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01)
00201 농사 짓는 브라우니 =========================================================================
‘이거 혹시?’
박효리는 동기이기 이전에 신랑의 친구였다. 그 점을 치고 나오면 정효주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오빠한테 언니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오빠가 게임하면서 언니 자랑이 얼마나 심한지, 여자인 제가 다 질투 날 정도였다니까요.”
“아, 그랬니?”
“세상 참 좁지 않아요? 언니가 오빠 와이프였을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어요.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
눈빛에는 호감만이 가득하다. 태도도 사근사근하다. 그래서 정효주는 더 긴장을 탔다. 예쁘고 젊은 여자가 이렇게 나올 때야말로 가장 무서운 때이기 때문이다.
정효주는 아무렇지 않은 미소를 짓고 싹싹하게 대했다.
“그럼. 우리 신랑 친구면 내 친구기도 하지. 게다가 동기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잘 부탁드릴게요, 언니.”
정효주는 날이 선 비수를 속에 감추고 가볍게 악수했다. 그러면서도 박효리의 눈을 꿰뚫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진심이지? 다른 이들처럼 신랑의 눈에 한 번 들어보려고 애쓰는 걸까? 아니면 세컨드 자리라도 노리고 있나?
앞으로 신랑 관리에 신경을 좀 더 써야 할 것 같다.
* * *
유지웅은 세상이 참 좁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 블루 결정체 공급 문제로 옥신각신했던 SKK에너지 임원에도 같은 과 졸업생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인맥이 불편하게 만든 건 없었다. 오히려 SKK에너지 임원이 안달이 나서 그의 속을 살살 문질렀다. 이 기회를 살려 두둑한 인맥을 구축하려는 게 훤히 보였다.
“그때 우리 그룹에서도 그간 결정체 유통이익을 공격대와 나누지 않을 것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즉각 조치를 취했지요. 그게 다 후배님이 좋은 선례를 보여준 덕분입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사실 우리 LP그룹에서도 그 전까지만 해도 유통이익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은 많이 해왔어요. 근데 정부 정책도 그렇고 다른 경쟁사 눈치도 그렇고 해서 선뜻 실행을 못했을 뿐이지요.”
“어허, 이 선배님들이 왜 이러시나. 사실 우리 HD가 IACP 다음으로 가장 빠르게 유통이익 분배 정책을 도입한 거 모르십니까?”
4대 결정체 유통기업 임원들은 서로 자기들이 먼저, 그리고 가장 좋은 대우를 해줬다며 다투기 바빴다. 마치 황제 앞에서 신하들이 서로의 공적을 자랑하는 모습 같았다.
동문회는 어느덧 주요 전임 교수와 임원급 이상 졸업생들이 함께 하는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유지웅은 나이 많은 아저씨들과 술을 먹고 싶지는 않아서 거절하고 나왔다. 접대 기회라고 반색했던 OB들이 실망했지만,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때까지 정효주는 유지웅을 대신해서 12-13학번 학생들을 상대해주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유지웅보다 더 실권을 가진 인물이다. 원래 베갯머리송사가 제일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 있었어?”
“응. 선배님들은 다 가셨어?”
“응. 교수님들이랑 한 잔 하시려나 봐. 나 혼자 거기 끼기도 뭐해서 나왔어. 그러고 보니 너무 정신 없이 놀았네. 나도 한 잔 줄래?”
“아, 예.”
유지웅이 정효주 옆에 앉자, 반대편에 앉은 남학생 한 명이 서둘러 잔을 따라주었다. 술자리에는 약 20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 장권재와 김연희, 박효리도 있었다.
“어? 효리 너도 있었어?”
“섭섭해요, 오빠. 이제 보신 거예요?”
박효리가 살짝 애교를 부리듯이 타박했다. 유지웅은 넉살좋게 웃으며 응수했다.
“뭐 못 볼 수도 있지. 근데 혹시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연장자는 아니지?”
“맞을 걸요? 여기서 혹시 23살 이상이신 분?”
다들 웃기만 할 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유지웅은 장난스럽게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뭐야? 다들 고등학교 때 공부 디게 열심히 했나 보다. 전부 현역으로 들어온 거야?”
