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05)
— —
영종도에 도착한 유지웅과 레이크는 일부러 담성공격대 상황실에 알리지 않았다.
둘은 바로 전투에 참가하는 대신, 어떻게 대처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빅브라더! 괴수가 방향을 틀었습니다! 공항 섬을 향해 되돌아가고 있어요!”
“흐음, 어떻게 대처하려나.”
유지웅은 턱을 쓰다듬으며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잔뜩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쥔 채 화면을 들여다보던 레이크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유지웅의 시선이 화면이 아니라 저쪽, 그러니까 괴수가 있는 방향을 직접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 헬기가 로켓탄을 쐈네. 소리와 불꽃으로 괴수의 흥미를 잡아끌겠다는 거군. 괜찮은 선택이야. 시간은 벌 수 있겠지.”
“빅브라더…… 저 거리가 보이시는 겁니까?”
“응? 동생은 저게 안 보여? 시력이 왜 그 모양이야? 원거리 딜러잖아?”
레이크는 입을 쩍 벌렸다.
둘은 지금 2km는 족히 넘는 거리에 있었다. 아무리 괴수의 몸집이 크다 하나, 이 정도 거리면 점으로 보이는 게 정상이다.
“빅브라더는 원거리 딜러 아니었습니까? 탱커도 아닌데 어떻게 이 먼 거리가 보이는 거죠?”
탱커의 시력은 망원경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근접 딜러는 몸놀림은 민첩하고 이동 속도도 빠르지만, 시력만큼은 일반인 수준에 그친다. 원거리 딜러와 힐러는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일반인 신체 그 자체다.
“당연히 원딜이니까 멀리 볼 수 있는 거지. 멀리서 딜하려면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겠어?”
“예? 하, 하지만…….”
뭔가 말이 안 되는 듯한 대답에 레이크는 괜히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우리 빅브라더, 정말 원딜이 맞긴 한 거야?’
레이크는 혼란을 털어내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중국 공격대가 시간을 끄는 사이, 담성 공격대 서브 탱커와 딜러진도 전투에 가세했다.
변형택 힐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전투에 투입할 만한 컨디션이 아닌 모양이다.
‘오늘 담성 공격대 회식이었다고 했지?’
레이크는 변형택 힐러가 술을 많이 먹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전투를 지켜보던 끝에 유지웅이 손을 털고 일어났다.
“돌아가자.”
“예?”
“집에 가자고. 이거 보아하니까 우리가 나설 일은 없겠다. 전투가 너무 쉽네.”
레이크는 조금 아쉬웠다. 실전에 참가해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걸 바라고 전남에서부터 이 먼 길을 날아온 것이 아니던가.
그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 유지웅이 피식 웃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저런 시시한 괴수 상대로 굳이 경험을 쌓을 필요는 없어.”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빅브라더. 그저 몸이 근질근질해서 그럴 뿐입니다.”
“저렇게 사람 잔뜩 있는 팀에서 딜해봤자 그런 경험 실력 향상에는 하나도 도움 안 돼.”
“예, 빅브라더. 명심하겠습니다.”
수직이착륙기 수송기에 다시 올라 탄 유지웅은 국방부에 돌아간다는 통보를 보냈다. 국방부도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영종도를 떠나 다시 전남으로 출발하고 1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의장님, 큰일입니다! 공격대가 전멸했습니다!」
“뭐라고요?”
이때만큼은 유지웅은 황당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체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메인 탱커 장혁과 서브 탱커 마성철은 가까스로 상황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상황실 분위기는 초상집 그 자체였다. 요원들의 안색은 하나같이 굳어 있고, 어느 누구도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구석으로 밀려난 장태준은 우두커니 선 채 초점 잃은 눈으로 대형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에는 정장을 입은 노인과 별을 잔뜩 단 늙은 군인들이 서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크게 충격을 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상황실 요원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서 시비를 걸 듯이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예, 예?”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요! 괴수는 지금 어디 있고, 중국놈들은 어디서 뭐하고 있으며, 우리 동료들은 다 어떻게 됐냐고요!”
상황실 요원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은 상황실에서 제대로 된 통제를 못했기 때문 아닌가. 때문에 장혁의 분노는 상황실 전체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대답하란 말입니다!”
“그, 그게…… 괴수는 지금 공항도시로 진입했고, 중국 레이더들은 자기들 헬기를 타고 서울로 급히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거리 딜러 4명의 사망을 확인했어요.”
원딜 넷이 죽었다.
그렇다는 것은 근딜 두 명과 원딜 한 명만 무사히 탈출했다는 뜻이 된다.
“죽은 이들이 누구누구입니까?”
“원딜 중에서 정수진 딜러 혼자만 살았습니다.”
“…….”
장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처참한 상황이 전개된 것은 황희준 딜러가 블랙캣의 눈을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황희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는 술 때문에 컨디션이 심각하게 안 좋은 상황에서도 회사 지시 때문에 전장에 나서게 되었다.
중간에 컨디션이 심각하게 악화돼서 일시적 후송을 호소했지만, 별 네 개 단 늙은 퇴물 장성이 묵살해버렸다.
