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09)
00409 스파이는 팜므파탈? =========================================================================
조용하지만 또렷한 감탄에 나미는 비로소 안심을 했다. 그녀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이 살가운 미소를 띠었다.
“과찬이세요. 감사합니다.”
이제는 이 짓도 익숙해졌다. 외모에 대한 남자의 감탄은 딱 이 정도로 받아쳐주면 된다. 그럼 정체를 드러내거나 의심을 사지 않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귀하처럼 아름다운 여성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요.”
안슐은 눈을 떼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고요한 눈빛에는 뜨거운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미는 조금 당황했다. 보통 남자들은 사무적인 표정을 담아 살짝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면 알아서 물러났다.(정확히는 못 오를 나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닫는다.)
그런데 이 남자는 조금 반응이 달랐다. 미모에 대한 칭찬이 거듭 강조되는 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나미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전 졔이크 안슐 빈 지예드 알 나얀이라고 합니다. UAE의 아부다비 왕가의 사람이죠. 혹시 아가씨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나미라고 해요.”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나미는 얼른 덧붙였다.
“괴수 통제관 겸 연구원 겸 제니스 공격대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럼 오늘 최윤 박사의 발표 때문에 참석하신 거군요.”
“아, 네.”
“발표는 저도 봤습니다. 정말 놀라운 장치였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과학자란 이렇게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네.”
나미는 속이 조금 거북했다. 건성으로 받아치고 있는데 안슐이란 남자는 좀처럼 물러설 기미가 안 보인다.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지? 왜 자꾸 말을 시키지? 혹시 뭔가 눈치를 챈 건 아닌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이곳 연구소에서 위장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이성을 대하는 보통 남자의 태도, 그러니까 자신이 겪었던 남자들과는 너무 달랐다. 지나치게 적극적이다. 나미는 자신이 뭔가 책잡힐 짓을 한 건 아닌지 속으로 고심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며 물러서지를 않을까?
사실 나미는 인간 관습에 아직 서투르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학습해서 처음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인간 사회 경험이 만 2년도 안 되는데 얼마나 잘 알고 있겠는가.
지금까지 나미에게 관심을 보이고 접근한 남자는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나미의 차가운, 혹은 무관심한 행동에 스스로 얼어붙어서 물러나곤 했다. 첫눈에 반했다가 한두 번 찔러보고는 자기가 못 먹을 열매라는 것을 깨닫곤 한 것이다.
나미가 봐온 남자들은 다 그랬다. 하지만 안슐은 그런 기준에서 완전하게 벗어났다. 무관심하게 건성으로 대응하는데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그렇다면 나미 입장에서는 하나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이 남자, 뭔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저, 저는 그럼 이만…….”
결국 견디다 못한 나미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안슐은 아쉬움을 지우지 못하고 나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침 조금 전에 도착한 유지웅이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다가 그제야 나섰다.
“안슐, 나미 씨한테 관심 있어요?”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더군.”
일정한 수준에 달하면 미모의 순위를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넌센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미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도자기 인형처럼 희고 매끄러운 피부와, 천연으로 붉게 빛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숲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녹색 눈동자까지. 어느 것 하나 신비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럼 잘해 봐요. 제가 알기로 나미 씨 아직 남자친구는 없을 거예요.”
“자네의 여자 아니었나?”
안슐은 그게 걸렸던지 조심스러워하며 물어보았다. 유지웅은 큰일난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부정했다.
“무슨! 효주한테 바가지 긁힐 일 있나요?”
사실 그렇게 예쁜데 티클만큼도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유지웅도 나미에게 몇 번 끌린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불가사의한 충동이었다.
하지만 유지웅은 다른 어떤 여자보다 정효주를 사랑하며, 지금의 가정이 제일 소중했다. 그도 남자다. 왜 넘쳐나는 재력을 이용해 이것저것 해볼 마음이 안 들었겠는가.
그냥 와이프 마음에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아서다. 그녀의 마음을 도려내면서까지 탐닉할 만한 가치는 아니기에.
‘둘이 사귀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혼자 그렇게 피식거리던 유지웅은 문득 형수님이 있다는 게 생각 났다. 정정한다. 형수님이 아니라 ‘형수님들’이다.
‘아, 맞다. 그럼 만약 둘이 결혼한다 치면 세 번째 왕자비가 되는 거잖아? 나미 씨가 싫어하지 않으려나?’
유지웅은 생각을 멈췄다. 뭐 나미도 성인이고 자기가 알아서 행동하겠지. 남의 연애에 자신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하는 것도 우습고 말이다.
“그럼 내가 나미 씨한테 구애를 해도 괜찮은가?”
“저야 상관없지요. 저랑 아무 사이도 아닌데. 아, 물론 우리 제니스의 소중한 인재니까 잘 대해줘요.”
“한 번 더 확인하겠네. 정말 괜찮은가?”
유지웅은 조금 서늘해졌다. 안슐이 이렇게 거듭 확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나? 아무래도 제대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저는 나미 씨와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저한테는 효주가 있잖아요.”
안슐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슬쩍 웃었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후련하게 말했다.
“나는 사실 자신이 없네.”
“네?”
유지웅은 살짝 놀랐다. 이 거침없는 왕자님이 자신없어야 할 일이 세상에 있기나 하던가?
“내가 만약 자네라면, 그리고 근처에 저런 멋진 여성이 있다면 아무 관계로 발전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할 수 없네. 나 자신이 흔들리지 않게 바로 잡을 자신이 없네.”
