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88)
00588 왕의 귀환 =========================================================================
“……이상,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한다. 과제는 특별한 기한은 정해주지 않겠다. 능력껏 완성하는 대로 가져오도록.”
학생들은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세 시간 동안 머리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가 이제야 겨우 해방되었다. 그만큼 니트로 교수의 수업은 어려웠다.
가르침 자체는 쉽다. 문제는 학문 자체가 너무 고난이도라, 아무리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줘도 한계가 있었다.
“너무 어렵다.”
“그러게. 본과목은 비교도 안 되네.”
이 수업은 정규 수업이 아니었다. 대학원 과정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선별 학습이었다. 따라서 학점 같은 없으며, 참가 학생 전원이 자발적으로 듣는 수업이었다.
시험과 레포트, 연구 과제가 수시로 나온다. 정해진 기한 같은 것은 없다. 레포트 제출도 학생 개인이 각자 됐다 싶을 때 자발적으로 제출하며, 제출을 안 한다고 불이익은 없다. 순수하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공부를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니트로 교수는 핵물리학의 기본 원리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업을 따라가기 바빴다. 가끔 니트로 교수는 가르치다 말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아직은 그 한숨의 의미를 아는 학생이 딱 한 명뿐이었다.
“교수님, 진짜 대단하지 않아?”
“그러게. 천재는 천재인가 봐.”
“그러니까 그 나이에 교수 됐지.”
“원래 핵물리학자셨다는데? 결정체학은 부전공이래.”
“나이도 어리신데 가르치기도 엄청 잘 가르치셔. 진짜 천재는 타고 나는 건가 봐.”
니트로 교수가 들었다면 역정을 냈으리라. 부전공이 아니라 교양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지가 천재면 다야?’
정혜주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지금 학생들은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었다. 니트로 교수가 가르치다 말고 중간 중간 내뱉는 한숨의 의미를 과연 학생들은 알까? 전혀 아닐 것이다. 아마 자신 혼자만 알 것이다.
대책 없는 돌대가리들.
니트로 교수가 내뱉는 한숨은 바로 그런 의미다. 정혜주는 자기 이름을 걸고 확신할 수 있었다. 틀림없다.
어찌 확신하느냐고? 비행기에서 ‘이런 것도 암산 못하느냐’고 할 때 지었던 그 표정과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체면 때문에 감히 말을 못 꺼내는 것뿐이다.
‘좀 똑똑하면 다야? 다냐고!’
그래서 정혜주는 더욱 오기가 나서 공부에 매달렸다. 매일 밤 코피가 터져라 공부를 했다. 레포트도 열심히 작성하고 연구 과제도 열과 성을 다해 참여했다. 전부 다 그가 놀라는 얼굴 한 번 보기 위해서였다.
“레포트입니다, 교수님.”
정혜주는 보란 듯이 레포트를 내려놓고 가슴을 폈다. 니트로 교수는 손을 뻗어 레포트를 펼쳤다. 정혜주는 당당한 얼굴로 기다렸다. 레포트 내용을 보면 깜짝 놀라겠지?
“그나마 이게 제일 낫군.”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뭐야? 겨우 그 정도야? 내가 이주일 동안 밤을 세워 온갖 자료를 정리하고 정성을 들여 만든 레포트에 겨우 그런 반응 밖에 못 보여? 감동, 칭찬은 어디 가고?
“정혜주 학생도 대학원 진학이 목표인가?”
“네, 그래요. 교수님.”
“……휴.”
정혜주의 이마에서 삐죽 하고 힘줄이 돋았다. 지금 그 한숨의 의미는 뭐지요, 교수님?
“어려울까요?”
“아니, 그런 게 어디 있나. 열심히 하다 보면 비록 그 머…… 아무튼 박사 과정은 딸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들었다, 들었어! 방금 분명 ‘비록 그 머리로도’라고 말을 하려다가 멈칫한 걸, 분명히 들었어!
정혜주는 살벌하게 웃었다. 16살이면 자신보다 무려 7살이나 어리다.
‘이 꼬맹이가 지금 7살 누나 앞에서 머리 좀 좋고 교수 좀 하고 얼굴 좀 잘생겼다고 잘난 척은……. 아니, 마지막은 빼고. 아, 아무튼! 너무 건방지잖아!’
“아직은 미흡하지만 노력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러니 힘을 내고 학업에 정진해. 알겠지?”
‘거짓말!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 안 하면서!’
“나는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야. 지금은 부족할지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건 없어. 정혜주 학생 말고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야.”
‘저, 저 가증스러운 얼굴 좀 봐! 속으로는 이런 돌대가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면서!’
“자, 그럼 나가 봐. 공부 열심히 하고.”
정혜주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시크한 얼굴로 눈 하나 꿈쩍 않고 격려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어떤 망언을 했고 얼마나 자신을 개무시했는지 똑똑히 다 기억하는데!
「장학생이 이 정도면 어지간히도 대책이 없군. 다 돌덩어리들뿐인가?」
그 말을 분명히, 똑똑히 이 귀로 들었다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정혜주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원래는 끝까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저 가면을 벗기지 않으면 답답해서 자신이 먼저 죽을 거 같았다.
“교수님, 혹시 저 모르세요?”
“알지. 정혜주 학생이잖아.”
“그거 말고요.”
“그거 말고, 뭐가 또 있지?”
“우리 전에 만난 적 없느냐구요.”
“우리가 만난 적이 있던가?”
니트로 교수는 정혜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혜주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비트웬의 코일란 방정식.”