“재수했어도 오빠보다는 나이 적은데요?”
“아, 나도 그냥 작년에 바로 입학할 걸 그랬나 봐.”
재미있게 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정효주는 썩 탐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랑한테 별 거 아닌 걸로 간섭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거의 다 먹었네? 슬슬 일어나려고?”
“다음차 가요! 벌써 헤어지기 섭섭해요!”
어느 앳된 여자 신입생이 신이 나서 외치자 다들 따라서 다음차 가자고 재촉했다. 어린 나이고, 적당히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별로 스스럼이 없었다.
유지웅도 적당히 흥이 나 있던 터라 정효주에게 살짝 물었다.
“우리 집에 갈까?”
“집에?”
“1층에서 술자리 가지면 좋을 거 같은데. 뻗은 애들은 그냥 편하게 2층에서 재우면 되고.”
잠시 생각하던 정효주는 별 이견 없이 끄덕였다. 보통 신부라면 신혼집에 이런 집단을 끌어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녀가 어디 보통 신부인가. 손 하나 까딱 않고 아랫사람들한테 음식 준비며 청소, 뒷정리를 시키면 된다.
“그럼 우리집에서 한 잔 할래?”
“우와, 정말요?”
신입생들은 무척 기뻐했다. 유지웅이 옛 대학 부지를 통째로 사서 대저택을 꾸몄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가요! 가요! 저희 오빠 집 어떤지 꼭 한 번 보고 싶었어요!”
“그럼 가자.”
그 자리에서 결정이 났다. 몇 몇 남자애들이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유지웅은 계산서를 들고 카드로 긁었다. 남자애들 몇 몇이 미안해 했다.
“형, 죄송해요. 많이 나왔을 텐데.”
“괜찮아. 1초치 이자도 안 돼.”
그 동안에 정효주는 미리 집에 연락을 해서 가정부들에게 준비를 하라 시켰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가정부들은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22명은 줄지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커다란 자동철문이 좌우로 열리자 여학생들은 꺅꺅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잘 가꿔진 숲 사이로 난 도로를 지나 마침내 커다란 본채가 나타났다. 택시에서 내린 신입생들은 동물원에 온 어린이처럼 신기한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와, 저 수영장 봐.”
“집이 굉장히 크다. 형, 여기 형이랑 효주 선배 두 분이서만 사시는 거예요?”
“아니. 처제랑 손님 한 명도 같이 살아. 1층은 통째로 접객실이나 다름없으니까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돼. 다른 층은 올라가면 안 돼.”
“네.”
말이 접객실이지 1층은 통째로 종합호텔서비스 룸이나 다름없었다. 수영장, 헬스장, 찜질방, 서재, 거실, 식당 등 침실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들어선 중앙 홀에는 이미 가정부들이 술자리를 마련해두었다.
“맥주 먹을래? 아니면 양주?”
“맥주도 있어요?”
“하우스 생맥주 제조기 있어. 호프집에서 먹는 것보단 맛이 좋을 거야.”
“와, 그럼 전 그거 먹을래요!”
“전 양주 먹어도 돼요?”
“어. 저기 양주 진열대 보이지? 저기서 그냥 아무 거나 먹고 싶은 거 꺼내 먹어.”
그 말에 몇 몇 동기들이 좋아라 하며 양주를 꺼내다가 상표를 보고 흠칫했다.
“혀, 형? 이거 수백만 원이 넘는 것들뿐인데요? 잘못 알려주신 거 아니에요?”
“나 가격 같은 거 잘 몰라. 그냥 아무 거나 먹어. 먹으라고 놓은 거지 구경하려고 놓은 거 아니야.”
“그, 그래도…….”
그래도 먹고 싶었던지 비싼 양주를 집어서 가져왔다. 가정부들이 거품이 보글보글한 생맥주를 가져왔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근사한 안주도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졌다.
언제 한 번 이런 술자리를 가져보겠나. 신입생들은 신이 나서 술잔을 부딪쳤다. 피곤을 무릅쓰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 이렇게 제니스 공격대장의 집에도 초청을 받고 말이다.
* * *
―……!
브라우니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눈이 커졌다.
―캬아악!
