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91)
00491 양지로 쫓겨난 남자 =========================================================================
비시 정부는 최윤의 생존 사실을 곧바로 한국 및 유지웅에게 통보했다. 오리건 주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했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최윤 박사는 현재 아이오와 주 파울러 시티에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지금 구조반을 보내서 최 박사를 모셔올 예정입니다.”
“혹시 시간을 벌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럼 더 큰일납니다.”
주한미국 대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비공식적인 자리이기는 하지만 일국의 외교관에게 할 말이 아니다. 다른 이가 저런 말을 했다가는 당장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조장될 것이다.
하지만 체념해야 했다. 외교적 수사? 예의? 그것도 먹힐 만한 사람에게나 주장할 수 있는 것. 단지 불쾌한 심사를 한 번 내비쳤을 뿐인데, 거대한 미국이 갈기갈기 조각날 만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한테 어찌 그런 걸 따질 수 있을까.
“절대 아닙니다. 사고 당시까지 최윤 박사와 동행한 EIS 요원이 함께 생존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어떻게요?”
“라디오 방송으로…….”
대강 자초지종을 들은 유지웅은 그제야 얼굴이 풀어졌다.
‘박사님, 살아 있었군요.’
그에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은 최윤이 살아 있는 것. 미국이 쪼개지든 말든, 미국이 러시아와 다투거나 으르렁대든 말든, 최윤만 살아 있으면 된다. 그것이 바로 그의 기준이다.
“저어…….”
미국 대사는 유지웅의 눈치를 살피며 운을 떼었다. 본국의 지침이긴 하지만, 과연 이래도 되는지 회의가 들었다.
“왜 그러시죠?”
“최윤 박사의 생존이 확인되었으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자비? 무슨 자비요?”
“……현재 오리건 주 연방 탈퇴 주민 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그에 관해서 한 말씀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것이 유지웅을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백악관도 아주 바보는 아닌지라 그 정도쯤은 이제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칠드그린이 거듭해서 어필한 결과지만.
한 마디를 해 달라. 그게 연방 탈퇴를 막아달라는 뜻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잠시 생각하고 난 뒤 유지웅이 말했다.
“일단 최윤 박사님이 무사한 걸 먼저 확인해야겠습니다. 그전에는 아무 것도 약속해드릴 수 없군요.”
“거짓이 아니라 그것은 정말…….”
“물론 대사의 말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저도 움직일 수 없다는 거죠.”
“그런…….”
“걱정하지 마시죠. 주민 투표? 까짓 거 뒤집으면 그만이니까요. 아니면 투표 한 번 더 시키면 되죠. 연방 가입 투표로요.”
허탈해질 정도로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주민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자기 입맛에 따라 다시 뒤집을 수 있으니까 상관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는 게 더 사람 맥을 빠지게 만든다.
아무튼 대사가 돌아가고 유지웅은 이 기쁨을 자신 혼자만 알고 있기 뭐해서 연구소 사람 전원에게 문자를 돌렸다.
「최윤 박사님이 살아 있대요! 현재 아이오와 주 파울러 시티에 무사히 피신 중이랍니다!」
비록 새벽이긴 하지만 결례는 안 될 것이다. 동료의 죽음으로 비통해하는 이들에게 생환 사실을 알리는 것이니까. 새벽에 이런 문자를 보냈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 본인이 문제인 것이다.
「그게 정말인가요?」
「역시 소장님! 살아있을 줄 알았어!」
「그럼요! 입자가속장치 만들어지는 것도 못 보시고 그리 쉽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죠!」
「와, 정말 다행이에요!」
당연히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난리가 났다. 근데 반응을 보니 다들 자다가 연락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나미가 포획한 로봇 괴수를 분석하는데 낮과 밤을 잊고 매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동료의 생환은 어쨌든 기쁜 일이다. 그러나…….
「충격! 파울러 시티에 거대한 폭발 확인! 테러인가, 사고인가?」
버섯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영상 화면에 유지웅은 쥐고 있던 태블릿을 떨어뜨렸다.
