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10)
00410 보이지 않는 적 =========================================================================
눈부신 빛의 궤적이 거대한 투명 구체의 내부를 맴돈다. 쉴 새 없이 일어났다 사그라지는 섬광의 소용돌이는, 태초의 우주를 닮은 듯 찬란하며, 또한 장엄하다.
그 의미를 모르는 자에게는 단순히 멋진 광선쇼에 불과하리라. 그러나 그 의미를 깨우친 자에게, 저것은 인류에게 파멸 혹은 번영을 가져다줄 신의 불꽃이었다.
“…….”
레지나는 벌써 수십 번째 반복해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서는 최윤이 가진 발표회 모습이 재생 중이었다.
과학계는 최윤이 고안한 폐쇄 재현 모듈 장치 덕분에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난리가 났다. 국적을 불문하고, 폐쇄 재현 모듈 장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항간에서는 이번 노벨상은 최윤이 따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만큼 최윤의 업적은 대단했다. 결정 에너지의 근원을 밝혀낼 수 있는 길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니.
“레드 결정체라…….”
레지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나미는 저것이 일종의 레드 결정체라고 했다. 아마도 블루 결정체를 병렬해 뽑아낸 에너지가 구체 안에 유영하면서, 가상의 레드 결정체를 형상화한 것이리라. 그래서 기계의 전류를 차단하면 사라진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업적이지만, 누구도 거기까지는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윤이 발표한 대로 폐쇄된 공간 안에 결정 에너지의 흐름을 재현한 장치라고만 알고 있다.
그 발표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 즉 그 장치의 출력은 완전히 빠뜨린 발표였다. 병렬 연결된 250개의 블루 결정체는 레드 결정체에 해당하는 에너지 출력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가동 중인 구체 안의 에너지를 강제로 고체로 형상화한다면…… 레드 결정체가 만들어질까?”
레지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화면을 주시하는 눈동자에는 짙은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최윤은…… 정말 자기가 만든 게 뭔지 모르고 있을까?”
그렇게 고민에 잠겨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레지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를 받자 도청 방지 장치가 자동으로 켜지며 암호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통화가 연결되었다.
“레지나입니다.”
「최윤의 연구에 관해서 알아낸 사실은 없나?」
“침투 활동 중입니다. 시간이 더 필요해요.”
「시일이 급하다. 폐쇄 재현 모듈 장치 때문에 지금 투자자들이 초조해하고 있다. 하루빨리 성과를 내길 바란다.」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알고 계시잖아요?”
다소 강경한 말투에 전파 너머 상대방은 조금 누그러졌다.
「이대로는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어떻게든 최윤의 연구 결과를 빼내라. 여의치 않으면 완전히 묻어도 된다.」
“근시일 안으로 해결됩니다. 기다려주세요.”
「서두르길 바란다.」
전화가 끊어졌다.
불이 꺼진 전화기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레지나는 픽 웃었다.
“여의치 않으면…… 묻어도 된다고?”
레지나는 다시 화면을 주시했다. 효웅산업이 공개한 폐쇄 재현 모듈 장치의 가동 중인 모습이 반복 재생되고 있는 중이었다. 황홀하리만치 아름답고,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멋진 광경이다.
저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저것을 폐기하라는 명령을 할 자격이 있을까? 레지나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이를 갈았다.
“너희에게는……할아버지도 그랬겠지.”
* * *
케일 호텔 앞에 은빛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섰다.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명품 차는 아니지만, 케일 호텔의 품격을 간신히 훼손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주차 요원은 자신이 뛰어나가서 차키를 받아야 하는가 순간 고민했다. 그만큼 차의 클래스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여자를 본 순간 그런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여자는 숨이 멎을 만큼 예뻤던 것이다. 아니, 예쁘다기보다는 여신 그 자체였다. 매끄럽고 새하얀 피부는 잡티 한 점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고왔고, 작은 얼굴을 가리듯 흘러내린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은 심장이 터질 듯이 탐스러웠다.
무엇보다 가장 매혹적인 것은 녹색으로 빛나는 눈.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빨아당기는 듯한 눈동자는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주차 요원은 서둘러 차키를 받아들었다. 여자는 고개를 까딱이며 차를 맡기고 호텔로 들어섰다.
여자, 나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의 주목이 쏠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무심코 돌아보고는 저도 모르게 옆으로 물러났다.
나미는 30층을 눌렀다.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목적지였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여직원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더니 곧 난처한 웃음을 띠고 정중하게 말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지금 손님의 드레스코드는 저희 업소와 맞지 않습니다.”
나미는 자신이 입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흰 시스루 블라우스에 허벅지를 타이트하게 조이는 파란색 핫팬츠 차림. 드레스코드가 잘못되었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
‘이상하다?’
어제 나름대로 인터넷에서 ‘남자를 만날 때 좋은 옷차림.’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를 참조해서 선정한 패션인데, 왜 이 호텔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걸까?
「무슨 소리야? 대체 어떤 옷을 입었길래?」
“블라우스에 바지.”
「바지를 입었어?」
귀에 낀 통신장치를 통해 레지나가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말했다.
