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14)
00114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
“무슨 일이지?”
갑자기 건물 전체가 흔들리면서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사정을 알 순 없지만 비상사태인 것은 분명했다. 지진일까? 아니면 괴수의 습격일까?
“잘 됐다! 이참에 빠져나가자!”
유지웅은 정효주의 손을 잡고 서둘러 뛰었다. 복도에서 몇 몇 이들과 마주치기는 했으나 그들은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것만 봐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에게는 오히려 잘된 셈이다.
“Hurry up! Hurry up!”
“Emergency! Emergency!”
직원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면서 뛰고 있었다. 유지웅 커플도 그 사이에 끼어서 뛰었다.
‘다신 미국 안 와!’
미국은 보호막 능력을 탐낸다. 하지만 그들은 체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를 회유할 수 있을지언정 강제할 순 없다. 또한 레드 몹 원정 레이드는 세계가 주목하는 큰 일. 그래서 안심하고 미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신뢰를 보기 좋게 걷어차 버렸다. 전부 녹서스의 돌 때문이다. 미국이 체면을 중시하는 것은 국익에 해가 되지 않을 때뿐이다. 녹서스의 돌은 그 균형점을 무너뜨리는 저울추였던 것이다.
‘그깟 돌이 뭐라고? 블루 결정체 20개 뭉친 것뿐이잖아? 다른 뭔가가 있는 거야?’
계속 생각을 해봤다. 녹서스의 돌, 단순히 블루 결정체 20개를 합친 것 정도의 물건이라면 미국이 이렇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앞으로 획득할 블루 결정체가 겨우 20개이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녹서스의 돌은 블루 결정체 20개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 된다. 그게 대체 뭘까? 블루 결정체를 단순히 모아놓는다고 해서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서일까? 제작하는데 달성 불가능한 특별한 조건이라도 있는 걸까?
“지웅아! 저기! 저기를 봐!”
건물 벽을 깨부수고 나왔을 때 정효주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자지러질 듯이 외쳤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무언가 눈부신 빛의 기둥이 하늘까지 닿아 있었다. 빛의 기둥 아래에 희미하게 뭔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아쉽게도 그의 시력으로는 식별 불가능했다.
“괴수야! 괴수가 저기 있어!”
“뭐? 레드 몹이라도 나왔어?”
“모르겠어! 어, 엄청나게 커! 레드 몹 같아! 아! 아무래도 광역 공격을 하려나 봐!”
“젠장!”
유지웅은 정효주를 껴안고 그대로 보호막을 시전했다. 단일 보호막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 광역 보호막을 쳤다. 크기는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에너지를 응축해 무척 단단하게 만든 보호막이었다.
그런 보호막을 수십 겹 이상으로 거듭 쳤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적어도 100km 이상은 떨어져 있는데도 어마어마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게 불안했다. 충전 장비의 잔량이 10% 이하를 보이고 있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광역 보호막을 겹겹이 쳤다.
번쩍!
소리 없는 섬광이 터졌다. 둘은 꼭 껴안은 채, 백 겹이 넘는 광역 보호막 안에서 웅크렸다. 광역 보호막이 깨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한 겹, 두 겹, 세 겹, 쉴 새 없이 마구 깨져나가고 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젠장! 안 돼!’
그는 눈을 꼭 감은 채 광역 보호막을 계속 쳤다. 어느덧 충전 장비는 바닥을 드러냈다. 광역 보호막이 30겹도 채 남지 않았다. 그는 육신에 남은 힘까지 광역 보호막 시전에 끌어다 썼다.
쩌정! 쩌저정! 쩌정!
광역 보호막이 계속해서 깨져나갔다. 보호막 중심에 웅크리고 있는 둘에게까지 충격파가 느껴졌다. 마침내 광역 보호막이 열 겹까지 줄어들었을 때, 비로소 충격이 멎었다.
“…….”
“…….”
둘은 그제야 눈을 떴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광역 보호막 바깥의 세상은 모든 것이 증발해 있었다. 그들이 조금 전까지 감금돼 있던, 거대한 연구소 부지도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모르겠어.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유지웅은 가볍게 떨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 몹을 잡을 일은 절대 없을 거란 걸.”
휴스턴 사태가 보고되자 백악관은 비상이 걸렸다. 국가안전회의가 소집되고 대통령이 창백해진 채 나타났다. 각 부서 장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입을 열지 못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각하. 대단히 강력한 괴수가 출현했습니다.”
