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71)
00471 흔들리는 하얀 집 =========================================================================
아이오와 주 상공을 지나던 위성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추락을 시작했다. 모처럼 휴일을 즐기고 있던 비시 대통령은 긴급 보고를 받고 놀랐다.
위성 추락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십여 분. 참모진이 모일 시간조차 없었다.
“얼마나 위험한가?”
「위성 추락 자체는 크게 위험한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대기권 마찰로 대부분이 타버릴 겁니다. 문제는 추락에 놀란 괴수들이 날뛸 수 있다는 겁니다. 추락 예상 지점이 전부 레드 몹 서식처였습니다.」
“최대한 요격할 수 있는 건 요격하고, 대피령을 내리게.”
「지금 요격 중이지만 낙하 속도가 워낙 빨라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게.”
지름 10km이 넘는 금속 운석이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궤도를 맴돌고 있는 위성이 통제력을 잃었을 뿐이다. 이때만 해도 비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위성 추락에 놀란 레드 몹이 미쳐 날뛸 가능성이 있다고는 했지만, 말 그대로 가능성으로만 본 것이다. 유성도 종종 떨어지곤 하는데 그깟 위성, 그것도 타다 남은 잔재만 떨어질 텐데 뭐가 걱정이랴 싶었다.
보고자의 레드 몹 자극 가능성도 으레 재난 사태가 있을 때마다 부록으로 딸려오곤 하는 내용이라, ‘설마 큰일이야 있겠어?’ 싶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급히 소집하려 했던 안전 회의를 취소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보다 그는 왜 갑자기 12개나 되는 위성이 일제히 추락을 시작했는지 그 점에 의문을 품었다.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단순한 고장인지 아니면 외부 공격인지 반드시 규명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12개나 되는 위성이 단순한 고장을 일으켰다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게 아닐까 싶다.
「각하! 큰일입니다!」
전화선에 불이 나는 줄 알았다. 비시는 경악에 찬 보좌관의 음성에서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위성이 추락한 12지점에 있던 레드 몹 전 개체가 놀라서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비시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니, 번개 맞을 확률도 그것보다는 높겠다.
* * *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건 대부분 유지웅의 일과가 되었다. 학교 가는 김에 겸사겸사 태우고 간다. 학교를 쉬는 날에는 주로 정효주가 데려다준다. 쉬는 날에는 그가 아침에 잘 못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치원 재밌어?”
“네! 재밌어요!”
“친구들하고는 잘 지내고?”
“네!”
기특하게도 아이는 자기 사정을 이해했다. 왜 친구들에게 집이 부자라는 것을 감춰야 하는지 전반 사정을 안다. 다 테레사 공이다. 유지웅은 테레사가 의외로 육아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다.
‘역시 여자는 여자야.’
자기 말로는 남자라고 바득바득 우기고 있고, 이제는 뭐 주변에서도 ‘네, 그렇다고 치죠.’라고 신경도 안 쓰고 넘어간 지 오래 되었다지만,
유세현이 제니스 공격대장 아들이라는 걸 숨기는 건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다. 그런 민감한 사정을 아이 눈높이에 잘 맞춰서 설명하고, 납득시킨 걸 보면 그것도 참 재주는 재주다.
“근데 세현아. 여자친구들 말고, 남자친구들은 없어?”
항상 보면 아이 주변에는 이성 친구밖에 없기에 조금 걱정이 돼서 그렇게 슬쩍 물어봤다.
“없어요.”
“아니, 왜?”
유지웅은 기겁을 했다. 이 녀석, 편식은 그렇게 안 좋다고 했는데 친구를 가려 사귄다고? 그러지 말라고 일부러 재단도 세 개나 짓고, 멀쩡한 흑석동 저택 놔두고 일반인 흉내도 내고 그러고 있는데?
“몰라요. 남자애들이 저랑 안 놀려고 해요.”
“……진짜니?”
“네. 같이 놀고 싶은데, 남자애들이 안 놀려고 해요.”
유지웅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마 내 아이가 왕따? 그런 것인가?
‘안 되겠다.’
지금 학교가 문제인가. 장손이 동성 친구들에게 따를 당하게 생겼는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그는 급히 차를 몰고 외부로 나갔다. 트렁크에 있는 가방을 꺼내 열었다. 안에 담긴 변장 소도구(안경, 옷가지 등)로 간단하게 변장을 했다.
