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00)
00200 농사 짓는 브라우니 =========================================================================
입학일답게 과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했다. 꺼진 줄 알았던 오티의 불씨를 다시 이어가는 것 같았다. 유지웅도 기꺼이 참석해서 구경했다. 어디 얼마나 잘 노는지 한 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스무 살 파릇파릇한 애들이라서 그런지 지켜보기만 해도 재미있고 흐뭇했다. 아, 저것들이 다 내 동기란 말이지? 귀여운 것들.
“뭘 그렇게 히죽거리니?”
옆에서 정효주가 흘겨보며 말했다. 그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냥 다들 귀여워서.”
“너도 신입생이거든?”
“나이로 치면 아니잖아.”
장기자랑 타임이 되었다. 신입생들은 잔디밭에 둘러앉아 저마다 간단한 안주와 막걸리가 담긴 종이컵을 쥐고, 각자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지웅 커플도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반경 3미터 이내 아무도 앉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신입생들은 둘을 흘끔거렸다.
거리감을 두는 게 아니라, 가까워지고는 싶은데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이 신입생들의 얼굴에 절절히 묻어났다. 특히 여자애들은 옆에 있는 정효주 때문에 더욱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너희 학번은 정말 복 받은 거야.”
“어머, 왜요?”
“제니스 공대장이랑 동기 학번이잖아. 이런 인맥이 어디 쉽게 만들어지는 줄 알아? 나도 1년만 늦게 학교 올 걸 하고 지금 후회 중이다.”
“저 분이 그렇게 대단해요? 돈 많다는 건 들었는데.”
“세계 순위권 부자지. 근데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저 사람이 한 마디 하면 결정체 산업 시장이 휘청거려. 작정하고 블루 결정체 사냥해서 공급하면 국제 결정체 가격도 뒤흔들 수 있고. 대통령도 저 사람 앞에서는 벌벌 길 걸?”
“우와, 그 정도예요?”
“그렇다니까. 그니까 잘 보여.”
몇 몇 선배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인맥의 중요성 운운하며 세상 물정 모르는 후배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다 똑같은 신입생 같지? 세상이 전혀 그렇지 않다니까. 그걸 스스로 깨달을 때는 너무 늦기 때문에 선배들이 미리 알려주는 거야. 니들은 정말 복 받은 거니까 그 복을 잘 살려서 큰 운을 노릴 줄 알아야 돼.”
“예. 알겠어요.”
“감사해요.”
자기를 놓고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지 모르는 유지웅은 환영행사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탱커라서 귀가 밝은 정효주는 드문드문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
남들보다 뛰어난 자는 질시받는다. 그보다 더 뛰어난 자는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상위에 있는 자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제니스 공격대장은 개인으로서 국내 결정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일성그룹의 이형준 회장도 그 앞에서는 일개 을에 불과하다. 평범한 대학 신입생들과는 까마득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저…… 형. 술 한 잔 따라드릴까요? 잔이 비었는데.”
1학년인 장권재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종이컵을 보니 막걸리가 비어 있었다. 유지웅은 흔쾌히 내밀었다.
“그래. 한 잔 따라 봐.”
“네.”
장권재는 얼른 두 손으로 병을 받치고 공손하게 따랐다. 몇 몇 신입생들이 시샘 어린 눈으로 그를 봤다.
정효주가 빤히 쳐다보자 장권재는 얼굴을 붉혔다. 연예인 뺨치게 생긴 여자가 코앞에서 쳐다보니 적응이 안 됐다.
“인사해. 여기는 우리 와이프.”
“12학번 정효주예요.”
“아, 효주 선배. 말씀 많이 들었어요. 13학번 장권재입니다.”
정효주는 장권재를 주의 깊게 탐색했다. 신랑한테 붙여놔도 괜찮은 놈일까? 하고 관찰하듯이.
“잘 부탁해요.”
“예. 저도 잘 부탁드려요.”
셋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김연희가 되겠다 싶었는지 다가왔다. 오티 때 유지웅, 장권재, 이렇게 셋이 소그룹을 이뤄 술잔을 부딪치던 재수생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해요? 저도 끼워 줘요.”
“아, 연희야. 안녕. 그날 잘 들어갔어?”
“그럼요. 오빠도 잘 들어가셨어요?”
“응. 갑자기 일할 게 생기긴 했는데, 니들보다는 빨리 들어갔을 걸? 내 차가 좀 빨라서.”
