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61)
00661 천둥군주 =========================================================================
유지웅 일행은 나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들은 시애틀에 대기 중이던 제니스 예비대와 합류했다. 브라우니와 정효주, 유지웅은 상급 힐을 받고 완전히 회복했다.
“브라우니, 이 쓸모없는 녀석.”
유지웅은 침통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나름 블랙이나 되는 녀석이 무용지물이라니. 그래도 노틸러스를 상대할 때에는 제법 괜찮은 전력이 되어주었는데.
“방사선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상급 힐로 버티면 안 될까?”
“글쎄. 하지만 화이트로 진화한 녀석이 얼마나 방사선이 강해졌는지는 모르잖아?”
그게 문제였다. 녀석이 블랙 등급이었을 때에는 상급 치유로 그럭저럭 버티면서 싸울 수 있었다. 아니, 치유도 필요 없이 정효주 단독으로 처치가 가능했다.
그러나 화이트로 진화한 지금, 녀석이 뿜어내는 방사선이 얼마나 강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정효주와 유지웅은 버티는 듯했지만, 일반 레이더도 버틸 수 있을지는 확답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힐러를 즉사시켜 버릴 정도면 안 돼. 힐러 없이 싸우면 우리가 져.”
“무력은 더 앞서지 않을까?”
“그럼 뭐 하니. 녀석이 치고 빠지면서 시간 끌면 결국 방사선 때문에 우리가 먼저 전투 불능이 될 텐데.”
무력 측면에서는 유지웅 측 전력이 확실한 우세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방사선 공격이라는 특수한 능력 때문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붕괴 역장 생성 장치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부딪치지 않기를 권합니다. 승산이 적을 뿐더러 너무 위험합니다.”
심지어 장태준도 그렇게 조언했다. 유지웅도 끄덕이며 동의했다.
“녀석을 막지 않으면 전 세계가 위험해지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죽음을 무릅쓸 수는 없죠. 일단 역장 생성 장치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보죠. 아, 폐쇄 모듈은 어떻게 됐나요?”
“거의 완성 직전이라 합니다. 필요한 부품은 결정체를 제외하고 전부 구비해두었다고 하더군요.”
“최 소장님이 어지간히 애가 탔던 모양이네요.”
유지웅은 전투 대기로 방향을 정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위험을 무릅쓰고 북극곰 괴수와 싸우다가 자신이 죽거나 혹은 정효주가 죽기라도 하면, 남겨진 아이들은 어쩌고? 일단 내가 먼저 살아야 세계도 구하고 할 거 아닌가.
이렇게 되자 애가 탄 것은 백악관이었다. 이미 몬태나 주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데다가, LA까지 날아가 버렸다. 국토의 상당부분이 오염이 심해서 못 쓰게 되었는데, 여기에 북극곰 괴수가 동진이라도 하면 미국은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어떻게든 대지 오염을 줄이기 위해 백악관은 동분서주하며 유지웅을 설득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요지부동이었다.
“미스터 제니스가 나서주셔야 합니다. 귀하가 아니면 미국을 구해줄 수 있는 영웅은 없습니다. 부디 3억 미국 시민을 생각하셔서 도와주십시오.”
“안 도와주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승산이 없으니 역장 생성 장치가 만들어질 때까지 보류하겠다는 거죠.”
“그전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어, 음. 잠깐만 멕시코로 피난 가는 건 어때요? 그 동안 국토는 포기하고, 일단 인명부터 살리죠.”
“유 회장님!”
피가 말리는 대답이었다. 비시 대통령 귀에는 ‘차라리 나라를 포기하는 게 어때?’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곰곰이 따져보면 정말 그 소리였다.
“땅은 나중에라도 되찾으면 되지만,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일단 제 말대로 하시는 게?”
“유 회장님!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니까요? 역장 생성 장치가 완성되기 전에 녀석이 미국 전 국토를 휩쓸면 사망자가 엄청나게 나올 걸요? 미국 시민의 90%가 사망할 수도 있어요. 일단 잠깐 땅은 포기하시고, 안전한 곳에 피신을 시키시는 게 어때요? 멕시코가 정 뭣하면 미국 극동 지역에라도.”