「예약이 되어 있다고 했지? 안슐 회장의 이름을 말해 봐.」
“졔이크 안슐 빈 지예드 알 나얀이라는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텐데요.”
“……잠시만요? 졔이크 안슐 빈 지예드 알 나얀님이요?”
여직원은 순간 흠칫 하더니 표정이 바뀌어 얼른 허리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나미는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특실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드문드문 있는 손님들의 복장을 확인했다. 그들의 복장을 보고 자신의 복장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를 파악하려 했지만, 통 감이 오지 않았다.
안슐은 레스토랑 특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특실은 전망이 좋고 다른 손님의 시선이 닿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나미가 나타나자 안슐은 반갑게 일어나서 맞이했다. 그녀의 복장을 확인한 그는 조금 당황했으나 표정을 수습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닙니다. 웨이트리스, 잠시 후에 주문하겠습니다.”
“예.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안슐은 감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아랍의 왕자라기보다는 글로벌 기업체를 거느린 젊은 사업가의 풍모였다.
그가 미소를 머금고 말을 꺼냈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어제 전화드릴 때는 무척 걱정했었거든요.”
일상적인 주제부터 시작해서 안슐은 가볍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원래는 레지나가 교신기로 해야 할 말을 불러주면 나미가 그대로 따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레지나는 곧 포기했다. 어제 통화할 때처럼 어색한 국어책 읽기가 돼버리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나미는 사교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는 무척 약하다. 덕분에 대답은 주로 예, 아니오 식의 단답형이 되었다. 상대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하련만, 안슐은 조금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쾌활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미는 궁금해졌다.
레지나의 설명, 그리고 책에서 학습한 바에 따르면 남자 인간이 이러는 것은 상대 여성에 대한 호감의 표시다. 호의, 애정, 사랑. 인간의 번식에 항상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주는 감정이다.
나미는 인간은 너무 복잡한 번식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해만을 누비는 물고기가 창공을 활강하는 새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근본적인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이었다. 평행선처럼 결코 접힐 수 없는 그런 것.
나미는 대뜸 물었다.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뭐죠?”
쾌활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던 안슐은 그 말에 불현듯 입을 다물었다.
* * *
웨이트리스의 안내를 받아 나미가 특실에 들어선 순간 안슐은 조금 흠칫했다. 그녀의 복장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나들이를 나가는 어린 여대생처럼, 속이 살짝 비칠 듯한 블라우스에 손바닥만한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 그도 남자다. 대리석처럼 하얗고 매끄러운 허벅지에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녀는 여신이다. 무엇을 입어도 빛이 난다. 이곳 드레스코드와는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있는 패션이었지만, 안슐의 눈에는 그저 예쁘게만 보였다.
참 자유분방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대담함이 오히려 더욱 깊은 호감을 전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또 다르다.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단답형으로 예 아니오만 하는 게 수줍어 보인다. 자유분방한 패션 뒤에 감춰진 수줍은 태도가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같이 시간을 보낼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아니, 그것은 틀린 표현이었다. 처음부터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고, 지금은 그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뭐죠?”
불현듯 나미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물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조금 전의 수줍음은 어디 간데 없이, 정확한 대답을 원하는 눈동자다.
이런 의외성도 있구나 하고 안슐은 작게 감탄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만으로 37세인 그는 이미 두 명의 부인이 있다. 가문 전체 자산이 1,000조 원이 거뜬히 넘어가는 부자로서 무수한 여성들을 만나 보았다. 하지만 나미는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여성과도 달랐다.
예측이 어려웠고, 너무 빛이 났다. 어째서 이런 보물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들 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자신의 가치를 안다. 지금까지 만났던 미녀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그러나 나미는, 마치 자신의 그런 가치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지금도 그렇다. 다른 미녀들이라면 그런 식의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는 저의 레이더 재능에 관심이 있어서 이 자리를 만드셨다고 하셨는데요, 그게 사실인가요?”
“왜 그런 걸 묻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상해서요.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게 아닌 거 같거든요.”
자유분방하면서도 수줍음을 타고, 의외성이 있게 정곡을 찌르면서도 또한 도도하다. 안슐은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 자신의 눈이 아무래도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맞습니다. 거짓말입니다.”
“……거짓말?”
“나미 씨는 레이더 재능보다 더한 걸 갖고 계시죠. 그래서 결례인 줄 알면서도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보고자 한 건.”
“잠깐만요.”
나미가 말을 잘랐다. 안슐은 의아했으나 그녀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안슐도 그녀의 눈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입구 쪽에 있는 어떤 여자를 보고 있었다. 데이트를 온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에 안슐은 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아시는 분인가요?”
나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젊은 여자를 뚫어져라 쫓고 있었다.
‘결정 에너지?’
팔짱을 낀 남자와 웃고 떠드는 젊은 여자.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그런데 왜 저 여자에게서 희미한 결정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일까?
“아악!”
놀라운 일은 그때 일어났다. 웃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찡그리며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순간 나미는 보았다. 여자의 몸에 흐르는 결정 에너지의 폭주를. 그 무질서한 혼란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콰앙!
여자의 몸이 그대로 폭발하며, 반경 수미터 내의 모든 물체를 그대로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