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1)
00041 나는 대장이다 =========================================================================
정규 공격대 설립 절차는 간단했다. 그냥 관할 행정기관에 신고만 하면 끝났다. 유지웅은 일단 대원으로 자신과 정효주를 신고했다. 나머지 대원은 모집되는 대로 신고하면 그만이다.
정규 공격대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는 정공 창설 및 운영에 관해서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사실 막공도 자유롭게 모집되고 레이드를 가는데, 정공이 그보다 번거롭다면 모순이다. 정공 설립은 행정상으로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제재 사항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치안과 관련된 부분만큼은 엄격한 요건을 필요로 한다.
“어떻게 레이드 허가를 얻어낸다?”
기본적으로 괴수는 레이드 허용과 레이드 금지로 나뉜다. 레이드 허용은 행정기관에서 미리 명시한 조건만 충족하면 어떤 공격대라도 신고 후에 레이드를 할 수 있음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무난하게 잡을 수 있는 괴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레이드 금지는 다시 제한적 금지와 절대적 금지로 나뉜다. 제한적 금지의 경우 괴수가 상당히 강력하기 때문에, 행정기관에서 공격대 규모와 능력을 검토하여 허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즉 통상 규모로는 잡을 수 없는 강력한 괴수지만, 특정 공격대의 경우 충분히 레이드가 성공하겠다 싶으면 행정기관에서 허락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 금지란 바로 레드 타입 괴수 같은 경우를 말한다. 이때는 어떤 경우라도 민간 공격대가 사설 레이드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레드 타입 괴수 레이드가 실패할 경우, 화가 난 괴수가 어떤 난동을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괴수의 개체수를 헤아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괴수는 지구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레드 타입 괴수도 옐로 타입보다는 수가 적을 뿐이다.
레드 타입 괴수는 먼저 공격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정한 활동 범위를 갖고 있다. 웬만해서는 활동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인간이 자극하지만 않으면 인간을 습격할 일은 적다.
괴수 사체는 돈이 된다. 레드 타입은 더 많은 돈이 된다. 그러나 경제성과 안전성, 그 효율을 따져봤을 때 옐로 타입만 레이드하는 게 더 이익이다. 레드 타입 괴수는 사상자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단히 강력한 괴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국가는 레드 타입 괴수를 절대적 금지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인간에게 위험하다고 해서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레드 타입을 일일이 박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시간, 공간, 물리적인 한계 때문이다.
결국 인류는 옐로 타입은 사냥해서 자원으로 삼고, 레드 타입은 인간을 습격하는 개체만 격퇴하는 쪽으로 대응 지침을 보편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드 타입 괴수를 사냥하고 싶다면, 나라로부터 허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쉬울까?
“빚을 한 방에 청산하려면 레드 타입 괴수를 잡아야 하는데. 한 마리만 잡아도 게임 끝인데.”
유지웅이 레드 타입 괴수 레이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단숨에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였다. 일 년 가까이 빚을 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에 족쇄라도 채운 기분이었다.
“공격대 마저 모으기 전에 허가 가능성부터 알아보는 게 어때? 사람 다 모아놓고 막상 허가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 난감하잖아?”
“그러네. 그거부터 알아봐야겠다.”
그런 행정적인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유지웅은 결국 또다시 킴벌리 로펌의 김장호 변호사를 찾았다.
“레드 타입을 레이드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절대적 금지 대상인 건 아시는 겁니까?”
“알고 있어요.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 해서요.”
“레드 타입이 금지 대상이 된 건 매우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잡지 않는 게 나아요. 인간을 습격하는 것을 격퇴하는 것만 해도 힘이 부칠 지경이니까요. 정부에서 허가를 쉽게 해주지 않을 겁니다.”
“쉽게는 안 되고, 어렵게는 해준다는 거네요?”
“로비를 해서 관련 행정규칙을 수정하면 됩니다. 이게 가장 빠릅니다. 또 다른 방법은 허가를 해주지 않을 경우에 민원을 제기하는 거죠. 국가 대상 소송도 있습니다만, 이건 제일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군요.”
“로비면 뇌물을 줘야 하나요?”
다소 불편한 얼굴로 유지웅은 반문했다. 뇌물이라니, 나름 이 나이까지 깨끗하게 살아왔는데 손에 진흙을 묻혀야 하나?
“로비가 꼭 불법적인 수단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관련 담당자들과 교섭해서 타당한 주장으로 설득하는 것도 로비의 일종이죠. 일반 능력자라면 통하지 않겠습니다만, 의뢰인께서는 특수한 입장이기도 하시니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럼 위임 업무를 맡겨도 될까요?”
“맡겨만 주십시오.”
킴벌리 로펌은 저번의 의뢰로 무려 70억의 수임료를 받았다. 간만에 생긴 엄청난 대고객인 것이다. 그것도 기업체 같은 것도 아닌 개인이 아닌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김장호 변호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교섭 자리를 마련했다. 며칠 뒤 유지웅은 미리 잡은 약속대로 김장호와 함께 초능력 관리 본부로 향했다. 접객실에서 그를 맞이한 사람은 그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남기철.
