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57)
00657 회장님의 인증 =========================================================================
www.gameidrive.com
수십 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게임 동호회 사이트다. 가입자만 수십 만이라는 것이지 가입하지 않고 살펴보기만 하는 회원 수는 훨씬 더 많다. 유지웅이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각종 게임에 관한 정보를 나눈다. 국내에 출시된 거의 모든 멀티 게임 카테고리가 계열사처럼 갖춰져 있어, 유저들이 자기가 플레이하는 게임을 골라서 동호회 활동을 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어디 보자. 이 퀘스트가 그러니까…….”
컴퓨터 앞에 앉은 유지웅은 열심히 창을 들여다 보았다. 그가 즐기는 MMORPG, 오우를 플레이하는 도중에 퀘스트 해결이 막혀서 벌써 한 시간째 헤매는 중이었다. 그는 결국 두 손을 들고 공략을 보기로 했다.
“뭐해?”
“응. 게임하구 있어.”
“안 잘 거니?”
“잠깐만. 이거 다 하구 갈게.”
얇은 슬립 잠옷을 입은 정효주는 뒤에서 말없이 모니터를 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와이프가 한숨을 쉬든 말든 유지웅은 검색창에 뜬 퀘스트 공략을 훑어보기에 바빴다.
“나 먼저 잘게.”
“응. 이따가 깨울게.”
“…….”
다소 미묘한 눈으로 신랑의 뒤통수를 흘끔거리던 정효주가 문을 닫고 나갔다.
“아싸! 찾았다!”
해결책을 찾은 유지웅은 곧바로 게임창을 활성화했다. 공략본과 비교해가며 진행하자 금세 해결이 되었다. 뿌듯했다.
―축하합니다! 칼그리마의 용사 타이틀을 획득하셨습니다!
“오예!”
드디어 퀘스트를 완료하고 업적을 이룬 유지웅은 기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이 업적 하나 완수하려고 몇 날 며칠 동안 와이프와 취침 시간도 못 맞췄다. 자고 있는 거 깨워서 하느라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지. 그 설움은 이제 안녕.
「오, 유성트롤님. 드디어 칼그리마 용사 마치신 거?」
「ㅊㅋㅊㅋ.」
「이제 드디어 같이 인던 갈 수 있겠네요.」
마침 접속해 있던 길드원들이 일제히 축하를 해주었다. 유지웅은 한시름 놓았다. 새 던전 중에는 이 업적을 완료해야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동안 유지웅만 업적이 없어서 매번 길드원들과 따로 놀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 그래도 된다.
「며칠 고생하시더니, 그래도 어찌 깨셨네요?」
「사실 겜아이드라이브에서 공략 봤어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겜드라이브요? 난 거기 오우 카테고리에 상주하는 애들 좀 재수없던데.」
「왜요?」
유지웅은 의아했다. 왜 재수가 없다는 거지?
「오늘 처음 들어가봤죠?」
「네.」
「가서 함 봐봐요. 그럼 아실 거예요.」
유지웅은 다시 사이트를 열고 페이지를 죽 훑어보았다. 게시물 페이지를 몇 번 넘기며 대강 훑어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게임 오우 관련 코너인데, 정작 오우 이야기는 안 하고 회원들이 자기들 일상 잡담을 주로 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게임 정보가 필요해서 찾아온 일반 회원에게 좋을 게 없다.
「겜 이야기는 안 하고 엉뚱한 잡담이나 하고 있네요. 너무 잡담만 많으면 안 좋은데. 그래도 게임 코너잖아요.」
「그런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요.」
「다른 거? 뭐요?」
「며칠 죽치고 봐봐요. 그럼 알 거예요. 거기 잘난 체 하는 애들 좀 많아서 꼴불견이에요.」
잘난 체? 유지웅은 의아했다. 원래 레벨 시스템이 있는 게임이 잘난 체 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이거 봐! 나 이렇게 레벨이 높아! 내 쩔어주는 캐릭터와 아이템을 보라고! 하려고 말이다.
“앗, 늦었다.”
벌써 새벽 1시였다. 유지웅은 후다닥 게임을 끄고 일어났다. 게임룸의 불을 끄고 3층으로 내려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서자 은은한 취침 조명이 맞이했다.
침대에는 정효주가 누워 있었다. 손을 뻗자 맨살을 얇게 덮은 슬립 잠옷이 만져졌다. 아이처럼 품에 파고들자 그녀가 잠결에도 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 * *
「까만 날개 군주 레이드 할 건데 흑마 아이템 세팅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유지웅은 질문 글을 올렸다. 헌데 삼십 분이 넘게 지나도 댓글 하나 달리지 않았다. 조회수도 별로 안 올라갔다.
야박한 사람들이라고 투덜거리던 유지웅은 다른 게시물들을 눈으로 훑었다.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게시물이 몇 몇 있었다. 소위 말하는 게시판 네임드라는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게임 얘기는 안 하고, 대체 뭔 얘기들을 이리 하는 거야?”
