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90)
00490 지나가는 바람 =========================================================================
에피소드 – 지나가는 바람
정혜주는 올해 22세가 된다. 이제 슬슬 졸업과 진로의 압박이 피부로 와 닿는 대학교 3학년. 하지만 그녀는 아무 걱정 없이 태평하게 학교를 다닌다. 세계 제일의 부자를 형부로 두고 있는데 취업 걱정을 한다면 그게 더 넌센스다.
“언니, 저 어떻게 인턴으로 좀 안 될까요?”
“2학년이 어떻게 인턴을 하니? 단기 알바 자리는 봐줄 수 있어.”
“단기 알바요?”
“아니면 주말 알바로 꾸준히 하던가. 그렇게 얼굴 익히고 3, 4학년 되면 인턴하다가 정직원 들어오면 되지.”
“그럼 그거 좀 부탁드려요.”
잘난 형부를 둔 덕에 벌써부터 온갖 인사 청탁이 들어온다. 어린 나이에 주변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 보면 자칫 휩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혜주는 조심 또 조심했다.
‘사려야 돼.’
호가호위는 적당히. 형부의 권세로 덕을 보는 것도 좋지만, 도가 지나치면 형부한테 어리석은 처제로 보일 수 있다. 그럼 큰일 난다.
언젠가 한 번 이 문제로 언니와 의논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언니는 오히려 정반대의 충고를 해주었다.
“그렇다고 친구들 부탁에 너무 거리 두는 건 역효과야.”
“왜?”
“사람들이 얼마나 매정하게 생각하겠니? 사람 대하는 건 적당히 융통성 있게 해야 돼. 너 정도면 친구나 후배들 알바나 인턴 자리 정도는 봐줄 수 있잖아.”
“그래도 돼?”
“대신 능력 미달 되는 애는 안 돼.”
“알지. 내가 바본가.”
정혜주는 고교 시절부터 제니스 공격대 사무소에서 꾸준히 사무 알바를 해왔다. 벌써 5년을 해왔으니, 이제는 사무소에서도 그녀를 숫제 정직원 취급한다.
공격대장 처제다 보니 장태준을 필두로 해서 직원들은 그녀를 무슨 임원 대하듯이 한다. 법적인 지위는 단기 알바와 인턴 그 사이쯤 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단순 비품 관련 업무만 했지만, 요즘에는 인사나 공금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알바기는 한데 하는 업무만 놓고 보면 완전히 임원급이다.
형부는 사람 하나 키우는 셈치고 시험 삼아 맡기는 거라고 전에 말을 했다. 그걸 보면 형부는 자신이 졸업 후 사무소에서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 같았다.
세계 제일의 공격대다 보니 뭐 나쁘지는 않은데, 가끔 ‘그래도 될까?’하는 자문이 들긴 했다. 너무 형부한테만 의지하는 것도 좋지는 않을 수도…….
“와, 고기다! 고기!”
“장 팀장님, 먹고 싶은 거 막 시켜도 되죠?”
“그럼. 괜찮아. 이걸 보라고.”
장태준이 카드를 팔랑팔랑 흔들어대자 직원들이 환호했다. 회식 자리에 참석한 정혜주도 그들 가운데 섞여서 웃었다.
“정혜주 씨는 술 안 드세요?”
“아, 저 차 가져와서요.”
“아, 그래요. 그럼 저라도 좀 따라주세요.”
“그럴게요.”
옆에 앉은 여직원의 말에 정혜주는 그녀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공격대장 처제인 게 알려졌을 때는 직원들이 다소 어려워했는데, 워낙 시원시원하고 쾌활한 성격 덕에 지금은 다들 편안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래도 간혹 상급자를 대하듯 듯한 조심스러움이 느껴지곤 한다.
“먼저 들어갈게요. 다들 재밌게 노세요.”
“아니, 벌써요?”
“내일 아침 일찍 강의가 있어서요.”
좋은 상사는 회식에서 일찍 빠져주는 상사라 했다. 물론 그녀는 상사는 아니지만 회사에서는 상사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정혜주는 매번 회식 자리에서 일찍 빠진다.
“혜주 씨 벌써 가시네. 아쉽다.”
“꿈 깨. 못 오를 나무야.”
“누가 그렇대? 그냥 회식 자리에 같이 있어주기만 해도 분위기가 화사해지잖아?”
“하긴. 매번 술도 안 드시고 일찍 가시더라.”
다만, 상사도 상사 나름이라는 것을 그녀가 아직 깨우치지 못했다는 게 결점이라고 해둘까.
주차장에는 그녀의 애마, 마이바흐 65S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신기한 듯이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차키를 꺼내들자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원격 조정으로 시동을 건 그녀는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탔다.
“와, 저 여자 뭐야?”
“어디 재벌집 딸인가?”
“근데 저런 아가씨가 저렇게 큰 차를 몰 수 있겠어?”