“아, 그래서 자꾸 물어본 거예요? 저 정말 나미 씨랑 아무 사이 아니라니까요.”
물론 조금 썸씽이 벌어질 뻔한 적은 있었다. 그도 남자라니까?
“혹시 자네가 마음을 두고 있는데 내가 나서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을 뿐일세. 자네가 허락을 해주니 고맙군.”
“그럼 정말로……?”
“인정하지. 첫눈에 반했네.”
안슐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녀를 세 번째 왕자비로 삼고 싶네.”
안슐은 두 명의 부인이 있다. 원래는 네 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는데, 그는 아직 두 명 밖에 두지 않았다.
네 명의 부인을 거느리는 게 그 나라에서는 비난받을 게 아니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지역적인 관습이기에.
나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녀가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다. 유지웅은 그저 친구의 애정이 결실을 맺기를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 * *
“나를 수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어.”
「꼬리를 잡힐 짓을 했어?」
“그런 기억은 없어.”
「그럴 리가. 설마 정보가 유출되진 않았을 텐데.」
전파 너머 레지나는 심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물었다.
「누군데? 신분은 알아뒀어?」
“졔이크 안슐 빈 지예드 알 나얀이라는 남자야.”
「……안슐 왕자?」
“알고 있어?”
「더 자세히 이야기해봐.」
레지나는 뭔가를 느끼고 당시 상황을 자세히 캐물었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난 레지나는 키득거리며 좋아했다.
「수상하게 보는 게 아니야. 네게 관심이 있는 거지.」
“관심?”
「그 남자, 네게 매력을 느끼고 있어.」
“하지만 내가 본 남자들과는 반응이 달랐는데?”
「시시한 남자와 비교하면 곤란해. 그 남자는 다른 남자들처럼 못 오를 나무라 겁을 먹고 물러설 남자가 아니야.」
여자의 미모가 지나치게 눈이 부실 경우, 오히려 보통 남자들은 감히 제대로 접근을 하지 못한다.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이 멀듯이, 저런 여자가 나 같은 남자를 상대해줄까 하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남자 나름이다. 안슐은 록펠러와 로스차일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 부자 가문의 2인자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의 미모는 열정을 불태울 동기가 될지언정, 겁을 먹고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는 될 수 없다.
「사실 유지웅 회장이 먼저 관심을 보일 줄 알았는데, 차라리 잘 됐어. 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우리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거야.」
“……이용?”
왠지 낯선 느낌이 들어 나미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던 그 눈빛이, 자신을 향한 호감이었다고?
신기한 기분이 든다. 어떻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런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인간 사회를 학습해나가고는 있지만 알다가도 모를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레지나는 뭔가를 직감하고는 재촉했다.
「받아 봐.」
나미는 조금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쾌활한 남자의 음성이 전해졌다.
「혹시 나미 씨 전화가 맞습니까?」
“안슐 회장님이신가요?”
「기억하고 계셨군요. 영광입니다.」
나미는 사람 목소리를 혼동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물어봤을 뿐인데, 상대가 너무 좋아한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 맞는지 이상해서 모니터의 레지나를 쳐다보니 그녀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슬쩍 웃고 있다.
―그 사람한테 관심 있는 척 적극적으로 나서 봐. 내가 알려준 행동지침 기억나지? 아니다, 내가 알려주는 대로 말을 해.
레지나는 아예 무슨 말을 할지 실시간으로 타이핑해서 지시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글씨가 계속 떠올랐다. 나미는 마음을 다잡고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럼 기억하지요. 그렇게 인상이 강렬한 분을 기억 못할 리가 있나요.”
「나미 씨 같은 미인이 기억해주시니 저도 기분이 좋군요. 번호는 친구에게 물어봐서 알았습니다. 불쾌하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늘 있었던 발표회부터 시작해서 날씨를 거쳐 가벼운 일상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안슐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내일 점심을 제가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어머나, 결례가 되지는 않을지…….”
「나미 씨가 물을 다루는 특수한 능력자라고 들었습니다. 괴수 통제에 누구보다 재능이 있다는 것도 들었고요. 저는 그런 뛰어난 재능이 있는 분과 식사하는 걸 즐깁니다. 꼭 한 번 시간을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알겠어요. 네. 그럼 그때 뵈요.”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미는 살벌한 긴장감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모니터 속의 레지나가 빤히 쳐다보다가 푹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국어책 좀 그만 읽어.」
“……뭐가?”
「아니야. 됐어.」
============================ 작품 후기 ============================
옛날옛날, 세상에서 제일 큰 성을 가진 엄청난 부자 왕자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왕자님의 보물창고에는 산더미같은 황금이 가득했지요.
어느날 밤 왕자님은 성에 도둑이 든 것을 발견했습니다. 놀랍게도 도둑은 엄청나게 예쁜 여자였어요.
왕자님은 말했습니다.
“보잘것없고 가여운 도둑이로구나. 좋다. 유흥이다. 내키는 대로 한 번 가져가 보거라.”
보물창고에 들어선 여자 도둑은 놀라고 말았습니다. 보물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어쨌든 여자 도둑은 보물을 가져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러나 아무리 가져가도 보물은 바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다음날 다시 올 때마다 보물이 더 불어난 것처럼 보였어요.
왕자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어리석구나. 내 비가 되면 이 전부가 네 것이 될 텐데, 고작 그렇게 밖에는 못하겠느냐?”
“저는 도둑인데…….”
“상관없다. 내 성에 들어온 순간 이미 너는 내 것이다.”
그렇게 왕자님과 여도둑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