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66)
00366 내꺼하자 =========================================================================
‘다행이다.’
나미는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우려했던 것이 바보 같았다.
사람은 이변을 대했을 때, 자신이 지닌 상식에 맞춰서 해석하고자 한다. 나미는 지금 해일을 일으켜서 피즈를 덮치려는 괴수들을 쫓아냈다. 그게 유지웅의 눈에는 딜링 계열과 유사한 레이더 능력으로 비쳤던 것이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효주야!”
“알았어!”
“나미 씨! 갔다 와서 이야기해요!”
모비딕도 어느새 도착했다. 정효주가 모비딕 위에 올라탔다. 그녀는 한손으로 모비딕의 등을 단단히 움켜쥐고 자신의 몸을 고정했다.
브라우니를 타고 오는 동안 둘도 나름대로 고민을 했다. 수중장비에 장착된 추진 장치는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지만, 괴수의 속도에 비하면 부질없는 정도다. 치고 빠지는 녀석들을 상대로 기동력에서 현저하게 밀린다.
그래서 모비딕 1호를 이용하기로 했다. 녀석을 탈것으로 쓴다면, 물속에서 기동력으로 애를 먹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계획은 들어맞았다.
「이 녀석들을 그냥 콱!」
정효주는 모비딕을 탄 채로 고래 괴수들 사이를 빠르게 누볐다. 고래 괴수들은 움찔해서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강력한 한 방을 가진 적이 이제 기동력까지 갖췄으니, 불리해진 것은 자신들이었다. 녀석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녀석들은 순순히 당하지 않았다. 다섯 개체가 한 조를 이루어 시차를 두고 모비딕을 상대했다. 시선을 빼앗은 틈을 타서 모비딕의 배를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즉 기수 대신 탈것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효주는 모비딕의 등 쪽에 타고 있었으니, 배를 노리는 녀석들에게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정말 다른 괴수들과는 달라. 이건 뭐 차라리 베링 샤크가 더 쉽겠어.」
칼을 휘두르면서도 정효주는 기분이 묘했다. 지금까지 다수의 레이더와 힘을 합쳐서 강력한 괴수 한 마리를 공략한 적은 있어도, 다수의 괴수들이 힘을 합쳐서 자신을 상대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 상상해본 적은 없는데.
세 마리의 고래 괴수가 정면에서 맹렬히 달려들었다. 움직임이 상하좌우로 빠르게 변환하며 시선을 현혹시킨다. 고래 괴수 중에서 제일 몸집이 작은, 하지만 그래서 기동력은 가장 월등한 녀석들이다.
모비딕 1호도 지지 않고 녀석들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정효주가 쥔 칼날이 하얗게 빛났다. 모비딕 1호는 가장 가까운 녀석의 돌진 궤적에 맞춰 방향을 틀었다.
「좋아!」
딱 절묘한 공격 각도가 나왔다. 모비딕 1호가 녀석의 바로 측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 것이다. 이대로 칼을 휘두르면 녀석의 옆구리에 근접 궁극기를 박아줄 수 있을 것이다.
푸욱!
그때였다. 둔탁한 충격이 아래에서 느껴지며, 모비딕의 몸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얼른 아래를 내려다보니 검푸른 그림자가 유유자적하게 스치고 있었다.
「또야?」
녀석들이 또 정효주의 사각인 모비딕의 배를 공격한 것이다. 배를 들이받아 모비딕의 몸이 떠오르는 바람에 정효주는 공격을 실패했다.
「쳇.」
정효주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웬만하면 각개격파로 끝내려고 했는데.」
결계의 힘으로 주입하는 날개로 무차별 난사를 했다가는 구명정을 타고 표류하는 승무원들이 피해를 입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모비딕 1호를 타고 각개격파로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꽤 길어질 것 같았다. 녀석들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지도 않았다. 기동력을 확보했으니 결국 모조리 섬멸할 순 있겠지만,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지웅아. 결계를 쓰자.」
「다른 함정도 있고 표류 중인 승무원도 있는데? 위험하다고 한 건 너잖아?」
「최대한 조심해서 쓸게. 이대로 오래 끌면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어서 그래.」
「알았어.」
정효주는 모비딕의 등을 세 번 툭툭 쳤다. 수면 위로 상승하자는 뜻이었다.
물 위로 떠오르자 헬기 로터가 밀어내는 바람이 따갑게 내리꽂힌다.
로프를 타고 유지웅이 내려왔다. 그녀는 신랑을 부축해서 받은 뒤, 다시 모비딕의 등을 두 번 툭툭 쳤다. 모비딕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잠수했다.
정효주는 모비딕의 등을 다시 네 번 툭툭 쳤다. 이곳 해역에서 물러나라는 뜻이다. 결계는 유지웅이 주변의 결정 에너지를 무차별적으로 흡수하므로, 모비딕도 그 여파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비딕이 빠르게 물러났다. 정효주는 저 멀리,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고래 괴수를 자신만만하게 노려봤다. 녀석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 죽었어.’
유지웅의 몸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막 결계를 시전하려는 순간, 고래 괴수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어두운 심해로 도주했다.
「도망치는데?」
결계를 펼치려던 유지웅이 빛을 꺼뜨리며 맥이 풀려서 말했다. 정효주는 긴장을 놓지 않고 함대 사령부에 확인을 요구했다.
「통제실, 탐지기 반응은 어때요? 괴수들이 정말 달아나고 있는 중인가요?」
「예! 빠르게 멀어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인근 해역에서 이탈 중입니다!」
정효주는 조금 맥이 빠졌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반응이기도 했다.
