산을 알려줬다.
“일단 1,200부는 고스란히 8천 원씩 내셔야 하고, 3천 부는 본인 돈으로 찍으셨으니 인쇄비 1,500원씩 빼면 6,500원씩 내시면 되겠네요. 그리고 반품인 4,200부 싹 다 반품 배송비 천 원씩 더하고요.”
이조한이 계산한 결과를 들은 강정호가 짐짓 당황했다.
“그, 그게 무슨?”
“제가 게일 작가님께서 계산하시기 어려울까 봐 이미 금액도 다 때려놨습니다. 권당 3330만 원씩 주시면 됩니다. 깔끔하네요. 3, 3, 3, 0.”
권당 1080만 원.
자신의 계산보다 한참 많은 금액에 강정호가 차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 3330만 원……?”
“예, 권당. 두 권이니 6660만 원이 될 거고, 앞으로 8권까지 8천 부를 쭉 찍으면 더 손실이 커질 테니 어마어마하군요.”
“뭐? 어째서 계산이 그렇게 돼? 너네가 먹는 건 빼야지?!”
“저희가 먹는 건 상관이 없죠. 반품에 관한 모든 잘못은 작가님이 지시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반품된 책은 전부 작가님 댁으로 보내드릴 거니, 저희가 내야 할 돈 같은 건 한 푼도 없는 셈이죠.”
계약서상으로 자신이 다 물기로 했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입을 꾹 닫았다.
조용해진 강정호에게 이조한이 말했다.
“어차피 푼돈이니 다 물어주실 거죠?”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된 강정호가 부탁을 하나 했다.
“그, 그 돈은 계약서대로 내가 물어내마.”
“당연히 그러셔야죠.”
“대신 다음 권부턴 3,800부만 찍어줘라.”
그럼 3권부터 팔린 부수만큼 찍는다면 추가 제작비용을 낼 필요도 없거니와 물어내야 할 반품 비용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태도가 글렀다.
일단 사과부터 했다면 이조한도 어느 정도 타협을 보려고 했다.
근데 여전히 고자세다.
이조한은 이미 끝난 이야기란 듯이 나왔다.
“저희가 왜요?”
“뭐?”
“저번에 이야기 드렸을 텐데요. 저희는 계약서대로 처리할 거라고요.”
“정말 나랑 더 이상 계약하기 싫단 거지?”
거기서 이조한이 강정호에게 뾰족한 일침을 가했다.
“표절 작가랑은 더 이상 계약해 봐야 저희 손해죠.”
“뭐, 뭐라고?”
표절 작가.
작가에게 있어서 이보다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또 있을까?
하지만 돈을 보고 알면서도 눈 감는 이들이 참 많았다.
너무 많은 작품들로 인해 그 경계선이 모호해진 시장 탓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조한은 어째서 강정호에게 표절 작가라고 말한 건지 이유를 밝혔다.
“지금 대여점주들이 곽근호 작가님의 바람의 마법사들 따라한 티가 너무 난다고 뭐라 하던데요?”
곽근호 작가가 집필한 바람의 마법사.
판타지 삼 대 작가로 퇴마사 이야기의 오혁진, 드래곤 피아의 김영수, 루나의 아이들의 전민화 세 사람을 꼽는다면 대한민국 판타지 장르의 서장을 연 이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현재 대여점 협회 카페에서 강정호가 쓴 질풍의 마도사는 그 곽근호 작가가 집필한 바람의 마법사를 표절한 것처럼 똑같단 이야기들이 꽤 있었다.
그 이야기에 강정호가 말을 더듬으며 소리쳤다.
“누, 누가 바람의 마법사를 따라했단 거야?!”
당황한 강정호에게 이조한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 그냥 소문이 그렇다고요. 어쨌거나 저희는 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8권까지 8천 부를 찍을 거고, 반품에 관한 비용처리는 게일 작가님에게 전부 청구할 거니 그리 아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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