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76)
00376 해충 대란 =========================================================================
불길한 예감은 이상하게 잘 들어맞는다. 유지웅은 허리케인의 위치와 진로 방향을 확인했다. 허리케인은 미 동부 해안을 스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비행만 하지 않으면 그다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평소라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평소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곤충 괴수 무리가 허리케인 영향권을 피해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대로는 뉴저지주에 상륙할 것 같습니다!」
천하의 괴수도 허리케인은 돌아가고 싶었나 보다. 곤충 괴수 무리는 허리케인을 피해 이동 방향을 바꿨다.
한참이나 틀어진 궤적에 미 상부층은 난리가 났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래서 조지아에서 노스 캐롤라이나에 걸쳐 방대한 방어 라인을 형성해뒀는데, 갑자기 뉴저지로 방향을 틀었으니.
이제 상륙까지는 정말 몇 시간 안 남았다. 30만 명이나 되는 인원을 한꺼번에 이동시키기에는 항공기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되는 대로 공격대를 수송해! 항공기가 없으면 차량편이라도 이용해!”
“각하! 허리케인 때문에 항공편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항공기를 띄웠다가는 자칫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앉아서 당할 건가!”
“각하! 진정하십시오!”
A3는 허리케인 영향권을 피해 조지아주 남부에 상륙했다. 하지만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노스 캐롤라이나 주는 허리케인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이었다. 가뜩이나 30만 명이나 되는 레이더를 수송할 항공기가 부족한 판에, 거센 바람 때문에 비행 금지 조치가 떨어진 상태였다.
비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오, 빌어먹을! 신이 정녕 우리를 버리시려는 건가! 왜 하필 이럴 때 허리케인이……!”
“각하, 급한 대로 펜실베니아와 뉴욕, 메사추세츠 지역에 남아 있던 레이더를 긁어모았습니다.”
“수는? 수는 얼마나 되나?”
“약 520명 정도…….”
전부 한 차례 소집을 한 지역이기에 남아 있는 레이더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 이미 방어선에 투입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레이더는 건강상 혹은 기타 등의 문제로 방어선에 참가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열등 전력.
뒤늦게 소집된 레이더들은 부랴부랴 뉴저지 해안으로 나왔다. 500여 명을 간신히 넘는 숫자는 보기에도 초라해 보였다.
하나같이 안색이 좋지 못했다. 심지어 계속해서 콜록거리는 병자들도 간간히 보였다. 왜 그들이 소집 대상에서 빗나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오, 온다!”
“저거야?”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하늘을 가리켰다. 푸른 하늘 한쪽이 새카맣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컵에 떨어뜨린 잉크가 번져가듯이 색이 변해간다.
“딜해! 딜!”
“싸워! 막아야 돼!”
미국 레이더는 레이드 능력을 단순한 돈벌이용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괴수로부터 자국 시민을 지키는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항상 뿌듯한 마음을 가진다. 사회 분위기도 레이더를 괴수를 물리치는 히어로쯤으로 여긴다.
병이 들어서, 혹은 다른 이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 방어라인에 참가하지 못한 이들이지만, 몸이 안 좋다고 그런 자부심까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520여 명의 레이더들은 정말 필사적으로 싸웠다.
애애애애앵! 애애애앵!
소름끼치는 날갯짓소리가 사방을 뒤덮는다. 새카만 메뚜기떼가 하늘을 뒤덮으며 빛을 가린다. 레이더들은 닥치는 대로 불을 뿜고 광선을 쏘았다.
푸드득! 파파팍!
화염과 빛에 직격당한 소형 괴수 무리들은 계속해서 새카맣게 그을린 채 땅에 투두둑 떨어졌다. 간혹 아군의 공격에 스치는 레이더들도 있었다. 그들이 입은 부상은 아군 힐러가 즉각 치유해주었다.
“수가 너무 많아!”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 대체 몇 마리나 온 거야!”
모든 힘을 쏟아 붓고 탈진한 어느 딜러가 하늘에 대고 절규했다. 사방에는 검게 탄 소형 괴수떼가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척 보기에도 괴수떼의 수는 별로 준 것 같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가로막는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형 괴수떼는 그대로 하늘을 가로질렀다. 시속 300km 남짓한 속도로 비행하는 녀석들을 맨발로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힘을 완전 소진하고 리타이어 한 뒤다.
공격대는 망연자실해서 하나둘씩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이 서쪽으로 검게 물들고 있었다.