녀석들은 아까 결계 능력 덕분에 자신의 무차별 공격에 동료 둘을 잃었다. 인간과 대등한 전투 전술을 펼치는 패턴을 볼 때, 당해내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과감한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유지웅이 입수하자마자 결계를 이용한 공격을 할 거라고 눈치 챈 점이 놀랍기는 하다. 하지만 저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그런 판단 능력을 보유했을 것 같다.
‘쉽지 않겠는데…….’
정효주는 앞날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단독으로 강력한 블랙 몹까지 성장한 베링 샤크도 그렇고, 하나하나의 힘은 약하지만 다수가 뛰어난 협동력을 갖추어 놀라운 전투 능력을 선보인 범고래 괴수떼도 그렇다.
바다에는 더 놀라운 괴수들이 또 얼마나 있을까?
2차 해금 현상은 모비딕을 이용해 베링 해협을 개방함으로써 타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바다를 완전히 심해 괴수들에게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 * *
비와호는 일본 최대 규모의 호수다. 총 면적 673.9㎢에 최대 수심이 103.6m에 달한다. 피즈가 마음껏 뛰어놀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물론 바다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되지만.
피즈는 드넓은 바다를 떠나 비와호에 들어가게 되자 조금 침울해졌다. 그래도 전에 살던 인공 호수에 비하면 바위와 태산만큼 차이가 난다.
녀석은 곧 신이 나서 새로운 자신의 집인 비와호 곳곳을 누비며 영역 확인에 나섰다.
파견부대는 곧 비와호 인근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감시 초소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미 사전에 연락을 받은 일본 정부가 비와호 주변에 삼중으로 철조망 울타리를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 비용은 일단 제니스가 부담하기에(나중에 카네기 가문에 100% 청구된다), 지방 관청은 간만에 대형 일거리가 생겨서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환영합니다. 일본을 방문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일본 총리가 내각 각료들을 이끌고 직접 마중을 나왔다. 유지웅이 악수를 청하자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종군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환영 행사를 준비해두었습니다. 제가 직접…….”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예?”
총리의 안색이 급격히 변했다. 어떻게든 유지웅의 환심을 사려고 없는 예산 다 긁어모아서 성대한 행사를 준비했는데, 정작 본인이 저렇게 나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한두 시간이면 될 거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총리는 곧 얼굴이 환해졌다. 한두 시간 기다리는 거라면 까짓 거 못할 게 뭐 있나. 행사에 참석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오늘 막 도착한 터라 파견부대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병사들은 일본 정부가 징발한 건물에 군장을 풀고 임시 초소를 세우는 등 바빴다.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장교들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지웅은 나미를 찾았다. 그녀는 호수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신이 나서 물을 뿜어대는 피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있었네요.”
그가 부르자 그녀는 말없이 돌아봤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참 남자 숨넘어가게 생겼다.
“나미 씨, 레이더였어요? 왜 진작 말을 안 했던 거예요?”
나미는 무표정하게 그를 응시했다. 언뜻 차가워 보이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 이 순간을 넘겨야 할지 난감해서 속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도망쳐야 했는데.’
혹시나 피즈가 위험해질까 봐 결정적인 기회만 기다리느라 망설였던 게 실패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일개 괴수 조련사인 자신에게는 자세한 전황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것도 한 이유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기에, 지금 탈출해도 되는지 괜히 탈출하다가 유지웅과 맞닥뜨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이다. 아주 조금만 과감하게 움직였으면 진작 인간의 손을 벗어났을 텐데.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어.’
유지웅과 정효주는 일본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여기 일이 수습되면 다시 한국으로 갈 것이다. 둘만 없으면 피즈를 비와호에서 빼내 바다로 돌아갈 기회를 또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유지웅의 의심을 사서는 안 된다. 그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원래부터 저는 레이드를 할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굳이 레이더라고 말을 밝히고 다니지 않았던 거예요.”
“그럼 레이더 등록도 안 했겠네요?”
“네. 안 했어요.”
유지웅은 납득했다. 하기야 레이더 등록을 했으면 자신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 보고가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레이드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텐데요?”
“그렇지 않아요. 제 능력은 어차피 일반 레이드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거든요.”
“무슨 말이에요? 저번에 고래 괴수들이 함대 본진을 습격했을 때도, 나미 씨가 아니었으면 피즈가 잡혔을 텐데. 어느 딜러도 레드 몹 두 마리를 그렇게 간단히 쫓아내진 못해요.”
“……저는 땅에서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해요.”
몹시 망설였던 나미는 결국 자신의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인간이 아니라는 것만 밝혀지지 않으면, 그런 비밀 하나쯤은 말해도 별 탈이 없을 것이다. 일단 그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 순간을 부드럽게 넘겨야 한다.
“땅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니요? 그게 무슨 뜻이죠?”
“저는 물을 공격의 매개체로 다뤄요. 그래서 일반 레이드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해요. 때문에 레이더 등록도 하지 않고 말도 안 했던 거예요. 어차피 소용없는 능력이니까요.”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물을 공격의 매개체로 다루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다. 이 순간을 무난하게 넘길 수 있을 정도만 발설하면 된다.
나미는 생각했다. 일반 레이드에 쓸모없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관심을 거둬주겠지?
“와, 대단해요! 그거야말로 지금 시대에 딱 맞는 레이드 능력이잖아요! 앞으로 해양 레이드의 중요도가 엄청 커질 텐데, 물을 다루는 능력이라니!”
“……네?”
“안 되겠어요! 우리 계약합시다! 여기 서명하세요!”
유지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툼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괴수 약화 능력을 가진 메이를 영입한 이후로 그는 만약을 대비해서 여러 종류의 영입 계약서를 항상 갖고 다닌다.
계약서 제일 앞장에는 ‘종신영입계약서’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 작품 후기 ============================
나와 계약해서 마법소녀, 아니 제니스대원이 되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