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14)
— 프리시즌 헬조선편 풍년의 조짐 —
수십 년 동안 오너 일가가 저지른 범죄 행위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혐의 종류는 바로 횡령과 배임이었다.
임원들이 제출한 고발장에 담긴 횡령, 배임 건수만 해도 40만 개 이상이었다.
임원들은 범죄에 저촉되는 사실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챙겼다. 예를 들어 이형원 부회장이 자택 인테리어를 한다고 지출한 2억 5,000만 원을 회사 경비로 처리한 것도 전부 횡령으로 챙겨 넣었다.
비자금 조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차명 계좌도 전부 개별 건수로 세세하게 적어서 고발장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덕분에 담성그룹은 하루아침에 발칵 뒤집혔다.
이형원은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서, 고개를 조아리는 임원들 앞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졌다.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구속 영장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선배,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생각할 게 뭐 있냐? 당연히 구속 영장 쳐야지.”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담성그룹에서 받아먹은 돈이 얼만데…….”
“그래서? 너 목숨을 돈으로 바꿀 수 있냐?”
“그, 그건 아니죠.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재벌의 돈을 받아먹는 비리 검사가 된 것도 애초에 탐욕 때문이었다. 탐욕을 지닌 자는 자기 목숨과 안위를 무엇보다 가장 소중히 여긴다.
“우리가 영장 안 치면? 그리고 그거 소문 쫙 퍼지면? 최형식이가 가만히 놔두겠어? 여당 당사 쳐들어갔듯이 이번에는 우리 대검으로 쳐들어올 거다.”
“역시 치는 게 맞겠죠?”
“영장 기각되면 그때부터는 법원이 알아서 책임질 일이니까. 우리는 얼른 턴 넘기고 빠지자고.”
“그러다가 벌컥 구속이라도 돼버리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지금은 우리부터 사리는 게 먼저다. 이형원 부회장이 최형식이로부터 우리 목숨 보호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아니죠.”
“지금 세상에선 탱커가 제일가는 권력이야, 인마.”
“에이, 그건 아니죠. 누가 탱커 됐다고 최형식이처럼 전부 다 무시하고 사람이나 죽이러 다니겠어요?”
결국 대검은 이형원 오너 일가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이형원 부회장 형제자매와 노모는 물론이고, 전 계열사 부장급 인사들 대부분한테도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오너 일가의 범죄 행각에 손발이 되어 움직인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최형식이 그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일단 닥치고 죄다 영장 쳐.”
“고발장 접수한 임원들은 어떡합니까?”
“아, 그 임원들은 제외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임원들도 비리에 전부 연루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그냥 불구속 수사하면 되잖아. 자기들 피해 올 거 감수하면서까지 범죄 사실 고발한 사람들이니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 없다, 오히려 성실한 수사 협조를 바란다면 구속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이유 갖다 붙이면 되지.”
“아, 그렇군요.”
“그리고 그 임원들 괜히 잡아넣었다가 최형식이가 열 받기라도 하면 어떡해? 최형식이 입장에선 그 임원들이 밖에서 열심히 뛰어다녀주는 걸 원할 텐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검은 전례가 없는 대규모 구속영장 발부를 신청했다.
이제 칼은 법원으로 넘어온 것이다.
영장전담판사는 수북하게 쌓인 구속영장 발부 신청서를 보고 기가 막혔다. 그는 즉시 양대승 대법관을 찾아갔다.
“대법관님, 이거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죄다 기각시켜야지.”
“하,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이만큼이나 살 수 있게 된 게 전부 누구 덕분인데? 바로 담성그룹 오너 일가 덕분 아닌가?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금수지, 그게 어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영장전담판사는 양대승 대법관의 호된 질책에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양대승은 담성그룹이 키워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법부의 핵심 인물로, 담성그룹 장학단의 최우수 현역 장학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법의 권위라는 게 있네. 최형식이 그 테러리스트 하나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쫄아서 휩쓸린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나? 이 나라는 법이 다스리는 법치국가이지 무력이 다스리는 야만국이 아니란 말이야.”
영장전담판사는 양대승 대법관한테 단단히 질책을 받은 채 돌아왔다.
그는 밤새도록 영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그는 답답한 나머지 얼마 전에 법복을 벗고 개업한 동기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털어놓기도 전에 동기 변호사가 대놓고 꾸짖듯이 말했다.
「너 아직도 영장 승인 안 때렸냐?」
“무슨 말이야?”
「설마 지금 기각하려고 각 잡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야, 이거 대법관님께서 직접 나서서 처리하라고 하셨다. 이거 영장 허가 내주면 나는 대한민국에서 개업 못해. 어디 지방도시 지원 같은 데 발령 나서 평생 교통위반 범칙금이나 때리면서 살아야 할 걸?”
「이 새끼가 법원에 처박혀서 세월아 네월아 신선놀음만 해서 현실감각이 동 떨어져 있네. 이러니 국민들이 판사들 판결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이 나오는 거지.」
“무슨 말을 그딴 식으로 하냐?”
「아우, 답답해. 잘 들어. 너 지금 그거 한 장이라도 기각 때리는 순간 바로 최형식이가 죽창 들고 네 목 따러 간다.」
친구가 목소리를 낮춰 협박처럼 말하자 영장 판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목만 따고 끝나는 줄 알아? 네 가족들 목까지 다 따버려서 씨를 말려 버릴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까지는 안 건드린다는 거지.」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왜 날 죽이고, 내 가족들까지 죽인다는 건데?”
「최형식이 사고방식은 말이야, 사기꾼이 사기 쳐서 번 돈으로 가족을 편히 부양했으면 그 가족들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식이라고. 저번에 청문회장에서 담성그룹 임원 목 따고, 바로 그 가족들까지 찾아가서 죽여 버린 거 몰라?」
“몰랐어. 그때 일이 바빠서 미처 볼 시간이…….”
