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71)
— 프리시즌 헬조선편 노 클래스 —
“뭐지, 각성?”
불을 삼킨 듯한 작열통이 뱃속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가자마자 장태준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몸을 더듬으며 조금 전 자신의 감각을 꿰뚫었던 느낌을 천천히 상기했다.
‘레이더들이 보통 각성할 때 느끼는 감각과 비슷하다.’
이제 세상은 각종 유의미한 통계를 낼 수 있을 만큼 레이더 수가 증가했다.
아직까지 전체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병원 같은 곳에 가면 힐러 정도는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때문에 여러 국가들은 부지런히 레이더에 관해 조사했다.
특히 각성 과정에서 무슨 일을 겪는지 꼼꼼한 설문을 통해 메커니즘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각성 여부를 자가 진단할 수 있는 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이 중에 5가지 이상이 해당된다면 당신은 레이더 각성자로 의심됩니다. 지금 주저 하지 말고 구청 문을 두드리세요!
대충 이런 느낌이라고 해두겠다.
아무튼 장태준은 조금 전의 느낌을 차분히 복기했다. 굳이 자가 진단 리스트를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맞는 거 같은데?’
세 번에 걸친 복기 끝에 장태준은 자신이 구청을 찾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다만 구청을 찾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자가 진단 확인 사항이 있었다.
장태준은 먼저 단단한 돌을 찾아 주먹으로 툭툭 두드려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주먹에 싣는 힘을 더욱 키웠다.
“아프네.”
이 정도 타격으로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보면 탱커나 근접 딜러는 아니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평범한 나무 한 그루를 고른 뒤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섰다. 대충 5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다.
나무를 노려보던 그는 두 손을 뻗은 뒤, 몸속에서 힘을 끌어낸다 생각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거리 딜러도 아니군. 그렇다면 힐러?”
장태준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기왕이면 원거리 딜러로 각성했으면 했다. 자신의 특기, 지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지션이 될 테니까.
하지만 힐러라면 큰 의미는 없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힐링 능력을 내가 자가 진단할 수는 없으니…… 일단 구청으로 가야겠네.”
장태준은 곧바로 구청으로 향했다.
어차피 레이더 각성 신고 및 등록 절차는 해야 하니, 하루라도 빨리 해치울 작정이었다.
구청에 도착하고 접수를 하자 안내 직원이 그를 청사 밖에 마련된 임시 테스트 시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자신처럼 각성 자가 진단을 마치고 구청의 마지막 확인을 받기 위해 온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안내 직원이 말했다.
“10명 중에 7명 이상은 레이더가 아니라 자가 진단을 잘못한 경우니까 너무 큰 부담 가지실 것은 없어요.”
“10명 중에 7명이나 됩니까? 그렇게 많아요?”
“네, 아무래도 레이더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자가 진단을 할 때 후하게 판단하는 거 같아요.”
안내 직원은 생각만 해도 웃긴 듯 피식거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자가 진단 잘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힐러가 아닐까 생각을 해요. 그 다음이 원딜이고요. 탱커나 근딜로 착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탱커나 근딜은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탱커나 근딜 여부는 주먹으로 단단한 바위 같은 것을 살살 쳐보면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내 직원이 맞장구를 치듯이 끄덕였다.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탱커나 근딜로 착각해서 오는 분들도 아주 가끔 있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돼요. 그런데 그런 분들 보면 모두 공통점이 있어요. 일상생활, 사회생활이 가능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예요.”
“아!”
장태준은 그 한 마디에서 바로 이해했다. 세상사람 모두가 제대로 된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튼 여기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안내 직원은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갔다.
혼자 남은 장태준은 차분히 순서를 기다렸다. 최종 확인을 위해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에 긴장감과 초조함을 가득 띄우고 있었다.
‘힐러 따위 돼봤자 레이드에는 별로 소용없지만…… 뭐, 응급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겠군.’
외부 도움을 바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중상 같은 것을 입게 되면 충분히 유용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탱커나 딜러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아니지, 탱커가 되면 그런 갑작스러운 중상을 입을 상황 자체가 없지. 전투 중이라면 몰라도…….’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번호가 불릴 때마다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들어간 이들은 하나같이 침울해져서 나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레이더 각성자가 한 명도 없나?”
“아, 각성 여부가 확인되면 바로 등록소로 옮겨져서 신원 등록 등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여기로 다시 나올 일이 없어요.”
“아하, 그렇군요.”
장태준은 옆에서 다른 직원이 해준 설명에 끄덕였다.
‘오늘 오전은 이대로 그냥 날아가겠는데.’
훈련 커리큘럼을 좀 더 손봐야 하는데. 이거 아무래도 오후에는 제법 바쁠 것 같았다.
일반 접수를 하지 말고 국제공격대연합 소속이라는 지위를 활용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술 사무장이라는 지위는 그 정도 편의쯤은 만들어낼 수 있으니.
장태준은 번호가 불리자 일어서서 안으로 들어섰다.
“착각하신 겁니다.”
“네?”
“탱커나 근딜, 원딜은 아니라고 하셨죠? 그래서 힐러로 추정된다고요. 하지만 아닙니다. 돌아가세요.”
“어, 어째서요?”
“어째서긴요.”
담당 의사는 어깨를 으쓱한 뒤, 바로 앞에 놓인 유리 상자를 가리켰다. 상자 안에는 살짝 다친 흰 쥐가 웅크리고 있었다.