“어?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별 탈 없었습니다. 유지웅 씨도 잘 지내셨나요?”
“저는 별로 잘 못 지내고 있어요. 빚에 치이고 있거든요.”
웃으면서 말하지만 말에 뼈가 들어 있었다. 남기철이 흠칫 하는 게 눈에 다 보였다. 유지웅은 속으로 웃었다. 그러라고 일부러 말에 뼈를 심은 것이다.
“미리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레드몹 레이드의 절대적 금지를 제한적 금지로 바꿔달라는 취지더군요.”
“네.”
“왜 레드몹을 잡으시려는 거죠? 분명 성공했을 시 대가는 크지만 그만큼 위험합니다. 국가가 괜히 절대적 금지 대상으로 정한 게 아닙니다.”
더 이상 자신이 말했다가는 ‘빚 빨리 갚으려고요.’라고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식의 대답은 크게 손해 보는 느낌이다. 유지웅은 입을 다물었고, 그를 대신해서 김장호가 나섰다.
“저번 레드 타입 섬멸 때 의뢰인의 능력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일반 공격대가 옐로 타입을 사냥하듯이 의뢰인이 포함된 공격대는 레드 타입을 사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의뢰인에 한해서는 레드 타입의 레이드를 옐로 타입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을까요?”
“쓸데없는 차별 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다른 능력자는 못 잡아도 의뢰인은 잡을 수 있으니까요. 능력이 되는 이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
“의뢰인이 레드 타입을 잡는다면 나라에도 도움이 됩니다. 귀한 블루 결정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옐로 타입을 잡고 나오는 결정체는 녹색을 띠고 있어서 그린 결정체, 레드 타입의 경우는 파란색을 띠고 있어서 블루 결정체라고도 부른다. 당연히 블루 결정체는 대단히 희귀하다. 레드 타입이 잡힌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김장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여유롭게 반응했다. 남기철은 패배한 안색으로 배웅했다. 돌아오는 길에 유지웅이 물었다.
“일이 잘 될까요?”
“국가가 블루 결정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인데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그 문제를 어떻게 조율하는지가 문제입니다. 뭐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정부 기관에서 할 일이겠지요.”
“다행이네요. 저는 빚 깎은 것 때문에 정부가 저한테 억하심 품고 허가 안 해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하하, 걱정 마세요. 그 정도로 억하심 품을 정도로 속이 좁으면 정치는 못합니다.”
가볍게 웃어넘기던 김장호가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래도 섭섭한 티를 낼 수는 있을 겁니다. 그게 우리한테는 조금 부담이 되겠죠.”
“섭섭한 티요?”
“아무리 우리 주장이 타당하고, 허가를 해주는 게 나라에 이익이 된다 해도, 적당히 조건을 붙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대금 할인 때 나라가 양보한 것을 걸고 넘어지면서요.”
“그럼 들어줘야 하나요?”
“부담이 되는 조건이라면 들어주면 안 됩니다. 반대로 들어줘도 상관없는 간단한 조건이라면 수락하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잔뜩 생색을 내는 거죠. 그게 나중에 또 도움이 됩니다.”
“아하, 그렇군요.”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될 말을 들은 것 같다.
가벼운 기분으로 유지웅은 귀가했다. 집 근처 신호등 앞에서 잠시 정차한 그는 정효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지금 집에 가는 중.」
「나 마트에 있어. 장 보러 나왔거든.」
「오래 걸려?」
「30분 정도?」
「알았어. 빨리 와.」
신호등이 바뀌자 그는 발차했다. 그의 애마는 조용한 길을 시원스럽게 달렸다. 주변에 보이는 집들은 하나같이 깨끗한 단독 주택뿐이다. 초능력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보니 부유하고 범죄도 거의 없었다. 초능력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도둑들도 꺼리기 때문이다.
집 앞에 도착해서 리모컨으로 차고 문을 열던 찰나 그는 흠칫했다. 대문 앞에 가녀린 그림자가 서 있었던 것이다. 바로 최현주였다.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어떡할까 망설이던 그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물끄러미 차를 보고 있던 최현주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오빠.”
“무슨 일이야?”
“매정하게. 그래도 생사의 위기를 같이 겪으며 싸웠는데 정말 이러기야?”
“용건을 말해.”
“피. 우리가 용건만 말하고 가볍게 헤어질 사인가?”
“우리 헤어졌잖아.”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화가 나서? 아니다. 최현주가 자신을 찾아오는 이 상황에 희열이 느껴진 것이다. 그것은 마약과도 같은 쾌감이었다.
그녀에게 남은 미련은 없었다. 다만 무능력을 이유로 보잘것없이 헤어진 초라함을 보상받게 된 상황이 재미있었다. 헤어질 당시 첫 만남을 잘못 묶은 것 때문에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꼈지만, 미련도 없이 돌아선 그녀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때의 원망이 짜릿한 쾌감을 뿜었다.
