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55
나는 작가다 055화
55화
“너네 그따위로 장사하면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자신에게 엄청난 금액을 요구하는 이조한.
차라리 이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사과했더라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해 줬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협박으로 일관하는 강정호였으니 봐줄 필요가 없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며 이조한이 물었다.
“가만히 안 있으시면요?”
“업계에 너네가 부린 횡포에 대해서 다 이야기하고 다닐 줄 알아라.”
썬더버드에서 자신에게 부당한 대우라도 했단 듯이 떠든다.
누가 봐도 계약서상으로 정당한 대우였는데.
이조한은 맞불작전으로 나갔다.
“저흰 가만히 있을 줄 아십니까? 어디 한 번 게일 작가님의 입김이 센지, 제 입김이 센지 한 번 해볼까요?”
강정호가 썬더버드 출판사와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낸다면 자신 역시 받아칠 뿐.
그러나 여전히 강정호는 정신을 못 차렸다.
“지금 출판사가 작가에게 갑질을 하겠다 이거지?”
“계약서대로 하자는데 그게 어떻게 갑질입니까? 갑질은 평소 누가 했는지 생각이란 걸 좀 해보시죠? 그리고 이미 출판사 떠나려고 장 부장하고 연락한 것도 제가 모를 줄 아십니까?”
푸른숲 출판사 장도철과 연락한 사실이 이조한의 귀에 들어갔다. 그렇게 장도철에게 신신당부했는데, 이조한이 그 사실을 알자 강정호가 짐짓 당황했다.
“그, 그건 네가 저번에 버릇없이 굴어서…….”
어떻게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해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수는 이조한에게 먹잇감만 던져줄 뿐이었다.
이조한은 웃기지도 않다며 반박에 나섰다.
“버릇요? 게일 작가님이 제 아버지라도 되십니까? 그리고 제가 무슨 버릇이 없었습니까? 먼저 대우를 받고 싶으면 그럴 인물이 되셔야지, 먼저 횡포는 잔뜩 부려놓곤 버릇 타령이라니. 어이가 없네요.”
꽤나 자신을 꾸짖듯 이야기하자 강정호는 다시금 큰소리쳤다. 마치 큰소리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이 새끼야, 네가 전화를 껐었잖아?”
“그럼 거기서 더 통화해 봐야 서로 기분밖에 더 상합니까? 아, 실수했네요. 차라리 그때 끝냈으면 이렇게 통화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딴 식으로 나오면 난 다음 권 안 쓰면 돼.”
다음 권 원고가 없다면 연결권을 찍지 못하니 자신이 물어낼 걸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사들이 그런 수작에 당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단순히 계약으로 보자면 언제나 작가보다 위에 있는 게 출판사였으니까.
이조한은 꼼수를 부리려는 강정호에게 잘됐다고 했다.
“그래요? 쓰지 마세요. 더 좋네요.”
“뭐?”
“안 쓰시면 저희도 굳이 팔리지도 않는 책에다가 쓸데없는 돈도 안 들고, 소송으로 가서 8권까지 받아야 할 비용에 대해서 요구하면 완전 공돈이니까요.”
“뭐? 찍지도 않은 책에 대한 비용 처리를 어떻게 해?”
“아, 그런가?”
이조한의 반응에 강정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앞선 1, 2권에 대한 손해배상금이 크긴 했으나 여태까지 벌어들인 수익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액수가 크긴 하나 자존심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미소를 짓고 있던 강정호의 표정은 이어서 나온 말에 확 구겨졌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뭐, 뭐가 상관없다는 거냐?”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금 조항을 잊으셨나 보네요? 제가 읊어드릴까요?”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금 조항.
안 그래도 이조한과 싸울 각오로 전화했기에 미리 계약서를 꺼내뒀다. 거기서 강정호가 방금 언급된 위약금 조항을 찾아봤다.
딱 시야에 조항이 들어올 무렵.
이조한이 옆에서 같이 보고 읽는 것처럼 읊었다.