「이번 달에 돈 너무 많이 썼어요. 동생놈 결혼시키느라고요.」
「오, 동생분 드디어 결혼하셨나 봐요?」
「말도 마셈. 아파트 한 채 안 해오면 결혼 안 한다고 난리 피워서 집안 등골이 다 빠졌어요. 저도 적금 하나 깼음.」
「그래도 파이브닥터님 돈 잘 버시잖아요. 요새 성형외과 한창인데.」
「안 그래요. 의료수가 너무 낮아서 의료계 너무 힘듬.」
유지웅은 다른 게시물들도 살폈다. 그리고 어이가 없어서 혼자 한마디 했다.
“게임 코너에서 게임 이야기는 안 하고 무슨 연봉에 지출 내역 잡담이야?”
어제 길드원이 한 말이 생각났다. 며칠 죽치면서 눈팅해보면 알 거라는 말. 그게 이런 의미였나?
유지웅은 바로 게임을 켜고 접속했다. 어제 길드원은 한창 채집 중이었다. 바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겜아이드라이브, 여기 오우 코너 왜 이래요? 겜 이야기는 안 하고 쓸데없는 잡담만 하고 있네요.」
「아, 보셨구나.ㅋㅋㅋ 웃기죠?」
「이거 뭐예요?」
「거기 보면 의사놈 하나랑, 금융 회사 다니는 놈 하나랑, 자영업 하는 놈, 이렇게 셋이서 주축이에요. 아주 그냥 자기 자랑하기 바쁜 애들임.」
「이거 친목질 아님? 딴 사람들은 가만 놔둬요?」
「오프 모임도 자주 하면서 돈 막 쓰고 그러니까 친위대도 많아요.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그 세 놈은 그냥 피해다니는 수준이고. 그래도 잘 찾아보면 겜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음.」
「에이, 여기 말고 게임 정보 교류 활발한 데 없는데.」
「잘해봐요. 암튼 난 그 세 놈 보기 싫어서 거기는 발 끊고 혼자 함. 우리 길드에 나 같은 사람 많음.」
유지웅은 결국 오우 코너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뭐 게임 이야기가 좀 나오고 그래야 놀 맛이 나지, 이건 게임 코너인지 잡담 코너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응? 이건 뭐니?”
“파이브 판타지 17이야. 이번에 새로 나왔어.”
“오우는?”
“잠깐 쉬지 뭐. 한두 번 그랬나? 너도 같이 할래?”
“난 됐어.”
유지웅은 얼른 게임기에 CD를 집어넣고 작동시켰다. 그의 게임룸은 한쪽 벽면에 커다란 디스플레이 패널이 달려 있다. 인치로 치면 300인치는 될 것이다. 눈 나빠진다는 핑계를 대고 만든 벽면 스크린인데, 정효주는 알면서도 넘어가줬다. 애초에 그런 건 간섭도 안 하지만.
300인치 화면 가득 웅장한 영상이 흘러나오고, 홈 시어터가 쾅쾅 울리며 가슴이 뚫릴 듯한 사운드를 쏟아냈다. 한참을 멍하니 오프닝에 심취해 있던 유지웅은 드디어 게임이 시작하자 정신을 차리고 컨트롤러를 주었다.
그리고 30분 후.
“아씨!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모르겠다!”
유지웅은 컨트롤러를 집어던지고 씩씩거리다가 결국 게임아이드라이브 사이트에 접속했다. 콘솔 게임 코너에 들어가서 신작 공략 정보를 찾았다. 나온 지 며칠 안 된 게임이라 그런지 제대로 된 공략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질문글을 올렸다.
「겜 시작 30분 만에 막혔는데요…….」
주저리주저리 장문의 질문글을 적어서 올리고 그는 잠시 스트레스를 풀 겸 정효주를 찾았다. 와이프를 한껏 다정하게 안아주고 심신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다시 접속을 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왜 아무도 대답을 안 해줘!”
보니까 여기 코너도 잡담 투성이었다.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니, 운영진은 대체 뭐 하는 거야? 게임 사이트 분위기가 이러면 망하는 거 아니야?
“대체 뭔 잡담을 떠는 거야.”
보니까 또 연봉에 자기 직업 자랑 이야기하면서 분위기 흐리는 놈들이 있었다. 많지는 않은데 한 다섯 명 정도? 오우 코너에도 그런 놈들이 있었는데, 여기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제 월별 지출 내역이에요. 뭐 좀 더 줄여야 하는지 누가 봐주실 분?」
「소득 대비 지출이 적으신데요. 연봉도 높으시면서. 이러다가 금방 집사시겠어요.」
「아, 집은 있어요. 작년에 30평짜리 아파트 샀거든요.」
「우왕 굿.」
「역시 억대 연봉자.」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30분 만에 막혀서 힘들어하는 어린 양을 돌봐줄 생각도 안 하는 분위기에 유지웅은 그만 삐졌다. 그래서 순간의 오기를 참지 못하고 관련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연봉 자랑은 좀 그만하면 안 돼요? 사람들이 말을 안 한다고 아니꼽게 안 보는 게 아니거든요?」
「죄송합니다. 자랑으로 비쳤다면 사과할게요.」
「아니,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해요? 깔깔총님은 그냥 고민을 털어놓으신 건데 그걸 가지고 자랑이냐뇨?」
「아닙니다. 충분히 자랑으로 보일 만한 일이었어요. 제 잘못입니다.」
「그런 걸로 사과하지 마세요.」
「난 유성트롤님 말이 맞는 거 같은데. 솔직히 깔깔총님 보면 꾸준히 자기 자랑 심하게 함. 그것도 은근 돌려서.」
「맞음.」
순식간에 분위기가 불타올랐다. 조용히 침묵하던 이들이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로 말을 꺼냈던 깔깔총은 어느새 한 발짝 물러났다. 대신 유지웅만 집중포화를 얻어맞았다.
