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02)
00102 누가 을이냐? =========================================================================
“고마워, 형부.”
신형 구글폰을 받아들고 좋아하던 정혜주가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오빠 동생 하던 아이가 형부라고 부르는 느낌이 사뭇 어색하면서도 신기했다.
“근데 2년 할부 약정하는 게 더 싸지 않아?”
“옛날 얘기야. 기기값은 어차피 똑같아. 차라리 빨리 내고 개별 요금제 쓰는 게 훨 나아. 약정에 묶이는 것도 귀찮구.”
정혜주가 생일선물로 원한 건 신형 구글폰이었던지라, 셋은 구매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기기값만 100만 원이 넘는 고가품이었지만 그에게는 푼돈이었다. 그의 레이드 개인 수익을 월 4,000억으로 가정했을 때, 5초만 기를 모으면 뚝딱 생기는 돈이다.
그래도 정효주는 조금 불만스러워 보였다.
“학생이 그런 비싼 건 뭐에 쓰니?”
“언니는? 학생이라고 구글폰 안 쓰는 게 어딨어?”
“그래도 너무 사치야.”
“언니는 하나뿐인 동생이 된장 명품족인 게 나아, 아니면 얼리어댑터인 게 나아?”
정효주는 선뜻 반박하지 못했다. 정혜주가 거보라는 듯이 실실 웃었다.
“얼리어댑터가 낫지? 나 아날로그 명품은 관심 없어. 백이나 구두 같은 거. 그니까 안심해.”
“……기집애가 입만 살아서.”
확실히 정혜주는 의류나 반지, 액세서리 같은 종류의 명품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크게 관심도 없다. 그러나 전자기기만큼은 사족을 못 썼다. 정효주는 이만 넘어가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서 정재진 부부한테 인사를 올렸다.
“이만 가려고?”
“네. 너무 늦었고, 또 내일 할 일도 많아서요.”
“레이드 때문에 많이 바쁜가 보구나. 하긴 딜러는 다닐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다녀야지.”
“그럼 저희 이만 갈게요.”
그때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신정애가 물었다.
“근데 너희 같이 사는 건 아니지? 왜 같이 가려고 해? 효주는 오랜만에 왔으니 자고 가지.”
둘은 순간적으로 뜨끔했다. 정효주의 반응이 빨랐다.
“엄마도 참. 우리 집 가깝잖아. 내일 바로 레이드 가려면 집에서 자는 게 편해.”
“그래도 아쉽네. 오랜만에 왔으니 자고 가지…….”
서운해 하는 정재진 부부를 뒤로 하고 둘은 집을 나섰다.
“형부, 잘 가. 선물 고마워.”
정혜주가 해맑게 배웅했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 1층을 누르고 문이 닫혔다. 둘은 동시에 한숨을 뱉었다.
“살았다.”
“같이 사는 거 들키면 나 맞아 죽겠지?”
“설마. 허락까지 하셨는데.”
“우리 속도위반하면 큰일나겠…….”
무심코 중얼거리던 유지웅은 손뼉을 딱 쳤다. 제법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글구 보니 우리 피임 한 번도 안 했는데? 어, 어쩌지?”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했어.”
“정말?”
“응. 너한테 그런 거 기대 안 했거든.”
진짜 불공평해. 피임은 항상 여자 몫이지. 라고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는 듣지 못했다.
주차장에 세워놓은 세스토 엘레멘토 주변에 몇 몇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사진까지 찍고 있었다. 둘은 겸연쩍음을 억누르고 차문에 손을 댔다. 구경꾼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언니! 형부! 이거 놓고 갔어!”
그때 주차장까지 쫓아온 정혜주가 외치다 말고 멈칫했다. 유지웅이 차량 문을 막 열고 있었고 정효주도 타려고 하는 참이었다. 셋의 눈이 딱 마주쳤다.
“…….”
“…….”
당황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언니 커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혜주가 먼저 침묵을 깼다.
“딜러라며?”
결국 둘은 집에 가지 못했다. 그 대신 정혜주를 끌고 적당한 근처 카페로 갔다. 커피 세 잔만 시켜놓고 셋은 말이 없었다. 정효주도 난감한 듯이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형부가 프라임 공격대장이었어?”
“……뭐, 그렇게 됐어.”
“근데 왜 말 안 한 거야?”
유지웅은 할 말이 없어서 정효주만 쳐다봤다. 그녀는 가벼운 한숨을 내뱉고 대답했다.
“너무 많은 돈이 갑자기 생기면 주변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걱정돼서 그랬어. 복권 당첨자가 파산하기도 하잖아?”
