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65)
00365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
갑작스러운 고래 괴수들의 접근에 수송함대는 뒤집어졌다. 각 함정은 급히 진형을 해체, 산개해서 전속력으로 도주를 감행했다.
“하필이면 이럴 때!”
함대는 지금 괴수 방위 능력이 전무했다. 애초에 원양 레이드를 위해 조직된 함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함대에는 지금 한 명의 레이더도 탑승하지 않은 상태였다.
유지웅 커플이 레이더 승무원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지금 수십km 밖의 해역에 있었다. 굳이 싸울 수 있는 존재를 꼽자면 피즈 정도?
하지만 저 조그만 녀석이 상대가 될까? 아니, 애초에 훈련도 제대로 안 된 녀석이 23마리나 되는 고래 괴수 ‘공격대’를 상대로 과연 몇 초나 버틸 수 있을까?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어쨌든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지라, 산개를 하면서도 전투 능력이 있는 함정은 부랴부랴 전투 준비를 갖췄다. 전투 능력이 전무한 수송선은 최대한으로 속력을 높여 도주 중이었다. 특히 파견 병사들을 태운 수송선은 죽을힘을 다해 해역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괴수는 재래식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함정의 전투 행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시선을 잡아끌거나, 시간은 벌 수 있으니.
“거제함! 괴수와 조우 직전! 거리 약 300!”
가장 후미에 있던 구축함이 드디어 따라잡혔다. 최성근 중장은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후속 보고가 잇따랐다.
“거제함! 괴수와 충돌!”
고래 괴수는 무식하게 육탄 공격을 해왔다. 물속에서 솟구치며 배 측면을 들이박은 것이다. 두꺼운 철판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해수가 콸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배가 좌현으로 심하게 기울었다.
기동을 중지한 거제함은 급히 배수펌프를 가동하고 화재 진압에 나섰다. 전 승무원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되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함장은 눈물을 머금고 명령을 내렸다.
“전 승무원! 퇴함!”
“전원 퇴함! 전원 퇴함!”
퇴함을 알리는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렸다. 승무원들은 바쁘게 갑판으로 뛰어나와 구명정을 내렸다. 닥치는 대로 구명정을 던지고는 기다릴 틈도 없이 뛰어내렸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침몰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안 된다! 배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져야 해!”
“부상자부터 태워라! 멀쩡한 녀석은 그냥 뛰어내려!”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아슬아슬하게 탈출에 성공했다.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노를 저었다. 좌현으로 기울어진 채 연기에 휩싸인 거제함으로부터 1미터라도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우지끈 용골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거제함의 거대한 몸체가 해저로 가라앉았다. 침몰 소용돌이의 여파에서 벗어난 승무원들은 한숨을 돌렸다. 그때였다.
촤아악!
하얀 물거품이 솟구치며 검은 윤기로 번쩍이는 거대한 동체가 수면으로 뛰어올랐다. 처음에는 고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고래의 형태를 한 괴수였다. 거제함을 침몰시킨 녀석들 중 한 개체였던 것이다.
“괴수다!”
누군가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울렸다. 각 구명정의 최고 선임자들은 재빨리 입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큰소리를 내지 마! 괴수를 자극하면 안 돼!”
세 마리의 괴수가 수면 위로 등을 드러낸 채 유유자적하게 구명정 사이를 지나쳤다. 어느 승무원은 바로 코앞을 스치는 괴수와 눈이 마주치고는 흠칫 놀랐다.
괴수는 일부러 속도를 줄이고 느긋하게 지나치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 모습은 마치 조롱하는 것처럼도 보였고, 승무원들의 공포를 즐기는 것처럼도 보였다.
“율곡함 피격!”
“장영실함 격침! 전원 퇴함 중!”
전투 능력이 있는 함은 있는 대로 어뢰와 아스록을 쏟아내며 괴수의 시선을 잡아끌려고 애썼다. 괴수의 이목을 소수에 집중시켜 함대 전체의 피해를 줄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괴수들은 어뢰 등의 통상 공격에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공격이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철저히 무시했다.
“교범과 너무 다릅니다! 도저히 대응이 불가능합니다!”
쏟아지는 피격 보고, 퇴함 보고에 정신을 못 차리던 최성근 중장은 비명처럼 울리는 참모 장교의 절규에도 아무런 할 말이 없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오늘날 사회에서 군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의의는 레이드 지원 임무다. 그것은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끼리의 전쟁은 거의 사라졌으나, 군대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괴수가 습격할 경우 레이드가 올 때까지 군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공격대를 수송하거나, 희생을 감수하고 괴수를 유인하는 역할도 맡는다. 당연히 훈련의 대부분은 괴수 대응에 관한 것이며, 어떤 식으로 미끼 역할을 하고 시간을 벌어야 하는지 등의 전술이 매뉴얼화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함대는 무력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으로 만들어진 매뉴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방어막으로 보호받는 괴수는 당연히 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래도 화려한 폭탄 공격에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다. 괴수의 습격 시, 군대가 기반시설이 적은 지역으로 괴수를 유인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습성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 고래 괴수들은 어뢰 공격 등에도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속속들이 함정만 골라서 공격하고 있었다. 최성근 중장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패턴이었다.
* * *
도주하기 좋은 기회를 놓친 나미는 발만 동동 굴렀다.
원래 그녀는 유지웅 커플이 고래 괴수들과 싸우고 있는 틈을 타서 피즈를 데리고 재빨리 사라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몰랐기에 거듭 망설였다.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유지웅 커플이 고래 괴수들을 무찌르고 복귀 중인 건 아닌지 불안했기에 도망치지 못했던 것이다. 막말로 도주를 시도했는데 그때 딱 그들이 고래 괴수를 다 때려잡고 복귀하다가 마주치면, 정체만 드러나는 꼴이 되지 않는가.
