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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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관리통제법안을 정말 통과시켜야 하나?’
백춘호 원내대표는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생각을 거듭했다.
이미 당내에서 결정이 난 사항이고 법안 통과가 기정사실이 된 상태지만, 유지웅의 말을 들으니 왠지 통과시켜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정말 그 법안이 유지웅이 나라를 뒤엎는 명분이 되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이 든 것이다.
유지웅이 힘이 없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 최형식 그 이상으로 분탕질을 할 만한 힘이 있으니, 그저 망상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가정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 된 법안을 뒤집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아무리 원내대표라 하나 여기까지 추진된 일을 독단으로 초기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레이더 통제 시스템 구축은 지금 당장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이었다.
법안이 통과되어야 합법적인 활동을 하는 다른 레이더들에게 공공을 위한 방위 임무를 어느 정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징병제와 비슷한 효력을 보게 되는 것이다.
“법안 통과는 그렇다 치고, 안 그래도 제가 진작부터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떤 것인지요?”
백춘호 의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지웅이 어떤 말을 꺼낼지 벌써부터 겁이 났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이번에 군납 비리 말입니다.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고 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상황과 명분이 아주 좋습니다. 청와대 인사들도 비리에 깊이 얽혀 있겠지만, 국회의 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여당이 사라진 지금 국회는 야당의 뜻으로만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궐 선거가 끝난다 해도 지금의 구도가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형식은 친일파 계보를 통해 탄생한 지금의 여당을 궤멸시켜버렸다. 덕분에 야당은 근대 역사상 최초로 매우 강력한 국정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백춘호는 속으로 최형식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갖고 있었다.
극단적인 방법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대대적인 개혁을 꾀할 수 있는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는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최형식 같은 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는 법안을 준비하는 것도 모순이지만…….’
백춘호는 속으로 씁쓸한 혼란을 품으며 말을 이었다.
“대대적인 군 비리 수사를 통해서 완전히 탈탈 털어버릴 계획입니다. 물론 군납 비리 수사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하는 김에 군 개혁도 병행할 셈입니다.”
“군 개혁이요?”
“예, 기왕 큰 수술을 하는 김에 체질 개선도 묶어서 처리하면 잡음이 덜 나올 테니까요. 앞으로 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오기 힘들 겁니다. 할 수 있을 때 후딱 해치워야 합니다.”
유지웅은 묘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주시했다. 백춘호는 자신이 뭔가 잘못 말을 했나 싶어 괜히 민망해졌다.
“왜,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생각보다 괜찮으신 분인 거 같아서요. 역시 토착왜구당하고는 달리 야당에는 올바른 정치관을 가진 분이 어느 정도 있군요.”
듣기 썩 좋은 말은 아니지만 백춘호는 칭찬으로 듣기로 했다.
“군 개혁이라…… 그럼 하는 김에 이것도 하는 게 어떨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조언입니다.”
“말씀하십시오. 귀담아 듣겠습니다.”
“별 거 아니고, 징병제 폐지하고 모병제로 가시죠. 사병 수도 줄이고 정예병 위주로 편성하고요.”
“예?”
파격적인 말에 백춘호는 순간 표정이 얼었다. 수행원들도 마찬가지로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아니, 군 체질 개혁을 꾀한다고는 했지만, 느닷없이 징병제를 폐지하라니.
정작 말을 꺼낸 유지웅은 얼어붙은 반응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국정을 이끌어나가는 분들이 이렇게 계산이 느려서야 어디 되겠어요?”
“징병제 폐지는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아니오, 징병제 폐지는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합니다. 하루가 늦어질 때마다 그만큼 국가적인 손해가 중첩될 뿐이에요.”
“하지만 군사력을 포기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아이고, 답답하시네. 누가 군사력을 아예 포기하래요? 징병제를 폐지하고 소수정예제로 가라고 했죠. 지금 이 나라에 60만 육군이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해요? 그 60만 육군 가지고 대체 누구랑 싸울 건데요? 이미 평화 협정 맺은 북한이요? 아니면 물 건너 일본?”
백춘호는 당장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아주 반박을 못할 것은 없는데, 유지웅의 서슬 퍼런 박력에 기세가 짓눌린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 국가 간의 싸움이 사실상 없어질 것으로 보고, 이미 대인간 전투전력을 극단적으로 축소하는 방침으로 군 개편 가닥을 잡았습니다. 물론 장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지만, 자기 밥그릇 때문에 군 축소를 반대하는 이기주의자들의 주장은 사뿐히 밟고 넘어가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틀린 말은 아닌지라 백춘호는 더욱 할 말이 없었다.
유지웅은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도입이나 생산하려고 하는 전투기나 해군 함정, 전차 같은 것들 있죠? 위약금 물더라도 죄다 취소하세요. 쓸모없는 고철덩어리가 될 테니까요. 우리의 잠재적인 적은 더 이상 북한, 일본, 러시아, 중국이 아닙니다. 바로 괴수와 반사회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레이더들이 적입니다. 미국은 이미 그 사실을 인지하고 대비하고 있단 말입니다!”
“…….”
“장갑수송차나 수송기, 헬기 같은 것은 꾸준히 도입하세요. 그것들은 괴수와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되니까요. 어떤 무기가 괴수와 싸우는데 도움이 되고, 어떤 무기가 인간을 죽이는 데만 쓰이는지를 생각해서, 철저히 구분해서 도입해야 합니다. 군 개편은 그런 식으로 가야 해요.”
상당히 전문적인 시각을 기반한 설명에, 수행원들은 낮은 목소리로 저마다 감탄했다.
