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184)
— —
윤기원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왼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오른손은 새끼손가락만 편 채 까딱거리면서 덤벼 보라는 듯이 저러고 있다니.
“뭐해? 어여 들어와, 들어와.”
“……유지웅 씨, 진심입니까?”
“내가 강해 보인다며? 그래서 가르침을 달라며?”
사실이다.
하지만 윤기원은 유지웅이 탱커의 능력까지 지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단순한 원거리 딜러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테면 엄청나게 강한 딜링 능력을 감추고 있다던지.
그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유지웅이 지금까지 레이드를 비롯한 사회적 행보에서 보여 온 끝 모를 자신감, 그리고 입이 떡 벌어지는 성공 가도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새끼손가락만으로 자신을 상대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가 지나친 것 아닌가?
“저는 탱커입니다.”
“알아. 어서 들어와.”
“……알겠습니다.”
장난기가 넘치는 말투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음을 깨달은 윤기원은 마지막으로 호흡을 골랐다.
눈빛을 부딪친 후, 윤기원은 번개처럼 몸을 움직였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는 주먹을 들어 유지웅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았다. 정확히는 얼굴이 아니라 그 옆을 스치게끔 하는 궤도였다. 이렇게 해도 그는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윤기원은 보았다. 유지웅의 입가에 떠오른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다음 순간 유지웅은 오른 새끼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 정확히 자신의 주먹에 갖다 댔다. 그는 당황해서 주먹을 거두려고 했다. 저 연약한 새끼손가락에 무자비한 탱커의 주먹질이 적중한다면 버텨내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최고 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주먹을 거두기에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체중, 돌격 에너지, 탱커의 파워, 그 모든 게 실린 주먹은 유지웅의 새끼손가락 끝 손톱에 정확히 적중했다.
그리고 모든 게 새하얗게 변했다.
“……?”
윤기원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조금 전 자신이 꿈을 꾼 것은 아닌지 헷갈렸다.
“그게 다야?”
왼손으로 뒷짐을 진 유지웅이 실실 웃으며 오른 새끼손가락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 순간 윤기원은 아까 자신이 온몸으로 그의 새끼손가락과 충돌했던 기억이 났다. 동시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유, 유지웅 씨?”
“그걸로 충분한 거야? 전혀 그런 눈빛이 아닌데?”
“다, 다시 가겠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와. 그래야 기절 안 하지.”
윤기원은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절대 자신이 환각을 보거나 속임수가 있는 게 아니었다. 눈앞의 청년은 ‘진짜’였다.
이제 구체적으로 그것을 확인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금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본다! 느낀다!’
그는 일부러 힘을 아꼈다. 아까처럼 전력으로 달려들었다가는 그 반발력에 오히려 자신이 나가 떨어지고, 또 의식을 잃을 수 있으므로.
그는 높이 점프한 후, 유지웅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발길질을 날렸다. 그의 시선은 유지웅의 표정과 새끼손가락의 움직임을 정확히 쫓았다.
유지웅은 가소롭다는 듯이 새끼손가락 끝 손톱을 툭 하고 정강이에 부딪쳤다.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 밀려들었다. 전차포탄에 맞아도 이보다는 덜 아프지 않을까 할 만큼 어마어마한 에너지였다.
그의 온몸이 허공에서 튕겨져 오르며 수십 미터가 넘게 나가 떨어졌다. 그는 낙법을 취할 생각도 못한 채, 날아가는 동안에도 유지웅의 일거수일투족만을 쫓고 있었다.
새끼손가락으로 툭 하고 튕겨낸 뒤에도 유지웅은 유유자적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심지어 그가 발을 딛고 선 잔디밭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윤기원은 저만치 나동그라진 채 멍하니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제야 유지웅이 그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와서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물었다.
“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아니…… 아닙니다. 저의 능력으로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이만큼이나 확인한 것 자체가 이미 윤기원으로서는 자신의 한계 이상이었다.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강하다. 압도적으로. 그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어휘가 없지 않은가.
윤기원은 경외감에 찬 얼굴로 한참이나 올려다보다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황백호 탱커님과 정효주 딜러님도 유지웅 님만큼이나 강합니까?”
“황백호 탱커는 솔직히 말해서 너랑 비슷해. 하지만 우리 효주는…… 너보다 만 배쯤은 강할 거야. 격차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지.”
정효주가 자신보다 만 배쯤 강하다고 했다.
‘유지웅 본인’만큼 강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혹시 유지웅 님과 정효주 님의 차이는…….”
“효주가 날 이기는 것보단, 네가 효주를 이기는 게 차라리 더 현실적일 거야.”
“아아!”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 왔다. 이렇게나 압도적이고 파괴적으로 강한 사람이었다니.
하지만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생긴다.
“지룡이는 그럼 대체 얼마나 강한 겁니까? 그리고 다른 괴수들도…….”
“지룡이는 사실 그렇게 강한 괴수는 아니야. 우리가 일부러 힘든 척 하면서 살살 사냥한 것뿐이지. 마음만 먹으면 1초도 안 걸려서 잡을 수도 있었어.”
“어, 어째서 그런 겁니까?”
“……이유가 있었다.”
엄밀히 말해 나이는 윤기원이 월등히 많다. 하지만 유지웅이 말을 놓고, 그가 존대하는 구도에는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유지웅은 무거운 얼굴로 윤기원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 짙은 고뇌에서, 윤기원은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비밀이 있음을 직감했다. 막막한 무게감이 가슴을 사방에서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가득 메웠다.
