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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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제철을 홀라당 날려먹은 사촌동생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실 홀라당 날려먹었다고 볼 수도 없다.
지분 51%를 결정체 컴퍼니에 넘긴 것이니. 물론 보스코제철도 함께였다.
어차피 결정체 철강강화제가 나왔을 때부터 이미 제철산업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었다. 제니스 컴퍼니로의 완전한 귀속.
철강강화제를 넣은 철강제품과 그렇지 않은 기존 철강 제품의 품질이 수십 배 이상 차이 나니, 산업경쟁력을 위해서도 철강강화제를 공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촌동생 일족은 미래제철 내부의 전산작업, 구내식당, 비품 조달, 사내 복지 서비스 제공 등 알짜배기 사업에서 완전히 축출된 지 오래였다.
사촌동생인 정원석 회장 월급쟁이 사장으로 전락, 고작 연봉 1억 2,000만 원을 받아가며 회사를 다닌다. 수십 억의 연봉을 챙기던 시절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액수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그 처지가 되게 생겼다.
“회장님, 결정체 배터리를 공급받지 못하면 어차피 자동차산업은 접어야 합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5년 이내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완전히 퇴출시키는 법안이 의회에서 진지하게 검토 중입니다.”
“…….”
“결정체 전기자동차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 미래자동차그룹만의 운명이 아닙니다. 다른 자동차업체들도 같은 길을 걸을 겁니다.”
오은현 전략본부장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정현수 회장을 설득했다.
“어디 자동차뿐이겠습니까? 철강은 이미 끝났고,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GC-3(발열방지 결정체 신소재) 없이는 돌아가질 않습니다. 그 외 다른 산업들도 차근차근 결정체에 종속될 겁니다. 우리 그룹만의 일이 아닙니다.”
오은현의 간곡한 설득에 힘입어, 다른 임원들도 저마다 간절히 말했다.
“회장님,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이것만이 우리 그룹이 살아남을 길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자동차 회사에 그룹 전체를 매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직 제니스 컴퍼니는 배터리 공급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겁니다. 그나마 정지운 사장이 혈육의 정이 깊습니다.”
“회장님.”
“회장님.”
정현수 회장은 조용히 손을 들었고, 임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찬찬히 임원들을 둘러보던 정현수 회장은 십 년은 늙은 듯한 안색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선친께 물려받은 그룹을 어떻게 해서 이만큼이나 키웠는데, 이 상황을 모르겠는가. 아무리 늙었다기로서니 그 정도로 세상 변하는 걸 인지 못할 정도로 아둔하진 않네. 설마 이 나이에 벌써 치매가 왔을라고?”
“…….”
임원들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정현수의 음성에서는 세월을 원망하는 듯한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것이 꼭 미래의 자신들 모습 같아, 정현수의 감정에 저도 모르게 이입되고 만다.
“지운이 그놈 말대로야. 머리는 아는데, 가슴이 용납이 안 돼.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네. 머리가 가슴을 설득하고 진정시킬 시간이…….”
“……회장님.”
“30%만 넘겨주는 게 어디인가. 완성차 제조업체가 일개 배터리 제조회사의 자회사로 전락하는 게 한탄스럽지만…… 그 배터리 회사가 전 세계를 호령할 기업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겠지.”
승낙이 떨어졌지만 임원들의 안색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그 승낙에 묻어나는 깊은 체념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운이를 불러…… 아니, 이제는 어엿한 제니스 배터리 사장이니 이쪽에서 오라가라 할 수 없지. 이보게, 박 사장.”
“예, 회장님.”
박치정 사장이 얼른 나서서 대답했다.
정현수는 고개를 숙인 그의 정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실내광을 반짝거리며 반사하는 맨들맨들한 피부로 덮여 있었을 두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두껍고 풍성하며, 부드러운 검정 모발로 가득히 덮혀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어…….’
한때 반사광으로 찬란했던 박치정의 머리를 차지한 울창한 검은 삼림.
그것은 마치 자신에게 ‘이제 결정체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왜 너만 뒤쳐져 있냐!’라고 외치는 듯이 느껴져, 정현수는 쓸쓸한 기분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박 사장, 자네가 가서 지운이를 만나주게. 우리가 백기…… 들었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만 쉬고 싶군. 다들 돌아가서 일들 보게. 앞으로 우리 그룹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야.”
정현수가 손을 내젓자 임원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는 회장실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임원들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씁쓸함이 한데 섞여 있었다.
“회장님이 저리 약한 모습을 보이시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당신 손으로 이만큼이나 키운 그룹이 다른 기업 자회사로 편입되게 생겼는데, 얼마나 서글프시겠나.”
니트로와 휘버는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로 최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내리고, 전남 제니스 타운으로 향한 둘은 도착하자마자 최윤이 있는 연구소를 찾았다.
“최윤 박사님!”
“휘버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잔뜩 상기된 둘은 마치 십여 년 만에 만난 오랜 지기처럼 반가워하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니트로는 한쪽에 비켜서서 빤히 쳐다보며 괜히 툭툭 건드리는 소외감을 외면했다.
“아, 니트로 교수님도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그제야 니트로를 알아본 최윤이 반갑게 인사했고, 니트로는 애써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반가워요.”
“만사를 제쳐두고 두 분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최윤은 둘에게 연구소 구석구석을 안내해주었다.
수백 조 원이 넘는 예산을 써대는 연구소답게 비싸고 첨단 시설들이 즐비해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부루퉁해 있던 니트로도 어느 순간 입을 반쯤 벌린 채 구경하기 바빴다.