“저런 작은 부상 하나도 치유 못하시잖아요. 그럼 힐러 아닌 거죠.”
“그거야 제가 힐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힘을 끌어내는지 잘 몰라서…….”
“그걸 굳이 말로 자세히 설명해줘야 하는 시점에서 이미 힐러가 아닌 겁니다. 자, 다음 들어오세요.”
쫓겨나듯이 나온 장태준은 허탈해져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그런 자신을 보고 낮게 수군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자신도 저랬었을까.
“레이더가 아니라니. 힐러도 아니라니.”
공격대 전문가이긴 하지만 그는 각성 과정이나 능력 운용 의학 메커니즘까지 구체적으로 파고들고 있진 않았다. 실무란 이렇게 또 다른 것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는데.”
장태준은 아침에 느꼈던 기이한 작열통을 상기했다.
분명 그것은 임상학적으로 레이더 각성시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작열통과 동일했다.
처음 겪어보는 작열통이고 또 설명과 동영상으로만 들어 알고 있지만, 분명히 일치했다.
그런데 레이더가 아니라니.
“쓸데없이 오전 일과만 날렸군.”
장태준은 힘없이 돌아왔다.
선진국 레이더 각성자들은 거의 대부분 국제공격대연합에 가입 신청을 넣는다. 그리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의 가입 요청은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특별한 결격 사유란 살인이나 강간, 사기 등 중대한 범죄 전과를 말한다. 물론 그런 중대한 전과를 가진 레이더 각성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국제공격대연합 본부는 북한에 있지만, 본부와 거의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지부가 제니스 타운에도 있었다.
북한의 국가 인프라가 선진국을 따라잡기 전까지는 제니스 타운에 있는 지부가 본부 역할을 상당수 대체하게 될 전망이었다.
오후 늦게 연합지부에 출근한 장태준은 밀린 일정을 확인했다.
“러시아 공격대 전투 케어가 내일이었나요?”
“네, 맞습니다. 오늘 저녁에 비행기로 바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이미 지원팀 편성과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고생했어요.”
“별 말씀을요.”
연합 전술사무장으로서 장태준이 주로 하는 일은 훈련과 전술의 체계를 다듬는 일이었다.
특히 그는 새로운 괴수, 즉 전투를 치른 적이 없어 어떤 패턴으로 싸우는지 알 수 없는 괴수와 첫 레이드를 치르는 외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싸우는 것은 우리가 할 테니 와서 케어를 해 달라.
대충 이런 요구 사항이다.
새로운 괴수 공략 전술을 다듬는 것은 그에게도 업무적으로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는 가급적이면 반드시 참가하려고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는 유지웅의 최종 승인이 필요했다.
‘의장님이 가진 괴수에 대한 불가사의한 지식이야말로 우리 연합에 반드시 필요한 보물이다.’
어떻게 유지웅이 괴수에 대해 남다른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장태준은 무의미한 의문 해소에 파고드는 것보다는 그것을 실리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했다.
처음 상대하는 괴수가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유지웅의 의견을 묻는 게 바로 그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유지웅은 지금까지 우려를 나타내거나 특별한 조언을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장태준은 어렵지 않게 시범 레이드를 마치고, 괴수에 전투 패턴에 대한 정보를 갈무리할 수 있었다.
일정을 마친 장태준은 공항으로 이동해서 대기 중인 연합 전용기에 올랐다.
러시아로 향하는 도중 유지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네, 의장님. 장태준입니다.”
「지금 러시아 가는 중인가요? 세키루 잡으러?」
“네, 맞습니다.”
장태준은 조금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세키루는 러시아 요청으로 그가 케어를 맡은, 고슴도치처럼 생긴 괴수였다. 웬만한 고속버스 정도 크기 되는 고슴도치 괴수.
아직 전 세계에서 딱 한 개체만 확인된 괴수였으며, 러시아 대형 송유관 인근에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러시아도 고심 끝에 토벌을 결정했고, 아무런 정보가 없다 보니 연합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가 의아해한 이유는 유지웅이 이미 세키루 레이드에 관해서 별다른 코멘트 없이 승인했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물어보실 때는 제가 깜빡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말이죠.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말투만 보면 마치 아주 오래 전에 어디서 세키루 괴수를 학살이라도 하고 온 듯하다. 하지만 저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장태준은 그러려니 했다.
무엇보다 군인 출신인 그는 최고 상사에게 자신의 호기심 해소를 위한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예,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겁니까?”
「전투 패턴이 조금 까다로워요. 아니, 까다로울 수 있, 아니아니, 까다로울 거 같다는 예감을 받았어요. 그놈이 왜, 고슴도치처럼 생겼잖아요? 가시도 엄청 돋아나 있고. 전 그게 왠지 마음에 걸리는데…….」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네, 가시만 주의하면 특별히 큰 문제없이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 아니 생각이 됩니다. 그럼 건승을 빌어요.」
“감사합니다.”
항공기는 어느덧 북한 상공을 날고 있었다.
어둠이 가득한 북한 땅을 내려다보며 장태준은 중얼거렸다.
“사고 나면 안 되는데.”
“팀장님도 비행은 겁나시나 봐요?”
“아니오, 여기서 사고 나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잖아요. 그 말이었어요.”
“아하.”
다행히 항공기는 샌프란시스코로 강제 후송되는 일 없이 무사히 러시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