“그래도 가족한테까지 비밀로 해? 섭섭해, 나.”
“천천히 말하려고 그랬어. 돈에 좀 익숙해지고 나면 그때 가서.”
“근데 내가 알았으니 어떡해?”
“적당히 때 되면 우리가 말할 거야. 그때까지는 당분간 엄마 아빠한테 비밀로 해. 그분들 아시면 친척들까지 다 알게 돼. 그럼 시끄러워져. 대신.”
정효주는 으름장을 놓듯이 노려보고는 덧붙였다.
“용돈 줄게. 한 달에 10만 원. 됐니?”
“언니, 너무해. 맘만 먹으면 한 달에 몇 조 원도 벌 수 있으면서 고작 10만 원?”
“그게 형부 돈이지, 니 돈이니? 그리고 고등학생이 무슨 용돈이 그리 많이 필요해?”
“아앙, 형부. 돈 많이 버시잖아요. 쪼금만, 나 쪼금만 더 주시면 안 돼요?”
“갑자기 웬 존대야? 형부 지금 닭살 돋는 거 안 보여?”
“나 지금 형부랑 얘기하고 있거든?”
벌떡 일어난 정혜주가 쪼르르 달려와서 옆에 앉았다. 팔을 꼭 껴안고 어깨에 뺨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형부. 쪼금만, 쪼금만 더 주시면 안 돼요?”
“안 돼! 들어주지 마!”
“……20만 원이면 될까?”
정혜주는 효주 동생이다. 당연히 그녀를 빼닮았다. 게다가 어리다는 장점이 있다. 같잖게 협박하는 식으로 나왔다면 화가 났겠지만, 부비부비하면서 애교를 부리자 홀라당 넘어갔다. 왜 남자들이 처제처제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정혜주는 대번에 기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와! 형부! 사랑해요!”
돈의 힘이란 정녕 위대하다. 20만 원의 용돈은 처제의 반말을 존대로 바꿔놓는다.
정혜주는 경례를 하듯이 손바닥을 펴서 이마에 대며 씩씩하게 다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형부! 제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저 혼자만 알고 있을게요! 그리고 비밀 유지를 위해서 무엇이든 협조할게요! 아! 혹시라도 입 무거운 아르바이트생 같은 거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바로 달려갈게요!”
“그, 근데 네가 갑자기 존대하니까 이상하다.”
“당연한 걸요! 용돈 주는 형부는 존경받아야 해요! 싫으시면, 예전처럼 해드릴까요?”
“……아니.”
“거봐요. 이게 더 좋죠? 형부, 사랑해요!”
정혜주는 목을 강하게 끌어안고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정효주는 그가 헬렐레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노려봤다.
“너, 사랑과 전쟁 찍을 생각은 관둬.”
“언니는? 뽀뽀잖아, 뽀뽀.”
“형부한테 뽀뽀하는 처제가 어딨니?”
“여기 있는데?”
둘이 닮은 꼴인데 하는 짓은 영 다르다. 비슷한 건 외면뿐 내면은 완전히 상이했다. 정효주가 침착한 현모양처 같다면, 정혜주는 적당히 영악하면서도 밉지 않게끔 조절을 한다고 할까?
“형부!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혜주는 람보르기니 운전석에 대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정효주는 적잖이 지친 표정이었다. 신호등에 걸려 차가 섰다. 유지웅은 그녀의 허벅지를 은근슬쩍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피곤해 보인다?”
“혜주 때문에 그래.”
“뭐 어때서. 귀엽기만 한데.”
“영악하잖아. 지가 언제 너한테 존대했다고,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요자 붙이는 거 봐.”
“난 좋은데? 그리고 우리 형편에 처제한테 월 20 용돈 주는 건 일도 아니잖아.”
비유하자면 한강에서 물 한 바가지 퍼내서 주는 것이다. 퍼냈다는 티도 안 난다. 친동생인데 효주는 그게 왜 싫은 걸까?
“애 버릇 나빠질까봐 그래. 고등학생이 무슨 월 20이야?”
“요즘 학생들 다 그렇데 받는다던데.”
“일주일에 3만 원도 못 받는 애들도 많아. 글구 우리만 주니? 아빠가 주는 용돈도 따로 있잖아. 그럼 대체 한 달 용돈이 얼마야? 내가 막공 다니면서 돈 제법 벌 때도 일부러 걔 용돈은 안 줬는데.”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너 닮아서 야무지잖아. 허튼 짓은 안 하는 애잖아.”
너 닮아서 야무지다는 말에 정효주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윽고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럼 우리 내년 봄에 결혼하는 거야?”
“그러네. 좋은 시절 다 갔다.”