“아, 세스토 엘레멘토 말씀하시는 거죠? 그거 우리나라에 딱 한 대 있는 거 형이 갖고 계시다는 거 들었어요.”
“아닌데? V-23 말한 건데?”
“V-23? 그건 뭐예요?”
“있어. 수직이착륙기. 활주로 필요 없는 수송기 같은 거야.”
장권재는 입을 떡 벌렸다. 김연희도 속으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우와, 역시 우리랑은 사는 세계가 다르시구나…….”
더 우스운 것은 잘난 체하는 것으로 전혀 안 들린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별로 자랑할 것도 아닌, 그냥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게 세계 순위권 부자의 위엄일까?
제니스 공격대장이라고 해서 조금 겁을 먹었던 장권재와 김연희는 그가 생각보다 소탈하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 레이드 전투 기록이라는 게 그냥 레이드에 참여한 경험이 다가 아니군요.”
“그렇지. 어떤 괴수가 어떤 유형의 공격을 하더라, 잡는데 얼마쯤 걸렸더라 하는 건 별로 안 중요해. 그런 거까지 유출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정밀 측정 장치가 기록한 수치 데이터가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지. 거기에 괴수의 모든 게 담겨 있거든.”
“지금 다른 정공도 레드 몹을 잡고 있잖아요? 제니스하고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요?”
“격차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어. 당장 효주랑 나, 둘이서도 레드 몹쯤은 몇 분 안에 잡을 수 있거든. 다른 정공은 아마 몇 시간쯤 걸릴 걸?”
“우와, 아예 비교가 안 되네요.”
장권재는 평소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거듭 물었다. 별로 숨길 만한 것도 아니었기에 유지웅은 순순히 말해주었다. 현직 세계 최강의 공대장이 직접 말해주는 경험담이다. 결정체학 신입생으로서 궁금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 어느덧 그의 주변은 조금이라도 더 주워듣기 위한 아이들로 가득 찼다.
환영행사는 어느새 제니스 공격대장 초청 강연처럼 변해버렸다. 유지웅이 편안하게 잔디밭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학생들이 빼곡히 둘러싸서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었다.
그는 국가 기밀 혹은 공격대 기밀에 저촉되는 것을 뺀 경험담이라던가, 산업계 뒷사정 등을 겪은 대로 말해주었다. 일반인, 특히 대학 신입생들은 알기 힘든 이야기였다. 실화였고 자기들 장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모두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원래 딜 장비 만드는데 돈 얼마 안 들어. A급 장비는 원가가 30억을 넘기 힘들어. 근데 거의 80에서 90억 정도 해.”
“왜 그런 건데요?”
“딜러가 너무 많아서 그래.”
신입생들이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유지웅은 동기들의 그런 반응이 즐겁고 재미났다.
“사실 옐로 몹 잡는데 딜 장비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런 거 없어도 잘 잡거든. 근데 딜러가 너무 많으니까 너도 나도 스펙 경쟁을 하는 거야.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더 좋은 장비 가진 딜러 쓰는 게 공격대 입장에선 기분 좋잖아?”
“그렇죠. 아! 그럼?”
몇 몇 아이들이 이해한 듯이 감탄사를 냈다. 유지웅은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레이드를 가야 되는데 경쟁은 심하니까 딜러들은 자꾸만 좋은 장비를 맞춰야 하는 거야. 생산업체에서는 장비 값을 올려도 사줄 사람이 많으니까 자꾸 올려서 A급이 근 100억이나 하게 된 거고.”
“무슨 취업생 스펙 경쟁 하느라 영어 학원 시장만 배불리는 모습 보는 거 같아요.”
“맞아. 딱 그래. 그래서 딜러가 한 번 레이드 가면 수입이 좋긴 한데, 대다수 딜러들은 가난해. 레이드 한 번 가서 4천에서 5천 정도 버는데, 90억짜리 장비 맞추려면 몇 번이나 더 레이드를 가야 할 거 같아?”
“으, 상상이 안 가요.”
“탱커나 힐러는 장비가 거의 필요 없지. 힐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레이드 갈 수 있고. 그래서 힐러가 부자인 거야.”
“딜러들이 너무 안 됐어요.”
“그니까 너희가 나중에 그쪽으로 진출하면 관련 정책을 좀 바꿔 봐. 나도 이런 식으로 딜러를 지나치게 착취하는 구조는 잘못됐다고 생각하거든.”