* * *
유지웅은 미군의 요청을 받고 급히 이동했다. 지휘관은 이미 백악관과 직통 화상 회의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 변두리 미군기지가 긴급 정상 회담 자리로 변했다.
유지웅은 비시 대통령을 만나기 전 자문단과 먼저 회의를 갖고 현재 상황을 검토했다.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대책도 마련했다.
“어떻게 되었죠?”
「미국은 뉴저지에 500여 명의 레이더를 집결해서 방어를 시도했습니다만 섬멸에 실패했습니다. 녀석들은 서쪽을 향해 계속해서 이동 중입니다.」
「식물이란 식물은 보이는 대로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미국의 농가가 위험합니다. 만약 조기 진압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레이트 플레인스에 있는 회장님의 농장도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큰 땅에는 큰 귀찮음이 따른다. 사실 호남산 곡물의 안전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이후 유지웅은 미국에 있는 대농장은 신경을 거의 안 썼다. 막말로, 호남에서 생산 가능한 곡물양은 미국 농지 전체를 합쳐도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큰일이군요. 대농장에서 일하는 분들도 많은데…….”
대농장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문제다. 대략 4천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미국 대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호남평야가 활성화되기 전, 유지웅의 배려로 꿈을 안고 건너온 이들이다.
나이대도 다양하다. 20대 젊은이부터 50대 장년층까지. 그들은 삽과 곡괭이가 아닌 첨단 농업 장비를 통한 전문 기계식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하지만 곤충 괴수 때문에 누가 가장 먼저, 그리고 큰 피해를 볼까를 생각하니 그들이 바로 떠올랐다. 자신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땅이지만 그들에게는 인생을 쏟아 부은 직장이다.
일단 유지웅은 제니스 2팀을 먼저 대농장 지역에 보내 수비하게 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던 1팀도 급히 출발시켰다. 항공기 이륙이 가능한 지역까지 차로 이동한 다음에 와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도착은 많이 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인 것은 곤충 괴수 무리의 이동 속도가 시속 300km 남짓하다는 것이다. 녀석들이 유지웅 소유의 대농장에 닿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면 좀 이상한데요. 독일에서 봤던 것보다 수가 더 많은 거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분석팀이 개체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이 영상을 보십시오.」
곧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원거리에서 고감도 카메라로 촬영한 것인데, 너무 거리가 먼 탓에 카메라의 성능에도 불구하고 화질이 좋지 않았다.
작은 카직스 몇 마리가 게걸스럽게 밀을 갉아먹는다. 밀의 줄기가 줄어들수록 반비례하듯 녀석들의 몸집이 커진다. 사람 손가락만 하던 녀석들은 순식간에 두 배까지 커졌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몸집이 커진 녀석이 징그럽게 꿈틀거리더니, 머리부터 시작해서 꼬리 끝까지 세로로 쫙 찢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개로 나뉜 부위는 찢어진 부위에서 새로운 다리와 날개가 돋아나며, 곧 처음의 모습과 크기를 갖추었다.
“아니, 무슨 아메바 분열하는 것도 아니고…….”
「보신 바와 같이 식물을 갉아먹고, 그 양분으로 몸을 키운 다음 다시 단세포 생물처럼 분열해서 개체 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수가 점점 불어날 겁니다.」
“하지만 결정도 측정 수치는 그대로였잖아요?”
「결정도 총량이 증가한 것은 아닙니다. 두 마리로 나뉘면 본래 가졌던 결정 에너지가 각각 반으로 줄어들 뿐입니다.」
“수를 늘리면 늘릴수록 약해진다는 거군요.”
「하지만 더 위협적이죠.」
예를 들어 보자. 바퀴벌레와 싸워서 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박멸이 불가능하다. 바퀴벌레가 강해서가 아니라, 번식력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소형 카직스 무리도 그와 비슷했다. 인간이 못 당해낼 정도로 강한 녀석들이 아닌데, 저 쪽수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인간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식물만 갉아먹으며 이동을 할 뿐이다. 그러니 더 까다로웠다.
“이건 차라리 베링 샤크가 더 낫겠어.”
유지웅이 그렇게 투덜거리자 조용히 있던 나미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손재진이 심각하게 말했다.