“아니, 제니스 컴퍼니에서는 이런 장비도 다 사준단 말입니까? 설마 할부겠지요? 그래야 해요!”
“일시불입니다. 그것도 커스텀 주문 제작입니다. 덕분에 추가비용이 20% 정도 더 들었습니다.”
“끄아아악!”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이 장비 주문제작 구매할 때 결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허어억!”
니트로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유토피아가 바로 여기에 있었어!”
“…….”
휘버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존경하는 동문 선배 과학자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인이 된 은사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결정체 배터리 특허 신청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아무래도 생각보다 빨리 실용화가 될 것 같습니다.”
“최윤 박사님이 지금까지 개발한 결정체 기술들은 전부 파급력이 엄청났죠.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실생활에 보급되기도 했고요. 대단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오히려 두 분 교수님이야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야 실험과 연구에 쓸 수 있는 결정체가 넘쳐 나지만, 두 분은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그런 놀라운 연구 결과를 내놓으셨잖습니까.”
니트로는 둘이 서로 얼굴에 금칠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여기 있는 이 연구 장비들 다 합치면 50조 원은 넘겠지?’
그는 최윤의 개인 연구소를 차지한 값비싼 첨단 장비를 구경하고 부러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정체 배터리 특허는 누구 이름으로 내게 됩니까?”
“당연히 결정체 컴퍼니 이름으로 냅니다. 제가 결정체 컴퍼니 소속으로 월급과 지원을 받아 완성한 연구니까요.”
“인센티브는 어떻게 되는지 혹시 물어봐도 됩니까?”
“특허 존속 기간 동안 특허로 회사가 번 돈의 순수익 10%입니다. 팀이 있다면 성과에 비해서 차등 분배받지만 저는 혼자서 했기 때문에 제가 다 받을 것 같습니다.”
휘버는 놀라워하며 재차 물었다.
“혹시 퇴사하더라도 유효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유지웅 의장의 배포가 크군요. 퇴사하게 되면 수익률을 낮춘다는 조항 정도는 넣어도 될 텐데요. 인재가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둔다는 명분도 있고요.”
“아, 그 분 성격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 주의라서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에 대해서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다.”
휘버는 속으로 적지않게 감탄했다.
그는 유지웅의 성격에 관해서 잘 모르지만 배포가 매우 크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최윤을 통해 직접 듣고 나니 자신의 상상 이상인 것 같았다.
“결정 에너지의 직접적 전력 전환시 출력 저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빨리 연구 데이터를 보고 싶습니다.”
휘버가 몸이 애달아서 재촉하자 최윤은 피식 웃으면서 중앙 컴퓨터를 켰다.
곧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연구 자료가 대형 디스플레이에 빼곡하게 떠올랐고, 휘버는 정신없이 복잡한 수치들을 살폈다.
연구 데이터를 한참 동안 살피던 휘버는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은 듯이 아 하고 외쳤다.
“그렇군요! 저 원리를 이용하면 결정체 발열기관이 한번에 많은 열을 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휘버 교수님이십니다. 제가 따로 설명드리지도 않았는데 제 연구 기록만 보고 바로 답을 찾아내시다니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최윤은 빠르게 키보드를 조작했고, 곧이어 화면이 바뀌며 다른 연구 데이터들이 나타났다.
“자, 이제는 교수님이 제게 도움을 주실 차례입니다.”
휘버는 기다렸다는 듯이 씩 웃으며 USB 저장장치를 꺼내 내밀었다.
포트에 USB 저장장치를 꽂자 곧 암호를 입력하라는 칸이 나타났다.
“암호는 원주율 소수점 아래 50자리까지의 수를 2로 나눈 후 홀수번째 수를 합친 25자리 수와 짝수번째 수를 합친 25자리 수를 곱한 수입니다.”
최윤은 몇 초 정도 생각한 후에 곧바로 숫자를 입력했다.
40자리가 훌쩍 넘어가는 긴 숫자 계산을 단 몇 초 만에 암산으로 끝내고 아무렇지 않게 입력한다.
천재만이 보일 수 있는 그 놀라운 퍼포먼스를, 휘버는 흐뭇한 눈으로 지켜 보았다.
마침내 긴 암호 입력이 다 끝났다.
“어? 이게 왜 틀렸다고 나오지?”
그 순간 휘버는 옆으로 미끄러질 뻔했다.
“내가 곱하기를 잘못했나?”
“최, 최윤 박사님?”
아니, 세상에! 말도 안 돼!
나의 최윤 박사가 이런 간단한 사칙연산도 못할 리가 없어!
그러자 아까부터 옆에서 지켜보던 니트로 교수가 조용히 말했다.
“최윤 박사, 지금 키보드에 넘버락 버튼이 안 눌려 있는 거 같은데요?”
“아! 그렇군요!”
최윤은 그제야 키보드 버튼 불을 확인하고는 실수했다는 듯이 멋쩍게 웃었다.
“입력한 암호가 *로만 뜨니 숫자가 아니라 방향키로 눌리고 있었던 걸 몰랐습니다.”
최윤은 다시 처음부터 암호를 입력했고, 제대로 숫자가 입력되자 암호화된 파일이 열렸다.
그제야 휘버는 한숨을 돌렸다.
연구 데이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뚫어져라 훑어보던 최윤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자책이었다.
“교수님의 연구 기록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배터리 저출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방법을 알 거 같습니다.”
“오, 정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