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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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성전자 전략기획실에서 사람들이 찾아온 그날 밤 이후, 모든 일은 일사천리처럼 이뤄졌다. 변형택이 미처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변형택은 거부할 틈도 없이 그날 밤 급히 짐을 싸서 그들을 따라가야 했다. 초를 다투는 일이라며 그들이 당장 나설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무작정 강요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확실한 숫자를 보증함으로써 변형택의 마음을 움직였다.
“계약금 200억 원에 연봉 30억 원입니다. 원하신다면 계약금은 지금 당장 넣어드릴 수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200억 원이라는 말에 변형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정말로 담성전자에서 나온 게 맞나 하는 희박한 의심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넣어드릴까요?”
계약금을 받는다는 것. 그것은 이미 계약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걸 알고 있다. 돈을 받은 뒤에는 계약을 무를 수가 없게 된다.
아직 자세한 조건을 듣지도 못했다. 200억 원을 선뜻 지급할 정도라면 보통 중대한 계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200억 원이라는 숫자만 눈앞에 아른거렸던 변형택은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넣어주세요. 지금 당장. 어디 한 번 봅시다.”
여자가 빙긋 웃더니,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톡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그녀가 웃는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으시면 한 번 확인해보시겠어요?”
이미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변형택은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1,00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1,00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1,00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1,00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문자 내역에는 은행 입금 안내 통보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변형택은 모바일뱅킹을 들어가서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았다.
「잔액 : 20,000,512,312원」
51만 원이 조금 넘던 잔액은 앞에 20,000이라는 숫자가 추가로 붙어 있었다. 200억 원이 틀림없이 입금된 것이다.
“아, 세금 같은 건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납세 문제도 저희가 따로 알아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계약금 200억 원은 고스란히 변형택 씨 몫입니다.”
여자가 상큼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변형택은 모바일뱅킹의 잔고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액수에, 머릿속이 그저 어지럽기만 했다.
문득 가슴이 쿵쿵거리며,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뜨거운 감각이 가슴 속을 비집고 올라온다.
치유 능력을 사용했을 때와 흡사하지만, 명백히 다른 감정.
바로 환희이자, 희열이었다.
계약금 200억 원 입금을 확인한 변형택은 곧바로 담성전자 전략기획실 팀을 따라 움직였다.
기획실 팀은 마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신중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동 전에 핸드폰은 꺼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치유 능력에 관한 단서를 집에 남겨두신 것 있나요?”
“없습니다. 이제 하루도 안 지났으니까요.”
“좋아요, 그럼 간단한 옷가지 정도만 챙기세요. 변형택 씨는 트라우마가 남을 만한 경험을 한 것 때문에 잠시 머리를 식히러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 겁니다.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변형택은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혹시 누군가가 절 노리기라도 하는 건가요? 아니면…….”
“아직까지 특별한 위험은 없습니다만, 만약을 위한 보안 조치입니다. 우리는 변형택 씨의 존재를 아직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국제공격대연합이 변형택 씨의 존재를 알게 되면 어떤 방해를 해올지 모르니까요.”
타당한 이유라서 변형택은 납득한 듯이 끄덕거렸다.
여자가 다시 설명했다.
“이 나라 곳곳에는 제니스 컴퍼니의 눈과 귀가 제법 널려 있습니다. 우리는 일말의 불안함도 남기고 싶지 않군요.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00억 원이나 받았으니 내가 이해해야죠. 알았어요. 갑시다.”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변형택을 안내했다.
체격 좋은 정장의 남자들이 마치 그를 호위하듯이 감쌌고, 변형택은 대접 받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변형택이 안내받은 곳은 서울 외곽 지역에 위치한 담성그룹 소유의 연수원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시설로 안내를 받았고, 처음 보는 9인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뭐지? 담성그룹 직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들 9인은 성별, 나이, 옷차림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담성그룹 직원이라는 느낌은 얻을 수 없었다.
그들은 변형택을 보고 무언가 알겠다는 듯이 서로 눈을 마주친 채 웃으며 끄덕였고, 그런 태도가 변형택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여기까지 그를 안내한, 기획팀 소속 여자가 설명했다.
“변형택 씨와 같은 날, 그 자리에서 각성한 분들입니다.”
“……아!”
그제야 변형택은 그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달았다. 동시에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자신만이 특별하다는 우월감에 우쭐해 있었는데, 10명 중에 한 사람에 불과했다니…….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치유 능력을 가진 이는 오직 변형택 씨뿐입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예,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두 분은 탱커, 나머지 일곱 분은 딜러입니다. 오직 변형택 씨만 힐러입니다.”
오직 나만 힐러다?
우쭐했던 마음이 가셨던 것은 잠시, 변형택은 다시금 우월한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보니 전 세계에서 힐러는 나뿐이잖아?’
현재까지 레이더 각성자는 프라임 공격대를 포함해서 모두 14명, 그 중 3명이 탱커이고 10명이 딜러다. 힐러는 오직 자신 한 명뿐인 것이다.