문을 닫는데 그렇게 수군거리는 게 들린다. 이제는 익숙해진 관심이라 정혜주는 신경을 껐다.
확실히 차량이 너무 크긴 하다. 젊은 여자답게 가녀린 체구와 비교하면 더욱 커 보인다. 이 차를 제대로 몰기 위해서 얼마나 피 눈물 나게 운전 연습을 했던가. 상처 하나라도 나지 않을까 얼마나 애지중지하는데.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갔다. 저녁 강남대로답게 온갖 명품 차량들이 넘쳐 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이바흐가 지나가자 다들 몸을 사리듯이 비켜섰다. 전 세계 상위 1%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차량과 접촉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다.
잠시 신호에 막혀 기다리고 있는데 정혜주는 문득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어? 형부?”
이런 우연이? 유지웅이 바로 옆에 정차해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정혜주가 옆에 정차한 걸 알지 못했다. 반가워서 카톡을 보내볼까 하던 정혜주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형부가 왜 강남에? 오늘 세종시에서 중요한 볼일 있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근거 없는 의심이 갑자기 솟아났다. 여자만이 지닌 번뜩이는 감이라고 해두자.
“형부 마이바흐는 평소에 거의 잘 안 타는데…….”
유지웅은 마이바흐 차량이 몇 대 있기는 하지만, 너무 무거운 느낌이 난다며 평소에 잘 안 탄다. 그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처럼 시원하게 쭉 빠진 느낌의 수퍼카를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은 왜 하필 마이바흐를 타고 나왔을까? 그것도 혼자서? 게다가 세종시에 중요한 볼일이 있다고 한 사람이?
‘수상해…….’
그가 강남에 볼일이 있나? 강남이 번화한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사람이 너무 많고 혼잡하다며 싫어했다. 누구에게는 강남이 부의 상징이지만 누구에게는 번잡함의 대명사이기도 한 법. 유지웅은 강남에 빌딩 한 채도 없다.
신호가 바뀌었다. 유지웅은 처제가 옆에 정차한 것도 모른 채 차를 출발시켰다. 정혜주는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 형부, 설마?”
유지웅의 차가 들어선 곳을 보고 먼발치에서 정혜주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바로 대형 유흥 술집이었던 것이다. 그녀도 이 근처를 몇 번 오다가다 하면서 봤는데, 근처에서는 가장 크고 비싼 술집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형부가 룸싸롱 같은 데를!”
룸싸롱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유흥업소니까 룸싸롱이라고 해두자. 크게 충격을 받은 정혜주는 언니에게 이걸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내가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도 될까? 하, 하지만 이건 형부가 명백히 잘못하고 있는 건데…….’
고민을 하던 정혜주는 일단 언니 반응이라도 한 번 떠볼까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한참이나 벨이 울려도 받지 않았다.
“바쁜가?”
정혜주는 초조해졌다. 벌써 형부가 안에 들어간 지 좀 됐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안에서 어떤 년이랑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부부사이 일인데 나서야 하나? 하지만 처제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친동생처럼 친하게 지내온 사이 아닌가? 오빠가 잘못을 하고 있으면 여동생이 당연히 말려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 오빠가 돈이 많다고 꼭 입 다물고 있어야 해?
한참을 번뇌하던 정혜주는 결국 결심을 굳혔다.
“그래. 형부가 잘못을 하고 있다면 나라도 나서서 막아야 해. 그게 언니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거야. 세현이를 위해서라도.”
굳게 마음을 먹은 정혜주는 인근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댔다. 아무 옷가게나 들어가서 제일 야한 드레스를 샀다. 술집 근처 화장실에서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는 출근하는 여 종업원처럼 태연한 척 들어섰다.
“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 아냐? 이봐, 출근할 때 복장 입고 오면 안 돼. 복장은 안에서 갈아입고, 출근할 땐 최대한 수수하게. 알았어?”
“아, 그래요? 죄송해요. 몰랐어요.”
정혜주는 생글생글 웃어넘기며 안에 들어섰다. 몇몇 마주치는 남자들이 그녀의 늘씬한 다리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봐, 거기. 너 어느 팀장 라인이야?”
“저요? 그런 거 잘 모르는데……. 오늘 첫 출근이거든요.”
“너 데려온 놈 있을 거 아니야?”
“이름 잘 몰라요. 그, 키 크시고 얼굴 각지신 분인데…….”
관리자급 정도로 보이는 말쑥한 남자가 묻자 정혜주는 대충 지어내서 말했다. 어차피 이 자리만 넘기면 알 바 아니다.
“아, 창원이? 잘 됐다. 너 손님 좀 받아라. 너 보고 맘에 드신다는 분이니 잘 모셔.”
“네? 근데 저 예약이 되어 있는데요?”
“예약? 누구?”
“그 하얀색 마이바흐 란돌레 타고 오신 분이요. 출근하면서 입구에서 마주쳤는데 그 분이 저보고 바로 들어오라고…….”
“김 실장님이?”