기껏 준비한 환영행사가 제니스 공격대장 초청 강연처럼 되어 버려 안타까워 했던 학생회 부회장 황주현마저 어느덧 그의 이야기에 빠져 버렸다. 이미 행사는 뒷전이었다. 심지어 감독을 위해 왔던 교수들도 그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현직 세계 최강 공대장의 경험담이다. 대수롭지 않게 흘리는 사소한 이야기 하나하나에도 여러 가지 정치적 이해관계라든가 정책적 목적이 묻어 있었다. 진짜 돈 주고도 못 듣는 귀중한 이야기였다.
* * *
저녁을 맞이한 대강당에서는 결정체학 동문회가 열렸다. 결정체학을 거쳐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들이 모여 우애를 다지는 자리였다. 이런 인맥 관리도 하나의 큰 파워이기에 교수들도 대부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원래 놀기 바쁜 신입생들은 이런 자리까지 참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유지웅이 참석한다는 이야기에 너도 나도 참석한 것이다. 덕분에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서 단대 측에서는 급히 대강당을 빌렸다.
“인원이 엄청 모였군.”
“졸업생도 평소보다 스무 배 가까이 참석했습니다. 심지어 70년대 학번 졸업생들도 참석했습니다.”
학장 교수 김찬은 제니스의 파워를 실감했다. 곳곳에는 좀처럼 모시기 힘든 졸업생들 얼굴도 있었다. 40, 50대 이상의, 이미 한 자리씩들 차지한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다른 때 같으면 아무리 아쉬운 소리를 해도, 자기들 일정에 지장이 가면 오지 않는 이들이다.
국회의원, 유명 회사 사장 혹은 임원급, 결정체 관리공단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 간부 등 졸업생 이력이 화려했다.
“우와, 우리과 졸업 선배들 장난 아니시구나. TV에서 한 번쯤 본 분들도 계시고.”
“이 많은 분들이 다 결정체 산업 관련자들이시구나. 진짜 대단하다.”
신입생들은 화려한 졸업 선배들의 이력에 기가 죽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재학 선배들이 귀에 못히 박히도록 한 말, 너희들은 정말 큰 행운을 얻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실감했다.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저 많은 사람들을, 단지 이름값만으로 불러모을 수 있는 인물과 동기라는 것은 정말 천운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후배님의 저번 기부는 이미 들었습니다. 그때 진심으로 감탄했어요. 부끄러운 마음에 약소하지만 몇 푼 성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팔기 귀찮아서 놔둔 결정체 몇 개 기부한 것뿐인데요, 뭘.”
“그 결정체 가격이 근 30조 원이나 했지요. 그만큼 큰 기부는 세계 제일의 부자라 해도 못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후배님한테 세계 부자 순위가 의미가 있을까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1위쯤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냥 관심이 없으셔서 20위권에 머물러 계신 거 같은데 말이죠.”
유지웅의 주변은 50대 이상의 졸업 선배들로 가득 찼다. 결정체 관련 대기업의 핵심 임원, 혹은 주요 공단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보다 연배가 안 되는, 비교적 젊은 층 인물들은 직접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고 외곽에서 귀를 쫑긋 세우며 주워듣기 바빴다.
정효주는 일부러 한쪽에 비켜서서 지켜보았다. 저마다 일가를 이룬, 나이 많은 졸업 선배들한테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쥐고 사람들을 대하는 신랑이 자랑스러웠다.
역시 남자는 자신감이 전부다.
“언니.”
옆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박효리를 확인하고 그녀는 안색이 살짝 굳었다.
“안녕? 효리라고 했지?”
“네. 언니랑 직접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죠?”
“그러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정효주는 다소 긴장했다. 그녀가 보기에 박효리는 유지웅의 재력에 호감을 품고 접근한 여자였다. 유지웅은 아니라고 하는데 신부 입장에서는 어디 안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부유한 남자한테 경제적으로 지원 받으며 풍족하게 사는 미모의 여대생 이야기가 흔치 않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신랑이 그런 생각이 전혀 없고, 또 믿으니까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신랑한테 너무 간섭하고 싶지도 않았다. 고생고생해서 힘들게 내숭을 지키고 있는데 그게 깨질까봐 두렵다.
“언니가 지웅 오빠 부인이라는 거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전 11학번에 있는 줄 알았거든요. 오빠가 제니스 공격대장이란 것도 전혀 몰랐고요.”
“그러니?”
“저, 언니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
정효주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 이거 꽤 강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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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슐 : 가르친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