‘아까 도망칠 걸.’
나미는 망설였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지금은 아예 도주할 기회조차 사라져 버렸다. 고래 괴수들이 함대를 사납게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즈를 데리고 도망친다? 말도 안 된다. 녀석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나미는 바다에 살던 시절, 범고래형 괴수 대가족이 사냥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 있었다. 나미 자신도 목표가 되어 죽을 뻔한 위기를 여럿 넘기기도 했다.
녀석들의 협동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몸집이 몇 배가 넘어서는, 다른 어미 괴수가 지키는 새끼를 네 시간에 걸친 공략 끝에 사냥에 성공한 적도 있다. 단순히 힘을 합쳐 덤비는 게 아니라 치밀한 작전을 짜고,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자기들은 거의 피해 없이 사냥을 마치곤 한다.
아직 자신의 힘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는 나미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저 녀석들이 두려웠다. 물론 녀석들이 자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녀석들한테 피즈를 지킬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새끼의 목숨을 가지고 모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꺄아앙!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인간은 듣지 못하는, 나미의 귀에만 들린 비명이었다. 나미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두 마리 고래 괴수가 피즈를 발견하고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다. 피즈는 도망도 못 가고 나미가 탄 배 주변을 빙빙 돌면서 구슬프게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다급해진 나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얀 손이 푸른빛에 휩싸였다. 빛의 파동에 동조하듯이 푸른 수면이 거칠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파동은 그녀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나가며 곧 해일이 되었다.
콰르르릉!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이었다. 엄청난 높이로 일어선 해일이 빠르게 고래 괴수들을 덮쳐 갔다. 그것은 단순한 해일이 아니라 해일의 모습을 한 바다 그 자체였다.
해일에 휩쓸린 고래 괴수들은 저만치 내동댕이쳐졌다. 방어막 덕분에 부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들의 눈동자에 희미한 경계심이 떠올랐다.
배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피즈는 의기양양해서, 인간이 듣지 못하는 저주파 소리를 냈다. 우리 엄마 쎄지, 하며 상대의 약을 올리는 것이다.
“피즈! 그만 둬! 자극하면 안 돼!”
나미가 엄히 말하자 피즈는 풀이 죽어서 멈췄다.
오랜만에 힘을 개방하자 온몸에서 열기가 들끓었다. 나미는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아직도 푸른빛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고래 괴수들은 산발적으로 함정을 급습하던 것을 멈추고, 진형을 갖추어 나미가 탄 배 주위로 몰렸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포위한 행태가, 방금 공격에 제대로 긴장을 탄 듯했다.
“…….”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나미에게 쏠렸다. 나미는 암담함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들켰어.’
방금 전 공격으로 자신이 괴수라는 것을 들킨 것 같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 했다. 유지웅과 정효주가 곧 도착할 테니, 그 안에 도망을 쳐야만 한다. 그것도 새끼를 데리고 23마리나 되는 저 범고래형 괴수들을 뚫고.
온 사방이 적이다. 과연 인간의 손과 고래 괴수들을 피해서, 새끼를 데리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해보는 수밖에.’
나미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이제 감추었던 꼬리를 드러내야 할 때다.
그때였다.
“나미 통제관, 설마 딜러였습니까?”
“물을 매개체로 다루는 딜러도 있었나? 처음 듣는데?”
“보통 딜러는 자기가 직접 비거를 방출해서 공격하지 않아?”
“아니, 그보다 레드 몹 두 마리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어. S급 장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럼 대체 딜량이 얼마라는 거야?”
막 힘을 완전 개방하려던 나미는 얼른 멈췄다. 돌아가는 눈치가 이상했다.
저들은 자신을 괴수로 여기는 게 아니라, 인간 레이더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레이더가 아닌, 상상을 초월한 딜량을 가진 딜러로.
‘어쩌면?’
그때 갑판 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늘을 쳐다본 승무원들은 천천히 내려앉는 브라우니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왔다! 오셨어!”
브라우니가 착지하자 유지웅과 정효주가 갑판으로 뛰어내렸다. 그는 재빨리 함정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연기를 내뿜으며 천천히 가라앉는 함정과, 구명정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승무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안타깝지만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지금은 괴수 대응에 집중할 때였다. 다행스럽게도 고래 괴수들은 이 함정 주변에 몰려 있었다.
“피즈 때문인가?”
“그런가 봐.”
“어쨌든 잘 됐어. 단숨에 죽여 버리자.”
단단히 벼르고 있던 유지웅은 그제야 갑판 분위기가 묘한 것을 알아차렸다. 뭔가 해서 둘러보던 그의 눈에 나미가 들어왔다. 그녀의 몸은 아직까지도 희미한 푸른 아지랑이에 휩싸여 있었다.
장교로 보이는 인물이 급히 나섰다.
“고래 괴수 두 마리가 피즈를 습격했는데, 나미 통제관이 해일을 일으켜서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괴수들이 전부 이 함정 주변에 집결한 겁니다.”
“나미 씨가요?”
“네! 엄청난 위력의 해일이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런 해일이 일어났는데 함정에는 피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해일 자체가 의지를 가진 것처럼, 피즈에게 달려들던 고래 괴수만 물리친 것은 승무원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유지웅이 놀라서 바라보자 나미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승무원들은 괴수가 아니라 딜러로 오인했다. 하지만 유지웅이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적대해야 할 대상이 고래 괴수와 인간이 되느냐, 아니면 고래 괴수로만 한정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전자가 된다면 피즈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다. 어미로서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다.
“나이스! 나미 씨, 설마 비TDH 능력자였나요?”
이 와중에도 봉을 잡은 것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나미는 맥이 탁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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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해일이야. 되돌아갈 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