“……알겠습니다. 극동부 지역에 일단 한 명이라도 많은 시민을 피신시키겠습니다.”
비시는 유지웅의 완강한 뜻을 확인하고 암담한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 그가 이리 몸을 사린다는 것은 그만큼 북극곰 괴수가 위험한 존재라는 뜻이고, 그런 녀석이 미국 땅에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위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요. 녀석의 스케일을 너무 우습게보지 마세요. 미국 하나로만 끝낼 녀석이 아닙니다.”
“앞으로 초래할 세계적인 위기를 경고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왜 우리만 이런 일이’ 하고 너무 억울해하시는 거 같아서 위안이 되시라고…….”
너만 얻어맞는 거 아니다. 다른 애들도 똑같이 얻어맞는다. 그러니 위안이 될 거야. 뭐 그런 의미로 건넨 위로였는데 비시의 표정이 더욱 구겨진 걸 보니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다.
* * *
북극곰 괴수는 워싱턴, 몬태나, 오리건, 아이다호, 네바다, 캘리포니아 등 여섯 개 주를 활개치고 다니면서 마음껏 방사선을 뿌려댔다. 무인 항공기를 통해 측정한 결과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방사선이 검출되었다.
무려 미국 본토에서 20% 가까운 지역이 죽음의 땅으로 변모하고 만 것이다. 북극곰 괴수를 섬멸한다 해도 미국은 이미 너무 많은 영토를 잃었다. 이는 향후 미국의 국력을 내동댕이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미국은 대대적인 시민 소개 작전에 나섰다.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전 시민을 뉴욕 등 동부 지역으로 옮겼다. 덕분에 미국 서부와 중부는 텅텅 빈 유령의 땅이 되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온 미국 시민들은 백악관을 향해 분노와 원망을 터트렸다.
“비시 행정부는 대한 외교 정책을 어떻게 했기에 제니스가 우리를 안 도와주냐!”
“무능한 비시 정권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거의 전 시민이 몰린 미 동부 지역은 안 그래도 좁아 터졌다. 여기에 연일 비시 행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야말로 미국은 국정 마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비시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흰 머리가 늘어나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이는 미국 홀로 받아내야 할 위기가 아닌, 전 세계 모두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할 인류 공동의 시련입니다. 따라서 저는 UN에 제안합니다. 온 국가가 힘을 합쳐 북극곰 괴수를 섬멸하도록 힘을 보탤 것을 말입니다.”
WCO 의장 남기철은 위험을 무릅쓰고 뉴욕까지 날아와 UN본부에서 연설을 했다. 하나 빠짐없이 모인 UN회원국 대사들은 그의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남기철이 제니스를 대변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WCO가 UN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국제기구지만, 사실상 제니스 산하 조직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런 조직의 수장이 와서 적극 연설을 하니, 비시 행정부의 무능함을 성토하던 미국 시민의 분노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나미 씨, 좀 도와주면 안 돼요?”
“글쎄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위험한 일에는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하지만 저번에는 도와주셨잖아요?”
“그건 피즈 때문이었죠.”
나미는 이번에도 지원을 거절했다. 인간을 적대해서가 아니라, 너무 커다란 위험은 감수하기 싫어서였다. 대신…….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폐하. 소첩은 끝까지 폐하를 도우며 함께 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소첩에게 성은을…….”
“나, 나디아. 그 이야기는 제발 이제 그만…….”
정효주의 눈치가 보였던 유지웅은 기겁을 해서 나디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니까 아빠! 여자 정리 좀 하란 말이야! 엄마가 화가 나니까 아빠 안 도와준다는 거잖아!”
“저기, 피즈야. 그런 게 아니거든?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 건데 사실 난…….”
“내가 네 애비 아니다, 그러려고 그러지! 또!”
“저기. 그러니까…….”
“답답해. 아빠 진짜 화나. 할 수 없지. 엄마 대신 나라도 아빠를 도와줄게.”