* *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버섯구름 영상에 한참을 굳어 있던 비시는 목이 찢어져라 호통을 쳤다. 참모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약속이라도 한 듯 꾹 다물고 있었다.
파울러 시티가 거대한 폭발에 휩싸였다. 말 그대로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폭발이 난 것이다. 그런데 그 폭발 위력이 예사롭지 않다. 저 정도면 못해도 전술핵, 혹은 핵배낭을 여럿 이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각하. 일단 현지 요원들이 최선을 다해 조사 중이니 조만간 진상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고정하시고…….”
“지금 진정하게 됐나! 최윤 박사가 파울러 시티에 살아있다고 유지웅 회장한테 자랑한 게 겨우 몇 시간 전인데, 파울러 시티가 송두리째 날아갔단 말이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우리 꼴이 뭐가 되느냔 말이야!”
“각하!”
“대체 안보국이든 정보국이든 일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기에 이런 일이 연거푸 터지느냔 말이야! 핵 관리는 대체 어떻게!”
“지, 진정하십시오! 현재 어디서 핵무기가 반입되었는지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수십 년 전, 괴수의 등장은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일궈냈다. 전 세계의 핵무기를 폐기하는데 공헌한 것이다. 정확히는 방사능을 생산하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이용한 종류의 무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모두 폐기되었다.
대괴수용 핵무기는 방사능이 나오지 않는 핵융합 폭탄이다. 그전 핵융합 폭탄과는 달리 기폭제로 결정체를 쓰기 때문에 방사능이나 낙진이 없다. 더러운 핵무기가 폐기된 것은 인류애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냥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깨끗한 핵무기를 만들 기술력을 갖춘 나라가 정말 몇 개 안 된다는 것이다.
파울러 시티에서는 방사능 검출이 안 됐다. 핵무기를 외국에서 몰래 밀입했거나, 혹은 미군이 관리하는 핵무기를 몰래 빼돌렸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인데, 어느 쪽이든 간에 비시 정부로서는 치명타를 맞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몰래 핵을 반입했다?
핵 관리가 허술해서 잃어버렸다?
어느 쪽 길을 택하든 간에 악몽 밖에 없다. 공화당은 절대로 다음 선거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아니, 바로 탄핵 열풍을 맞고 백악관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백악관에서 쫓겨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유지웅에게 ‘사실 최윤 살아 있어요.’라고 자랑을 한 게 겨우 몇 시간 전인데, 파울러 시티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최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정말로 제로가 되고 만 것이다. 핵이 터질 것을 예상하고 지하로 대피라도 했으면 천운으로 살아남았겠지만, 그것을 기대하느니 유지웅이 삼처사첩을 들이는 것을 바라는 게 더 확률이 높으리라. 미국 입장에서는 그렇다.
한참 동안 분을 쏟아내던 비시는 겨우 추스르고 말했다.
“아마 유지웅 회장도 알았겠지?”
“너무 큰일이라 숨길 수도 없습니다. 언론 통제를 실시 중입니다만 제니스의 정보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사방이 막혔군, 막혔어…….”
비시의 탄식이 백악관 집무실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차라리 설레발친답시고 최윤의 생존을 미리 말하지 말 걸 그랬나 보다.
“토미 에슨의 짓인가?”
“……정확한 것은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현재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토미 에슨입니다.”
“대체 왜? 탈옥했으면 얌전히 여생이나 즐길 것이지, 파울러 시티에 피난한 수많은 사람들까지 사살해가며 최윤을 제거할 이유가 대체 그에게 있나?”
비시는 정말로 그게 이해가 안 되었다.
어떻게 해서 그레이브스의 방송을 듣고 최윤이 파울러 시티에 살아 있다는 걸 알았다 치자. 이런 무리수까지 둬가면서 최윤을 제거해야 할 이유가, 토미 에슨에게 존재하는가? 대체 그에게 무슨 원수를 졌기에?