“남녀가 헤어질 수도 있고, 다시 만날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대수라고. 왜 그렇게 심각해, 오빠?”
“난 다시 시작할 맘 없는데? 난 애인 있어.”
“효주 언니랑 헤어지라고는 안 했어.”
“나보고 양다리를 걸치라고? 내가 왜?”
“오빠는 내 첫 남자야.”
최현주는 방긋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자야. 아직까지는.”
“…….”
“나, 안고 싶지 않아? 효주 언니랑 헤어지라고 안 해. 나 책임지라고도 안 해. 그냥 나 갖고 놀아도 돼. 어때? 오빠가 손해 보는 건 아니지?”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불현듯 최현주와 침대 위에서 보냈던 열풍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살갗 구석구석은 아직도 뇌리에 각인처럼 남아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모든 것을 던지듯이 사랑했던 여자. 그런 상대가 던지는 요염한 도발에, 파문이 일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리라.
하지만 흔들림은 잠시였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갖고 놀아도 된다고? 스무 살도 안 된 십대 후반의 여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나한테 뭘 원해?”
“나, 오빠 정공에 들어가고 싶어.”
“……!”
그의 눈빛이 또다시 흔들렸다. 아니, 어떻게 최현주가 그런 것을 알고 있지?
그런 혼란을 알아차렸는지 그녀가 피식 웃었다.
“정규 공격대 등기부 열람하면 다 나오는 걸. 오빠 정공 만들었던데? 우연히 봤어.”
“정말로 우연히?”
“사실 거짓말. 오빠가 정공 만들었다는 거 알 만한 능력자들 사이에는 소문 쫙 났어. 오빠, 이 바닥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잖아.”
마음이 가라앉았다. 괜한 생각을 품은 것 같다. 정규 공격대 창설 사실이야 등기부를 열람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항이다. 대단한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괜히 긴장했다.
“너 정공 있잖아. 근데 왜 내 정공을 들어오겠다고?”
“오빠가 그냥 그런 정공을 만든 것 같지는 않아서. 레드몹을 레이드할 생각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것도 소문났어?”
“온갖 추측이 나와. 정규 공격대 영입도 거절하고 막공만 다니던 보호막 능력자가 왜 갑자기 정공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대원은 모집을 하지 않고 있을까 하고 말이야. 어쩌면 레드몹을 잡으려고 정공을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의견이 강세야. 몰랐어?”
소문이라는 게 때로는 근거 없이 예리해질 때가 있다. 유지웅은 당장 레이드 게시판을 뒤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고급 정보라서 레이드 게시판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도 레드몹 잡고 싶어. 정공에 끼워 줘.”
자기 정공을 만들기 위해서 처녀까지 바친 여자다. 스무 살도 안 된 미성년자 주제에. 그만큼 최현주가 가진 야심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했다. 그 야심이 레드 타입 괴수로 향한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내가 끼워줄 거 같아?”
“아니, 쉽게 안 끼워줄 거 같아. 그래서 제안하는 거야. 나 갖고 놀아도 된다고. 질릴 때까지. 그 대신 대원으로 받아 줘. 오빠도 알지? 나 어떤 딜러한테도 안 뒤진다는 거.”
최현주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남자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자신만만해 하는 것처럼.
가슴이 세게 뛴다. 차인 거나 다름없이 헤어진 여자. 그 여자가 저리도 당당하게 매달리고 있다. 당당한 것과 매달리는 것, 그런 모순이 자연스러운 것은 최현주만의 매력이겠지. 그래서 지금 이 대답이 더욱 기분 좋은 건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사람 다 돼도, 너는 안 돼. 내 공격대에 네 자리는 없을 거야.”
사귀었을 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 능력을 상실하고 홀대받았던 서운함, 헤어진 뒤에 남은 아쉬움과 원망이 섞여 짜릿한 감각을 낳는다. 당당했던 표정이 가볍게 구겨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유지웅은 등을 돌렸다.
악을 쓰듯이 그녀가 외쳤다.
“왜! 왜 안 된다는 건데! 딜러로 끼워주기만 하면 되잖아! 나 갖고 놀아도 된다니까! 나 능력도 있잖아!”
“효주가 있는 공격대에 널 넣어줄 순 없어.”
차 유리를 내리기 전 유지웅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그러니 이미 끝난 사이, 더 이으려고 하지 말자. 잘 지내.”
차고 문을 열고 유지웅은 차를 안으로 몰았다. 차고 문이 닫히며 어둠이 깔리자 참았던 심호흡이 쏟아졌다. 이윽고 그는 정효주한테 문자를 보냈다.
「나 왜 이렇게 멋지지?」
「내 앞에선 도취해도 돼. 근데 다른 사람 앞에선 그러지 마. 민망하잖아.」
그녀의 답변은 야박했다.
============================ 작품 후기 ============================
현주는 대충 정리. 뭐 준조연으로 가끔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엘로 타입 잡으면 녹색 결정체가 나옵니다. 레드 타입은 파란 결정체가 나옵니다. 그래서 초능력자들은 속어로 녹파템이라고도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