“치. 결혼하면 뭐가 달라져? 그냥 서류 관계만 변하는 것뿐인데?”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변하는 게 있지 않을까? 아무리 지금 신혼부부나 마찬가지인 상태라 해도 말이다.
“선물 뭐 해줄까?”
“선물? 갑자기 왜?”
“그냥. 우리 결혼하는데 뭔가 해주고 싶네. 뭐 갖고 싶은 거 있니?”
정효주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어려워하는 표정. 아무래도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는 다시 채근했다.
“있구나? 말해 봐. 내가 못 사줄 게 뭐 있어?”
“…….”
“너네 집안에 사주는 것도 괜찮아. 나 돈 많은 거 알잖아? 그니까 편하게 말해.”
“……우리, 집 사면 안 돼?”
“집? 지금 집 있는데?”
지금 있는 집도 시세가 수십억 가량 하는 충분히 훌륭한 집이었다. 정원도 크고 지하 차고까지 설비되어 있었다. 깨끗하고 넓어서 대식구가 살아도 충분할 정도였다.
“그런 집 있잖아. 영화 같은 데서나 나오는, 엄청 크고 예쁜 집. 나 어렸을 때부터 그런 집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었거든.”
“궁궐 같은 집?”
정효주가 배시시 웃으며 살짝 끄덕였다. 그런 부탁을 하기가 어지간히 쑥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유지웅은 잠시 생각했다. 지금 사는 집은 수영장이 있는 큰 정원까지 딸린, 부자가 흔히 사는 대저택이다. 하지만 성 같은 집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녀가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충분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능력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집 없을 걸?”
“……안 돼?”
“안 되는 게 어딨어. 그런 집이 없다는 거지.”
유지웅은 그녀의 뺨을 슬쩍 만지면서 덧붙였다.
“새로 하나 짓자.”
서초구와 동작구 사이 한강 이남에는 레이드 능력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 비능력자는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다. 정부가 이주를 강제한 것은 아니지만, 레이드 능력자들이 이곳에 정착하게끔 우대 정책을 해줬기 때문에 그렇게 형성된 동네였다. 물론 모든 능력자가 이곳에 사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인 레이드 능력자들이 사는 동네다 보니 부유하고 깨끗한 동네였다. 부지 선정 이유에는 국회와 가까워서 유사 상황에 빠르게 대비할 수 있다는 추론이 있긴 한데,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유지웅 커플도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둘의 집은 동네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급 주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효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동네 외곽에 매물로 나온 대형 부지를 구매했다. 본래 대학교였는데 재단이 재정 문제 때문에 내놓은 캠퍼스를 구매한 것이다.
부지 가격만 1조 7,692억 원이었다. 그의 현재 현금 자산은 7,115억 원으로, 잔금까지 치르기에는 약 1조 500억 원이 모자랐다. 그렇지만 그는 구매했다.
그가 새 집을 지으려고 어떤 부지를 매입했는지 뒤늦게 안 정효주는 경악을 해서 나무랐다.
“왜 그랬어? 서울 외곽 나가면 땅값 싼 데 많은데, 서울 한복판에 얼마나 큰 집을 지으려고 대학교 부지를 사?”
“이미 계약금 걸어서 안 돼. 지금 계약 해제하면 1,700억 날아가.”
“큰돈 쓸 거면 나한테 미리 의논하라고 했잖아. 이건 너무 심한 사치잖아.”
“네가 그럴까 봐 일부러 이번은 미리 말 안 했어. 이건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어서 한 거니까 반대하지 마. 서울 한복판에 궁궐 같은 집에서 살게 해줄게.”
유지웅은 태연히 말했다.
“어차피 레이드 한두 번 갔다 오면 잔금 다 치르고 새 집 건설비용까지 다 나와. 근데 뭐가 걱정이야?”
건설비용까지 합치면 집 하나를 지으려고 거의 2조 원 가까이를 쓰게 되는 셈이다. 사실 건설비용보다는 땅값이 결정적이었다. 389,228㎡나 되는 땅을 매입했으니.
정효주는 더 반대하지 못했다. 이미 버스는 지나갔고, 또 그의 기준에서 무리한 것도 아니었으니.
“잔금이랑 건설비용 내려면 빨리 레이드 가야겠다. 정공 창설 작업 마무리해야겠네.”
집이란 하루아침에 지어지는 게 아니다. 게다가 면적도 오죽 넓은가. 그때까지는 지금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때는 9월 중순이었다. 드디어 공격대 멤버가 최종 결정되고, 제니스 공격대가 창설되었다.
============================ 작품 후기 ============================
장가 들려면 집 있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