느닷없이 징병제를 폐지하라고 해서 당황했는데, 그저 이쪽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카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끼리의 전투? 이제 그런 거 못 합니다. 괴수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적어도 인간은 서로에게 총을 겨눌 여유를 찾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적대국 영토에 미사일을 쏘아서 해당 지역의 괴수들이 날뛰게 하는 전략이 발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그럼 똑같이 반격하면 되죠.”
“…….”
“예를 들어서 일본이 우리가 거슬려서 미사일을 펑펑 쏘아서 우리나라 영토에 혼란을 줄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 일본도 그걸 압니다. 일종의 상호 비대칭 전력 구도가 되는 셈이죠.”
명백히 맞는 말인지라 백춘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자신의 발상이 너무 안일했음을 자책했다.
“타국에 대한 방위력은,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타국 영토까지 날릴 수 있는 미사일 정도면 됩니다. 핵을 실을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육군은 백병전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유지하면 됩니다. 사실 국군이 가장 신경 써서 대비해야 하는 것은 타국 전투기와의 싸움이 아니라, 괴수와의 싸움과 레이더 테러리스트와의 싸움이 될 겁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씀이십니다. 지금 아무도 그 부분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군요. 부끄럽습니다.”
“그러니 다음 달 안으로 징병제를 전면 폐지하고, 병사들도 집으로 돌려보내세요. 하루가 아깝습니다. 지금의 군 시스템을 하루씩 더 유지할 때마다 천문학적인 금액과 미래 가치를 손해보고 있는 겁니다. 어이구, 진짜 이게 돈이 다 얼마야.”
국방부 예산이라고 해봤자 수십 조 남짓한 수준인데, 자산 가치 수천조 원이 넘는 세계 최고 부자가 그렇게 엄살을 피우고 있으니 왠지 웃겼다.
“그리고 하는 김에 병사들 시간당 최저임금은 맞춰 주세요. 오늘 이 순간부터 바로 카운트 하도록 소급 적용해서요.”
“그, 그것은…….”
“국방의 의무가 총 들고 국가를 지키라는 것이지, 무조건 무보수로 국가를 지키라는 내용은 아닐 거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무슨 병사들 총알 하나도 나눠줄 수 없는 기아국도 아니고.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그것만큼 양아치짓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징병제 폐지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가 겨우 진정을 되찾을 수 있었는데, 그 이상의 폭탄이 기다렸다는 듯이 후속타로 날아든 것이다.
“다 필요 없고 그냥 최저임금만이라도 맞춰줍시다.”
“하, 하지만 예산이…….”
“알아요. 이런 요구만 나오면 그놈의 헌법재판소랑 대법원은 늘 하는 소리가 ‘국가는 가난하다.’, ‘국가는 돈이 없다.’ 주구장창 이런 논리였죠?”
유지웅은 한숨을 쉬더니, 서랍을 열어 두툼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서 내용물을 늘어놓았다.
“자, 계약서입니다. 이런 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 제가 미리 마련해둔 것 중 하나죠.”
백춘호는 분명히 보았다. 저런 서류 봉투가 수십 개도 넘게 서랍에 들어있던 것을.
“징병제를 폐지할 때까지는 제가 현재 징병제로 복무 중인 사병들에게 최저임금만큼 친 월급을, 국가를 대신해서 100% 대신 부담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입니다. 들고 가서 충분히 검토하시고 대통령 사인 받아서 가져와 주세요.”
“혹시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백춘호는 조심스럽게 계약서를 집어 들고 내용을 살피다가 어느 순간 눈을 부릅떴다. 그는 경악이 담긴 눈으로 유지웅을 돌아봤다.
“병사 개인 월급이 어째서 360만 원이나 되는 겁니까!”
“지금 최저임금이 시간당 5,000원이고 하루가 24시간이니까 하루 일당이 120,000원, 한 달을 30일로 치면 360만 원이 맞잖아요. 계산이 잘못 됐나요?”
“아니, 이런 계산은 도저히…….”
“병사들이 잠자는 시간은 왜 뺍니까? 집에 가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명령에 따를 수 있도록 하루 24시간을 병영에서 통제된 일과를 보내는데요. 하루 노동 시간을 24시간으로 쳐야 하는 게 맞습니다.”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애석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원래는 야간 추가 수당까지 계산해야 하지만 현 정부와 국회의 입장을 생각해서 그냥 최저 임금으로만 계산했습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
“대충 한 달에 2조 3,400억 원의 제 사비가 사병들 월급으로 깨지겠군요. 제 주머니 털리는 거 보고 싶지 않으시면 징병제 빨리 폐지해주셔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전 즉시, 최소한 이번 달 안에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춘호의 눈동자는 여전히 빼곡한 계약 내용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즉시 모병제를 도입하려면 혼란이 있을 테니, 제가 따로 30조 원 정도 국가에 기부하겠습니다. 어때요, 전환 비용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겠죠?”
“……무리입니다. 이건 도저히 하루아침에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취지와 필요성에는 저도 적극 공감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어떻게 국가가 제게 이럴 수 있습니까!”
갑자기 유지웅이 느닷없이 주먹을 쾅 하고 내리쳤다.
덕분에 단단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거실 테이블이 산산조각 나서 부서지며, 서랍에 정리되어 있던 수십 종류의 서류 봉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백춘호와 수행원들은 원초적인 공포에 짓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개혁안을 제안했고, 사병들의 월급까지 대납하겠다고 했으며, 개혁에 필요한 경비도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무조건 안 된다, 안 된다고만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나라를 위해 마음을 쓰는 국민을 이렇게 혹독하게 대할 수 있는 겁니까?”
지금 분위기만 보면 혹독하게 대하는 쪽과 당하는 쪽이 서로 바뀐 거 같은데. 하지만 절대로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는 없다.
유지웅은 작게 중얼거렸다.
“아, 열 받는데 나도 그냥 최형식한테 확 붙어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