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75)
00275 회장의 일상 =========================================================================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수십 년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어지면서, 오늘처럼 놀랐던 적이 있었던가. 오늘처럼 감정 통제가 되지 않아 낭패를 겪은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은은한 빛을 내뿜는 결정체는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저 조그만 보랏빛 구슬이 지닌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이론상 퍼플 결정체는 10만 이상의 결정도를 지녔을 때 형성된다. 결정체, 혹은 결정 에너지가 10만 이상 응집하면 비로소 성질과 색상이 변하며 퍼플 결정체로 거듭난다. 그건 현재까지 미국만 알고 있는 이론이었다.
결정도 10만. 에너지원으로 치자면 5,000짜리 블루 결정체 20개에 맞먹는다. 그러나 10만의 퍼플 결정체가 5,000의 블루 결정체 20개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 아니,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정체는 상위 등급으로 변화할 때마다 그 가치가 더욱 증가한다. 상위 결정체는 에너지원보다는 그 고유의 성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더욱 높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그린 결정체로 만든 반도체와 블루 결정체로 만든 반도체는 성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10만의 퍼플 결정체. 결정도로 치면 감정가는 10조 원이다. 하지만 고작 10조 원만 할까? 앞으로 두 번 다시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결정체인데? 세상에 단 하나 뿐일지도 모르는데?
“이건…….”
빌클런이 입을 열려고 할 때 유지웅이 선수를 쳤다.
“녹서스의 돌은 결코 아닙니다.”
“…….”
“어디서 얻었는지 제가 말해드릴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녹서스의 돌은 결코 아닙니다. 미국이 이 결정체에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굳이 녹서스의 돌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겠다는 의사 표명일까? 빌클런은 재빠르게 생각했다. 녹서스의 돌이 아니라면 블랙 몹을 사냥해서 얻었다고 봐야 한다.
히카리? 식물 군체? 아니면 불원숭이?
빌클런은 빠르게 생각했다. 일단 불원숭이는 다수의 블루 결정체를 쏟아냈으니 아니다. 식물 군체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탈락. 그렇다면 히카리를 잡고 얻은 것일까?
하지만 히카리를 잡고 결정체를 획득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한국 정부의 동향은 EIS가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모르는 새 유지웅이 챙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생각을 마친 빌클런이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녹서스의 돌은 휴스턴 대참사 때 이미 증발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귀하에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 하나의 매듭을 풀었다. 유지웅은 살짝 풀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블루 결정체는 그린 결정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죠. 에너지원보다는 고유의 구조에서 오는 화학 성질이 그 가치를 높여줍니다. 퍼플 결정체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럴 겁니다.”
“그 이용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자본을 들여 결정체 연구단지를 설립했습니다. 본격적인 연구 시작에 앞서 귀국이 이룩한 연구 자료가 필요합니다.”
빌클런은 마른침을 삼켰다.
같은 요구를 다시 한 번 받았다. 그러나 아까와는 상황이 완전히 반전했다. 민간의 재산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 자리에서 거절하기에는 떡밥이 너무 컸다. 아니, 애초에 거절을 한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대답해줄 수 없는 문제라고 보류했을 뿐이다. 안전지대 설치는 반드시 유치해야만 하니까.
“나흘 뒤에 귀국할 예정이었습니다만……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군요.”
한참 후 빌클런이 그렇게 입을 열었다.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대답이었다. 유지웅은 자문단과 눈을 마주쳤다. 교수가 끄덕이자 그는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좋은 대답이 있길 빌어요, 미스터 프레지던트.”
* * *
미 대통령 수행진은 발칵 뒤집혔다. 퍼플 결정체라니, 예정에도 없던 엄청난 일이 터졌다. 본국에도 급히 소식이 전파되었고 원격 화상 회의가 열렸다. 주요 장관들이 소환되어 급히 국무 회의를 가지고, 중요한 협상 방안을 정리했다.
「우리에게 먼저 제시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적어도 공화당보다는 우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암시가 아니겠습니까?」
「크리스탈 시티의 지적 재산을 원한다면 줘야 합니다. 안전지대 설치 대가로는 싼 거 아닙니까? 이쪽이 성심성의껏 성의를 보인다면 퍼플 결정체 연구에 우리 연구소가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제니스 회장이 과연 외부 연구진의 참가를 허용할까요? 향후 인류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도 있는 엄청난 연구 테마입니다. 저라면 절대 남과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겠습니다.」
「너무 큰 보물을 갖고 있는 것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차라리 타인과 손을 잡는 게 보물을 지키는 길입니다.」
「너무 큰 보물? 위험? 뭔가 착각하는 거 아닙니까? 누가 감히 제니스 회장한테 보물을 뺏겠다고 칼을 들이댈 수 있겠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정황을 보면 히카리를 처치하고 획득한 결정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줄곧 묻어두었다가 지금 이 시기에 퍼플 결정체를 공개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거 아니겠습니까?」
원격 화상 장치를 통해 빌클런은 국무위원들과 심도 깊은 회의를 가졌다. 위원들은 저마다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자기주장을 펼쳤다.
“먼저 우리는 제니스 회장의 현재 국제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명해 주세요.”