만약 장태준이 지휘권자였다면 그는 기꺼이 황희준의 후송을 허락했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먼저 상태가 심각한 것을 알아보고 먼저 후송을 지시했을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최악의 컨디션에서 지시를 따르기 위해 딜을 하다가 결국 실수를 저지른 황희준의 잘못인가?
그의 요청을 묵살하고 총공세를 강행한 참모총장의 잘못인가?
지휘권을 빼앗긴 장태준의 잘못인가?
아니면, 실추된 이미지 쇄신을 노리고 재빠른 전투 종결을 위해 군에 통제권을 기꺼이 넘겨준 회사의 잘못인가?
그때 장혁의 눈에 참모총장의 얼굴이 들어왔다.
안색이 일그러져 있던 참모총장은 슬쩍 등을 돌려 상황실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장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아랫배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포효를 내질렀다.
“야이 버러지같은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
저놈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
잘 풀리던 전투가 엉망으로 꼬여버렸고, 소중한 동료 넷이 한순간에 유명을 달리했다.
회사의 욕심으로 장태준이 지휘권을 빼앗기고 교체 당했지만, 그런 것은 지금 장혁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놈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지시만 내리지 않았어도.
적어도 황희준의 전장 이탈을 허락만 해줬어도.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직 그런 분노와 후회만이 지금 장혁의 머릿속을 온통 점령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요란하고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장혁에게 그 비명은 마치 꿈결처럼 희미하게 들렸다. 순간적으로 임계점을 넘어선 분노에 취한 그의 정신은 철저히 이성을 뭉개고 있었다.
“…….”
다음 순간 그는 정신을 차렸다.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정신이 든 장혁은 저만치 나가떨어진 강석현 참모총장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한쪽 팔이 완전히 뜯겨나간 채 입을 헤 벌린 채 정신을 잃은 채였다. 장혁의 펀치 한 방으로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고, 벽까지 나가떨어진 것이다.
그제야 자신이 한 짓을 깨달은 장혁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상황실 요원들은 그저 입만 벌린 채 소리 없는 신음을 흘렸다.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다른 장성들은 사색이 된 채 그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요? 아, 아무리 화가 났기로서니 어떻게 사람을…….”
그나마 국방부 장관이 더듬거리며 항의했다.
장태준이 재빠르게 앞으로 나서서 중재했다.
“빨리 가서 변형택 힐러 데려오세요! 빨리요!”
“아, 알겠습니다!”
서브 탱커 마성철이 재빨리 이해해서 상황실을 벗어났다.
힐러를 데려오라는 말에 장관 및 장성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화색을 띠었다.
장태준은 장혁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이 눈짓을 보낸 뒤, 국방부 장관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
“변형택 힐러가 떨어져 나간 팔을 순식간에 고쳐줄 겁니다. 힐러의 치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겠죠?”
장관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준은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밀어붙였다.
“우리만 입을 다물면 없었던 일이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둘 밖에 없는 귀중한 탱커 자원입니다. 괜히 소문이 잘못 나서 백신 공격대와 얽히기라도 하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입니다. 그렇지요?”
“그, 그렇지.”
“이형원 부회장님도 조용히 묻히기를 바라실 겁니다. 물론 장관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마지막으로 이형원의 이름까지 언급하자 장관의 표정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장혁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주먹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장관의 표정에 비로소 옅은 냉소가 어렸다.
“자네는 참 운이 좋구만. 순간의 분노를 못 참아서 사람 하나를 병신으로 만들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야.”
“장관님, 그만 하시죠.”
장태준이 차갑게 변한 어조로 말을 잘랐고, 장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냉정히 말하자면 저기 있는 저 친구가 사람 여럿 죽이고 민간인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든 거 아닙니까?”
“뭐, 뭐라? 저 친구?”
“저 친구라고 한 것도 많이 봐드린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병신 새끼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래도 장관님 앞이라서 제가 참는 겁니다. 회사 입장도 있고요.”
“…….”
분노한 장관은 주먹을 부르르 쥐었고, 장태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조소했다.
“전 이제 특전사도 아니고 민간인인데, 육군 참모총장 앞에서 경례 붙이고 그래야 합니까? 그리고 장관님은 지금 저 친구 편을 들 마음이 드십니까? 지금쯤 블랙캣이 민간인 지역에서 어떤 피해를 내고 있을지 모르는데요?”
“참, 블랙캣은 지금 어떻게 됐나?”
그제야 장관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그치듯이 물었다.
장혁의 느닷없는 나동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블랙캣이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요원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운남동에 침입해서 일반 주택 지역을 쓸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미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했고 주민들은 피신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
“운남동은 이미 지옥입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이 상황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장태준은 장관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빨리 연락해서 중국 공격대 헬기 돌리라고 하십시오. 지금이라도 다시 출동해서 괴수를 진압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친구 떨어져 나간 팔짝 치료해줄 시간도 아깝습니다.”
장관은 눈앞이 캄캄했다.
탱커나 힐러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귀중한 딜러를 넷이나 잃고 민간인 피해까지 발생했다. 누군가는 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하필이면 현장 최고책임자가 자신 아닌가.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잘못된 전술 판단으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참모총장이야 그렇다 치지만, 자신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때였다.
“유, 유지웅 의장이 운남동에 나타났습니다! 레이크 딜러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둘이서 괴수를 상대하려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