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80)
00280 대항해 레이드 =========================================================================
흑석동 저택에 급히 소집된 자문단은 레이드 관리본부에서 파견된 남기철 휘하 팀으로부터 자세한 정황을 들었다. 태평양 2번 항로가 운항 중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해양 전문가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해양 관련 석학뿐만 아니라 경제나 정치 관련 분야 인원들도 얼굴색이 굳어졌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었다. 유지웅은 왜 그런지 이해를 못해 갸웃거렸다.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회장님.”
자문단의 대표격이자 그의 지도 교수인 손재진이 말을 꺼냈다. 그는 유지웅의 뜻대로 사석에서는 편하게 말을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예의를 차린다.
“북태평양 항로는 미국과 우리나라를 잇는 태평양의 유일한 안전항로입니다. 만약 이 항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인도양이나 대서양을 거쳐 미국에 가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당장은 물류 수송이 막힙니다. 세계 물류 운송의 70%가 해로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나라와 거래하던 주요 항로가 막힌 겁니다. 국내 기업들에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겁니다. 일단 대서양 항로를 통해서 진입 방향을 바꾸면 되니, 물류 도착 시간이 늦어져 경제적 손실이 크긴 할 겁니다. 다만…….”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북태평양 항로만 사용 불가가 되었다고 볼 때 이야기입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요. 저는 해운업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요.”
이에 자문단은 대략적인 세계 변화 연혁을 이야기했다.
괴수가 출몰하고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연료 시장에서 석유가 퇴출된 것이다. 석유화학분야에서는 아직도 빼놓을 수 없는 소재지만, 그것도 결정체 소재학의 발달로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신세였다.
두 번째로는 바다 이용에 제약이 생겼다는 것이다. 세상에 괴수는 셀 수도 없이 존재하고, 당연히 바다가 육지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육지에서는 공격대를 동원할 수라도 있지, 바다는 그것조차 안 된다.
괴수 출몰 초기에 무수한 숫자의 선박들이 바다에서 괴수의 습격을 받아 침몰했다. 당시 물자 이동이 꽉 막히는 바람에 전 세계적인 대공황이 닥쳤다. 하마터면 인류가 구축한 문명 기반이 완전히 무너질 위기가 온 것이다.
다행히 인류는 현명했고, 대응법을 찾아냈다. 온갖 희생을 아끼지 않고 괴수가 출몰하지 않는 안전한 항로를 찾아낸 것이다. 세계 항로 지도가 개편되고, 이용 가능한 항로 숫자가 턱없이 줄어들었지만 결국 인류는 다시 바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북태평양 2번 항로는 동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태평양의 유일한 항로입니다. 그 폭이 50km에 달하는 거대한 동맥이죠.”
자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설명이 끝났다. 진중하게 듣고 있던 유지웅은 알았다는 듯이 끄덕거렸다.
“그럼 교수님들이 염려하시는 건 단순히 북태평양 2번 항로가 막혔다는 문제가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해금현상이 되풀이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다시 어마어마한 진통을 겪어야 할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1차 해금현상 때 전 세계적으로 1억 2,000만 명의 사람들이 추가로 아사했습니다.”
“…….”
그제야 유지웅은 왜 남기철이 그렇게 굳은 표정인지, 자문단 교수들이 왜 그리 심각했는지 깨달았다. 단순히 아메리카 대륙과 이어지는 태평양 항로 하나가 못 쓰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태가 거기서 끝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일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전초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자문단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대서양 5번 항로에도 괴수가 나타났습니다.”
“남태평양 1번 항로도 사용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속속들이 들어온 보고에 각국 정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미국이 가장 먼저 긴급 국제 정상 회담을 제의했다. 회담 장소로는 서울이 지정되었고, 각국 정부는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각국 정상이 탑승한 전용기가 속속들이 서울을 향했다.
