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47)
00147 걸어다니는 결정체 =========================================================================
과거 루딘 국장은 정효주의 신체를 검사하려고 했다. 녹서스의 돌을 찾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의 가정이 맞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정효주가 미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실험 대상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유지웅은 그에게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 만약 녹서스의 돌이 정효주와 자신에게 쪼개져서 있다는 게 알려지면,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그는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적이었다.
“거기 앉으시죠.”
차가운 어조였지만 루딘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앉았다. 유지웅은 일부러 그와 거리를 두었다.
“무슨 용무입니까?”
“예전에 저질렀던 결례를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결례라고 생각은 하시나 보죠?”
“죄송합니다.”
대화는 통역가를 사이에 두고 이뤄졌다. 유지웅은 날카롭게 그를 뜯어보았다.
“미국은 유지웅 대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미국과 척을 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루딘은 그 안에 담긴 뜻을 이해했다. 척을 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친하게 지낼 의도도 없다. 그런 뜻을 내포한 날카로운 답변이었다.
역시 일이 쉽지 않겠다고 느끼며 루딘은 말을 이었다.
“레드 몹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귀하의 보호막 능력은 중요한 대응 수단입니다. 미국은 그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블랙 몹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말이죠.”
“……블랙 몹?”
처음 듣는 단어에 유지웅은 반응했다. 루딘이 희미한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휴스턴을 소멸시킨 개체와 히카리, 그 두 개체에 우리 미국이 극비리에 매긴 등급입니다. 레드 몹보다 상위 계열이지요. 다행히 아직까지 확인된 개체는 두 개체뿐입니다. 하나는 소멸했고, 다른 하나는 일본 어딘가에 숨어 있지요.”
“그걸 말해주는 이유가 뭐죠?”
“귀하와 우리 미국이 서로 힘겨루기를 해봤자 블랙 몹의 습격에 제때 대응하지 못합니다. 그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정중한 사과와 함께 말이지요.”
사과를 너무 당당하게 한다. 유지웅은 그게 거슬렸다. 그런 못마땅함을 담고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한참 후 유지웅은 입을 열었다.
“녹서스의 돌이 대체 뭐죠?”
“블루 결정체를 인위적으로 융합한 겁니다. 그린 결정체가 일정량 모여 융합하면 블루 결정체가 되듯이, 블루 결정체도 그런 식으로 융합하면 상위 결정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해서 탄생한 물질이지요.”
의외로 루딘은 순순히 대답했다. 하지만 유지웅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그걸 알고 쉽게 말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놀라운 발견이었죠. 결정도 10만 개의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순간 본래의 푸른빛을 잃고 보라색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직접 그 색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정말 아름다웠다고 하더군요.”
“…….”
“퍼플 결정체는 이미 인간의 손으로는 다시 만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블랙 몹의 체내에는 퍼플 결정체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검증된 건 아니지요.”
“그렇지요. 아직까지는 가설일 뿐입니다. 하지만 녹서스의 돌 프로젝트 연구진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히카리를 잡으면 퍼플 결정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요.”
블루 결정체만 해도 그린 결정체에 비할 바 없는 놀라운 가치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 상위 결정체인 퍼플 결정체는 어떨까?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외로 순순히 말해주는군요. 놀랐어요.”
“사과의 제스처 중 하나라고 해두죠. 무엇 때문에 그런 결례를 저질렀는지 해명하는 것도 사과의 일부 아니겠습니까?”
“…….”
소득은 있는 만남이었다. 적어도 미국이 퍼플 결정체에 지대한 욕심을 갖고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확인했으니까. 녹서스의 돌이 쪼개져서 둘의 체내에 존재한다는 것은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미 히카리를 통해 겪으셨겠지만, 제니스 공격대만으로는 블랙 몹의 습격을 대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손을 잡고 정보를 공유한다면 가능할 겁니다.”
“생각해보지요.”
미국과 얽힐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유지웅은 겉으로는 그렇게 대답했다.
결혼하고 성질 많이 죽었다.
영국은 급히 레이드 능력자들을 소집했다. 무려 300명이나 되는 능력자들이 모였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영국은 호들갑을 떨었다. 장태준이 이렇게 분석했다.
“가급적 많은 레이드 능력자들에게 레드 몹을 경험시켜주고 싶은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레드 몹과 한 번 부딪쳤다는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 된다. 영국 정부는 마음 같아서는 수천 명도 넘게 불러 모으고 싶을 것이다. 눈치가 보여서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뿐이지.
“어? 근데 영어 공부하세요?”
“아, 네.”
책을 보고 있던 장태준이 멋쩍게 웃었다.
“저번 미국에서 통역가를 통해서 오더를 내리려니 여러 가지로 불편하더군요. 혹시 또 그런 일이 있을까 해서 얼마 전부터 군사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프로 정신이 투철하시네요.”
감탄해서 가볍게 칭찬 한마디 했을 뿐인데 장태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영국 공격대가 집결지에 모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터에 가득했다. 저마다 장비를 점검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감을 떨치고 있었다.
유지웅이 나타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언어의 장벽이 있지만 그들의 선망을 느낄 수 있었다.
“유지웅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을 지휘해서 오늘 레이드를 수행할 임시 공격대장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가 인사하자 영국 정부에서 붙여준 통역가가 말을 번역해서 되풀이했다. 대원들은 숨을 죽인 채 경청했다.
“잘 부탁합니다. 부디 사망자 없이 무사히 레이드가 끝날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이쪽은 제니스 공격대의 메인 탱커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어그로를 잘 먹는 탱커죠.”
정효주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대원들이 박수를 쳤다.
지원팀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장비를 세팅하고 공격대 진형을 짰다. 의사소통의 벽이 있었지만 통역가의 힘을 빌어 빠릿빠릿하게 일을 마쳤다.