“갑자기 그건 왜?”
“카르믹스의 베르트란 이론.”
“……잠깐. 학생, 혹시……?”
“자연응집도 고착 현상의 메르티 변수 적용 계산법.”
니트로 교수는 말을 멈췄다. 푸른 눈동자에 놀라운 감정이 깃들었다. 정혜주는 악을 씹는 마음으로,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그건 교양이고, 라고 하셨죠. 이래도 기억 안 나세요?”
“……그때 그 돌머리였군.”
무심코 작게 중얼거린 니트로 교수는 아차 싶은 얼굴로 정혜주의 눈치를 살폈다.
“아, 본의 아니게 진심이 튀어나왔네. 미안하다.”
“지, 진심이라구요?”
그녀는 너무 어이가 없으면 사람이 쓰러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게 더 상처가 되는 걸 알기나 해!
‘못 참아! 아니, 안 참아!’
“교수님. 머리 엄청 좋으셔서 그 어린 나이에 대학 교수도 되고 하신 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교수님처럼 아이큐 180이 넘지는 않아요.”
“180 아니다. 200 넘는다.”
“아, 아무튼! 사람마다 개별차가 있는 건데 자기 머리 좀 좋다고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니에요? 전 다 보인다고요! 우리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속으로 우리 머리 나쁘다고 투덜거리시는 건 너무하잖아요!”
“그래서?”
“……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
니트로 교수는 눈 하나 꿈쩍 않고 빤히 올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성장을 덜해서 그런가? 눈높이가 서로 대등해지며 시선에서 불꽃이 튀었다.
“강의를 불성실하게 하나?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무시를 했나?”
“그, 그건 아니시지만…….”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지? 속으로, ‘이 돌들을 언제 가르쳐서 박사 만들고 사람 구실시키나’ 하고 한숨 쉬는 것도 잘못인가?”
“아, 아니요오…….”
정혜주는 당황했다. 이 박력은 뭐지? 16살이라서 조금 쉽게 봤는데 이렇게 뻔뻔할 줄이야.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자기는 잘못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그 태도는 뭔가?”
“네, 네?”
“학생이 교수한테 찾아와서 할 말은 아니라고 보는데. 세상에 어느 학생이 교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던가? 나는 오늘 처음 보는군.”
정혜주는 정신을 차렸다. 가슴에 손을 얹고 후우 하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학생으로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대학 관계자로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학생들 너무 무시하지 말아달라고요.”
“대학 관계자?”
“저, 실질적인 재단 재무 이사거든요.”
“……학생이 아니라?”
“학생 맞아요. 학생이면서 재무 이사이기도 해요. 그리고 지금은 학생이 아니라 재무 이사로서 말씀드리는 거구요.”
“재무 이사라면, 그……?”
“예산부 최종 결재자죠.”
정혜주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잘난 형부와 언니를 옆에서 몇 년 간 보면서 배운 게 있다. 바로 예산의 법칙! 세상은 돈(예산)이 지배하고, 그 예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하물며 막대한 연구 자금이 필요한 기초과학 분야, 그것도 대학이라면 말을 다 했다.
‘알았니, 꼬마야? 이 누나가 바로 돈줄을 쥐고 있으신 분이라는 거야. 응?’
형부가 쥐어둔 돈의 검을 이런 식으로 휘두른다는 게 조금 꺼림칙하긴 했다. 하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이 꼬맹이를 어떻게 해서든 한 방 먹이고 싶었다.
대학 교수나 되는 인간이 저리 오만해서야 언제고 큰일 한 번 내지 않겠는가? 다 그걸 방지하기 위한 훈육이다. 결코 비행기 안에서 개무시당한 일 때문에 앙금을 품은 게 아니다.
“그렇군. 네가 바로 연주대의 제이크였군.”
“……제이크요? 그게 누구죠?”
“있다. MIT의 정혜주 같은 인간.”
“그,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요!”
피식, 하고 니트로 교수는 웃었다. 슬쩍 보이는 하얀 치아가 가지런하게 빛이 났다.
“내 인생의 과오가 하나 있지.”
“과, 과오요?”
“난 그걸 되풀이할 마음이 없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보통 과학자들은 예산을 지배하는 책임자를 만나면 벌벌 떨기 마련이다. 그들의 연구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결재해주는 이는 신이나 다름없으니까.
정혜주도 무슨 거창한 걸 바란 게 아니었다. 그냥 가볍게 한 방 먹이고 다음부터 잘해, 너무 학생들 무시하지 마, 그래도 너 강의는 잘하더라, 뭐 그렇게 끝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 반응은 뭐지? 아직 애기라서 예산의 무시무시함을 모르는 거야? 그런 거야?
“예산에 지배당하는 인생은 한 번이면 족하다.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비스듬하게 팔짱을 낀 그는 차갑게 비웃었다.
“내가 예산을 지배할 거다.”
* * *
“어어! 박사님! 이걸 보세요!”
“뭔데 그래?”
“결정체를 이용한 상온 핵융합 반응 연구 논문이 실렸어요! 특허 신청도 동시에 접수됐고요! 말도 안 돼! 우리 연구소도 이제 막 걸음을 시작했는데, 대체 누가?”
“뭐야! 제대로 된 논문, 특허 맞아? 엉뚱한 이론 짜집기 한 건 아니고? 논문 저자가 누구야?”
“니트로 체임버 주니어라는데요.”
“누구야, 그게!”
============================ 작품 후기 ============================
“나라고 휘버처럼 살지 못할 건 없지.”
예산을 지배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