“지금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약한 괴수를 사냥하고, 괴수 방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아니야. 앞으로 레이더가 거듭 탄생하면서 인류는 언젠가는 괴수마저 정복하게 될 거야. 하지만 정작 인류를 위협하는 적은 괴수가 아니지.”
“…….”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어떤 것인지, 윤기원은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이미 본인부터가 그 증거물이지 않은가.
“레이더라는 막강한 힘, 그리고 묵혔던 사회적 갈등과 분열…… 괴수보다는 오히려 그런 것들이 인간을 더 몰락으로 밀어 넣게 될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유지웅은 다시 말없이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시선을 섞었다. 어느 순간 유지웅의 눈빛에 짙은 결심이 서린다고 느꼈다.
바로 그 순간 유지웅이 입을 열었고, 그는 정수리에 벼락이 치는 듯한 느낌에 부르르 떨었다.
“난 미래에서 왔다.”
윤기원은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자체가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세월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육중했다.
어떻게 괴수 시대가 열리는지, 어떻게 레이더 사회가 자리 잡히게 되는지, 초기에 힘을 얻은 레이더들이 어떻게 레지스탕스나 반군 세력이 되었는지.
괴수 시대를 평정한 인류가 끝내 반골이 된 레이더 세력과 화합하지 못해 인류가 둘로 갈라져 끝없이 싸우게 되는 운명.
기적적으로 인류는 화합을 이뤄냈지만, 그 동안 겪은 시간적, 인적, 물적 소모가 너무 컸다.
그리고 지구 전체에 닥친 대재앙, 가장 강력했던 괴수 ‘로버’를 막지 못해 세상은 멸망에 치닫고 말았음을…….
“내가 로버, 그 괴수를 막지 않으면 인류, 아니 태양계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제물 삼아 몸을 던져 막으려 했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과거였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래서 난 그 뒤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지.”
유지웅의 눈빛에는 회한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목숨을 내던진 대가로 난 세상과 싸워서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얻었지. 하지만 지금도 생각해. 20여 년 간 인류가 자기들끼리 그런 소모전만 펼치지 않았어도, 로버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게 지금도 너무나 후회되고, 또 아쉽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도 로버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아니, 찾아봤지만 없었어. 아마 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겠지.”
“…….”
“그리고 설령 있다 해도 상관없어. 지금의 나로서는 로버와 충분히 싸워서 이길 수 있으니까. 물론 인류가 어느 정도 희생을 겪기는 하겠지.”
윤기원은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이 용트림 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비로소 유지웅이 조금 전 보인,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의 존재를 이해했다. 유지웅이 어째서 결정체를 독점하며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위대한 시련을 모두 이겨내고 과거로 돌아온 미래의 영웅이니까. 그러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이리라.
동시에 유지웅이 자신이 지닌 힘에 비해 ‘소극적으로’ 사회에 개입하는 이유, 방치하는 이유도 깨달았다.
“유지웅 님은 인류가, 이 사회가 성장통을 겪기를 원하시는 거군요…….”
“거저 주어진 평화가, 미래가, 안락함이,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왜 처음 본 제게 그 모든 비밀을 밝히시는 겁니까?”
“너라면 어디 가서 말하지 않을 거라고 믿으니까. 그리고 사실은…….”
유지웅은 몸을 낮춘 채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머뭇거렸다. 무언가 중요한 말을 속에 품은 사람처럼.
마침내 그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너한테 신세진 걸 이제라도 갚으려는 거야. 물론 너는 기억 못하겠지. 너에게는 겪지 않은 시간축이니까.”
“……!”
“미안해. 더 이상은 묻지 말아 줘. 그냥 다 잊고, 미국으로 망명가서 행복하게 살아. 그거면 너에 대한 내 마음의 빚은 떨칠 수 있을 듯해.”
윤기원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래에서 자신은 유지웅과 무언가 특별한 인연이었나?
동료? 전우? 지인? 친구?
그는 입을 열어 묻고 싶었다. 대체 미래에서 우리는 어떤 인연이었느냐고 외쳐 묻고 싶었다.
하지만 유지웅은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지갑을 열어 카드 한 장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무일푼으로 망명하려면 여러 모로 힘들 거야. 이건 차비로 써.”
“형님…….”
“다신 한국에 들어오지 마. 당신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행복하게 살아. 알겠지?”
유지웅은 눈짓으로 울타리 밖을 가리켰다. 하지만 윤기원은 선뜻 일어나지 못했다. 떨어지지 않는 미련이 발목을 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한숨을 쉰 유지웅은 손목에 찬 팔찌 어느 부분을 눌렀다.
그 순간 저택 전체에 불이 들어오며 비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경비원들의 고함 소리가 터졌다.
유지웅이 외쳤다.
“가라! 이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정신이 번쩍 든 윤기원은 반사적으로 도주했다.
어느 정도 멀어질 무렵 뒤를 돌아본 그는, 팔짱을 낀 채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는 유지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짜 이건 오스카상 감이다. 난 역시 배우를 했어야 했어.”
지그시 바라보던 유지웅은 더 이상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등을 돌렸다.
“미국 가거든 잘 살아, 친구.”
그는 사실 윤기원이 누군지 잘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