레드 몹, 스크리너는 런던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불과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개체였다. 덕분에 영국은 이 도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류 이동에 곤란을 겪고 있었는데 마침 유지웅이 구단 인수 때문에 방문하자 의뢰한 것이다.
정효주는 육안으로 웅크려 있는 스크리너를 확인했다. 그녀는 장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메인 탱커, 돌진!」
장태준이 오더를 내리고, 곧바로 통역가의 말이 뒤를 이었다. 그녀에게 내려진 지시였지만 다른 대원들을 위해서 전부 통역하는 것이다.
순간 정효주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그녀의 뒤로 흙먼지가 일었다.
「본진, 진형 유지한 채로 접근.」
오더가 내려지자 공격대 전체가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정효주의 몸에는 이미 보호막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스크리너의 100미터 앞까지 도달했다.
그녀의 낌새를 느낀 스크리너가 흠칫했다. 거대한 표범처럼 생긴 스크리너는 고개를 들고 정효주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바로 입을 벌리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캬아아아!
벌떡 일어난 스크리너는 몸을 낮게 웅크리고 갈기털을 잔뜩 일으켜 세웠다. 흡사 영역 다툼을 하는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는 것 같았다. 정효주는 그대로 뛰어들었다.
허공을 긋는 장검이 반원을 그리며 스크리너의 이마 위로 똑바로 떨어져 내렸다.
푸욱!
장검이 그대로 스크리너의 이마에 박혔다. 방어막을 뚫고 들어간 장검이 피부를 파고들자 스크리너는 고통스러운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캬아아아!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정효주는 스크리너의 이마를 밟고 다시 점프해서 뒤로 빠졌다. 그리고 재차 달려들며 스크리너의 목덜미를 노렸다. 또다시 장검이 목덜미에 박혔다.
스크리너의 눈동자에 살기가 깃들었다. 스크리너는 그대로 정효주에게 달려들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그녀를 물어뜯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옆으로 뛰어 스크리너의 물어뜯기를 피한 그녀는 다시 장검을 찔러 들어갔다. 왼쪽 앞발에 장검이 박히자 스크리너가 고통스러워했다.
지원팀은 바삐 상황을 분석했다.
“메인 탱커한테 겁을 먹지 않는군요. 영국 레드 몹이라서 그런 걸까요?”
“어그로 분석 결과는?”
“대강 잡힌 것 같습니다. 원거리 딜러진을 투입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근접 딜러는 잠시 미루시죠.”
원거리 딜러진 공격 개시 명령이 떨어졌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원거리 딜러진이 그제야 부랴부랴 움직였다. 원거리 딜러진이 막 딜을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캬아아아!
우렁찬 포효가 터졌다. 순간 섬뜩한 예감이 스친 장태준은 재빨리 명령했다.
「Stop! Stop!」
다행히 원거리 딜러진은 늦지 않게 반응했다. 막 딜을 넣으려다가 멈춘 것이다.
“무슨 일이죠?”
유지웅이 교신기에 대고 급히 물었다.
「목표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그로가 덜 확보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어그로 계산 시스템은 괴수의 행동, 패턴, 변화 등을 관찰해서 그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한 뒤 추정하는 것이다. 괴수의 속마음을 투시하는 원리가 아니기에 완전하지 않다. 일종의 일기예보와 같은 구조다. 수많은 변화를 관찰하고 분석해서 어느 정도 추정하고 예상은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일기예보가 틀리듯이 어그로 추정도 틀릴 수 있다. 아니, 틀리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장태준은 스크리너가 갑작스럽게 포효하자 급히 중지 사인을 내린 것이다.
정효주는 마음이 급해졌다. 공격대 본대와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있지만, 혹시라도 스크리너의 시선이 돌아갈까 불안했다. 그래서 더욱 맹렬하게 스크리너를 공격해 들어갔다.
푸욱!
높이 뛰어올라 장검을 휘두르자 검끝이 스크리너의 피부를 크게 베고 지나갔다.
―캬오오오!
스크리너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정효주를 보는 눈빛에 살기가 가득 넘쳐흘렀다. 땅에 착지한 정효주는 강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얼른 고개를 들었다. 스크리너가 자신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고 있었다.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효주는 이를 악물고 충격에 대비했다. 보호막이 걸려 있으니 그녀에게 직접 가해지는 충격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믿었다.
휙!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크리너가 그녀를 그대로 뛰어넘은 것이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어? 뭐, 뭐야?”
당황은 잠시, 그녀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스크리너를 쫓아갔다.
지원팀과 공격대 본진은 난리가 났다. 스크리너가 본진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왜 저래!”
“대피! 대피! 산개! 산개!”
우왕좌왕 본진은 난리가 났다. 다들 놀라서 흩어지려고 했다. 장태준이 재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흩어지면 안 됩니다! 모두 공격대장 주변에 뭉쳐요! 광역 보호막 준비!」
이미 유지웅은 광역 보호막을 치고 있었다. 거대한 구체가 사방을 감싸자 그제야 대원들은 진정했다. 맞다. 우리들에게는 보호막이 있었지.
“온다!”
스크리너가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었다. 유지웅은 긴장한 채 충격에 대비했다. 겨우 몇 차례 육탄 돌격으로는 광역 보호막을 뚫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보호막 코앞까지 당도한 스크리너는 그대로 방향을 휙 틀었다. 그리고 공격대 본진을 본 체 만 체 한 채 계속 뛰었다. 유지웅은 순간 멍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한창 추격해왔던 정효주도 어이가 없어서 그 자리에 멈췄다.
“저거 설마…… 도망친 건가요?”
지원팀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작품 후기 ============================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더 강해져서 돌아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