「명심해. 한 장이라도 기각하면 너와 네 가족은 그대로 죽은 목숨이야. 검찰은 다시 영장 신청할 거고, 승인이 날 때까지 현실감각 없는 영장 판사만 죽어나가는 거지.」
“…….”
「검찰이 왜 주저 없이 바로 영장 친 줄 알아? 자기들 이마에 죽창 박히는 게 싫어서야. 칼을 법원으로 떠넘긴 거지. 법원에서 죽창 대신 맞아가면서 시간 끌어주면 검찰 입장에서는 쾌재 부르고 좋겠네.」
친구의 열변을 들으니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술 한 잔 산다는 말로 급히 전화를 끊은 판사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영장 신청서에 눈길을 돌렸다.
「속보! 법원, 장고 끝에 영장 전부 승인!」
「구속 영장 효력 발휘!」
「포승줄에 묶인 채 호송되는 담성그룹 오너 일가!」
새벽부터 충격적인 뉴스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이형원 부회장의 노모 및 형제자매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구속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리에 연루된, 60개가 넘는 전 계열사 임직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진풍경까지 낳았다.
―미쳤다, 미쳤어.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지? 지금 이거 영화나 꿈을 꾸고 있는 거 아니지?
―오너 일가만 싹 잡아들인 게 아님. 전 계열사에서 부장급 이상은 지금 탈탈 털리고 있다고 함.
―구속된 임직원 숫자만 6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거의 그룹 전체가 마비되는 거 아닌가?
―그나마 검찰이 최소한의 실무 경영은 하라고 한두 명씩 혐의 적은 임원들 위주로 남겨줬네. 저만큼이라도 안 남겼으면 담성그룹 벌써 부도났을 듯.
―하루 만에 영장이 모두 통과될 줄은 몰랐다. 담성그룹이 사법부에 뿌린 돈이 얼마인데, 적어도 한두 번 정도는 영장이 반려될 줄 알았는데.
―지금 가장 어리둥절한 건 검찰일 걸. 법원에서 이렇게 쉽게 통과시켜줄 거라고 생각도 안했을 테니까. 그냥 최형식 죽창만 일단 피하고 보자는 마음이었을 테니.
―다른 재벌들도 지금 바짝 얼어붙어 있겠네. 재계 맏이가 저렇게 줄줄이 털리고 있으니.
―개썅 마이웨이 사법부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정말 예상도 못했다. 담성그룹 법무팀 주제에 모기업에 칼을 들이대다니 말이야.
영장이 허가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양대승 대법관은 불같이 화가 나서 달려왔다.
“너 미쳤어! 내가 분명히 지시했을 텐데! 어쩌자고 영장을 발부해준 거야! 네가 이렇게 하고도 대한민국에서 고개 들고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아?”
“대법관님, 일단 들 고개가 남아있어야 고개를 들고 살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뭐, 뭐라고?”
“저도 세상 보는 눈 있고 듣는 귀 있습니다. 제가 영장 기각시켰으면요? 아마 최형식이가 당장 찾아와서 제 멱부터 땄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제 가족들도 차례차례 죽였을 거고요.”
양대승은 눈썹을 부르르 떨기만 할 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일단 저와 제 가족 목숨은 챙겨야지요. 제가 재벌 회장을 위해 장렬하게 희생하려고 그렇게 빡세게 공부해서 판사 된 거 아닙니다. 저와 제 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힘들게 공부해서 판사 된 거라고요.”
“너, 이놈…….”
“죄송합니다. 지방으로 발령 내시려면 발령 내십시오. 저도 지금은 차라리 서울 떠나 있는 게 좋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울 법관은 도저히 못해먹겠습니다.”
한편, 영장이 한 번에 통과되자 검찰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허둥지둥 거렸다.
“이게 말이 돼? 한 방에 다 통과됐다고? 기각 하나 없이?”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선배님.”
“하, 법원은 대체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인 거야?”
“법원에서도 우리 보고 똑같이 그런 식으로 욕했다고 하던데요?”
“아니, 그래도 상도가 있지. 우리가 총대 매고 수백 장 날렸으면 적어도 절반 정도는 걷어줘야 하는 게 예의 아니야?”
오너 일가와 임직원을 포함해서 600명이 넘는 인원이 한 방에 구속된 덕분에, 검찰과 경찰은 갑자기 쏟아진 업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당장 구속된 이들을 배분할 구치소 공간을 확보하는 것부터가 큰 문제였다. 구치소에서도 크게 일을 터트린 검찰과 법원을 향해 잔뜩 욕을 해대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다.
“이거, 어느 선까지 조사해야 하나?”
당장 검사장 및 휘하 검사들을 소집한 검찰총장은 날밤을 세워가며 앞으로의 향방을 논의했다.
“여기 고발장에 적힌 범죄 혐의들, 이거 1/10만 조사하려고 해도 한 세월 다 간다. 지금 신참 검사가 검찰총장 달 때쯤 되어야 실체 파악이 이뤄질 수도 있어.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끊어야 해.”
“그것보다 이거 죄다 유죄로 인정나면 추징금에 징역형에…… 이형원 일가는 파산 신청하고 담성그룹은 회사 팔아서 추징금 내야 할 겁니다.”
그렇게 쑥덕이고 있을 때, 부장 검사 한 명이 파문을 떨어뜨렸다.
“그냥 원칙대로 가죠, 총장님.”
“뭐야? 아니, 어떻게 그런…….”
“안 그러면 여기 있는 우리 전부 다 최형식이 그놈한테 목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