“갑이 을에게 한 달 내로 아무런 통보 없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을은 갑에게 다섯 배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다섯 배의 손해배상.
꽤나 위약금이 셌다.
하지만 여전히 강정호는 착각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게 낫네. 내가 너네한테 받은 돈만 다섯 배로 뱉으면 되니까.”
아까 들었던 반품에 대한 금액에다가 보장인세로 받은 것만 다섯 배로 물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조한은 위약금의 기준이 다르단 걸 밝혔다.
“게일 작가님께서 한 번도 이 조항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시네요. 다섯 배의 손해배상 청구는 단순 건네준 돈뿐만 아니라 저희가 손해라고 본 금액도 포함이거든요? 그러니 권당 3330만 원으로 벌써 두 권의 손해를 주셨으니 6660만 원의 다섯 배를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3억 3300만 원되겠네요.”
3억 3300만 원.
이 금액은 강정호가 여태까지 벌어서 모아둔 돈의 세 배에 달했다. 심지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금까지 털어도 모자랐다. 더욱이 전세금은 대출을 껴서 구했기에 온전히 자기 돈도 아니었다.
결국 이대로 간다면 자신에게 남는 건 패가망신뿐.
덕분에 강정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
조용해진 강정호에게 이조한이 이죽거렸다.
“방금 전까지 아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분 어디 가셨습니까?”
강정호는 깨달았다.
그 물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란 걸.
하지만 쉽게 인정하는 걸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정말 개미소리마냥 조용하게 읊조렸다.
“……미안하다.”
“예? 뭐라고요? 안 들리는데요?”
아무리 작게 말했다고 한들 수화기를 입에 대서 한 말이다.
뻔히 들렸으면서 이조한은 쉽사리 인정하기 싫어 조용히 사과한 게 괘씸해서 저랬다.
결국 저리 나오니 강정호가 소리를 빽 질렀다.
“미안하다고!”
“그게 미안한 사람 태도입니까?”
“그럼 내가 뭘 할까? 찾아가서 무릎이라도 꿇을까?”
무릎이라도 꿇겠다.
이조한 자신과 썬더버드 출판사에 관해서 강정호가 잘못을 시인했단 소리였다.
처음부터 사과를 했다면 좀 더 좋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뭐, 게일 작가 성격상 이렇게 사과할 정도면 많이 숙인 거긴 하지.’
썩 태도가 마음에 들 정돈 아니었으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니 이조한은 슬슬 적당히 봐줄까 싶었다.
애당초 강정호가 모든 걸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출판사나 편집자로부터 협박이 나왔단 이야기가 돌아봐야 좋을 것도 없었으니까.
대신 목줄은 확실하게 움켜쥐었다.
“어차피 마음이 떠나신 분한테 뭘 하겠습니까? 대신 더 이상 저나 썬더버드에 관해선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십쇼. 만약 그런 이야기가 제 귀에 들어온다면 여태 말씀드린 액수에다가 명예훼손까지 더해질 겁니다.”
“아, 알겠다. 그럼 3권부터는…….”
“그래도 3,800부가 팔리긴 했으니 그만큼은 찍어야죠. 대신 1, 2권에 대한 손해배상은 온전히 받아낼 겁니다.”
“그, 그래야지.”
여전히 6660만 원이라는 거금을 물어내야만 했지만, 그래도 3억 3300만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라도 피했으니 다행이었다.
안도하는 강정호에게 이조한은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일단 이렇게 사장님께 보고드릴 테니 그만 전화 끊겠습니다.”
“알았다.”
뚝!
그렇게 통화를 끝내자 방금까지 빌빌거렸던 강정호가 성질을 냈다.
“빌어먹을 새끼, 내가 다음 작품은 대박쳐서 나한테 이렇게 한 걸 후회하게 해주마.”
바로 태도가 바뀌는 게 영 보기 좋진 않았지만, 표절 작가치고 딱 하나 작가로서의 자존심은 남아 있는 소리였다.
