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53)
00253 말하는 대로 =========================================================================
강희중 의원은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그는 짐짓 불쾌해졌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유지했다.
‘거지들 같으니.’
기자. 특종감만 생기면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지는 족속들. 4선 의원인 그로서는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드는 종자들이었다.
“오늘 정부에서 출석을 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의원님. 특별 전문가를 초빙했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퇴근이 좀 늦어지겠군. 민화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입니다.”
현직 대통령은 무소속이다. 비교적 제2당인 민화당과 가깝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한계는 있다. 또한 민화당도 결정체 통제본부 내부에 민간 감시 기구를 두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양 거대정당은 꿋꿋하게 정부의 방안을 거부하고 있었다.
정부기관 감사는 국회 고유의 권한이다. 그것을 굳이 민간에 이양하는 것은 번거로운 이중 장치를 도입하는 것뿐이다. 당연히 계통에도 혼란이 생기고 능률도 떨어진다. 그것이 강희중이 총재로 있는 경주당의 한결같은 입장이었다.
“지금부터 제19대 국회 임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국회가 열렸다. 여러 안건이 있었지만 가장 뜨거운 감자는 결정체 통제본부 설립 구조였다.
젊은 의원들이 나서서 입씨름을 하는 것을 강희중은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이제 정부측 특별대변인의 말이 있겠습니다.”
저게 그 특별 초빙한 전문가라는 사람인가? 그런데 너무 젊지 않나? 단상에 오르는 청년을 보면서 강희중은 속으로 그렇게 비웃었다. 그러나 상대의 소개를 듣는 순간 비웃는 마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유지웅입니다. 제니스 공격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순간 국회가 술렁였다. 보이지 않는 동요가 일어났다. 강희중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아니, 저게 왜 이 자리에?
‘망할 최재형!’
강희중은 속으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지웅은 태연하게 원고를 참고해가며 발언했다.
“결정체 통제본부는 연간 원가만 200조 원이 넘는 결정체 시장을 총괄 통제하는 거대 부서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자원의 배분을 좌지우지하며 국가 경제에 필연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 부서 내부에 비리가 생긴다면 치명적인 피해를 불러올 겁니다. 민간 감시 기구만이 그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가 말을 끝맺자 조용해졌다. 지겹게 예상하고 있던 평범한 논리였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영향력이 완전히 달라진다.
포화를 퍼부으려고 준비하고 있던 의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 눈치만 살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제니스 공격대장이란다. 누군들 저 사람과 척을 지고 싶겠느냐 말이다.
강희중은 혀를 차며 보좌관에게 눈짓을 했다. 약속된 신호가 전달되었다. 항의를 지시받은 어느 초선 의원이 용감하게 발언권을 신청했다.
“정부 기관 감시는 국회의 고유 권한입니다. 국회는 국민, 즉 민간을 대신하여 국정 기능을 수행하는 간접민주주의의 표본 기관입니다. 그런데 굳이 민간 감시 기구를 둔다는 것은 국정 업무의 능률만 떨어뜨립니다. 오히려 또 다른 비리를 불러올 가능성은 생각 안 하십니까?”
상대가 상대다 보니 비교적 말이 얌전하게 나왔다. 강희중은 깍지를 끼고 관찰했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까?
“저는 민간 감시 기구를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JH 정권이 끝나면 청탁 인사를 실시해서 결정체 통제본부를 자기들 입맛대로 움직이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의원 여러분들은 그 자들의 로비를 받고 민간 감시 기구 도입을 반대하는 거 맞습니까?”
폭탄이 터졌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긴장감이 맴돌았다. 의원들의 얼굴이 저마다 새하얗게 질렸다. 국회 회의장에 저런 폭탄 발언을 터트리다니. 미쳤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둘 다거나 셋 중 하나이리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구합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도입하는데 반대하지 마세요. 반대하는 분들은 그런 부정 청탁을 받고 개입한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시면 조용히 찬성표를 던져 주세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정곡을 찔러 온다. 과연 어느 누가 이 자리에서 저런 대담한 발언을 할 수 있을까. 더 분한 것은 이런 모욕을 받았음에도 제대로 된 항의를 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강희중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 * *
“아무 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국회를 나서는 길에 차안에서 강희중은 씨근덕거리며 분노를 토해냈다. 오늘 그는 자존심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어온 게 누구인데! 지금까지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공을 대체 뭐로 보고! 새파란 애송이 따위가 감히!”
모욕을 받았던 순간을 상기할 때마다 몸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낀다. 더욱 화가 나는 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고작 스물 두 살의 청년에게 노련한 정치가들이 한 마디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꼼짝할 수밖에 없었다. 명분이나 논리에서 밀린 게 아니라 힘에서 완벽하게 밀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발언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 자기가 이게 옳다고 여기고 있으니 따라주기를 바란다는, 이른바 어명이었다. 누가 감히 어명에 토를 달 수 있을까.
겨우 진정한 강희중이 보좌관에게 물었다.
“민화당 반응은?”
“우리 이상으로 난처해하는 모습입니다. 설마 정부 측에서 유지웅 회장을 대변인으로 내세울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심지어 당 내부에서 회의론까지 돌고 있습니다. 그 자의 발언이 보통 파급효과를 가진 게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비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청탁을 받고 민간 감시 기구 도입을 반대하는 것 아니냐. 그 말에 젊은 의원들은 한결같이 크게 동요했다. 누구나 머릿속에 가능성을 담아두면서도 당론 때문에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직시하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 상대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끄집어냈던 것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어. 대책을 찾아보게.”