피즈는 앙증맞은 주먹을 불끈 쥐며 투지를 불태웠다.
“엄마 아빠를 화해시킬 줄 알아야 착한 아이니까!”
“…….”
아무튼 세계는 블랭 이후로 오랜만에 처한 대위기 앞에서 제니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WCO와 한국 외교부는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이 사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설파했다.
“그야말로 살아서 돌아다니는 핵탄두라도 보시면 됩니다. 강력한 핵폭발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요, 막대한 방사선을 주변에 마구 뿌려댑니다. 이미 미국은 20%에 가까운 국토가 방사선에 오염되어 못 쓰게 되었습니다.”
“그럼 바다는 괜찮은 겁니까?”
“아직 바다로는 많은 양의 방사선이 누출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녀석이 만약 바다를 헤엄쳐 건너기라도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야말로 엄청난 재앙입니다. 인류는 수산물 섭취를 포기해야만 할 겁니다. 제3차 해금사태가 벌어지는 겁니다. 그것도 사상초유의 규모로 말이지요.”
“우리 유럽도 아낌없는 지원을 내놓겠습니다.”
“약소하지만, 우리 아프리카공화국도…….”
“우리 영국도…….”
다른 나라들이 지원할 수 있는 게 뭐겠는가. 결국 결정체와 자금뿐이다. 블랭 사태 때 막대한 그린 결정체를 소모한 것을 기억하는 국가들은 벌벌 떨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겨우 회복세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닥칠 것이다. 가뜩이나 미국이 붕괴 직전이라 전 세계적으로 대공황이 도래하기 직전인데.
“결정체는 필요 없습니다.”
다행히 결정체는 필요 없다고 한다. 최윤이 지휘하는 세종시 연구단지는 자금 지원만 받았다. 폐쇄 모듈 제작에 필요한 결정체는 이미 확보했고, 벌써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최윤은 제작에 소요한 자금을 국제 사회에서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뜯어내 충당하고자 했다.
“최 소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폐쇄 모듈과 역장 생성 장치에 필요한 자금은 100억 달러면 충분할 텐데요?”
최윤이 뒤에서 WCO와 한국 외교부를 움직여 국제 사회에서 확보한 자금은 자그마치 1,000억 달러였다. 앞으로 소모할 자금을 고려한다 해도, 무려 10배에 가까운 돈을 뜯어낸 셈이다. 놀란 니트로 교수가 어떻게 된 거냐고 질문했다.
“니트로 박사, 폐쇄 모듈과 역장 생성 장치 제조에 소요되는 돈은 100억 달러면 됩니다. 하지만 그에 관련된 모든 기초 과학 연구를 총망라한다면 1,000억 달러도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 그에 관련해서 지금까지 수년 간 투입한 연구비용까지 몽땅 다 뜯어내겠다는 소리다. 명분상으로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니트로는 크게 감탄했다.
“대단합니다! 제 제자도 그런 태도를 좀 배웠으면.”
“니트로 교수, 그게 무슨 말입니…… 말인가?”
“그런 게 있습니다. 가렌 박사님.”
최윤이 사제지간으로 알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불꽃이 튀겼다. 여기서 문제. 과연 어느 쪽이 스승이고, 제자일까?
‘최 소장을 저리 바꾼 게 난데, 교수님은 무슨…….’
가렌은 억울했지만, 최윤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 명의 천재 과학자는 우수한 연구진을 이끌고 폐쇄 모듈 및 붕괴 억제 역장 생성 장치 제조에 몰두했다. 여기에 초고성능 수퍼 컴퓨터 오리나가 가세하자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세계는 극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류 구원 프로젝트에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한 마음으로 모아 장치가 완성되기를 기원했다. 특히 발등에 염산이 떨어진 미국은 하루에도 몇 차례나 ‘언제 완성돼요?’하고 문의를 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됐습니다!”
보고를 받은 유지웅은 마침내 굳게 닫힌 게임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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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파트는 근시일 안에 끝납니다.