보통 욕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다니는 이들도 많았는데, 굳이 다음 작품을 성공해서 보란 듯이 한 방 먹이겠다는 걸 보니. 그렇다고 해서 인성이 좋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강정호는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케일 작가님.”
전화를 받은 건 다름 아닌 푸른숲 출판사의 장도철이었다.
이조한이 대놓고 경고했다.
마음이 떠났으니 잡진 않겠다. 대신 자신과 썬더버드에 대해 입조심하라.
장도철과 통화한 사실도 알고 있었으니 자신에게 푸른숲 출판사로 가라며 떠민 것과 같았다.
애당초 썬더버드에 남아 있으려면 자신이 양손을 불이 나도록 싹싹 빌어야 할 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긴 싫었다.
때문에 장도철에게 전화한 것이다.
잠시 마음속으로 결정했던 푸른숲 출판사로의 이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전화를 받은 장도철에게 강정호가 말했다.
“장 부장, 저번에…….”
***
“자, 드시죠. 이걸 먹어야 이따가 힘 좀 쓰시죠.”
장도철이 푸른숲 출판사 근처 장어구이 집에서 강정호와 자리를 갖고 한 말이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장어 꼬리를 넘기면서.
“흐흐, 우리 도철이가 조한이녀석보다 훨씬 낫구만. 이렇게 내 몸도 챙겨주고 말이야.”
“에이, 솔직히 짬은 제가 이 부장보다 이 년이나 더 앞서는데 당연히 나아야죠.”
“근데 좀 섭섭해. 나랑 나눈 이야기를 조한이 녀석에게 알려주다니.”
“어쩔 수 없죠. 업체끼리 도의상 강제로 빼올 순 없으니 형님께서 직접 느끼시고 옮겨야 맞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형님께서 이 부장이나 썬더버드보다 제가 낫다 여겨서 오셨잖습니까?”
“그래, 네가 거기보다 훨씬 낫지. 단지 약속을 지키면 말이야.”
지켜야 할 약속을 언급하자 장도철이 능청스럽게 반응했다.
“에헤이, 형님! 제가 차릴 무한 출판사의 간판 작가가 되실 분께서 절 못 믿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믿어, 단지 조한이 녀석한테 당하고 나니 근심이 늘어서 그런 거야. 장 부장이 좀 이해해 줘.”
“다 이해합니다. 제가 형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누굴 이해하겠습니까?”
“여하튼 푸른숲 출판사에서 ‘6천, 14%, 전권 보장’으로 계약해 주는 건 맞지?”
“걱정 붙들어 매십쇼. 제가 무한 출판사를 차리고 나면 신생이라 5천에 12%밖에 보장해 드리지 못하지만, 그 전까지 형님께서 돈 걱정 없으시도록 푸른숲 출판사에선 그 조건으로 계약해 드릴 거니까요. 이미 사장님과도 이야기가 다 끝내놓은 상태입니다.”
그랬다.
장도철은 강정호와 만나기 전날 통화하면서 그와 거래를 했다.
푸른숲 출판사를 통해서 원하는 조건으로 돈을 벌게 해줄 테니, 자신이 나가고 차릴 무한 출판사에 차차기작 계약서를 달라고 했던 것.
어쨌거나 이야기만 잘되면 강정호 입장에선 나쁜 게 없었으니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크! 그래, 너만 믿는다. 술 한잔하자.”
“옙!”
짠!
소주 한 잔을 들이켠 뒤 강정호가 김두식에 대해 물었다.
“근데 김 사장님은 언제 오신다냐?”
“아, 거래처 미팅이 있으셔서 좀 늦는다곤 하셨는데…… 어디 보자, 곧 오실 시간이 다 됐는데…….”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몇 시인지 확인하는 찰나.
장도철의 뒤에서 목소리 하나가 흘러 들어왔다.
“왔다.”
“아, 사장님!”