언제든 원하는 때면 남 몰래 아이의 학교생활을 지켜볼 수 있도록 준비해둔 변장 도구와 신분증이다. 정밀하게 준비해둔 가짜 신분증까지 목에 걸고 나니, 완벽한 청소업체 사람이 되었다. 좀 많이 젊어 보인다는 점 하나만 빼면 나무랄 데가 없었다.
신분증을 제시하자 역시 통과다. 학업지원관리부에 등록해놓은 신분이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학업지원관리부에도 최상위 몇 명뿐이다.
“어? 지금은 청소하는 시간이 아닌데요?”
세 아이들을 인솔하던 젊은 여교사가 의아해서 질문을 던졌다. 유지웅은 순간 놀랐지만 얼른 태연히 받아쳤다.
“청소도구 망가진 거 놓고 가서요. 가지러 온 겁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굉장히 젊으시네요.”
“아, 네. 먹고 살려면 뭐든 해야죠. 아이가 셋인걸요.”
그 말에 여교사는 조금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는 지나갔다. 아마 자신 또래의 남자가 처자식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열심히 하면서 산다고 생각한 거 같다. 저대로 오해하게 놔두자.
유지웅은 해바라기반이 있다는 놀이터에 무사히 도착했다. 과연 여기까지 오는데 대부분 크게 신경을 안 썼다. 정식 청소복에 신분증까지 완벽하니 전혀 문제가 없다. 애초에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은 정문에서 안 들여보내주니, 안에 들어왔다는 건 신분이 확실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꺄하하하! 그게 진짜야?”
“말도 안 돼!”
“보여줘! 보여줘! 나도 꼭 보고 싶어!”
“재밌겠다!”
여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잔디밭으로 만들어진 공용 놀이터는 여러 반 아이들이 공용으로 쓰는 시설이다. 1개 반에 8명의 아이들이 있으며, 담당 교사는 3명이다.(4살 기준)
물론 반 아이들끼리만 어울려 놀지는 않는다. 보통은 이런 공용 시설에서 여러 반 아이들이 어울려서 다 같이 논다. 지금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만 해도 40명쯤 되어 보였다.
한 곳에 여자아이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유지웅은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설마 했는데 유세현이 무리의 중심에 있었다.
“아, 끝났다! 이번에는 내가 세현이 여보 할래!”
“아니야! 내가 할 거야!”
“내가 할래! 내가 할 거야!”
“이제 내 순서야!”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자 아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자기가 여보를 한다며 난리를 쳤다. 그 모습에 흐뭇했던 것도 그야말로 잠시. 유지웅은 불현듯 아이 주변에 정말로 남자아이들은 하나도 안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우리 세현이가 어때서?’
그의 눈은 남자아이들을 찾았다. 남자 아이들은 한쪽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조용히 놀고 있었다. 아니, 한창 힘이 넘쳐서 뛰어다닐 남자아이들이 왜 저리 얌전하게 놀지?
그나저나 정말 동성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건가? 유지웅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남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체격이 큰 아이가 일어서더니 우물쭈물 여자아이들 무리로 다가갔다.
“지원아.”
“왜?”
지원이라 불린 귀여운 여자아이가 귀찮다는 듯이 툭 물었다. 무리 중에서 가장 외곽에 있는 아이였다.
“우리 축구 하고 싶은데, 해도 돼? 세현이한테 좀 물어봐줄래?”
“해. 공 여기 안 오게 하구.”
“저어, 세현이도 같이 안 할 거냐고 한 번…….”
“세현이는 우리랑 소꿉놀이 할 거야! 축구 안 해!”
“아, 알았어.”
무슨 궁중 시녀장한테 물건 진상하러 온 평민처럼 어려워하던 남자아이는 무리로 돌아가자마자 어깨가 펴졌다. 그리고 씩씩하게 외쳤다.
“세현이가 우리 축구해도 된대!”
“와!”
“공 저기로 날리면 안 돼! 알았지?”
“응! 알았어!”
유지웅은 잠깐이나마 걱정했던 자기 자신이 너무 바보스러워서 하마터면 청소도구를 그대로 내던질 뻔했다.