중국 문제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터진 전 지구적인 자연 재해에 세상은 바짝 긴장했다. 서울을 개최 장소로 선택한 게 약간 의외였지만, 제니스 공격대가 한국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현재까지 총 7개의 항로가 사용불능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중 4개는 대륙과 대륙을 잇는 주요 대항로입니다. 각국 간의 물류 수송 자체가 원천봉쇄된 것은 아니지만, 주요 항로의 사용불능 문제 때문에 물자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상 회담의 사회자 역을 맡은 김상현 국무총리는 먼저 인류에 도래한 문제를 설명했다.
“UN조사기구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적어도 5개체, 최대 7개체의 괴수가 해수면 표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괴수의 등급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정상 운항 중인 배를 습격한 것으로 보아 레드 타입 개체 이상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국 정상들의 표정은 살벌하게 굳어 있었다. 그들은 1차 해금현상 때 어떤 지옥이 펼쳐졌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바다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해양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현대 사회에서 그것은 악몽이었다. 이건 단순히 경제가 몰락하고 경기가 얼어붙는다는 수준이 아니다. 인류가 구축한 문명 기반 자체가 붕괴해버린다. 말 그대로 지옥이다.
이론상 완벽한 자급자족을 이룬 나라라면 피해는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그런 나라는 없다. 하다못해 미국도 남들보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뿐이다. 식량 등 생필품이 제대로 돌지 않으니 굶어주는 사람이 나오는 일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과거에 1억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북태평양 2번 항로 전체가 못 쓰게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폭이 50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대항로입니다. 괴수 출몰 지점을 피해서 돌아오면 어떻게 되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새로운 수상, 마타니 총리는 얼굴이 하얗게 탈색돼 있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개발도상국에서부터 다시 시작 중인 일본은 바다가 틀어 막히면 끝장이다.
현재 일본이 소비하는 식량의 80% 이상은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었다. 그것도 국내 레이더를 미국에 파견하는 조건으로 얻어낸 해외 원조였다. 안 그래도 레이드 자리 구하기 힘든 딜러들이 해외에서 자기 배당률을 남들의 1/2, 1/3 이하로 낮춰가면서까지 힘들게 벌어들인 돈으로 나라를 겨우겨우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눈물이 담긴 식량이 북태평양 항로를 거쳐서 들어오는데, 비축 식량이 떨어지는 순간 일본은 굶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마타니 총리,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빌클런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우리는 현재 항로를 사용불능으로 만든 괴수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공격 대상 인식 거리라던가, 공격 조건, 활동 주기 같은 것에 대해서 정보가 일절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해로를 이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하지만 해로를 이용하지 않으면 당장 국민에 공급할 식량이 없습니다.”
북태평양 2번 항로를 못 쓰게 된 것도 벌써 2주가 지났다. 그간 일본에 들여오던 식량과 해외 물자는 대서양 등을 경유해서 다른 길로 돌아오고 있었다. 당연히 2주 전에 들어왔어야 할 배들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총리 입장에서는 다른 항로도 언제 막힐지 알 수 없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구는 것이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나라, 국내 레이더를 싼값에 해외에 대량으로 인력 제공을 통해서 나라를 겨우 유지하는 나라, 사방이 바다로 막힌 나라의 숙명이라고 해둘까.
“총리, 급한 것은 일본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모인 나라들 전부 마찬가지입니다. 해금현상에서 문명 기반을 지킬 수 있는 나라는 없어요. 우리 미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50여 개 이상의 국가가 모인 정상회담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대동맥에 비유될 만큼 주요 항로가 몇 개 사용불능이 되긴 했지만 우회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자 운송에 다소 차질이 빚어지긴 하겠지만, 그리고 수송 과정에 좀 더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아직 순환 통로가 막힌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별 탈 없었던 해로에 갑작스러운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엄청난 문제다. 임시조치로 버틸 수 있다 해서 손을 놓고 관망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책임 실격이다. 서울에 모인 국가 정상들은 그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 * *
“서울에 정상 회담을 개최한 건 날 의식해서겠지?”
“아마 맞을 거야.”
“내가 나서야 할까?”
“…….”