황당했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분명히 저기 한쪽 구석에 잘 모셔둔 파란 돌멩이가 대체 어디 갔어?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대체 어디로? 쥐가 물어갔나? 아니면 땅으로 꺼졌나?
브라우니는 미칠 것 같았다. 주인이 알면 가만 두지 않을 텐데! 몰래 먹었다고 또 맞는 거 아니야? 억울해! 차라리 먹고 혼나는 거면 그나마 낫지!
―캬아악! 캬아악!
브라우니는 홰를 치듯 날개를 펄럭이며 벌떡 일어났다. 가로세로 10미터 가량 되는 둥지를 돌아다니며 푸른 돌멩이를 찾기 위해 눈알을 부릅떴다.
없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끼이잉…….
초조했다. 주인이 알면 가만 안 둘 텐데? 파란 돌멩이 물어온 거, 감시하는 쫄들(직원)이 이미 다 봤단 말이다. 분명히 며칠 안으로 돌을 가지러 올 텐데. 대체 어디 갔어?
그때 브라우니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주인이 품으라고 해서 품고 있던 하얀 돌이 왠지 모르게 좀 더 파랗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윤기가 자르르르했던 표면도 조금 까칠어진 것 같고 말이다.
브라우니는 영리하다. 대번에 의심을 품었다. 혹시 사라진 파란 돌멩이와, 저 하얀 돌이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 게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캬아악! 캬아악!
위협을 하듯 부리를 콕콕 찔러보기도 하고, 그 앞에서 크게 날개를 펄럭이며 홰를 쳐보기도 했다. 적장을 대하는 장수처럼 브라우니는 위협적인 눈초리로 알 표면을 노려보며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맴돌았다.
너지! 니가 돌멩이 처먹었지! 라고 윽박지르듯이.
대체 이건 정체가 뭘까? 자기와 똑같은 놈? 근데 저렇게 생긴 놈이 있다는 건 못 들어봤다. 바닷 속에서도 가지각색의 약한 놈, 쎈 놈이 있었지만 저렇게 단순하게 생겨먹은 놈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날카로운 이빨도, 발톱도, 심지어 팔다리나 날개도 없다. 비늘이나 아가미, 꼬리도 없다. 저거 살아있는 게 맞긴 해? 이해가 안 갔다. 주인은 대체 왜 이런 걸 품으라는 걸까?
―캬아아악!
뭐라고 반응이라도 보이면 좋은데, 그런 게 없으니 답답해서 브라우니는 더욱 홰를 세게 쳤다. 너잖아! 니가 먹었잖아! 어디서 무생물인 척을 하냐고!
쩌저저적!
순간 알에 금이 가며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브라우니는 기겁을 해서 물러났다. 어떡해! 파란 돌멩이 잃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저거까지 깨먹었다!
순간 주인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다. 이걸 주인이 알았다가는 죽음이다. 죽기 직전까지 맞을지도 모른다.
도망칠까? 하지만 세상은 너무 위험하다. 또 어디에 그런 무시무시하게 쎈 놈들이 죽치고 있을지 모른다. 바다에서 잘 나갈 때만 해도 세상이 전부 내 것인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은 무시무시한 쎈 놈들로 가득했다.
운명이 억울했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데, 왜 세상은 그렇게 놔두지를 않지?
툭툭.
알 껍질이 깨졌다. 브라우니는 이걸 어떡해야 하나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순간 이상한 것을 보았다. 깨진 알 껍질 사이에 뭔가 검고 희끄무레한 게 보였다.
브라우니는 발광을 멈추고 자세히 살폈다. 작은 생명체였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았다. 잘 보니 날개도 있고, 다리도 있고, 머리와 꼬리도 있었다. 근데 깃털이 너무 작아서 과연 날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눈은 또 왜 감고 있지?
그때 약한 놈이 끙끙거리며 머리를 들었다. 감긴 눈이 힘겹게 겨우 떠졌다. 브라우니와 눈이 마주치자 약한 놈은 끼아앙 하고 나지막하게 울었다.
브라우니 안에서 뭔가가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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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아니라 년이란다..
PS : 브라우니는 수컷.
PS2 : 어디 덤벼 보시지, 아청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