‘저래도 되는 거야?’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닌 것은 확인했으니 마음이 놓인다. 근데 정말 저래도 되는지,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걱정이 된다. 일단 집에 가서 정효주와 의논을 해봐야겠다.
그때였다.
「회장님, 미국에 괴수 비상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속히 사무소로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박우진 비서실장의 다급한 연락에 유지웅은 아이 친구 관계에 관한 걱정은 잠시 접고, 얼른 유치원을 나섰다.
* * *
“……이와 같이, 위성 추락에 놀란 레드 몹들이 갑작스럽게 서식지를 벗어나 날뛰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자극 받은 옐로 몹들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아이오와 주에는 비상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저 동네는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저러네요. 마가 낀 지역인가?”
저번에는 하필 괴수 군단의 이동 방향에 위치해서 땅값이 떨어지더니 이번에는 위성이 난리란다.
미국과 화해 모드에 접어든 지 한창이라 유지웅도 일단 공격대 파견을 생각했다. 척 봐도 미국 자력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이고 도와줘야 할 거 같다. 이번에는 뭘 대가로 뜯어내면 좋을까?
“그런데 최윤 박사가 아이오와 주에 있습니다.”
유지웅은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요? 아니, 최 박사님이 왜 저기에?”
“특수형무소에 있는 어떤 수감자를 만나러 간다고…….”
“아니, 그게 저기였어요?”
바로 얼마 전에 미 정부의 승인 문제로 허락을 구하기에 알았다고 해준 기억이 난다. 근데 그게 하필 저곳이었나?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기에 어느 주인지까지는 자세히 듣지 않고 지나갔다.
“그래서? 지금 어떤 상태랍니까?”
“일단 형무소 대피 구역에 피신한 모양입니다. 상황이 저래서는 외부에서 항공기나 차량으로 구조를 할 수도 없고, 함부로 돌아다니는 게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럴 틈이 없잖아요. 서둘러 진압하고 구해내야죠.”
마음이 다급해졌다. 최 소장, 당신은 이렇게 시들어서는 안 돼. 당신이 없으면 앞으로는 누가 내가 내 피를 빨아줄 거…….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장 팀장님! 당장 아이오와 주를 괴수재난등급 최고 수준으로 설정하고, 제니스 파견 검토하세요!”
“알겠습니다!”
장태준이 서둘러 대답하고는 바로 파견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옆에서 박 실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최고 재난등급으로 설정하면 미국 경제가 아무래도 휘청거리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요즘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던데요.”
제니스 사무소는 자체적으로 괴수의 습격으로 인한 위험 상태를 진단하는 괴수재난등급이라는 기준을 운용하고 있다. 해당 지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몇 몇 등급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른바 대 괴수용 데프콘이다.
근데 이게 국제 사회에서 신뢰도가 매우 높다. 사람들은 자국 정부가 발표한 것보다도 제니스가 설정한 재난등급을 더 믿고 신뢰한다.
총 1에서 5단계까지 있는데, 1단계로 갈수록 위험한 상태를 말한다. 1단계의 의미를 요약하자면, ‘그 지역은 괴수가 실시간으로 날뛰고 있어 지역 내 전원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다 죽을 수도 있어요. 헤헷.’쯤 된다.
여태껏 한 번도 1단계는 선언된 적이 없었다. 그랬던 최고 등급이 아이오와 주에 선포되면 난리가 난다. 미국 사회는 패닉에 빠질 수도 있으리라. 박 실장은 그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경제 상황이 문제입니까. 괴수 때문에 다 죽게 생겼는데. 이건 척 봐도 1단계 상황이에요.”
“알겠습니다.”
박 실장은 얼른 돌아서며,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지난 몇 년 간 이런 악재들이 겹치고 겹치는데, 여전히 미국이 세계대국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걸 보면, 그것도 참 재주는 재주 같다.
……그 행운이 이번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 작품 후기 ============================
“…1단계 위험사태요?”
-ㅇㅇ너네 지금 쫌 많이 위험.
“지난 번 한미 연합 훈련할 때 그거 핵연료 완전 누출 상태보다 더 위험하다고 가정하고 연습하지 않았음?”
-그랬던가?
“…그런데 1단계 선언하면 우린 어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