「회장님, 녀석들이 수를 늘리면서 개별 개체가 지닌 결정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 괴수는 대기 중의 미세한 결정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라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일단 되는 대로 개체 수를 늘리고, 줄어든 결정 에너지는 대기 중에서 흡수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쓰든 간에 다시 보충할 수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녀석들의 생존 전략을 쉽게 생각해서는 위험합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토론이 오갔다. 소형 괴수가 가져올 피해와 방어대책을 놓고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장태준은 전부 놓치지 않고 꼼꼼히 기록했다.
유지웅이 화제를 전환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저와 제니스에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카직스가 날뛰게 된 거, 책임 소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나요?”
「…….」
대단히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사태가 이리 된 것은 제니스가 독일에서 카직스를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카직스가 얌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회장님이나 제니스의 책임은 없습니다. 굳이 책임이 있다면 그건 독일이죠.」
“독일이요?”
「제니스는 독일의 레이드 요청을 받고 원정을 왔습니다. 카직스가 저런 번식 패턴을 갖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죠. 어디까지나 레이드 주체는 독일이며, 제니스는 단지 독일의 요청을 받아 도구로서 임했을 뿐입니다.」
“법적인 책임이 그렇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독일도, 미국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니스의 책임이 없다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으면 세간의 비난을 받게 될 겁니다. 도의적인 책임은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형성되곤 합니다. 그 점을 분명하게 아셔야 합니다.」
제니스의 책임은 전혀 없다. 독일이 잘못을 한 것은 아니지만, 독일이 결정하고 시행한 레이드이기에 독일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니스가 나 몰라라 하면, 사람들은 제니스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제니스가 시작한 레이드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으니, ‘이거 다 독일 책임’이라고 물러서면 나쁜 이미지만 쌓게 된다. 그것은 유지웅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야겠네요.”
「그렇습니다. 누구보다 회장님과 제니스의 명성을 위해서는 그래야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때 외교 수석을 지낸 국제정치 전문가, 강대연 교수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 도의적인 비난이 걸리신다면 비시 대통령이 정치 논리 때문에 핵사용을 거절한 것을 이용하면 됩니다. 남미 대륙으로 향하던 곤충 괴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안전하게 소멸하지 않았습니까? 비시 정권에는 타격이 있겠지만 우리에게 향할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설마…….”
「만약 미 전역의 농지가 초토화된다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회장님과 한국에는 큰 축복이 될 겁니다. 지금 호남산 곡물은 그 안전성이 입증되었음에도 선진국에서는 여전히 꺼리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호남산 곡물이 단숨에 세계 식량의 패권을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철저하게 매서운 관점이었다. 오로지 제니스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곤충 사태에서 제니스가 한 발 물러나 미국의 농토가 초토화되는 것을 방관해야 한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조언이다.
세계 전체를 생각하면 비정하기 그지없는 조언이다. 하지만 제니스의 충신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유지웅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도 그건 상상했다. 만약 미국이 식량 공급의 기능을 상실한다면, 호남이 단숨에 빈자리를 치고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분명히 일리 있는 말입니다.」
심지어 제니스의 명성을 위해 도의적인 책임은 다해야 한다고 조언했던 이마저, 강대연의 주장이 가진 논리성은 인정했다.
교수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문 그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당신이 결정을 해야 한다고.
============================ 작품 후기 ============================
괴수 방어막에 관해서 보충 설명을 합니다.
괴수의 방어막은 재래식 병기는 무시하지만 핵폭탄급 이상의 무기에는 깨집니다. 이건 TNT는 면역인데 우라늄은 통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방어막은 일정한 파괴력까지는 무시하는 성질을 갖는데, 그 임계점을 넘어서는 충격을 가하려면 핵병기 정도는 터트려줘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0톤을 견뎌내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100톤까지는 버티지만, 100톤에서 딱 1톤만 올라가도 무너집니다.
10톤, 50톤을 올려놓아도 당연히 꿈쩍도 안 합니다. 하지만 100톤을 초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너져버립니다. 괴수의 방어막이 저렇습니다. 그 임계점을 넘어서는 공격이 바로 핵공격으로 보시면 됩니다.
딜러의 공격은 예외입니다. 방어막 그 자체를 중화해버립니다. 비유를 하자면 다리를 녹여버리는 화학물질입니다. 단 조금씩 조금씩 녹이기 때문에 꾸준하게 화학물질을 투입해야 합니다.
즉 핵병기만 통하는 게 아니라, 핵병기급의 파괴력을 낼 수 있으면 그 병기의 원리는 상관이 없는 겁니다. 무기의 ‘제조원리’가 아니라 ‘파괴력’이 문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