「네, 각하. 제니스 회장은 개인으로서는 이미 세계 제일의 부자입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가문으로서도 세계 유수의 부호 가문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OCCD 회원국 대다수 국민들이 자기 나라 대통령은 몰라도 제니스 회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인지도는 이미 우리 미합중국 대통령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그 정도나 된단 말입니까?」
「안전지대 설치 능력이 결정타가 되어주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안전지대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안전지대를 오로지 제니스 회장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
「퍼플 결정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크리스탈 시티 규모에 버금가는 종합 연구 단지가 필요합니다. 제니스 회장은 그것을 단시간에 실현할 수 있는 재력, 영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간섭에서 퍼플 결정체를 지켜낼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미 그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객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한국 정부를 이용해서 공동 연구를 노려보는 것은 불가능하겠군요.」
「역효과가 난다고 장담합니다. 오히려 그의 비위를 맞춰서 선심을 쓰길 바라는 게 효과적일 겁니다.」
빌클런은 위원들의 토론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퍼플 결정체, 너무 탐이 나는 과실이다. 유지웅이 일부러 보란 듯이 보여준 것은 대놓고 떡밥을 던진 것. 하지만 알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게 미국의 입장이었다.
‘휘버 박사가 살아있었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망할 CIA, 그 잘난 애국심과 과잉 충성 때문에 미국의 위대한 결정체 과학자를 어이없게 암살해버리다니.
「그리고 중요한 게 있습니다. 앞으로 또 다시 퍼플 결정체를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보장은 없다는 겁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식물 군단, 불원숭이 경우를 보면, 퍼플 결정체는 괴수의 신체가 그 압력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물질입니다. 불원숭이만 해도 평소에는 퍼플 결정체를 여러 조각으로 분산해두지 않았습니까? 장차 등장하는 블랙 몹을 잡는다 해도, 반드시 퍼플 결정체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블루 결정체가 다수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데머샤 복원 연구는 아직도 제자리걸음 상태랍니까?」
「가렌 박사는 적어도 십 년 이상 무제한 인력과 자금을 투자해야 가능성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결정체 연구자가 한 말입니다.」
「휘버 박사가 사망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요.」
「불원숭이 연구 참여 작업은 어떻습니까? 그 평범한 원숭이가 된 놈 말입니다.」
「보고된 바에 따르면 말 그대로 평범한 원숭이랍니다. 그래도 혹시나 결정체 융합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해서 필사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매달리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제니스 회장도 거의 흥미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가만히 듣고 있던 빌클런은 조용히 물었다.
“만약 퍼플 결정체 공동 연구를 요구한다면 그가 들어주겠습니까? 아니, 그가 공동 연구 요구를 수락하려면 어떤 조건을 제시해야하겠습니까?”
「…….」
「…….」
내로라하는 협상 전문가들이 일제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만큼 파악하기 어렵고, 상대하기 힘든 인물이 유지웅이었다. 부족할 게 없는 인물이기에 무엇을 주어야 할지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일이었다.
* * *
퍼플 결정체의 존재는 한국 정부에도 알려졌다. 당연히 미국 정부 이상으로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났다. 강우석 의원은 법안 검토를 하다 말고 결정체 본부로 달려왔으며, 국장 이상급 간부들이 긴급 소집되었다.
“퍼플 결정체? 그건 대체 뭔가?”
“블루 결정체의 상위 등급 결정체라고 합니다. 최소 결정도 10만 이상이 되어야 형성되는 결정체 같습니다. 자세한 스펙은 여기 보고서를.”
“어서 주게.”
보고서를 낚아채는 손에는 초조함이 깃들여 있었다. 단숨에 보고서를 읽어내린 강우석이 입을 열었다.
“왜 이런 중요한 사실이 내게 알려지지 않았나?”
“정부에서도 꽤나 극비 사항을 다루던 사실입니다. 애초에 퍼플 결정체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번에 그 존재 사실이 알려진 겁니다.”
“어떻게 알게 된 건가?”
“유지웅 회장이 직접 알려 주었습니다. 결정체 연구단지는 퍼플 결정체를 연구하기 위해서 설립한 인프라라고 합니다.”
강우석은 무릎을 탁 칠 뻔했다. 그랬구나 싶었다. 단순히 사회 환원을 위해서 그런 거금을 쏟아 부을 리가 없는데, 왜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일까. 독자적으로 연구해야 할 물건이 있으니까 수십 조 이상의 돈을 쏟아 부어 연구단지를 설립하고, 우수한 연구자들을 모집했으리라.
지금까지 줄곧 숨겨왔던 퍼플 결정체를 공개한 이유는? 아마 이제 때가 되었다는 판단 때문이리라. 미국 대통령이 방한까지 한 상태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에 등장하기에는 적절한 타이밍 아닌가.
퍼플 결정체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감히 가늠이 안 된다. 하지만 그린 결정체와 블루 결정체의 차이를 생각하면, 얼추 상상화가 그려진다. 게다가 세계에서 유일한 물질이다. 이 연구를 잡는 나라가 앞으로 결정체 산업의 패권을 주도할 것이다.
안전지대는 유지웅 개인의 위상과 부를 불러다주는 능력이다. 하지만 퍼플 결정체는 다르다. 정부가 참여할 길이 얼마든지 있는 소재다.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그래서 그 과실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유지웅 회장은 미국과 공동 연구를 하거나, 아니면 연구 인력을 제공받을 생각인지도 몰라. 그건 절대 안 돼. 이 연구는 우리나라가 철저히 독점해야만 해.”
“방법이 있을까요?”
대통령도, 국회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인데 무슨 재주로? 보좌관이 그렇게 염려를 표하자 강우석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무릎을 꿇어서 부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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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치는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PS : 승급전 미끄러졌슴.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