보좌관은 고집을 부리는 강희중을 불안한 눈으로 봤다.
강희중은 결정체 카르텔과 혼맥으로 얽혀 있다. 당장 그의 큰며느리만 해도 SKK에너지 회장 딸이다. 그밖에도 모든 4대 유통업체와 친족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결정체 통제본부에 민간 감시 기구를 두는 것에 완강하게 거부했다. 민간 감시 기구를 두면 최재형이 정권을 잡고 있는 지금은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 경주당에서 정권을 탈환했을 때 골치 아파진다. 미래를 내다본 한 수였던 것이다.
‘이거 침몰하는 거 아닐까 몰라.’
그런데 유지웅이 나섰다. 과연 이대로 경주당에 몸을 담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보좌관은 그 점이 못내 불안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네, 김형태입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예?”
평온하게 전화를 받던 김형태 보좌관은 화들짝 놀라서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강희중을 쳐다봤다.
“의원님, 유지웅 회장의 개인 비서실장입니다.”
“뭐, 뭐야?”
“지금 유지웅 회장이 만나 뵙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강희중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만나서 좋을 것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피해서 좋을 것은 더더욱 없는 인물이다.
아마도 용건은 뻔하리라. 민간 감시 기구 설립에 관한 압박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압박을 할지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원체 가늠이 되지 않는 인물 아닌가.
“일정을 잡아보게. 모레쯤이 좋겠어.”
“지금 당장 뵙고 싶다고 합니다. 바로 차를 이쪽으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뭐야? 이런 발칙한 것 같으니!”
화가 났지만 그보다는 겁도 났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었다. 유지웅이 보낸 리무진이 이미 도착했다. 고민하던 강희중은 결국 리무진에 옮겨 탔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애써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의전용 고급 리무진이라서 그런지 승차감은 좋았다. 내부 시설도 화려하고 안락하게 꾸며져 있었다. 미 대통령이 쓰는 모델이라고 하던데 과연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리무진은 부드럽게 달려 흑석동 저택에 도착했다. 강희중은 처음 와보는 곳이다. 말로만 듣던 서울 내의 궁전을 본 순간 그는 가볍게 전율했다.
정문을 통과한 리무진은 정원 사이로 난 길을 달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본채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옷을 입은 유지웅이 맞이했다. 사교적인 웃음을 짓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기 어려웠다. 아까 단상에서 봤을 때는 마냥 청년인 줄만 알았는데, 다시 보니 범접하기 어려운 포스가 묻어났다.
이건 숫제 집이 아닌 궁전이었다. 궁전에 발을 디디니 비로소 그가 왕이라는 실감이 났다. 과연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마저 몇 수는 접어준다고 하는 인물다웠다.
“제가 갑작스럽게 초청해서 놀라셨을 줄 압니다. 하지만 문제를 질질 끌지 말자는 주의라서요.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저도 한 번쯤 독대하고 싶었습니다. 국회 회의장에서 못 다한 말도 있고요. 그에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잔뜩 있습니다.”
“뭔가를 오해하고 계시군요. 저는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지 않습니다. 아까 국회에서 발언한 게 다입니다.”
“……예?”
“강 의원님을 뵙자고 한 건 민간 감시 기구 때문이 아닙니다. 따로 용건이 있어서입니다.”
4선 의원이라는 노련함은 어디 가고, 그는 페이스를 완전히 빼앗겼다. 자신의 아들뻘보다 어린 청년에게 말이다.
“유 회장님, 하지만 이건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장관급 정부 기관에 민간 감시 기구를 두는 전례는 우리나라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국정 업무의 능률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합니다. 정부 기관 감시는 어디까지나…….”
“그에 관한 제 입장은 이미 말했습니다. 잊으셨나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세요.”
“…….”
머리가 시키지 않았는데 몸이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의 경고에 누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잔뜩 생각해두었던 변명거리들이 머릿속에서 엉망으로 엉켜버렸다.
강희중은 새삼 힘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제아무리 정교한 명분도, 논리도, 압도적인 힘의 격차에서는 무의미한 것이다. 유지웅은 골치 아픈 논리를 끌어오지 않았다. ‘더 할 말 없다’라는 간단한 공격으로 격침시켜 버렸다.
“저도 눈이 있고 귀가 있어요. 알아봤는데 강 의원님께서 결정체 카르텔에 몸담고 계시다고요. 제가 보기에는 의원님 본인과 친족의 이익을 위해서 반대하는 게 확실합니다.”
“그것은 오해…….”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 제가 말씀하시라고 하실 때 말씀하시면 돼요.”
“…….”
“저는 레이드만 잘하고 돈만 잘 벌면 됐지, 그 외는 별로 관심 없었어요. 하지만 막상 이런 걸 알게 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요. 이 나라 국민으로서 요구할게요. 의원직에서 사퇴하시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세요.”
강희중은 정수리에 전기가 흘렀다. 아니, 지금 뭐라고 했지? 뭘 사퇴해?
“그 말씀 드리려고 번거롭게 오라고 초청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대로 하세요. 그럼 이만 가보셔도 돼요.”
인생을 부정당하는 일방적인 통고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그는 한 마디도 입을 뗄 수 없었다. 어느 정치판에도 이런 식의 화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정치적 수사란 논리를 기반으로 한 설득이 포함되어야 하는 법. 하지만 그의 말에 설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화술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 그리고 몸 건강하신데 군대는 왜 안 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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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명에는 사족을 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