“피해 상황은?”
“휴스턴이 사라졌습니다. 직경 300여 km에 달하는 공간의 모든 것이 증발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순간 현기증이 났다.
“루딘 국장은 어떻게 됐소? 제니스 캡틴을 설득하는 문제 때문에 휴스턴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다행히 JM 연구소 지하 벙커에 피신해서 무사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니스 캡틴과 메인 탱커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폭발에 휩쓸린 것은 아닐지…….”
“망할!”
대통령이 욕설을 내뱉었지만 누구도 항변하지 못했다. 그들의 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레드 몹이 떼거지로 나오기라도 한 거요?”
“아닙니다. 단 한 개체입니다.”
“겨우 한 개체가 직경 300km에 달하는 공간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각하. 측정 수치가 기계의 한도를 넘어섰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등급의 괴수 출현을 목격한 것입니다.”
“새로운 등급?”
“그렇습니다, 각하. 기존의 레드 몹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한 녀석이었습니다. 다행히 신체가 결정체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기 망정이지, 계속 살아남았다면 미국은 멸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논의 끝에 새로운 괴수한테 ‘블랙 타입’이라는 등급이 매겨졌다. 옐로 몹, 레드 몹에 이어 블랙 몹이라는 강력한 종류가 새로이 등장한 것이다. 다행히 스스로 품은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자폭을 했다고 하니 안심이지만, 또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형식적인 국가안전회의가 끝나고 대통령은 따로 몇 몇 사람만 불렀다. 전원이 극비인 녹서스의 돌 프로젝트에 관련된 인물들이었다.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진짜 논의를 해봅시다. 블랙 몹이라는 개체가 갑자기 출현하게 된 이유가 뭡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큰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녹서스의 돌은 제니스 메인 탱커한테 흡수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휴스턴을 날린 블랙 몹이 녹서스의 돌을 집어삼켰다는 뜻이오?”
“아마 인근 지역에 있던 옐로 몹 한 마리가 녹서스의 돌을 삼켰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순식간에 레드 몹 이상의 강력한 개체로 진화했을 터이고, 그 막대한 에너지를 견디지 못해서 결국 자폭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모은 블루 결정체로 만든 물건이 허공으로 날아갔다는 소리군. 이제 다시는 만들 수도 없는 물건인데 말이야. 그렇지 않소?”
“…….”
회의 인물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녹서스의 돌은 단순히 블루 결정체가 있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CIA 볼튼 국장이 입을 열었다.
“휘버 박사의 유품을 전부 샅샅이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결정체 융합 촉매인 데머샤의 제조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닥치게! 일이 이렇게 꼬인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총질에 미친 CIA가 휘버 박사를 암살했기 때문이 아닌가!”
볼튼 국장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척 보기에도 대통령의 분노는 엄청나 보였다.
“지금 얼마나 일이 꼬였는지 한 번 따져 보겠소? 데머샤를 만든 휘버 박사를 회유한답시고 CIA가 설치다가 안 되니까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암살해버렸지. 그래서 더 이상은 만들 수 없게 된 녹서스의 돌을 연구한답시고 국방과학연구소 머저리들이 방사능 물질과 결합해서 사상 최악의 핵무기로 만들어버렸고! 한국에 싹싹 빌어서 어렵사리 제니스 공격대를 데려와서 칼리타를 처치했더니, 뭐라고 했소? 녹서스의 돌을 그들이 빼돌린 것 같다고? 그래서 어렵사리 그들을 설득해서 검사하도록 허가를 내주었더니, 이제 와서 녹서스의 돌을 다른 옐로 몹이 집어삼켰다? 그래서 휴스턴이 날아가 버리고 녹서스의 돌도 날아가 버렸다?”
“…….”
“대체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요! 이게 한두 푼 들어간 프로젝트인 줄 아시오? 무슨 놈의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소! CIA나 국방과학연구소나 나사나!”
대통령의 호통에 모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한참 후 겨우 분노를 다스린 대통령이 차분히 말했다.
“이 일을 어떡할 거요? 녹서스의 돌은 없어졌고, 우리 착각으로 제니스 캡틴만 화나게 만들었소.”
“그에게 사과하고 화를 풀어야 합니다.”
“당신 같으면 화를 풀겠소?”
“…….”
“녹서스의 돌 반응 검사 허가를 내주면서도 찜찜했소. 그때 거부해야 했어.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를 신체검사하겠다는데 화가 안 나겠소? 분명히 해부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분위기 조성을 했겠지.”