정효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유지웅은 그녀의 배에 뺨을 댄 채 살며시 쓰다듬었다. 이제 조금씩 부풀기 시작한 아랫배. 이 안에 자신이 심어 놓은 생명이 숨 쉬고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이게 바로 아빠가 되어간다는 것일까.
“아무리 제니스가 뛰어나도, 바다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도리가 없잖아.”
“넌 어떡하고 싶은데?”
“모르겠어. 솔직히 걱정이 되긴 해.”
이번에는 유지웅이 물었다.
“넌 내가 어떡했으면 좋겠어?”
“…….”
잠시 그녀는 침묵했다. 그는 재촉하지 않고 와이프를 기다렸다. 어떤 대답이 돌아와도 좋고,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좋았다.
“난 그냥…… 네가 너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
“그거면 돼?”
“응. 뭘 해도 좋으니 후회만 하지 마.”
그 말을 듣고 유지웅은 생각했다. 자신은 영웅이 아니다. 레이드를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을 버는 목적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다. 레이드계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리고 자신이 이룩한 지위에 알맞는 사회적인 책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안슐과 화상 통화를 했다.
「오, 잘 지냈나? 친구. 저번 프리미어 우승컵을 뺏긴 것은 좀 아까웠네.」
“한 골이 우승을 갈랐죠. 다음 시즌도 우승컵은 제가 차지할 거예요.”
「그건 안 되지. 내 클럽 선수들이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있네. 다음 시즌은 어려울 거야.」
몇 가지 안부를 주고받은 다음 유지웅은 비로소 본론을 꺼냈다.
“몇 개 해로가 못 쓰게 됐다는 건 알고 계시죠?”
「당연하지. 내 형도 이번에 UAE 정상으로 서울에 참석했다네.」
“아, 그래요? 그럼 꼭 한 번 뵈러 가야겠어요.”
「안 그래도 자네 얼굴 한 번 보게 해달라고 난리여서 내가 조금 난처했는데, 그래주겠나?」
“물론이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니 안슐도 이번 일을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친구라서인지 그는 사실 그 자체만을 뽑아내서 간략하게 전달해주었다. 자문단처럼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복잡한 인과관계를 곁들여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피부로 받아들이기 좀 더 쉬웠다.
「유통비는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예를 들어보겠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은 결정체 유통업체들이 두 배 가까운 유통마진을 남겨먹지 않았나?」
“그랬죠.”
「해로가 막히면 항공으로 수송할 수밖에 없지. 당연히 유통비용이 폭증하네. 한 번 유통비용이 생산원가의 백 배 이상이 된다고 가정해보게. 그런데 한국 결정체 유통업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는 마진이 아니라 순수한 수송비용이란 거네.」
“…….”
「그리고 항공 수송에는 결국 한계가 있네. 바다가 봉쇄되면 결국 인류는 죽음뿐이야. 적어도 현재 인류 수가 5억 이하로 줄어든다고 단언할 수 있네.」
비슷한 이야기는 이미 자문단을 통해서도 들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추측이 아닌,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친구의 확언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피부에 얼음물을 확 끼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다른 주요 대항로마저 막히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다네. 하지만 문제가 더 커진다는 보장은 없지.」
“문제가 여기서 수습된다는 법도 없죠.”
「내가 말해줄 건, 이 일이 자네 책임이 아니라는 걸세. 그러니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말게.」
“제 위치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나요? 안슐이 항상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게 부의 진정한 사용법이라고요.”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안슐은 조용히 덧붙였다.
「자네를 희생하라고 한 적은 없네.」
책무와 희생은 전혀 다른 단어다. 유지웅은 마음이 편해졌다.
국제정상들이 왜 서울로 왔겠는가? 자신이 이 사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자기 얼굴만 보러 온 거라 그동안 적지 않은 심적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졌다. 적어도 주요 지침은 세워졌다.
“고마워요. 안 그래도 내일 정상 회담에 출석해달라고 해서 좀 고민이었는데, 기분이 나아졌어요.”
「부담 갖지 말게. 그저 평소보다 약간의 격식만 더 차리면 아무 문제없는 자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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