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54)
00254 말하는 대로 =========================================================================
강희중 의원이 흑석동 저택을 방문했다는 소식은 이형준 회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대화 내용까지 알아낼 길은 없었으나 앞뒤 정황을 보면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견적이 나왔다.
“아마도 강한 경고를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황 실장의 조심스러운 보고에 이형준은 쓴웃음만 지었다.
“강 의원 반응은 어떤가?”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욕심 낼 걸 욕심내야지. 쯧쯔…….”
유지웅은 자기 이익에 민감한 인물이다. 다른 부서라면 몰라도, 결정체 통제부서라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곳에 자기 사람 심기를 한다? 그런 곳에 빨대를 꽂는다? 사자의 코털을 뽑는 미친 짓이다.
“국회 반응은?”
“과반수가 민간 감시 기구를 도입해야 하지 않느냐고 입장을 전환한 것 같습니다. 유 회장의 경고가 강한 효과를 발휘한 모양입니다.”
“그럼 민간 감시 기구는 시민 단체에서 맡게 되나?”
“정부의 계획에 그런 제안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성향으로 보건데 그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유 회장이 직접 맡을 가능성은 없는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만, 유 회장 성향상 과연 그러려고 할지는……. 자기가 직접 매달릴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닌데 거기에 시간을 할애할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눈을 떼진 않겠지.”
지금 국회와 정부 간에 논의 중인 일은 일성 그룹과는 전혀 관계없었다. 결정체 관리부서를 재편하는데 깨끗한 운영을 위해 감시단체를 두겠다는 것 아닌가. 그게 일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다.
다만 결정체 유통업체들로서는 고역일 것이다. 다음 정권 탈환을 대비해 여러 가지 ‘해먹을 수 있는’ 빨대를 꽂아두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무산되었으니.
난을 다듬으며 이형준은 중얼거렸다.
“현실에 적응할 줄을 알아야지. 언제까지 과거의 방식에만 집착할 텐가. 미련한 사람들…….”
유지웅은 머지않아 세계 제일의 부자 가문으로 거듭날 것이다. 안전지대 설치를 내세워 새로운 패권의 주축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마저도 몇 수 접어주는 인물을 상대로 대항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태풍 앞에서는 납작 엎드려 태풍의 흐름에 순응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변화를 읽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일성이 유지웅 때문에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보면서도 전방면에서 양보하는 것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다.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이득이며, 손해를 줄이기 위한 현명한 대처다.
* * *
A3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유지웅 커플은 즐겁게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다녀온 몰디브는 여전히 멋지고 아름다웠다.
“너무 좋더라. 다음에 또 가고 싶어.”
“언제든 가면 되지.”
와이프가 즐거워하는 걸 보니 남자로서 마음이 뿌듯했다.
둘은 대기 중인 V-23을 타고 흑석동 저택으로 돌아왔다. V-23을 이용하면 이동하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때문에 집 근처에 활주로를 설치하려고 했던 계획을 자꾸만 미루게 된다.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비서실장이 바쁘게 보고를 했다.
“국회에서 민간 감시 기구를 두는 것으로 합의가 났습니다. 다만 어떤 형태의 기구를 조성할 것인지는 아직 논의 중에 있습니다.”
“어려울 게 뭐 있나요? 레이더 중에서 맡으라고 하면 되지.”
“그렇게 전하면 되겠습니까?”
“사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결정체를 생산하는 주체가 레이더인데, 당연히 레이더가 적극 나서서 감시하고 그래야죠.”
감시 기구가 별 거 아니다. 운영을 잘 하는지, 비리는 없는지 감시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어차피 실무는 관련 전문가들이 맡겠지만, 감시 기구의 장은 레이더 중에서 나와야만 한다. 그게 유지웅의 생각이었다.
휴가 다녀온 사이에 일이 잘 해결된 것을 확인한 유지웅은 만족스러웠다.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강우석 의원님은 왜 그렇게 고민한 건지 모르겠네.”
아마 강우석이 그 말을 들었으면 거품을 물었으리라. 자기에게 쉽다고 모두에게 쉬운 게 아닌데 말이다.
신랑의 행동거지를 항상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정효주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다. 신랑은 자기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해석되는지 관심이 없다. 모르는 게 아니라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중국의 결정체 수출을 봉쇄한 것 때문에 얼마나 기가 막힌 음모론이 나돌았던가. 그가 SC컴퍼니처럼 국제 결정체 유통망을 움켜쥐려고 한다고 말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특별 발언을 한 것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민간 감시 기구를 직접 맡을 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4대 유통기업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이 나라 결정체 시장을 독점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거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진실한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맸다.
하지만 정효주가 보기에 다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유지웅은 돈에는 관심이 있지만 사업, 정치적인 것에는 그다지 눈길을 주고 있지 않다. 그런 복잡한 것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쉽고 간단하게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데 왜 그래야 할까.
유지웅이 씻는 동안 정효주는 패드컴퓨터로 뉴스를 검색했다.
―동요하는 중국, 이대로 괜찮은가?
―수출 봉쇄 해지를 위한 강경한 요구. 우리 정부 입장은?
―OCCD 회원국, 단호한 거부.
인터넷 기사가 좋은 점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여론의 반응이나 인식 그 자체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
현재 유지웅과 중국의 대립을 놓고 별의별 관점이 다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정효주는 굵직한 것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챙겨 보는 쪽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는 1층에 내려갔다.