「하, 어디서 뉴비 하나가 와서 물 다 흐리고 가네. 꼭 돈도 못 버는 폐인 새끼들이 저러더라.」
그 말에 유지웅은 울컥했다.
「뭐래. 너보다는 훨 잘 살거든?」
「지랄을 하시네. 꼭 현실 찌질한 폐인 새끼들이 넷상에서는 큰소리뻥뻥 치지.」
「하. 너네 연봉 다 합쳐도 내 비서실장 한 명도 못 이길 걸?」
「풉. 비서실장까지 있으세요? 아주 그냥 직원들 연봉 주느라 허리가 휜다고 하시지 그러세요?」
「어찌 알음? 연봉 나가는 것만 열 네 자리가 넘어서 허리가 휘는데.」
「열 네 자리만 십 조? 농담도 정도껏 해라.」
「원래 인증 없으면 구라임. 깔깔총님도 인증 진즉 다 하셨구만.」
「인증해봐, 새끼야.」
유지웅은 화가 났다. 안 그래도 게임 막혀서 속이 부글부글 터질 것 같은데, 올바른 소리 한 마디 했다고 넷상으로 별별 소리를 다 들어야 하나? 그는 열이 받아서 댓글을 달았다.
「오늘 안에 인증한다. 기다려라.」
「인증해봐, 새끼야. 어디서 사진 퍼오지 말고, 니 닉이랑 날짜까지 나오게 잘 적어서 해. 합성하지 말고.」
「기대도 안 함. 우쭈쭈, 우리 아기 화나쪄염?」
유지웅은 곧바로 세현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은행장님, 지금 갈 건데요. 준비해주실 게 있어요.”
* * *
“인증 한다더니, 여태 조용하네?”
“야야, 그걸 믿었냐? 게시판에 저런 애들 어디 한둘이야?”
“깔깔총 형님 부러워서 헛소리한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근데 오늘은 뭐 사주실 건가요?”
“스시 어때? 좋아해?”
“물론이죠!”
실컷 게임을 하고 멀티방을 나선 네 명의 남자는 키득거리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들은 게임으로 맺어진 지인 사이였다.
“요새 금융권 대우 좋아요?”
“말도 마라. 우리도 아주 힘들다. 저번에 통과된 법 때문에 공직 분위기 엄청 살벌하잖아. 조금만 뭐 잘못 되면 그냥 칼같이 잘리니, 알아서 조심해야지.”
“그래도 억대 연봉자시잖아요. 부럽다.”
“너도 공부 열심히 하면 돼. 우리 회사 들어올 수 있어.”
“어휴, 저도 한국 은행 들어가면 소원이 없겠다.”
그때였다. 가장 막내가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비명을 질렀다.
“어, 형들? 그 유성트롤이라는 애 인증 올렸는데요?”
“뭐, 올렸어?”
“그, 근데…… 지,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저 이런 인증은 첨 봐요.”
심상치 않은 표정에 셋은 얼른 폰을 꺼내어 사이트에 접속했다. 유성트롤이 올린 게시글은 조회수가 말 그대로 하늘을 뚫을 듯이 폭주를 하고 있었다. 외부에도 알려진 모양이었다. 평소 조회수가 수백 내지 천 정도 나오던 게시판에서 혼자서 벌써 50만을 넘기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인증은 한 장이 아니었다. 이십 장 정도 되어 보였다. 모든 사진마다 유성트롤로 추정되는 청년이 서 있었다. 뒤로 돌아서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놀랐던 이유는 바로!
“그, 금괴?”
“야, 이거 가짜 아냐?”
“아냐. 밑에 보면 확대 사진도 있어. 마크 봐. 이거 진짜 정품 금괴야.”
“이, 이게 대체 몇 개야?”
커다란 실내에 유성트롤로 추정되는 청년이 뒷모습을 보인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무수하게 많은 금괴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가지런하게 나열된 금괴는 ‘4월 22일 겜아이드라이브 유성트롤 인증’이라는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각을 찾을 겸 워밍업 겸 가볍게 에피소드 하나 올립니다.
특별히 몸이 아팠던 건 아니고, 그냥 멘탈 피로도가 상당했습니다. 회복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무 쉬면 안 될 듯 해서 다시 연재 재개합니다. 기다려주신 분들, 쿠폰 주신 분들, 걱정해주신 분들,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늘 에피소드는… 인터넷 시대이니만큼 공감가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