정혜주는 속으로 경악했다. 뭐야? 형부를 잘 아는 눈치인데? 그럼 한두 번 드나든 게 아니라는 소리잖아?
김 실장이라 칭하는 걸 봐선 형부가 신분을 속인 것 같다. 하기야 세계 제일의 부자가 이런 술집을 드나든다는 게 입소문 나봐야 좋을 게 없다. 꽤 비싸고 규모도 커 보이지만, 정치인이나 재계 고위 인사들이 드나드는 술집은 따로 있는 법이다.
“이상하다. 김 실장님이 웬일로 재희 말고 다른 애를 찾으셨지.”
재희란 년은 또 누구야? 정혜주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짧은 흘림이었지만 정혜주는 바로 눈치를 챘다. 웬 술집년 하나한테 단단히 꽂혀서 언니 몰래 드나들고 있는 거 아닌가.
‘이건 더 심각한데.’
차라리 그냥 유흥 그 자체에 재미를 붙인 거라면 좀 낫다. 근데 한 여자한테 푹 빠진 거라면 이건 떼어내기 더 힘들다. 설마 언니 형부, 이혼하는 건 아니겠지?
“따라 와.”
남자는 정혜주를 바로 안내했다. 어두운 조명의 복도 곳곳에는 중년의 남자와 거의 다 벗은 어린 여자가 서로 껴안고 있었다. 아직 처녀인 정혜주로서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현장을 잡아야 해.’
하지만 언니와 조카를 위해서라며 정혜주는 무너지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여기다. 다른 아가씨도 와 있으니 놀라지 말고, 둘이서 서먹하더라도 잘 모셔. 우리 가게 제일 큰 손님이니까.”
남자가 대신 노크를 했다. 정혜주는 마음을 다잡았다. 방안에서 어떤 꼴을 봐도 놀라지 않으리라. 어떤 놀랄 만한 꼴을 봐도 당황하지 않으리라. 떨지 말고 똑바로 말을 해야지. 형부,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언니랑 세현이 보기 안 부끄러워요?
문이 열렸다. 심호흡을 하고 룸 안의 풍경을 확인한 정혜주는 그만 반사적으로 관리자를 뒤로 밀쳐냈다. 그리고 문을 거칠게 쾅 닫고는 바로 잠갔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상의가 반쯤 풀어진 형부가 소파에 앉아 있고, 거의 다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얇은 슬림 드레스를 입은 재희란 년이 그의 다리에 앉아 목을 두 팔로 감고 있었다. 그 꼴을 확인한 정혜주는 스스로가 너무 바보스러워져서 머리를 북북 긁으며 쥐고 있던 손가방을 그대로 내던졌다.
“오빠! 언니!”
오빠란 호칭 참 오랜만에 써본다. 정혜주는 불륜 현장을 들킨 것처럼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언니 부부를 노려보며 빨개진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네, 네가 여긴 어떻게?”
“혜, 혜주야.”
“놀랐잖아! 난 형부가 바람피우는 줄 알고, 언니 생각해서 어떻게든 말리려고 그랬는데, 어떻게…….”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정혜주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면 눈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처음 알았다.
둘은 헛기침을 하며 떨어졌다. 처제 보기가 민망했는지 유지웅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나, 나 먼저 가볼게.”
“그, 그래. 먼저 들어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처제 볼 낯이 없었는지 유지웅은 서둘러 룸을 나섰다. 정혜주는 언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진짜 누가 보면 술집 여자라고 믿을 만큼 아찔한 옷차림이다.
“옷 잘 어울리는데?”
“…….”
어느 정도 민망함이 가신 후 정효주가 쥐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어떻게 된 건지 설명했다.
“그러니까 상황극? 권태기 예방을 위한?”
“……뭐, 그런 거지.”
술집에서는 유지웅을 모 재벌 그룹 후계자, 정효주를 돈이 필요해서 술집에 취업한 초짜 아가씨로 알고 있다고 한다. 유지웅이 마이바흐 란돌레를 끌고 왔을 때 가게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가게 오픈 이후 최대 손님이라는 것.
젊은 재벌 3세 손님은 첫 출근한 재희를 마음에 들어 했고, 그녀를 독점 지명했다. 다른 손님들이 재희를 보며 군침을 흘렸지만 재희는 꿋꿋하게 그만 손님으로 받았다. 재희 혼자 버는 돈이 다른 아가씨 수십 배에 달할 정도니, 출근율이 극악임에도 가게에서는 그녀를 애지중지 대했다.
……라는 스토리란다.
* * *
“형부.”
“어, 응? 왜?”
“오늘 재희 보러 가시는구나?”
“아, 안 가!”
“왜요. 재희 안 보신 지 좀 됐잖아요. 재희 오늘 나오는 거 같던데?”
“…….”
“재희랑 재밌게 놀다 오세요. 언니한텐 말 안 할 테니 걱정 마시고요.”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이 원하신 주인공 세컨드인데 마음에 드시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