“그,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이름을 걸고 제니스 메인 탱커의 안전을 보장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오. 아무튼 중요한 건 우리는 모든 걸 다 잃고 제니스 캡틴의 신뢰마저 잃었다는 거요. 이제 블루 결정체 수급은 어떻게 할 것이며, 레드 몹 위협에서 국가 안보는 어떻게 지킬 거요?”
대통령의 말대로 상황은 심각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추진한 녹서스의 돌 프로젝트는 백지로 돌아갔고, 엉뚱한 오해로 유지웅의 반감만 사고 말았다. 아니, 휴스턴이 날아갔는데 과연 살아있기는 할까?
“보호막 능력을 생각하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수색을 지시했으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겁니다.”
대통령은 회의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남들은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갖고 있겠지만, 백악관의 주인 자리에 앉아 있어 보니 속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헐리우드 영화가 사람들 인식을 다 버려놓았다.
CIA? 블루 결정체를 융합할 수 있는 촉매를 발명한 과학자를 회유한답시고 자신 있게 나섰다가 일이 틀어지자 ‘국익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암살해 버리는 멍청이들이다. 그래놓고 자기들이 국익을 지켰다며 희희낙락하는, 머릿속에는 그저 총질과 암살 밖에 없는, 협상과 회유 따위를 모르는 자들이다.
문제는 다른 주요부서 인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의 마음속에서 미국은 강한 조국이었고, 언제나 그 가치는 지켜져야 했다. 그런 과잉 애국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대화, 소통, 협상, 회유 등등의 개념을 삭제해버렸다.
그들이 멍청하다는 게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단지 강한 미국에 대한 신념이 지나치게 강해서,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런 자들을 이끌고 세계를 이끌어나가야 하니, 속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휴스턴을 탈출한 유지웅은 안슐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강의 사정을 들은 안슐은 미국의 행보에 분노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네. 프론티어 정신을 내세워서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고, 억압하고, 강탈해왔지.”
그렇게 분개한 안슐은 전용기에 유지웅 커플을 숨겨서 급히 미국을 떴다. 이륙할 때에는 본래 행적지인 영국으로 간다고 신고하고는 도중에 항로를 바꿔 버렸다. 미리 연락을 받은 한국 정부에서 마중을 나왔다. 유지웅 커플은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생환 사실은 당연히 미국에도 알려졌다. 남기철이 직접 찾아와서 미국 대사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유지웅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앞으로 제가 미국과 인연을 맺는 건 미국제 부품이 들어간 물건을 구매할 때밖에는 없을 거예요.”
“예?”
“전 미국과 어떤 대화도 하지 않을 거란 뜻이에요.”
미국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감히 뭐? 정효주를 상대로 신체검사를 하겠다고? 만약 녹서스의 돌이 나오면 생체 실험도 불사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고생고생해서 칼리타를 물리쳐줬더니 그런 배덕으로 은혜를 갚는단 말인가?
일본에 이어 앞으로 절대 가지 말아야 할 나라가 미국으로 결정되었다. 분하게도 미국과 싸울 힘은 없다. 그러나 미국을 거부할 정도의 힘은 있다.
“남 국장님. 앞으로 저 해외 원정 안 갈 거예요. 그냥 우리나라에서만 레이드 할 거예요.”
“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냥 물에 빠진 거 건져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더라고요. 하여튼 전 다시는 미국 안 가요. 그 나라와는 어떤 이야기도 안 할 거예요.”
블랙 몹의 출현으로 비상이 걸린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지웅의 분노를 풀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애간장이 탄 그들은 급기야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며 ‘사죄할 기회를 달라’고 간청까지 해왔다.
이렇게 되자 난처해진 것은 중간에 낀 한국 정부였다. 두 ‘갑국’과 ‘갑인’이 서로 틀어지자 그 사이에 낀 을국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몰랐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는데 받아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노노, 저것들 저래놓고 또 뒤통수 칠 거예요.”
“하지만…….”
“사과? 알았어요. 받아줄게요. 하지만 따로 뭐 줄 필요는 없어요. 안 받을 거니까요. 어차피 죽는 한이 있어도 이제 미국 땅은 안 밟을 건데요, 뭐.”
그건 사과 안 받아준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남기철은 그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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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양키즈.
강아지도 자기 집에서는 한수 먹고 들어간다고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