“오, 이분이 사장님이시구나. 안녕하십니까? 게일 작가라고 합니다.”
갑작스레 나온 김두식을 보고 일순간 몰래 거래를 했던 장도철은 당황했지만, 반대편에 앉아 있던 강정호의 경우 김두식이 방금 전 이야기가 끝난 후 온 걸 봤다.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강정호가 악수를 청하자 김두식이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푸른숲 출판사 사장 김두식입니다.”
인사를 나눈 뒤 김두식이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장 부장에게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이번에 썬더버드랑 진행 중인 질풍의 마도사만 끝나면 다음 작품은 저희 출판사랑 계약하시고 싶으시다고요?”
“예, 여기 도철이가 잘 이야기해 줘서 계약도 좋게 준다고 하니 옮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죠. 게다가 그 작가도 더 이상 푸른숲 출판사 작가가 아니라고 해서 크게 마음먹고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 작가라면 이준경 작가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뭐, 홍성용인가 하는 대리가 자기 담당으로 계약한 작가들 데리고 따로 주머니를 찼다면서요?”
강정호가 장도철에게 내민 조건 중 하나가 신인 주제에 너무 나대는 것 같다며 이준경 작가를 어찌해 달란 내용이었다.
근데 딱 운이 좋게도 이준경 작가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만든 풀 출판사로 홍성용과 함께 옮긴 직후였다.
때문에 장도철은 김두식에게 강정호를 데려오기 위해 그에게 풀 출판사에 관한 소식을 조작하자고 이야기했다.
이미 제이크는 충분히 손익분기점 이상의 매출을 보였던 작품이었으니 김두식 입장에선 그런 돈줄이 온다는 데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신작 질풍의 마도사에 관한 성적은 아직까지 썬더버드 직원들만 아는 대외비였으니 망정이지, 아마 그걸 알았다면 김두식은 장도철이 아무리 꼬드겨도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
어쨌거나 홍성용이 자기 담당 작가들을 데리고 따로 풀 출판사를 차린 것처럼 김두식도 연기했다.
“덕분에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출판사 매출이 확 줄었어요.”
“정말 씁쓸하시겠습니다. 저도 믿던 담당자한테 뒤통수 맞은 게 엄청 속이 쓰린데, 밑에 있던 직원한테 당하셨으니…….”
“뭐, 그래도 크게 괘념치 않고 있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마음껏 펼쳐야죠.”
괜히 자신 때문에 욕먹지 않아도 되는 홍성용이 욕을 먹으니 어느 정도 적당선에서 나쁜 이야기를 커트했다.
그 사정을 모르는 강정호가 김두식에게 이야기하길.
“오, 사장님께선 엄청 대인배시네요.”
겉으론 그리 말했다.
하지만 속으론.
‘한낱 대리뿐만 아니라 믿고 일을 맡겨야 할 부장한테까지 뒤통수를 맞는 걸 보니 호구구만.’
반대로 김두식을 위로하는 강정호를 보곤 장도철은 생각했다.
‘팽 당한 주제에 누가 누굴 위로하는 건지, 참나.’
그때였다.
세 사람이 있는 테이블로 안경을 쓴 덩치 큰 사내가 다가왔다.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일행으로 있던.
“사장님?”
사내를 본 김두식과 장도철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호, 홍 대리?”
그랬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홍성용이었다.
방금 언급했기에 강정호는 누군지 곧장 알아채고선 혀를 찼다.
“쯧! 홍 대리라고 하면 방금 이야기한 사장님 뒤통수친 그 싹수가 노란 직원 아닙니까?”
“예? 그게 무슨…….”
홍성용 입장에선 강정호가 내뱉은 말이니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때 일행 중 한 남성이 끼어들었다.
풀 출판사의 최대 주주이자 2002년에 출간한 작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낸 이준경 작가가.
“아! 형님, 이럴까 봐 제가 푸른숲 출판사 근처 가게는 가지 말자고 말씀드렸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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