설마 정말로 최윤을 제거하는 게 진정 미국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건가? 비시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이리 되면 유지웅의 분노만 더욱 가중되고, 결국에는 미 연방 해체만 확실시 되는 꼴이 아닌가?
측근이 죽어서 분노했던 사람이 사실은 측근이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뻐할 틈도 없이 그 측근이 다시 살해당했다. 그 분노가 처음보다 더 크고 깊은 것은 명백한 것 아닌가?
“토미 에슨 말인데, 혹시 감옥에 있는 동안 러시아나 다른 적성국에 매수된 것은 아닌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 하,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부분도 집중적으로 조사를 해야 합니다!”
오랜 복역 생활 중에 조국에 배신감을 느끼고 적성국에 매수돼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 차라리 그게 말이 되는 것 같다.
* * *
트위스트의 지시에 따라 도시 투입 전, 곳곳에 설치해둔 전술핵을 작동시킨 옛 CIA 부하들은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되는지 염려를 나타냈다.
“이거, 이렇게 해도 정말 괜찮은지 몰라.”
“하지만 부장님이 시킨 일 아닌가?”
“어쨌든 최윤은 죽었겠지?”
“소형이긴 해도 엄밀히 핵이야. 파울러 시티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뭐, 운 좋게 지하에 있던 놈들이라면 모를까.”
“최윤이 지하로 피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우리가 핵을 터트릴 것을 어떻게 알고? 아마 정신없이 도시를 벗어나려다가 핵폭발에 휩쓸렸거나, 아니면 무너진 건물에 깔려서 죽었을 걸?”
최윤 하나를 잡으려고 도시를 핵으로 송두리째 날려버린다는 것은 철저히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누구도 이렇게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도 놀랐을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파울러 시티 파괴에 사용한 핵은 미군기지에서 오래 전에 빼돌린 소형 전술핵이었다. 핵치고는 파괴력이 작은, 아기자기한 탄두지만 그래도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방사능의 오염도 없다.
“그래도 피난민이 수십 만 명은 됐을 텐데…….”
어느 누군가가 안타까운지 그리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조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부장님!”
갑작스럽게 나타난 트위스트의 목소리에 부하들은 깜짝 놀라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 일사분란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트위스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최윤 박사는 휘버의 후계자라 불릴 정도로 결정체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이다. 그런 자가 제니스 그룹에 존재한다면, 가뜩이나 제어가 안 되는 제니스의 힘이 어디까지 커질지 두려운 일이다. 한국은 훗날 미국이 반격할 가능성마저 원천봉쇄 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국력을 쌓게 될 것이다.”
“…….”
“어떻게든 우리가 그를 손에 넣어야 했다. 멍청한 비시는 설령 그를 확보한다 해도, 제니스 회장의 말 한 마디에 놀라서 당장 내주고 말 거다. 만약 우리가 그를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차라리 제거하는 게 낫다. 그가 죽었다고 알려진 지금이 가장 적기였다.”
비시가 이미 최윤의 생존을 유지웅에게 고해바쳤다는 걸 알게 된다면 트위스트는 까무러칠지도. 어쩌면 다음 타겟을 백악관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위험한 인물입니까?”
“전에 토미 에슨 국장님이 그리 말씀하셨다. 최윤을 제거하면 제니스의 잠재력은 크게 약화된다고. 보안상 자네들한테는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수 없군. 유감이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국장님과 부장님을 믿습니다.”
“믿고 따라주니 고맙군. 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서둘러 다음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오리건 주 투표 결과는 탈퇴 찬성을 향해 치열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개표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자, 개표 상황을 방송 중인 각 언론사가 ‘찬성 확정’을 방송하기 직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언론사 건물 및 중앙선거관리소가 화염에 휩싸였다.
============================ 작품 후기 ============================
“조국 배반이라니, 그 무슨 섭한 말씀! 이런 애국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