말 그대로 희소 자원 아닌가?
“자자, 마지막 레이더 각성자까지 오셨으니 이제 다들 인사들 나누세요.”
“마지막이라고요?”
“네, 국회 피난 사태에서 레이더로 각성자한 사람은 여기 계신 여러분이 전부입니다. 혹시 다른 레이더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서 조사 중이긴 하지만, 아마 추가 레이더 각성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변형택은 여자의 권유에 따라 다른 9인과 머뭇거리면서 인사를 나눴다. 이미 그들은 자기들끼리 통성명을 마친 듯 거리낌이 없는 태도였다.
“변형택입니다.”
“반가워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전 직장이 모두 다 같은 국회 아니었나요? 한솥밥을 먹던 사이에서 다 같이 한 곳으로 이직을 했으니, 뭔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인사를 나누며, 통성명까지 마쳤다.
변형택은 무슨 이들은 계약금으로 얼마를 제시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유일한 힐러인 자신과 동등한 대가를 받지는 않았겠지? 만약 그렇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기획팀 여자가 분위기를 환기하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여러분은 모두 한 팀입니다. 앞으로 이 연수원에서 다 함께 합숙하며, 공격대로서의 기본 수양을 쌓게 될 겁니다. 담성그룹 공격대에 소속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담성그룹 공격대…….
변형택은 그 말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 기업은 담성그룹 아니던가?
제니스 컴퍼니가 막대한 현금 자산과 부동산을 갖고 있긴 하지만, 정재계와 법조계에 걸친 사회적인 영향력은 담성그룹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건 나와 비슷하겠군.’
레이더로 각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담성그룹의 설득을 받아 온 것을 보면, 아마 친담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다. 아니면 반 제니스 정서를 갖고 있던가.
변형택은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숙소는 기본적으로 1인 1실이 제공되었다.
변형택은 호텔 스위트 못지않은 널찍한 공간과 깔끔한 시설, 깨끗한 침대가 마음에 들었다.
“이곳은 일반 연수원이나 직원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연수원을 방문하시는 고급 VIP들께서 묵으실 경우를 대비해서 따로 마련한 특실입니다.”
“그렇군요. 전 또 담성그룹은 일개 연수원들까지도 모두 이런 특실에서 머무르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 뭡니까.”
기획팀 여자는 그 말에 조용한 미소를 짓기만 했다. 변형택은 문득 아직도 그녀의 이름이 뭔지 모른다는 걸 생각했다.
“참, 근데 이름이 뭐죠?”
“유정희입니다. 유 팀장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혹시 유 팀장님이 그럼…….”
“네, 앞으로 제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여러분에 대한 모든 것을 관리하게 될 겁니다. 이제부터 지겹도록 얼굴을 보게 될 거예요. 전담 매니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잘 부탁드려요.”
유정희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손안에 잡히는 그녀의 손의 감촉은 매우 부드러웠다.
악수를 나누고 난 후 변형택은 헛기침을 했다.
“유 팀장님,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다른 분들은 계약금이나 연봉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그게 좀 궁금해서 말입니다. 이런 걸 물어봐도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비밀인가요?”
“아쉽게도 비밀이라서 직접 말씀드리기는 곤란해요. 개별적으로 신신당부를 드렸거든요. 계약 조건은 대동소이 하니 다른 분들의 조건을 확인해서 팀원의 화합이 불편해지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사 하고요.”
직장 동료끼리 연봉을 확인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직장 생활을 제법 한 변형택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정희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조용히 웃었다.
“물론 변형택 씨는 모든 면에서 예외예요. 일단 다른 아홉 분은 모두 조건이 같아요. 하지만 변형택 씨는 특별하죠. 회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고요.”
“그럼…….”
“변형택 씨는 배 이상 좋은 조건입니다. 다만 다른 분들에게 알리지는 말아 주세요. 다들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겠지만 팀의 화목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요?”
변형택은 그제야 마음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알았다는 듯이 끄덕여 보였다.
“걱정 마세요. 저도 직장 생활은 나름 오래 했습니다.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늘 참 많은 일이 있었죠? 편히 쉬시고, 본격적인 계약 체결은 내일 하기로 해요. 마침 내일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 직접 오신답니다.”
“가장 중요한 분이라면?”
“담성 공격대 결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분이시죠. 바로 이형원 부회장님입니다.”
이형원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변형택은 숨이 넘어갈 듯이 놀랐다.
그룹 부회장이자 오너 일가의 후계자이며, 장차 그룹의 주인이 될 그가 직접 온다고?
“부회장님은 담성 공격대 결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계세요. 부회장님께서 쏟으시는 애정과 관심이 어마어마하답니다. 그러니 특별히 긴장하실 것은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 그분을 뵈면 된답니다.”
“그, 그래도 부회장님이 직접…….”
“사실 부회장님은 변형택 씨 때문에 오시는 거예요. 변형택 씨가 얼마나 회사에 중요한 분인지 아시겠어요?”
그날 변형택은 너무 설렌 나머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