“김 실장님. 전에 부탁한 건 어떻게 됐나요?”
“전부 처리했습니다.”
“그이한테는 비밀이에요. 아시죠?”
“네. 물론입니다.”
입장이 입장이다 보니 유지웅도 유명세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간혹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를 헐뜯는 무리가 있었는데, 정효주는 김 실장에게 부탁해서 조용히 일을 처리하곤 했다.
처리한다고 하지만 별 거 아니다. 개인 정보를 알아내서 경고를 한다거나 직장 등에서 불이익을 준다거나 뭐 그런 정도다. 다른 건 참아도 신랑한테 패륜적인 욕설을 하는 것은 절대로 참지 못한다.
“여기 있었어? 김 실장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아, 별 거 아니야. 몇 가지 부탁할 게 있어서.”
“뭔데?”
“응. 갖고 싶은 장신구가 좀 있어서. 근데 우리나라에서 구하기가 좀 애매한 거 있지.”
신랑이 내려오자 바로 화사하게 웃으며 태도가 돌변한다. 비서실장은 그것을 보고 가벼운 섬뜩함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차가운 표정으로 비밀 유지에 조심하라던 여자와 정녕 동일인물이 맞는지 눈이 의심될 정도다.
“웬일로 외국에서 장신구를? 너 별로 그런 거 관심 없었잖아.”
“난 여자 아니니? 왜, 아까워?”
“아깝기는. 그냥 막 사. 사고 싶은 대로 다 사.”
“진짜? 그래도 돼?”
“딴 놈 보여주려고 차는 것만 아니면 돼. 막 사.”
그렇게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 커플이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두 사람이 스물두 살이라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비서실장은 한편으로는 유지웅이 매우, 몹시 부러웠다.
정효주가 유지웅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날선 반응을 보인다지만, 그만큼 신랑을 아끼기 때문이리라. 자신도 저런 여자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남자라면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게 부러워하고 있는데 전화기가 진동했다. 비서실장은 회장 부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비켜서 전화를 받았다.
“예. 김 실장입니다. 예? 뭐라고요? 알겠습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비서실장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그는 급히 유지웅에게 달려갔다.
“회장님. 전화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호남입니다.”
“호남에서요? 무슨 일이지?”
호남에서 전화했다면 한 군데뿐이다. 브라우니 및 호남평야 관리단에서 연락한 것이다. 그곳에는 자문단 멤버도 있다.
“유지웅입니다.”
「회장님, 급히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요? 말씀하세요.”
「시험 경작지에서 쌀 재배에 성공했습니다. 안전지대 설치 이후 토양의 성질이 중화된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유지웅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남평야에도 안전지대를 설치하긴 했다. 하지만 겨우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쌀 재배에 성공했다니?
* * *
“결정 에너지가 토양에 녹아들어 땅의 성질이 변한 이후, 식물의 고속 성장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씨를 뿌리고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완전히 성장한 후 시들어 죽게 되는 것이죠. 너무 빠른 성장 속도 때문에 열매조차 맺지 않고 그대로 말라죽어 버리곤 했습니다.”
가로세로 10미터에 달하는 시험 경작지를 안내하는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유지웅은 끄덕거렸다. 황금빛 이삭을 가득 짊어지고 있는 벼는 보기만 해도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안전지대를 설치한 이후 땅의 성질이 어느 정도 변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편의상 중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빠른 성장 속도는 유지된 채 식물이 정상적으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이 벼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씨를 뿌린 게 겨우 일주일 전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겨우 일주일 만에 이렇게 완전히 성장한 것입니다. 게다가 볍씨도 보통의 벼보다 다섯 배는 더 많습니다.”
“이거 그런데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 건가요?”
“지금 성분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시험 삼아 동물에게 먹여보았는데 아직까지는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만약 식용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 뒤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지웅은 얼떨떨했다. 그냥 농민들이 안 되어 보여서 사준 땅이다. 집안에 남아돌다 못해 굴러다니는 결정체를 주고서 말이다. 좋은 일 한 번 한다 생각하고 황무지를 산 건데, 그게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지 않는가?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호남평야가 미국에 있는 대농장보다 더 많은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와, 역시 좋은 일을 하니까 사람이 보답을 받는구나. 옛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니까. 저 그냥 다 때려치우고 귀농해서 농사나 지을까요?”
농담으로 한 말에 교수는 웃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렸다.
“만약 식용에 이상이 없다 치면, 이 땅의 생산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일주일 만에 벼가 완전 성장을 하고, 보통의 벼보다 두 배 이상의 볍씨를 맺습니다. 이 데이터만 가지고 단순 계산을 하더라도 대충 그 결과는…….”
“어마어마하네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작은 절대 금지 사항입니다. 임대를 하시거나 아니면 직접 번거로우시더라도 농업 법인을 설립하셔서…….”
“뭐 하러 그래요? 안 그래도 돼요.”
“예?”
“우리 부모님 농사 지으시잖아요.”
효도하기 참 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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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곡물 재벌.
아들은 결정체 재벌.
넵. 세계 제일의 부자 가문도 이제 쿰은 아닌 듯.
근데 아이 낳으면 아이는 뭘 시키죠? 군산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